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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조기. 13개의 줄은 독립 당시의 13개 식민지를, 50개의 별은 현재의 주를 나타낸다.
 성조기. 13개의 줄은 독립 당시의 13개 식민지를, 50개의 별은 현재의 주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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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오늘날 세계적으로 우세한 언어가 된 것은 미국 스텔스 폭격기의 위협 때문이 아니라 미국 달러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미국이 무서운 핵무기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의 결정적인 힘은 군사력에 있지 않고 부에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저서를 펼치면 이런 언급들을 무수히 대하게 된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세계화를 공언해왔다. 그들은 역사의 끝은 전쟁이 아니라 '골든아치'(토머스 프리드먼이 자본주의의 세계화를 맥도널드의 상징인 골든 아치에 빗대어 생긴 말)라고 예언하곤 했다.

흔히 현대적 개념의 경제는 '국가(state)와 시장(market)의 관계'라고 말한다. 그런데 미·영의 신자유주의자들은 하나같이 시장친화를 내세웠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신자유주의는 불과 25,6년 전 미국 대통령 레이건과 영국 수상 대처에 의해 본격화된 것이다.

그들은 시장친화가 곧 민주친화이고 평화친화라고 주장했다. 1990년대 들어 시장친화의 나라 미국이 단극체제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하자 이런 주장은 경쟁자 없는 권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어떻게 하느냐의 정치적 선택 문제는 최소한 잠복하거나 아니면 눈 녹듯이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과연 골든아치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이 문제는 골든아치의 제국 미국이 어떻게 될 것인지의 문제와 여지없이 비례한다. 물론 초강대국 미국의 미래를 여실히 예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학자들이 말하는 제국의 미래는 대체로 어둡다.

미국에 상당히 우호적인 에이미 추아(중국계 미국인, <제국의 미래> 저자, 예일대 교수) 같은 이도 미국의 미래를 결코 낙관하지 않는다. 그녀에 의하면 제국의 제1조건은 '관용'이라는 것인데, 미국은 지난 2001년의 9·11 테러 이후 모든 관용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무너져 내린 쌍둥이와 브러더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로 신자유주의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7년이 지나서 같은 9월인 오늘 신자유주의의 첨병이라고 할 수 있는 거대투자은행(IB)이 무너졌다. 리먼 브러더스는 미국 4대 투자은행 중 하나이다. 이 회사는 158년의 역사를 자랑하면서 월가 최고의 모기지 증권 관련 은행으로 군림해 왔다.

또한 94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 최대 증권사 메릴린치도 전격 매각됨으로써 간판을 내리게 되었다. 메릴린치는 6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공룡기업으로서 포천 선정 500기업 가운데 30위를 기록하고 있는 회사이다. 설상가상으로 세계 최대 보험사인 AIG까지 극심한 유동성 위기에 몰리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2008년 9월 또다시 세계를 놀라게 했다. 7년 전인 2001년 9월에도 미국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것은 역사 이래 최초로 미 본토가 공격당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사람들은 그 공격의 완벽성과 무자비성에 혀를 내둘렀다. 나아가 사람들은 어떻게 그 위대한 미국이 뉴욕 중심가 공격을 주도한 집단에 대한 정체 파악의 결과조차도 확연히 내놓지 못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은 이후 부시 정부가 펼치는 집요하고 부잡스러운 대테러전쟁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정작 9.11 습격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냉정히 생각해 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아마도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금융 위기는 9·11이 준 역사적 교훈을 성찰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제국의 적은 내부에 있다

한국인 중에는 여전히 미국의 힘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수·수구일수록 이런 경향은 강하다. 먼저 미국에 제국주의라는 말을 쓰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온화하고 친미적인 사람들이 있다. 물론 미국은 식민지 제국주의는 아니다.

치밀하게 말해서 제국주의란 '강대국이 외부로 헤게모니를 투사해 다른 나라의 이익과는 상관없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도록 만드는 강제적 이데올로기'를 뜻한다.(미국 동아시아 전문가 찰머스 존슨의 정의 참조) 그렇다면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이고 다른 이름으로 하여 군사·경제 제국주의라고 볼 수도 있다.

미국은 세계 곳곳에 700개의 군사기지를 두고 있다. 이것은 미국 국방부가 인정하는 수치이다. 미국은 이렇게도 많은 해외 군사기지가 모두 자국의 안보를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아마 이 말은 보수·수구주의자라도 믿기 힘들 터이다. 자국의 안보를 위해서는 자기 영토와 국경에 기지를 두어야 한다. 해외기지 확장에만 정신을 팔다 보니 본토의 심장부가 백주에 습격 맞는 일이 일어났다고 말해도 미국은 할 말이 없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 영화의 유력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적은 내부에 있다'라는 평범한 진리이다. 이 말대로 미국의 적은 내부에 있으며 이 내부의 적으로 인해 미국은 의외로 이른 시간에 몰락하고 말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미국이 내부의 적을 제어할 만한 힘과 기회를 벌써 상실해 버렸다는 점이다.

찰머스 존슨이나 노암 촘스키 같은 학자들은 미국의 몰락을 단언한다. 그들에 의하면 미국의 몰락은 예언이나 소망 단계가 아니라 실증되고 있는 단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평화학의 아버지라고 칭송받고 있는 요한 갈통은 한국에 와서 행한 강연에서, "미국이라는 제국은 25년 안에 몰락할 것이라고 보았는데, 부시의 등장으로 5년이 당겨져 2020년이면 망할 것이다"라고까지 호언했다. 그는 소련의 몰락과 독일의 통일을 정확히 예측했던 학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미국을 망하게 할 것인가, 아니 망하게 하고 있는가? 일단 미국은 경제학원론에 있는 방식으로는 지탱할 수 없는 불구적인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다. 지금 미국의 민간 기업 중에서 세계적 수준의 기업이 얼마나 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매년 20% 이상 늘고 있다. 정부의 재정 상태 역시 불량해서 올해에도 4070억 달러의 적자가 추가된다. 미국 정부는 9조6340억 달러를 빚지고 있다. 이것은 미국 연간 국내총생산의 69%에 이르는 금액이다. 이런 빚쟁이 정부가 이번 사태로 다시 도합 1000억 달러의 국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여기에다 미국은 영국·일본·캐나다 등 다섯 나라의 중앙은행으로부터 1800억 달러를 공급 받아야 한다. 이것은 미국이 이번 사태의 자생적 해결력이 부족함을 보여주는 수치다.

그들의 무기는 시장경제가 아니라 탐욕과 약육강식

2006년 미국 금융이 벌어들인 돈은 미국 전체 기업 순익의 3분의 1이나 되었다. 하지만 금융사 전체의 순익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불과 2~3%밖에 되지 않았다.(하버드대 케네스 로보프 교수 주장)

만약 무기회사나 금융회사가 제공하는 일자리가 갑자기 준다면 미국은 실업 도산 사태가 일어날 수준에 당면해 있다. 그런데 이번에 금융이 먼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미국 2대 모기지 금융기관인 페니메이와 프레디맥이 위기 상황에 몰렸고 미국 정부는 9월 8일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미국은 지금 과도하고도 무모한 수준의 군사비 지출을 감행하고 있다. 미국의 국방예산이 전 세계 국방비의 반이 넘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에 에너지부의 예산 1100억불이 전용되고 있다. 지금 미국 도처에는 전쟁 부상 군인들이 병원이나 요양소마다 산재해 있다. 이들에게 줄 연금 재원이 고갈된 상태이다. 그런데도 부시는 전쟁 인기를 타기 위해 감세정책을 폈다.

미국 경제의 바로미터인 달러의 약세는 예고되어 있는 재앙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많다. 지금 동아시아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재무성 발행의 국채증서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미국이 한사코 밝히지 않는다.

무기산업과 금융은 미국을 움직이는 양대 축

미국경제는 금융과 국방이라는 양대축으로 움직여 왔다. 그 중 금융이 지금 무너지고 있다. 사진은 미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
 미국경제는 금융과 국방이라는 양대축으로 움직여 왔다. 그 중 금융이 지금 무너지고 있다. 사진은 미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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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1930년대의 공황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만약 전쟁 경기가 없었더라면 그 공황이 극복될 수 있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국에서 전쟁을 지지하는 것은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마찬가지이다. 민주당 집권 시에 미국이 특별히 군비를 줄이거나 평화정책을 실시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노암 촘스키 같은 학자는, 미국은 소련과 암묵적 합의를 통해 냉전체제를 연출하면서 국가 경제를 유지해 왔다고 말한다. 미소 양국은 재고로 남아도는 무기를 소비하기 위해 한국과 베트남에서 각각 전쟁을 일으켰다는 주장도 있다.

먼저 한계에 봉착한 것은 소련이었다. 그것은 민간경제가 없이 군비확충에만 몰두해 온 필연적 결과였다. 와중에서도 소련의 권력자와 안보담당자들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했다. 이것은 지금 파산에 직면한 미국 금융회사들의 간부들이 엄청난 보너스를 받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본다. 마침내 고르바초프는 소련 연방을 버리는 대신 모국 러시아를 살리는 결단을 실행해야 했다.

냉전시대는 지나갔다. 아니 지나갔다고 말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믿었다. 그런데 냉전시대의 종말은 군사경제에 대한 의존이 심해진 미국에게는 재앙 같은 것이었다. 미국은 쉬지 않고 전쟁을 유발한 것이 사실이다. 베트남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에서, 그리고 레바논을 침공하는 이스라엘을 지원했다. 이제 이란과 북한을 놓고 미국은 저울추를 재고 있다.

그러나 정작 미국의 위험 요소는 미국 내부에 있다, 전쟁만 일어나면 벌떼같이 일어나는 미국의 정치가들과 국민들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단어는 리멤버(remember)이다. '리멤버 진주만', '리멤버 9.11' 이런 식이다.

미국의 언론과 주민들은 자기 고장에서 (쓸모가 없어진) 군사기지 하나만 없앤다 해도 무조건 반대한다.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차분히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경제와 안보 논리로만 따지려 든다. 이것이 우매한 여론에도 곧잘 먹힌다.

게다가 미국의 양극화는 심각한 상황이다. 소외계층은 국가 자체를 불신한다. 9.11이 미국 내부 세력이나 이스라엘 모사드의 음모극이라고 믿는 사람의 비율이 이제 20%에 가깝다. 그들이 즐겨 쓰는 말은 리멤버 대신 빠뀨이다.

미국 권력자들의 도덕적 타락도 미국의 위험 요소이다. 2차대전 후 미국은 이태리에서 파시스트파를 옹호하고 파시스트에 저항하는 세력을 무찔렀다. 전후 독일에서도 미국이 도와준 세력은 나치 잔당이었다. 한국에서는 친일파를 비호하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을 소탕했다. 노암 촘스키는 미국이 한국전쟁 전에 이승만을 시켜 남한에서만 10만 명을 죽였다고 말하며, 그 과거의 죄악에 대한 공포감으로 북한을 적대시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관용을 잃은 제국에 미래는 없다

부시는 이슬람 민족주의 세력을 향해 '이슬람 파시시트'라는 용어를 구사한 바 있다. 그들이 북한에 대 놓고 한 말 '악의 축'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모두가 관용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언어들이다. 찰머스 존슨 교수는 지금의 미국 경제를 히틀러의 그것과 아주 유사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즉 군사경제로 GDP를 늘리면서 고용을 확보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금융경제는 군사경제와 함께 초강대국 미국을 지탱해오던 양대 축이었다. 그런데 그 금융이 붕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는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미국이 정작 자본주의와 시장원리에 성실한 나라도 아니라는 데에 있다.

고전경제학자 아담 스미스는 시장의 기능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예찬했다. 여기에는 인간본성에 대한 도덕적 전제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자들은 전혀 도덕적이지 않다. 그들은 시장주의자라고 자처하면서 보이지 않는 손을 '마치 보이지 않는 신'처럼 말하지만 사실 그들의 성취는 탐욕과 기만에 근거한다. 경쟁이 아니라 약육강식인 것이다.

미국은 몰락하고 있다. 아니 몰락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70년대 말만 하더라도 거대제국 소련의 몰락을 전혀 내다보지 못했었다. 2007년 BBC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응답자의 51%가 미국이 세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고, 미국에 대한 지지도는 북한, 러시아, 베네주엘라에 대한 지지도보다 훨씬 낮았다.

미 제국의 역사는 이제 232년, 로마제국의 수명을 넘기고 있다. 장차 미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분명한 점은 관용을 잃은 제국은 가까운 미래에 패권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미국이 단순한 강국의 신분으로 복귀하는 것이고 그것이 그리 나쁠 것도 없다. 하지만 전 세계에 골든 아치를 걸쳐 놓은 미국의 몰락은 한국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칠 것만은 틀림없다.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태그:#제국, #노엄촘스키, #에이미추아, #초강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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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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