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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사람들은 "며칠 저러다 말겠지" 했다. 누군가는 "촛불에 등 떠밀렸네"라는 냉소를 보냈고, 어떤 이는 "적당히 하다가 뒤에서 구본홍 사장이랑 합의하겠지" 의심했다. 이렇게 YTN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시간은 잘도 갔다. 한 달이, 그리고 두 달이 훌쩍 지났다. 하지만 YTN 노조원들은 여전히 "구본홍씨"라 부르며 그를 사장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구 사장 출근 저지투쟁은 60일을 넘겼고, 사장실에 안착하지 못한 그는 오늘도 메뚜기처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업무를 본다. 

 

한 마디로, 낙하산은 힘차게 펼쳤지만 두 달째 착지를 못하고 있는 셈이다. 노조원 12명을 고소하고, 23명을 인사 조치시켰지만 소용이 없었다. 23명은 그의 명령이 아닌 노조의 지침을 따랐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노조원들이 "나도 징계·고소하라"고 나섰다.

 

그러다가 YTN 노조는, 지난 16일 생방송 뉴스를 활용해 낙하산 반대 시위를 벌이는 사상 초유의 대형사고를 쳤다. 누리꾼들은 "이제 YTN 볼란다"며 환호했고, 노조 사무실에는 "수고한다"는 시민들의 전화가 쇄도했다. 이쯤 되면, 속된 말로 '자뻑'에 빠져도 별 문제는 없다. 하지만 또 그게 아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이 없었다면, 그리고 동료들이 없었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노종면 노조위원장은 모든 공을 시민들과 동료들에게 돌리고 자신은 뒤로 한 발 빠졌다.

 

"YTN 불꺼라"에서 "YTN 볼란다"로 바뀐 여론

 

<오마이뉴스>는 18일 오후 서울 남대문로 YTN 본사에서 노 위원장을 만났다. 노 위원장은 앵커 출신답게 차분하게 YTN 노조의 투쟁과 공정방송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노 위원장은 "최소한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는 짧은 말로 그동안 진행된 YTN 노조의 싸움을 설명했다.

 

말이 길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큰 기대를 받지 않았던 '공정방송투쟁의 막내' YTN이 어떻게 정권과 맞짱뜨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시라. 

 

아래는 노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YTN 노동조합이 공정방송 지키기 운동을 잘 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예상 못한 결과다. 여러 변수를 생각하긴 했지만, 구체적 상황에 따른 로드맵은 그리지 않았다. 우리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심각하게 했고··. 다만 명분이 좋기 때문에 이길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 투쟁 경험이 많지 않을 텐데. 조합원들의 단결력이 높다. 동력이 뭔가. 

"명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게 가장 근본적이다. 그리고 상대(사측)가 질낮은 대응을 해왔다. 사법처리를 이야기하며 징계·인사 조치를 동원했다. 명분에 대한 공감이 다져진 상황에서, 동료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퍼졌다. 그런 힘이 우리를 지탱하는 것 같다."

 

- YTN 노동조합의 명분이란 게 뭔가.

"단순하다. 공정방송과 방송의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민영화 이야기를 흘리고 있지만, 우리는 YTN이 정권 입맛에 좌지우지 돼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우리는 전리품도, 방송 장악대상도 아니다."

 

- 싸움의 최종 목표는 뭔가.

"우리가 외치는 구호가 곧 목표다. '공정방송 사수' '정권의 방송장악 저지' '민영화 반대'. 바로 이것이다."

 

- 구본홍 사장을 인정하고, 편집권 독립을 보장받으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다.

"물론 YTN 내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된 견해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걸 성급히 추진하려다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특정 후보의 특보를 지낸 인물이 YTN 사장으로 와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강하다. 노조의 동력이 약했다면 정권이 쉽게 (YTN을) 접수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동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선배들 대다수는 노조 응원하고 있다"

 

-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까지 나섰다. 사측과 정부의 전방위 압박인데.

"모두 예상했던 일이다. 구본홍씨와 그들이 쓸 수 있는 카드와 파괴력에 대해서도 생각했었다. 예상대로 그들은 그걸 모두 사용했다. 정권의 미디어정책 실세인 신재민 차관과 최시중 위원장이 '구본홍 구하기'에 나서려고 민영화와 재승인 문제를 들고 나왔다. 하지만 우린 동요하지 않았다. 이제 그들이 노조를 압박할 수 있는 카드는 없다."

 

- 그래도 결국 노조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느냐가 관건 아닌가.

"물론 못 버틸 수도 있다. 노조는 혼자가 아닌 집단이 하는 것이라서, 동력이 오늘 빠질지 내일 빠질지 아니면 활활 타오를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보자. 징계와 사법처리 등 노조에 대한 구체적인 압박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부딪쳐 보니 그런 것들로 노조가 붕괴될 수 없다는 게 증명됐다. 

 

처음 구본홍씨 출근 저지할 때 노조원 60명 정도가 모였다. 그런데 어제(17일) 인사위원회 저지 투쟁 때는 약 100명이 모였다. 결국 인사위는 못 열렸다. 인사위가 열리지 못하면 노조원 징계도 못한다. 우리는 앞으로 인사위가 10번 열리면 10번 막을 것이다."

 

- 대단한 자신감인데, 그 배경이 무엇인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지피지기면 최소한 백전불패다. 싸움 시작할 때 신경써 준비했던 게 '구본홍씨의 카드는 무엇일까' '정부는 무엇으로 공격할까' '그에 대한 방어수단이 있는가'였다.

 

그 때 이미 결론이 나왔다. 구본홍씨와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다섯 가지였다. 징계, 사법처리, 인사조치, 민영화 압박, 재승인 압박. 이외에는 없다고 봤다. 그렇다면 이 다섯 가지가 주는 파괴력은? 심리적 동요였고, 그것은 대오를 흐트러뜨릴 수 있다. 그렇다면 견딜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그렇다는 답이 나왔다.

 

징계와 사법처리는 현실적으로 두려운 문제다. 23명에 대해 인사조치를 했는데, 우리는 인사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복종 운동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단 한 명도 회사 결정을 따르지 않았다. 징계하려고 인사위를 열려고 했지만, 그것도 우리가 막았다. 가장 두려웠던 카드가 전혀 힘을 못 쓰게 된 것이다. 회사로부터 고소를 당한 12명도 당당하게 경찰 조사를 받을 것이다."

 

- 구본홍 사장을 인정하고 있는 선배 간부들과 감정의 골이 깊은 것 같은데.

"선배들을 전부 비난하는 건 아니다. 선배들 대다수는 심정적으로 노조를 응원한다고 믿는다. 인사조치 불복종도 선배들이 우리를 이해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많은 선배들은 우리를 응원하며 미안해 하고 있다.

 

하지만 지극히 일부, 자리에 눈이 멀어 후배들이 다치든 말든 공정방송 하든 말든 전혀 관심 없는 선배들이 구본홍씨를 부추겨서 후배들을 징계하고 사법처리를 시키고 있다. 그런 사람과는 아무리 선배라도 같은 배를 탈 수 없다."

 

 

"고민했다, 반성했다, 이렇게 매체 성장할 것"

 

- '생방송 시위'는 평가가 좋았는데, 리본·배지 투쟁은 방송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사실 회사가 그걸 방송으로 내보내면 오히려 비정상이다. 파업을 해도 방송은 어떻게든 나간다. 그게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와 다른 방송의 생리다. 사측이 막으려고 마음 먹으면 리본 패용은 충분히 막는다. 목적은 단순한 리본 노출이 아니라 공정방송 의지를 알리는 것이었다. 방송으로는 못 나갔지만, 인터넷과 신문을 통해서 이미 많이 알려졌다고 본다."

 

- KBS 노조와 자주 비교된다. KBS 등 방송의 공공성 지키기 싸움을 어떻게 전망하나.

"촛불정국 초기 때 YTN은 시민들에게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 그 누구도 'YTN 불꺼라' 외치지 않는다. 싸움 하루이틀 해보고 말 것도 아니고, YTN 노조가 석달 뒤에 다시 어떤 평가를 받을지 아무도 모른다.

 

다른 방송사의 투쟁을 지금 단계에서 평가하는 건 이르다. KBS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본다. 노조 내부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사원행동도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 낼 것으로 본다. 기만적 인사조치도 새로운 변수가 될 것이다."

 

- 촛불 이야기를 했다. 자극을 많이 받았나.

"당시 내부에서도 촛불 보도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토론이 활발히 이뤄졌다. 어쨌든 촛불정국 때 일부 시민들이 영상부 기자들 카메라를 막으며 '취재하지 말라'고 했고, 또 일부 시위대는 회사 앞에서 'YTN 불꺼라' 외쳤다. 충격이었다. 그 동영상을 노조 게시판에 올려놓고 노조원들더러 보라고 했다. 고민도, 그리고 반성도 많이 했다. 결국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매체가 성장한다고 본다."

 

- 개인적 고민도 클 것 같다. 

"아이들은 셋이고, 큰딸이 11살이다. 요즘 내가 너무 바빠서 그런지 특별한 말은 없다. 나에 대한 징계나 사법 처리는… 솔직히 그런 것 고민해보지 않았다. 노조위원장 출마할 때도 각오만 생각했고, 우려나 걱정 같은 건 아예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시청자들이 스스로 주권을 찾기 위해 광장에서, 그리고 YTN 앞에서 촛불 드는 모습을 못 봤다면, 그들의 에너지를 받지 않았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어제(17일)도 후배들이 그러더라. '선배 뒤에 우리가 있고, 우리가 있기 때문에 선배가 있는 것이다.' 그 말 듣고 참 고마웠다. 그리고 많은 힘을 얻었다."

 

- 앞으로 계획은 뭔가.

"아직 정하지 않았다. 명분이 뚜렷이 있으니, 그때 그때 실천해 나가면서 문제가 있으면 수정하고 또 대응책도 만들 생각이다. 결국 지금까지 걸어왔던 그대로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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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YTN, #구본홍, #노종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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