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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곡성에 가본 적 없는 이에게 '곡성'이라는 지명을 반갑게 여기게 하는 공선옥의 <행복한 만찬>(달 펴냄)은 음식에 대한 책이다. 전국 방방 곡곡 맛있는 집이라면 카메라 들고 이잡듯이 쑤시고 다니는 누리꾼의 열성적인 맛 기행과 조금 다른 방향의 음식 이야기다. 좀 길지만 서문에 첫 장을 그대로 옮기는 까닭은 이 책을 쓴 지은이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글은 곡물, 채소, 어패류, 향신료, 열매, 뿌리들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내력이다. 그 곡물과 채소와 어패류와 향신료와 열매와 뿌리와 그것들이 그 속에 내장한 그 내력들이 나를 키웠다.

 

나는 그것들을 먹고, 그것들이 모양으로 맛으로 향기로 빛깔로 말해주는 소리를 듣고, 그것들이 보여주는 몸짓을 보며 컸다.

 

내가 먹고 큰 그것들을 둘러싼 환경들, 밤과 낮, 바람과 공기와 햇빛, 그것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몸짓, 감정들이 실은 그것들을 이루고 있음을 나는 말하고 싶었다.


몸에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 요리하는 법, 맛 집을 소개하는 미디어들을 보면서 나는 음식에 관한 단편적이고 기능주의적인 그 태도가 결국은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어도 더 맛있는 것을 찾게 되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람이 먹어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먹을거리들의 내력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단순히 맛이 있고 없고를 따지거나 몸에 좋고 안 좋고를 따지는 행위가 실은 제 입에 들어가는 음식에 대한 모독임을, 그러나 사람들은 이제 이해하지도, 이해하려고 들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이제 사람들은 제 입에 들어오는 음식의 내력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 채로, 몰라도 좋은 상태로 '맛있는 것'과 '몸에 좋은 것'만을 찾는다. 나는 그런 세상의 인심이 얄미웠다. (<행복한 만찬> 6쪽 전문)

 

얄미웠다는 말이 눈에 콕 박힌다. 몸에 좋은 것, 입에 맛있는 것만 찾는 얄미운 세상 인심이라는 표현처럼 먹을거리에 천착하는 세태를 잘 설명하는 말이 또 있을까.

 

검은 '맘보 쓰봉'에 '나이롱 샤쓰'를 입고 자랐다는 작가의 음식 이야기는 제목처럼 행복한 만찬이다. 가난의 풍경조차 공선옥의 언어에 닿으면 풍성해진다. 이 책에는 손으로 꾹꾹 옮겨 적고 싶은 대목이 수도 없이 나온다. 소설가의 융숭한 밥상에 초대된 기분마저 드는 까닭이다.

 

썩은 감자를 소재로 쓴 최고의 글

 

집에서 썩은 감자를 발견하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다 버린 날, 읽게 된 38쪽의 썩은 감자떡 이야기는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썩은 감자라 하여 그냥 버리는 것이냐 하면 그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음식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 썩은 감자떡이라고 말할 수 있다. 썩은 감자떡은 독특한 풍미가 있다.

 

엄마는 썩은 감자를 들들 갈아 물에 담가놓는다. 그러면 검은 전분이 밑으로 가라앉는다. 그 전분에 사카린과 소금을 조금 치고 베보자기에 싸서 푹 찌면 그것이 감자떡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썩은 냄새가 그렇게 황홀한 냄새로 변하는 것도 처음 보았다.

 

감자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사시사철 감자가 아닌 하지감자 이야기 말이다. 하지감자를 아는가? 사시사철 감자를 먹을 수 있는 시절에, 그럼에도 늘 나의 진짜 감자가 그리운 나는 하지감자를 아는 사람하고 밤새워 감자 이야기를 하고 싶다. 감자, 그 포근포근한 추억을 꺼내 먹고 싶다.

 

아! 썩은 감자로 감자떡을 해 먹던 엄마에 대해, 썩은 감자에 대해, 감자에 대해 이렇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한국어에게, 한글을 읽을 수 있는 나에게 축복이다.

 

추어탕에 이르면 또 어떤가.

 

그때는 품앗이든 품팔이든 주인집에서 점심과 저녁을 주었다. 그러면 놉(일꾼)의 아이들까지 가서 밥을 먹었다. 그것은 얻어먹는 게 아니라 당연히 가서 먹는 것이다. 울 엄마 따라가서 먹었던 그 숱한 추어탕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추어탕을 먹을 때면 엄마 따라 가서 먹었던 집들의 추어탕들이 떠오른다. 아들 많고 논도 많고 식구들 많고 북적북적했던 집들, 마당에는 볏가리가 그득한 집들(그 집들은 대부분 큰집들이었다). 오래된 나무대문은 우람하고 시억시억한 상머슴에 말 잘 듣는 꼴머슴이 서늘한 저녁인데도 우물물을 퍼서 푸푸거리며 등목을 하는 집.

 

추어탕은 내게 가을의 풍성함과 함께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결핍감을 동시에 일깨우는 음식이 되었다. 추어탕을 먹을 때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먹는 기분이 든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토지를 물려받지 못한 가난한 할아버지의 작은아들의 딸이다, 작은집 애다.

 

작은집들은 추어탕을 별로 안 끓여 먹는다. 더구나 딸만 있는 작은집이니. 추어탕은 아들 많은 큰집들에서 끓인다. 가을 저녁이면 세상의 큰집들은 아들들이 잡아온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이느라고 부산하다.

큰어머이 기다려요, 선옥이가 가서 불 때드릴게요오!

 

지난해 겨울, 처음으로 추어탕을 맛본 나는 다행히 다 갈아진 상태였기에 목에 넘길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 꾸물꾸물 움직이는 놈을 그대로 냄비에 넣어 끓였다면 아마 먹지 못했을 것 같다. 나는 눈의 비위가 코의 비위보다 약하다.

 

가게 입구에 늘어놓은 고무 함지에서 온몸을 비틀며 꾸물대던 녀석들을 먼저 본 탓이다. 입맛은 다른 감각보다 철저히 경험에 의존한다. 추어탕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은 음식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도 추어탕의 자잘못이 아니라 먹는 이의 경험이 문제다. 공선옥에게 추어탕은 고향의 정서가 다 담긴 음식이고, 어린 시절이 한꺼번에 떠오를 음식이다.

 

책에는 따라해 보고 싶은 음식들이 꽤 많이 등장하지만, 당장 손 안 가는 제일 쉬운 것부터 해볼 생각이다. 올 겨울 눈이 많이 내린 날, 집 앞 화단에 고구마를 몇 개 던져뒀다가 깎아 먹어야겠다. 고구마는 불에 익혀 먹는 줄로만 알았지, 얼려 먹는 고구마의 맛을 나는 모른다.

 

시어머니께 선물하고 싶은 책

 

전라도 며느리가 된 뒤로, 나는 시어머니의 정성을 받아 먹고 있다. 봄이면 들에서 처음 캔 어린 쑥을 된장에 풀어 쑥국을 끓여 먹고, 완연한 봄날에는 무덤 가에서 뜯어온 여린 고사리에 비린 것(생선을 그렇게 부르신다)을 얹어 양념장 넣고 지져 먹고, 봄비 다녀간 저녁에는 죽순 회무침으로 식욕을 돋우곤 한다.

 

며느리가 '허천나게' 잘 먹는 쑥과 고사리와 죽순은 데쳐서 얼린 뒤 차곡차곡 스티로폼 상자에 담아 고속버스 택배로 보내주신다. 그러면 여름내 먹고도 남아 추석이 지난 요즘도 냉동실 한켠에 그것들이 남아있다. 이따금 입맛 없을 때 초봄의 쑥국을, 봄비 맞은 죽순을 야금야금 꺼내 먹는다.

 

둘째를 낳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이번 추석, 태어나 처음으로 명절에 전라도 땅을 벗어나셨다는 시부모님들이 손주들이 있는 춘천으로 역귀성을 하셨다. 어머니께 보여드렸더니, 연휴기간 내내 책을 놓지 않으셨다.

 

전라도에서 태어나 전라도 사람으로 늙어가는 시어머니의 어린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책을 읽다말고 내려놓으시고는, "글 한 번 오지게 잘 썼네" 하고 칭찬하셨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라 드릴 수 없었는데, 돌아오는 어머니 생신 선물에 책 한 권을 추가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만찬 - 공선옥 음식 산문집

공선옥 지음, 달(2008)


태그:#행복, #만찬, #공선옥, #시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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