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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 식칼테러의 재구성

지난 9월 9일 식칼테러가 벌어진 현장. 피해자측에선 계획된 범행을, 경찰측에선 우발 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9월 9일 식칼테러가 벌어진 현장. 피해자측에선 계획된 범행을, 경찰측에선 우발 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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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동안 실랑이를 벌이던 낯선 사내가 사라지자 대화 분위기가 좀 가라앉았다. 그 사내가 대화에 끼어 있을 때는 너무 어수선해서 도무지 분위기가 잡히지 않았다. 도무지 예의라고는 손톱에 때만큼도 없는 사람이었다. 반말에 막발, 우격다짐식 논리였다.

"너희들이 광우병에 대해서 아주 잘못 알고 있다. 내가 정육점을 운영해봐서 좀 아는데 미국산 쇠고기 검역 체계보다 한우 검역 체계가 더 위험하다. 너희들 정육점 해 봤냐?"

이런 식이었다. 도저히 차분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것 같아 가장 젊은 윤씨(32)가 나서서 정중하게 "선생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시죠"라며 귀가를 종용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도무지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윤씨는 다시 한번 정중하게 집에 돌아가시라고 말했다. 그러기를 수차례, 사내는 마지못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윤씨는 낯선 사내를 배웅해 주기로 했다.

낯선 사내는 걸어가면서도 윤씨에게 계속 우격다짐식 논리를 강변했다. 들어주기에 너무 힘든 말이었지만 윤씨는 꾹 참으며 그를 배웅해줬다.

사내가 오기 전, 1시 40분경에는 자칭 전직 교수라는 사람이 슬며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적당한 키에 65~70세 정도 돼 보이고 깔끔한 인상이었다. 잠을 자기 위해 막 누웠을 때다.

"여기서 주무실 분들이 아닌 듯한데 무슨 사연이 있느냐?"며 말을 붙였다. "저희는 뉴라이트 반대 촛불문화제와 관련된 사람들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자칭 전직 교수는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보수가 없다"며 돗자리 한편에 걸터앉았다.

그는 뉴라이트에 관해 상당히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활동 방향과 역사 등. 하지만 뉴라이트와 연관된 인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전직 교수니까 당연히 아는 것이 많겠거니 생각했다.

자칭 교수와 약 20분 정도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그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돗자리에 앉지도 않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대화만 경청했다.

낯선 사내의 재등장, 손에는 식칼 두 개가...

사건현장은 지금도 보존되고 있다
 사건현장은 지금도 보존되고 있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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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씩씩 거리며 다시 돌아왔다. 자리를 뜬 후 2분 정도 흘렀을 때다. 윤씨가 깜짝 놀라 "아 왜 또 오셨느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내는 흥분된 어조로 "아까 나한테 욕한 놈이 누구야! 다 죽여 버릴 거야"라며 윤씨를 밀쳐 넘어뜨리고 전광석화처럼 윤씨 오른쪽 관자놀이에 시퍼런 식칼을 꽂았다.

죽음의 공포를 느낀 윤씨는 아픔을 느낄 사이도 없이 피를 줄줄 흘리며 젖 먹던 힘을 다해 그 자리를 피했다. 그때서야 이들은 사내 손에 칼이 들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내 손에는 칼이 두 자루나 들려 있었다.

깜짝 놀란 김씨(38)가 "뭐야"라고 소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사내는 아주 능숙한 솜씨로 김 씨 뒷머리를 칼로 내리쳤다. 김씨는 "악"하고 비명을 지른 후 약 10m 거리에 있는 경찰들에게 "경찰 칼 들었어 도와줘"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경찰들(4명)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사내는 옆에 앉아 있던 문씨(39) 뒷목을 아주 능숙한 솜씨로 베었다. 문씨는 시뻘건 피를 뿌리며 짚단처럼 쓰러졌다. 사내는 곧바로 칼을 고쳐 잡고 쓰러진 문씨 이마를 내리쳤다. 긴 회칼은 그대로 문씨 이마에 박혔다. 이마에 박힌 칼은 뽑히지 않았다. 사내가 칼을 뽑기 위해 힘껏 들어 올렸지만 너무 깊이 박혀서 손잡이만 빠지고 말았다.

불과 1분도 안된 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낯선 사내가 칼 휘두르는 솜씨는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빠르고 정확했다. 말릴 사이도, 대항할 새도 없었다. 눈 깜짝 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미처 공포를 느낄 시간조차 없었다.

칼이 뽑히지 않자 사내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희한한 것은 경찰들이 4명이나 깔려 있는 조계사 입구 좁은 계단 쪽으로 도망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올 때도 경찰들이 4명씩이나 있는 계단으로 올라왔다.

칼을 두 자루나 손에 들고 씩씩거리며 계단을 오르는 사내를 경찰들이 제지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한 것은 피칠을 한 채로 한 손에는 아직도 칼을 들고 있는 사내가 코앞에서 도망치는데도 경찰들이 잡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교적 부상이 가벼운 김씨와 일행 중 유일하게 피해를 당하지 않은 김씨(52)가 사내를 뒤쫒기 시작했다. 하지만 범상치 않은 완력을 지닌 사내를 뒤쫒기는 무리였다. 뒤쫒는 것을 포기하고 부상자를 돌보기 위해 현장으로 돌아와 보니 자칭 교수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그 짧은 시간에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궁금하기만 했다. 좀 전까지 분명히 있었는데!

지난 9월9일 새벽에 일어난 조계사 식칼테러 사건을 목격자 김홍일씨(52)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해 보았다.

[의문1] 술에 취한 사람이 1분도 안되는 시간에 3명을 테러할 수 있나?

목격자 김홍일씨(52)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목격자 김홍일씨(52)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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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8일 밤부터 '안티 이명박 카페' 회원 문아무개(39), 윤아무개(39)등 6명과 함께 조계사에서 농성중인 수배자들 지지 농성을 위해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

9월23일 오전 11시30분에 사건이 일어났던 조계사를 방문했다. 김홍일씨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13일째 단식을 하고 있었다.

김씨가 단식까지 하게 된 것은 경찰 발표가 너무 성의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경찰은 사건이 일어난 지 하루만에 "술에 만취한 사람이 말싸움 끝에 저지른 우발적 범행"이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현장을 생생하게 본 김씨는 술 냄새를 맡지 못했다고 한다.

"바로 옆에 제가 앉아 있었어요. 술 냄새 전혀 맡지 못했어요. 또, 만취한 자가 어떻게 그렇게 날렵한 솜씨로 1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3명을 정학하게 난도질 하고 그렇게 빨리 도주할 수 있었겠어요. 경찰 발표를 믿을 수 없는 이유는 또 있어요."

김씨에 따르면 경찰은 알코올 검사도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현장 조사하러 나왔을 때 경찰에게 알코올 채증 했느냐고 물었더니 '하지 않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왜 언론에 범인이 만취 상태였다고 발표했느냐고 하니까 '저희가 보기에는 술을 먹은 것처럼 보였습니다다'라는 어이없는 대답을 했어요”

[의문2] 테러당한 사람은 모두 명동 홍보전 나선 사람들

피의자 김씨는 양손에 칼을 들고 이 계단을 통해 올라왔고 도망 칠때도 이계단을 이용했다. 당시 이계단에는 사복 경찰이 4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피의자 김씨는 양손에 칼을 들고 이 계단을 통해 올라왔고 도망 칠때도 이계단을 이용했다. 당시 이계단에는 사복 경찰이 4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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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현장에는 다섯 명이 있었는데 셋만 공격한 점도 김씨는 의심스럽다고 한다. 공격을 당한 세 사람은 약 1개월간 명동 입구에 집회 신고를 내고 보수단체 뉴라이트 실체를 알리기 위한 홍보전을 펼쳤었다.

"말싸움 때문에 칼을 휘둘렀다면 저를 먼저 공격했어야 했어요. 제가 계속 톡톡 쏘아 붙였거든요. 그런데 저는 건드리지도 않고 노리고 있었다는 듯이 셋만 공격했어요. 이미 얼굴을 익히고 작심한 후에 온 것 같아요. 이 세 사람이 핵심 멤버였거든요. 또, 지금 생각해 보니 자칭 교수도 이상해요."

자칭 교수는 피의자 박씨(38, 피의자 이름도 경찰 발표를 듣고 알았다고 함)가 3명을 난도질하는 동안 내내 함께 있다가 김씨가 피의자를 추격했다가 돌아와 보니 사라졌다고 한다. 김씨는 자칭 교수가 피의자 박씨와 한패였다고 추측하고 있다.

[의문3] 우발 범행인데 2분여만에 식칼을 구했다?

피의자 박씨가 운영했던 칼국수 가게, 사진속 인물은 비대위 상황실 근무자
 피의자 박씨가 운영했던 칼국수 가게, 사진속 인물은 비대위 상황실 근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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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발표에 따르면 피의자 박씨는 말다툼을 벌이고 난 후, 자신이 운영하는 조계사 뒤편 칼국수집에서 식칼과 회칼을 들고 나왔다고 한다. 김씨는 이것도 믿지 못하겠다고 했다. 이미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칼을 조계사 부근 어딘가에 숨겨 놓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피의자 박씨가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시간은 불과 2분 정도다. 그 짧은 시간에 가게 문을 따고 칼을 들고 나오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 주장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나 확인해 보기 위해 사건 현장에서 피의자 박씨가 운영했다는 칼국수집까지 직접 걸어봤다. 박씨가 운영했다는 칼국수 집은 셔터가 굳게 내려져 있었고 간판도 없었다.

박씨 가게를 거쳐 다시 사건 현장으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약 3분 정도였고 거리는 약360m(보폭으로 360 걸음)였다. 사건 당시 시간이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 2시였다는 점과 가게 문을 열고 칼을 찾는 시간을 감안하면 김씨 말대로 2~3분 안에 돌아오기는 좀 무리해 보였다.

김씨는 이번 사건을 촛불 시민에 대한 계획된 백색테러라고 주장한다. 또,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 것은 촛불 시민에 대한 탄압이라 보고 있다. 김씨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계속 단식할 것을 선언했다.

[경찰] 주변인 진술을 통해 만취 상태였다는 것 알았다

한편, 서울 종로 경찰서 소속 이진우(가명) 형사는 24일 오후4시40분 경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목격자 김씨 주장대로 알코올 채증은 실제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음주운전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검사였다고 덧붙였다.

검사도 하지 않고 만취 상태였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느냐고 묻자 박씨와 함께 술을 마신 친구들과 술집 종업원들 진술을 통해 확인했다고 대답했다.

경찰이 증거물을 고의로 훼손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범인이 이미 검거됐고 모든 범행을 순순히 인정했기 때문에 공들여 보존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지 목적을 가지고 훼손한 것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우발적 범행이 아니라 계획된 백색테러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것은 그쪽에서 밝힐 일이지 우리가 밝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범인이라고 두들겨 패서 억지로 진술을 받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복 경찰이 가까이 있었는데도 사건 당시 범인을 제지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미처 손쓸 틈이 없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어 그 사람들이 도주하는 범인을 쫒아가서 잡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사건에 대해 경찰은 피의자 박씨가 사건 직후 약 150m를 도주하다가 출동한 기동대 대원 2명에게 붙잡혀 경찰 조사를 마친 뒤, 9월 17일 검찰로 송치됐다고 발표했다. 테러 피해자들은 사건 직후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아 위험한 고비는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조계사 식칼테러 사건 현장에는 현재 '촛불시민 회칼 테러 사건 진상 규명 비상 대책위원회'가 상주해 있다. 비대위는 사건 직후 꾸려졌다. 기자가 방문한 23일에는 민가협 소속 어머니들이 사건 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눈물을 찍어 내고 있는 민가협(민주화 유공자 가족 협의회) 소속 어머니
 눈물을 찍어 내고 있는 민가협(민주화 유공자 가족 협의회) 소속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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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투데이 로우 유포터 뉴스



태그:#횟칼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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