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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출산 직전까지 정말 열심히 운동했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주말농장에서 벌래도 잡고, 뒷산 공원에서 운동도 하고. 덕분에 순풍 출산할 수 있었다.
▲ 주말농장에서 아내는 출산 직전까지 정말 열심히 운동했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주말농장에서 벌래도 잡고, 뒷산 공원에서 운동도 하고. 덕분에 순풍 출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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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한 번 가지 않고 두 아이를 낳았다. 우리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서 '아이를 업고 마실 다닐 수 있는 거리'에 모여 살고 있는 아름다운마을공동체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임신과 출산을 맞이한다.

임신해도 병원에 가지 않는다는 게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모양이다. 한번은 평소 취재 현장에서 이따금 마주치는 동료 기자가 나에게 넌지시 말했다.

"너희들이 사는 방식이 처음 알려질 때 사람들이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 아이들이 아파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 이상한 집단이라고 했지."

일면 맞는 말이다. 우리 가정을 비롯해 아름다운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이 감기 등에 걸려도 웬만하면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다. 가능하면 항생제를 비롯한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감기약 대신 겨자를 이용해 찜질을 하거나 매실 효소를 먹는다. 약 한 알이나 주사 한 방이면 끝나는 일도 부모가 아이와 함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씨름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아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원성을 높이셨다.

항생제에 의존하지 않기

이렇게 아이를 키우는 일은 병원에 의지하는 것보다 몸도 마음도 피곤하다. 불편한 일이 늘어난다. 대신 항생제에 찌들지 않는 건강한 아이를 선물로 받는다.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달려가는, 의사 없이는 내 몸에 자신이 없는 나약한 현대인은 맛보기 힘든 자신감을 얻는다.

임신한 아내는 보건소에서 간단한 진료만 받았다. 혈압과 몸무게를 재고, 소변 검사를 하고, 초음파로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몇 번 보았다. 여기에 혈액 검사를 한 게 전부였다. 모두 무료다. 초음파로 태아를 보려는 욕심을 자제하려고 노력했다. 초음파가 태아에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초음파가 태아에게 해롭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듣지 못했다. 그렇지만 초음파로 인해 생체 조직에 물리적인 영향을 주거나 아이 체온을 올릴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보도되었다. 이런 것을 염려해 미국식품의약품국국(FDA)은 지난 2002년부터 기념을 목적으로 태아 성장단계별 초음파 촬영을 금지하도록 경고하고 있다.

보건소에서 실시하는 혈액 검사에는 선천성기형아검사(트리플테스트)가 들어있다. 아내가 30세를 넘어 임신했다는 이유로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혈액검사와 함께 자동으로 검사를 받는 '시혜'를 받았다. 우리는 기형아일 확률이 높지 않았지만, 간혹 다운증후군이나 이분천추 확률이 높으면 보건소에서는 병원에서 양수 검사를 받으라고 권한다.

무엇을 위한 검사일까

현대의학은 이러한 기형아 검사를 통해 60%, 혹은 85%의 선천성 질병을 잡아낸다고 자랑한다. 그 다음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의학이라는 이름의 권력이 강요하는 길을 정답으로 여기도록 세뇌당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와 함께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한 목사님 부부는 40세가 넘은 나이에 생명을 품는 감격을 누렸다. 모든 게 조심스러운 그들에게 한 지인이 유명하다는 산부인과를 소개했다. 물론 신앙심 좋기로 소문난 장로님이 원장으로 계신 곳이다.

당연히 기형아 검사를 했고, 기형아 확률도 높게 나왔다. 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늦은 나이에 임신하면 기형아 확률은 상당히 높게 나왔다. 신실하신 장로 원장님은 당연히 양수 검사를 하자고 제안했고, 이 목사님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양수 검사를 해서도 기형아 확률이 높으면요?"

신앙 좋은 장로님은 뭐라고 말했을 것 같은가.

"당연히, 지워야죠"

이 목사님은 다시는 그 병원을 찾지 않았고, 나중에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다.

"설령,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태어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럼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는지 대충은 알아요. 우리가 감당할 고통이 크겠지요. 후회할지도 몰라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인데, 지워야 한다는 말을 그렇게도 쉽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마을에 사는 누나도 비교적 늦은 나이에 둘째를 임신했고, 보건소 혈액검사에서 다운증후군일 '확률'이 높게 나왔다. 누나와 형은 더 검사를 받지 않았고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다. 현대의학이 선물하는 확률이 어떤 사람에게는 희망의 빛이기도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쓸데없이 심란하게 만드는 '숫자'일 뿐이다.

임신은 병이 아닌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

아이를 기다리며 조급한 마음을 달래려고 집을 나섰는데, 인사동과 동대문시장까지 돌게 되었다.
▲ 둘째 출산 하루 전 인사동 나들이 아이를 기다리며 조급한 마음을 달래려고 집을 나섰는데, 인사동과 동대문시장까지 돌게 되었다.
ⓒ 주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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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학을 모두 부정하고 살았다고 자랑하는 게 아니다. 그런 것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자부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도 소변검사나 혈액검사에서 이상을 발생했다면 조금 더 정밀한 검사를 받았을 것이다.

말하고 싶은 건, 건강한 여성에게 임신은 '병'이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이다. 진료 대상이 아니다. 임신은 하늘이 가정에게 준 선물이다. 건강한 여성이라면 자연스럽게 거치는 인생 과정이다.

그런데도 임신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환자마냥 의사 처방만 기다리는 삶은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과학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기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로 만들어 놓고, 누군가는 이익을 챙기겠지?

우리 부부는 임신과 출산을 의사에게만 맡기고 우리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 철저히 무지했던 삶을 반성했다. 그리고 우리 몸을 병원과 의사를 의지하지 않아도 될 만큼 건강하도록 삶을 바꾸었다.

되도록 밖에서 음식을 사먹지 않았고, 고기를 자제했다. 정말 고기를 먹고 싶을 때는 한살림이나 여성민우회생협 등에서 판매하는 유기농 먹을거리만 이용했다.

아내는 임신 기간 중에 채식을 했다. 특히 두 달 가량은 채소를 끓이지 않고 날로 먹는 생채식을 했다. 첫아이 때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게 나와 식품으로 섭취하려고 노력을 했는데 둘째아이 때는 생채식을 하니 자연스럽게 양질의 철분을 섭취하게 되어 빈혈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나도 아내를 따라 채식을 하면서 몸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본은 끊임없이 우리를 불안하고 두려운 삶 속으로 밀어 넣고 그 두려움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유혹한다. 그러니 돈이 많아야 행복하고, 돈을 많이 벌려면 일류 대학에 들어가야 하고, 돈 많이 주는 직장 들어가야 하고, 그도 저도 안 되면 돈 많은 배우자 만나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 문제에 눈감고 넘어가야 한다고 속삭인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수정된 지 두 달도 채 안 된 아이에게 초음파 기계를 밀어 넣고 심박수를 확인하고 진료비를 챙긴다. "심박수가 현재는 정상입니다"라는 말에 몇 만원을 낸다.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니 이 검사를 꼭 받으세요"라는 처방을 받고 두려움 마음부터 앞선다. '괜히 거부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하는 생각에 없는 돈 털어서 바친다.

그래서 이현필 선생 밑에서 수학했던 임락경 목사(시골교회)는 <돌파리 잔소리>에서 말했다. "시골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학교와 병원 때문"이라고. 돈 벌면 자식들 등록금으로 바치고, 조금 남은 돈은 아픈 몸 치료한다고 병원에 바치고. 그래서 늘 빚에 쪼들린단다. 병원은 말 그대로 위급할 때는 이용하는 곳이었으면 좋으련만.


태그:#임신, #출산,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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