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는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올해로 교사경력 13년차, 이제는 그다지 늙지도 젊지도 않은 교사다. 한국 근현대사 과목을 3년째 가르치고 있다. 근현대사가 주로 3학년에 개설되어 있다 보니 해마다 학생들의 수능 준비를 도와주느라 바빴다. 교과서 내용을 달달 외우다시피 할 정도로 보고 또 보았다.

최근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해 "좌편향"이라는 말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이 좌편향 교과서를 수정하겠다고 한다. 여기에 국방부마저 교과서 내용 수정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말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인지 짚어보자.

해돌이의 모험과 김일성

북한 백두산 삼지연의 김일성 주석 동상.
 북한 백두산 삼지연의 김일성 주석 동상.
ⓒ 노순택

관련사진보기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은 학습만화 <해돌이의 모험>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북한 정세를 비교적 상세히 소개한 만화로서 나름대로 재미있었고, 많은 학생들이 보았다.

그 만화는 김일성이 만주 마적단 출신 김성주라는 사람으로 실제 인물인 전설적인 독립군 김일성 장군을 사칭한 나쁜 놈이라고 했다. 수십 년간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1994년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어느 날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친구로부터 전해 들었다. 도서관에 앉아 책은 펴고 있었지만, 공부가 되지 않았다. 북한 사람들이 집단으로 '홱' 돌아버려서 남한으로 쳐들어오지 않을까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밤 본 9시 뉴스는 그 김일성이 만주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한 독립투사였다고 했다. 김일성은 만주 마적단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후 김일성 가짜설은 친일파와 우익단체 간부들이 유포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부끄럽게도 역사를 전공한 나는 대학교 4학년이 되도록 김일성 가짜설이 가짜라는 것도 몰랐던 것이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는 어떤지 궁금하다. 이제는 김일성 가짜설이 가짜인 것을 다들 알고 계신지 아니면 여전히 김일성이 가짜라고 굳게 믿고 있다가 오늘 처음 충격을 받았을지…. 만약 충격을 받았다면 그건 7차 교육과정 이전에 학교에서 국사를 배웠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김일성의 독립운동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7차 교육과정 때 처음 생긴 근현대사 교과서

하지만 '좌편향'이라고 찍힌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서도 김일성의 독립운동 행적은 단 두 문장뿐이다.

교과서 197쪽 본문도 아닌 하단의 보충학습 자료 성격인 <역사의 현장> 코너에 쓰고 있다. 197쪽 본문은 <만주 지역 항일 유격 투쟁>이란 제목으로 만주 지역에서 항일운동을 했던 동북 인민 혁명군, 동북 항일 연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페이지 <역사의 현장>은 그 동북 항일 연군 소속 유격대원들 보천보 전투에 관한 동아일보의 신문기사와 설명이다. 이 중 김일성 이야기는 마지막 문장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전부이다.

"북한에서는 이 사건을 김일성이 주도한 대표적인 항일 전쟁으로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보천보 전투의 규모와 성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과연 이것이 좌편향적 시각이 될 수 있을까? 다른 독립 운동가들을 기술할 때와 똑같이 김일성이라고 이름만 적었고, 그것도 "북한은 이렇게 선전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라며 찬양도 폄하도 하지 않았다. 이것을 읽어보면 "김일성이 뭔가 독립운동 관련 사건을 일으키긴 했는데, 북한은 그것 가지고 뻥튀기하고 있는가 보다"라는 느낌이 들 뿐이다.

7차 교육과정부터 배우게 된 한국 근현대사. 사진은 논란이 되고 있는 금성출판사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7차 교육과정부터 배우게 된 한국 근현대사. 사진은 논란이 되고 있는 금성출판사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교사가 된 후에는 6차 교육과정에 의거해 편찬된 국사 교과서로 국사를 가르쳤는데, 이때는 6·25 전쟁 이후 현대사는 아예 가르치지를 않았다. 외국에서는 근현대사가 역사 교과서의 60%를 차지한다는 말을 얼핏 들었지만, 그것은 외국 사정일 뿐이었다. 우리에게는 필요가 없었다.

수능 시험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느 해인가 조소앙의 '삼균주의'가 수능시험에 출제된 적이 있었다. 조소앙이라는 이름도 생전 처음 들었던 나는 당황했다. 그렇지만, 어쩌다 한 번 일어난 헤프닝일 뿐이었다.

6차 교육과정의 국사 교과서에서는 일제시대 독립운동 부분이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무장투쟁을 한 독립군들의 이야기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국내진공작전을 준비했다가 일본이 너무 빨리 항복을 해서 좌절된 한국광복군 관련 내용이 거의 전부였다.

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독립군 부대를 만들어갔는지, 이들이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자유시 참변 이야기도 잠깐 나오는데, 사악한 소련 놈들의 배신에 의해 강제 무장 해제를 당했다고는 하지만 왜 그들이 소련에 갔는지, 왜 배신을 당해야 했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국사(하)와 다른 근현대사

7차 교육과정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과목이 생겼다. 바로 한국 근현대사였다. 처음에는 책을 받고 당황했다. 고등학교에서는 물론 대학교에서도 단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생소한 이야기들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미친 듯이 관련 서적을 찾고, 읽고, 수업 자료를 만들었다. 한국 근현대사가 보여주는 근현대사의 모습은 민주화된 우리나라의 모습을 반영하듯 유신시대와 독재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충격적이기까지 한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첫 번째로 놀라웠던 것은 3·1운동이었다. 어릴 때부터 철석같이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영향만 받아 일어난 운동이고 완전 비폭력 운동이었다고만 배웠었는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 1년 전인 1917년에 공산혁명에 성공한 레닌이 세계 식민지, 반식민지의 민족해방 운동 지원을 선언했고, 그에 대항하기 위해 윌슨이 1년 후 민족자결에 관한 선언을 했고, 그 둘의 영향으로 3·1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대해서는 선언만 했을 뿐 레닌의 경우처럼 실제적으로 행동한 것은 없다는 비판도 많다.) 그리고 3·1 운동도 진행 과정에서 비폭력의 틀에만 얽매이지 않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3·1 운동 즈음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일부 학생들이 공산주의 사상을 받아들였다고 들었다. 그때는 빨갱이 사상과 독립 운동이 무슨 상관이 있기에 들여왔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근현대사를 가르치다 보니 이해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가 왜곡되어 발전한 형태인 제국주의 국가들은 아시아 여러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신생 공산주의 국가는 오히려 그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을 지원한다고 했다.

물론 이것은 세계 공산화를 위한 소련의 정책이다. 하지만 그 당시 식민지 사람들로서는 공산주의를 좋게 보고 매력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와 같이 식민지가 된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서 공산주의 사상이 유행했던 것이었다. 민족주의자였던 베트남의 호치민과 우리나라의 여운형이 공산주의자가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렇게 과거의 사실을 있었던 그대로 가르쳐야 우리 현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 내가 배웠던 국사 교과서에는 일제 시대 공산주의 사상의 유입과 전파 등의 내용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일제 시대에 쓰여진 소설을 읽었을 때 주인공 주변에 공산주의자들이 득실대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었다.

일제시대 좌익 계열 지식인들은 모두 조국을 잃은 슬픔에 미쳐버렸고, 그랬기 때문에 백해무익한 공산주의를 받아들인 것일까? 이것은 농담이지만, 내가 배웠던 과거의 역사에서 공산주의 내용을 쏙 빼버린 교과서로 배우면, 일제 시대는 이렇게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현재 우리의 반쪽인 북한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통일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우리들에게 결코 바른 길을 제시해 줄 수 없을 것이다.

민족주의 계열의 친일 전향, 감추기보다 분석해야

두 번째는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 운동과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이 모두 소개된다는 것이었다. 일제 시대는 오늘날 우리 나라처럼 공산주의가 죄악시되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의 색깔을 명확히 구분해서 이 사람은 빨갱이, 이 사람은 우익이라고 두부 자르듯 나누기는 어렵다.

그래도 교과서로 공부하다 보면 전반적으로 우익 계열은 외교나 실력양성운동(교육, 산업진흥)으로 독립 운동을 했고, 좌익 계열은 직접적인 무장투쟁을 했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실력양성운동을 하던 사람들 중에는 후에 친일로 변절하는 사람들도 나온다. 교과서는 이것이 그들이 받아들인 사회진화론의 한계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실력양성운동을 하던 분들 중에서 끝까지 변절하지 않으신 분들도 많다. 교과서는 이 내용들을 담담히 서술할 뿐이다.

국방부에서 좌익세력의 항일운동을 다룬 일부 교과서 내용에 대해 "공산주의자들이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것처럼 오인될 수 있다"며 축소를 촉구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이념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자는 주장이다. 공산주의자들이 독립운동을 했으면 했다고 쓰고 하지 않았으면 안 했다고 기록하는 것이 바른 역사 서술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부심을 갖기 위해서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고구려사만 공부하고, 백제·신라 시대에 걸작품 만든 것, 고려 시대에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 만든 것 등등 몇 가지만 공부하고 시험보고 끝내면 될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왜 현재의 우리가 이런 모습인지를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고, 과거의 실수를 미래에는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배우는 것이다.

민족주의 계열이 주로 실력양성 운동만 하다가 상당수가 친일로 돌아선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그 사실을 감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상적 바탕으로 삼았던 사회 진화론이 무슨 문제가 있었고, 어떤 사상적 한계가 있었기에 그리 되었는지를 명확히 배우고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미래에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다시는 실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립 운동사를 가르치다 보면 학생들이 많이 짜증을 낸다. 임시정부의 독립노선이었던 외교를 통한 독립 운동은 거의 성과가 없었고,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도 한데 힘을 모아 싸우기보다는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로 싸우는 실망스런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자유시 참변도 소련 땅에서 벌어진 독립군 몰살 사건이긴 하지만, 그 원인은 이르쿠츠크파 공산당원들과 상하이파 공산당원들 사이의 주도권 다툼이었다.

우리 조선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들도 주도권을 누가 갖느냐 하는 문제로 아까운 독립군들을 내분 때문에 죽게 했다. 우리는 이런 것도 낱낱이 배워두어야 한다. 그리고 반성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에 위기가 오더라도 그 때처럼 어리석게 분열하지 않고 힘을 모아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좌익들은 조국잃은 슬픔에 미쳐버렸나

세 번째는 노동운동 내용이었다. 어릴 때는 우리 나라의 노동운동이 70-80년대에 처음 나타난 줄만 알고 있었다. 내가 배웠던 5차 교육과정에는 일제 시대 노동운동이 전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업하는 분들 중 극히 일부 입장에서는 일제 및 일본인 자본가에게 당당히 맞섰던 일제 시대 노동운동 내용이 부담스러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근현대사 교과서를 좌편향이라 말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우리가 외세에 억압받던 일제 시대 이야기이다. 해방된 현대 사회의 건실한 기업가라면 상관 없는 이야기일 것이고, 반드시 그래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과거 교과서처럼 은폐할 것이 아니라 지금처럼 가르쳐서 앞으로의 건설적인 노사관계 확립을 고민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네 번째는 현대사 부분이었다. 이 부분이 내게는 가장 큰 충격이었다. 중학교 때 도덕 시간에 우리는 분명 해방 후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에서 소련이 한반도에 저들의 괴뢰 정권을 만들 속셈으로 신탁통치를 주장했지만, 미국은 즉시 독립을 주장했다고 배웠다.

이것에 대해 처음에는 좌익·우익 모두 다 반탁 운동을 했었는데, 소련의 사주를 받은 좌익들은 갑자기 찬탁 운동으로 돌아섰다고 배웠다. 그런데 진실은 달랐다. 우리가 배운 내용은 동아일보가 낸 오보였었고, 진실은 미국은 조선인들의 참여가 배제된 신탁통치를 소련은 조선인들이 참여한 신탁통치를 주장했었던 것이다.

해방 후 역사를 보면 내가 중고등학교 도덕 시간에 배운 것과는 달리 미국은 한반도 자본주의 정권 수립에 적극적이었고, 소련은 조선인들의 손에 맡겨두는 편이었다. 이 내용만 본다면 근현대사 교과서가 매우 반미적 시각이며 친소적인 시각이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는 우리 나라가 제국주의 국가인 일본의 식민 통치를 겪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항으로 공산주의 사상을 선호했고, 공산주의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은 나라였기 때문에 소련이 안달복달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교과서 261쪽에는 "두 나라는 한반도 정세를 뜻대로 만들지 못한다면 점령한 지역에서만이라도 자신들의 세계 정책에 적합한 정부를 세우고자 하였다"라고 써 있다. 이 이후 우리 나라에는 2개의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소련도 미국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우리에게 다가왔을 뿐 우리를 위해 온 것은 아니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이런 사실들을 명확히 인식하고 미래에 다시는 외국의 영향으로 우리가 큰 곤경에 처하지 않도록 잘 대처해야 할 것이다.

왜 좌편향 교과서라고 했을까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 독립유공자유족회, 민족자주연맹, 한민족운동단체연합, 항일독립운동단체협의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8·15 광복절 63주년 기념 국민대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 독립유공자유족회, 민족자주연맹, 한민족운동단체연합, 항일독립운동단체협의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8·15 광복절 63주년 기념 국민대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지금 근현대사를 가르치는 나는 대학교 다닐 때 데모 한 번 해본 적 없고, 그 흔한 운동권 서적 한 권 읽어본 적이 없는, 매우 체제순응적 교육을 받고 매우 체제순응적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그랬던 내가 배운 역사 교과서에는 일제 시대 공산주의자는 거의 없었다. 악마같은 공산 소련이 우리 나라를 집어삼키려던 걸 천사같은 미국이 막아서 살아났으며, 박정희 장군께서 민족을 걱정하시어 5·16 혁명을 일으키셨다. 광주 민주화운동은 교과서에 아예 없으며, 전두환 장군 또한 사회 혼란을 걱정하시어 군사 혁명을 일으키셨다. 그래서 만약 역사 교사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교과서가 좌편향 교과서라는 말을 믿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의 교과서가 좌편향은 아니다. 과거 독재정권 하에 서술된 교과서가 많은 것을 감추고 왜곡했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로 배운 이들이 오해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과거의 교과서로는 현재 우리의 문제를 바르게 볼 수 없다.

공산주의자가 거의 없었던 우리나라인데 어째서 북한 정권이 생겨날 수 있었으며, 천사 같은 미국이 우리를 살려주었는데, 그런 미국을 반대하는 반미주의자들은 어째서 생겨난 것일까? 민족을 걱정해 혁명을 일으키신 박정희 장군과 전두환 장군은 어째서 반대하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 것일까? 그리고 '광주사태'란 건 대체 또 뭐란 말인가?

이 모든 것에 대해 과거의 교과서는 전혀 답을 줄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의 교과서라면 그 원인과 결과를 모두 설명해 주기 때문에 현재 우리의 모습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을 정확히 알아야만 문제가 있으면 바른 처방을 내릴 수 있고, 위기가 닥치면 올바르게 대처해 낼 수가 있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다루는 학문이다. 따라서 그 사실에 대한 평가는 보수와 진보가 서로 차이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권력을 이용하여 한쪽의 시각만을 받아들여 억지로 고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태그:#근현대사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