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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가 국내 금융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가 국내 금융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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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KIKO; 통화옵션 파생상품) 피해에 리먼 사태까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겠네요?"
"거의 망한 회사인데, 사장님 개인 돈으로 겨우 메우고 있죠. 휴…."

17일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A씨의 한숨은 무척이나 길었다. 액세서리를 수출하는 한 중소기업 B사의 재무담당자인 그는 "주위에도 여러 회사가 망해서 사장들이 중국으로 도망쳤다"고 말했다. 그의 씁쓸한 웃음은 한동안 이어졌다.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신청으로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가 한국을 강타하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는 등 16일 우리 금융시장은 '검은 화요일'을 겪었다. 이에 유동성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하지만 정부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곧 국내외 금융시장이 안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임승태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17일 오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사태가 마무리 단계다, 은행과 기업의 재무구조도 탄탄하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중소기업들 사이에선 "다 죽을 판"이라며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지난 16일 키코로 막대한 환차손을 입은 '태산엘시디'가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기도 했다. 중소기업 사이에선 '줄도산이 현실화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키코에 리먼까지... 중국 도망치는 사장들

8일 오후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민주당 환헤지 피해 대책위원회 추최로 열린 '키코(KIKO) 등 환헤지 피해 대책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 중소기업 관계자들이 'KIKO OUT'이라는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8일 오후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민주당 환헤지 피해 대책위원회 추최로 열린 '키코(KIKO) 등 환헤지 피해 대책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 중소기업 관계자들이 'KIKO OUT'이라는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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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나 PC모니터에 들어가는 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 부품인 백라이트유닛(Back Light Unit)을 만들어 수출하는 '태산엘시디'는 지난해 매출액 6343억원, 올해 상반기 매출 3441억원을 올린 중견 기업이다. 하지만 올초 환율이 급등한 탓에 키코로 800억원대의 손실을 입고 무너졌다.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건, 키코로 무너질 기업들이 앞으로도 많다는 것.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키코에 가입한 기업은 519곳이고, 이 중 중소기업은 480곳에 이른다. 키코 관련 손실은 1조4781억원. 하지만 당장 이들을 위한 대책은 없다.

당장 돌아오는 여신을 갚지 못하면 도산을 피할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리먼 사태'로 환율이 폭등하고 은행들이 자금을 회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중소기업들은 큰 위기감을 갖게 됐다.

B사도 그중에 하나. 이 회사의 작년 매출은 120억원, 당기 순이익은 1억 3천만원이었다. 하지만 3월부터 급등한 환율로 8월까지 키코로 6억 5천여만원 손실을 봤다. 올해 남은 기간의 환율이 현재의 1120~1140원대에 움직일 경우, 매달 2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A씨는 "키코로 인한 회사 빚을 사장 개인 재산을 정리해서 메우고 있는데, 이미 은행에서 가압류가 들어온 상황"이라며 "이젠 은행 대출도 안 돼 아무 것도 손쓸 수 있는 게 없다, 리먼 사태의 직격탄을 제대로 맞은 셈"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은행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미 정책기금인 신용보증기금에서 대출을 안 해주려는 상황"이라며 "주위 회사들이 이명박 정부 들어 환율 급등을 감당못해 망했다, 재력 없는 중소기업은 다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자금난에 고통받는 중소기업... '리먼 사태'로 사실상 돈줄 막혀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미국발 금융위기와 관련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미국발 금융위기와 관련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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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C사 역시 심각한 상황이다. 올해 70억~80억원의 순이익을 기대했던 이 회사는 지금까지 키코로만 70억~80억원의 손실이 났다. 남은 기간 손실까지 생각하면 올해 40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이 회사의 재무담당 D이사는 얼마 전 오래 전부터 거래를 해오던 은행에 여신 연장을 요청했다. 하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D이사는 은행으로부터 "키코로 회사 상황이 어렵다, 은행 역시 상황이 어려워 자금을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연장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리먼 사태는 이 회사의 자금난을 더 가중시키고 있다. D이사는 "신규대출은 꿈도 못 꾸고, 신용보증기금 역시 이미 한도 내에서 대출을 받아 더 받을 수 없다"면서 "외화 차입을 하려 해도, 리먼 사태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경기도 시흥 시화공단의 한 인공피혁 제조업체인 E사 관계자 역시 "영업 이익이 나도 키코 때문에 돈을 빌려써야 하는데, 최근 여신 한도가 줄어들고 있다"며 "리먼 사태 때문에 결재일이 도래하는 여신을 연장할 수 있을지, 이자 비용은 얼마나 늘 지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은 자금 회수에 나선 은행을 강하게 성토하고 있다. 한 벤처업체 관계자는 "금융 기관이 키코로 일을 만들어 놓고 자기들은 이익을 봤으면서도 키코와 관련된 기업의 대출은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키코 피해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환헤지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는 "은행이 잠재위험을 충분히 알리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며 키코를 판매한 13개 시중은행에 대한 단체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곧 금융시장 안정? 그 사이 중소기업 쓰러진다"

정부에 중소기업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A씨 역시 "정부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불가능한 얘기다, 대기업이 아니면 키코와 리먼 사태를 견딜 수 없다"며 "정책 당국자들은 더 이상 탁상공론을 하지 말라"고 말했다.

송영길 민주당 환헤지피해대책위원장은 "키코 등 국내적인 문제에 세계적인 대형 악재로 중소기업이 회생할 수 있는 환경이 악화될 게 염려가 된다"며 "정부는 리먼 사태로 장기적으로는 시장이 안정될 거라고 하지만 그 사이에 중소기업은 쓰러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중소기업에 대한 피해 지원이 필요한데 키코 관련 추경예산을 없애는 등 정부 여당이 손 놓고 있다"며 "당장 이번 달 정산금을 지원해줄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태그:#키코, #리먼, #리먼브라더스, #리먼 사태, #환율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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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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