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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다. 어떻게 이렇게 콕 집어 정확하게 보도하는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건강이상설에 대한 대다수 한국 언론의 보도가 그렇다.

 

물론 정보 제공자가 있다. 국정원과 청와대, 국방부가 그 정보원들이다. 김성호 국정원장이 국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자 들어간 순환기 계통의 발병으로 수술을 받았으며, 의식은 있는 상태로 빠른 속도로 회복 중"이라고 했다.

 

이상희 국방부 장관도 국회에서 "뇌질환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후 회복 중"이라고 확인해주었다. 여기에 이철우 한나라당 의원 같은 경우는 정보위 등에서 보고받은 내용을 토대로 "부축하면 일어설 정도"라고까지 상세하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병세를 말하기까지 했다.

 

이러니, 대다수 한국 언론들이 김정일 와병설을 기정사실처럼 보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외국 언론, 특히 북한의 권력 동향에 한국만큼이나 민감한 일본 언론의 보도 태도는 국내 언론과 사뭇 대조된다.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11일 이상희 국방장관의 국회 보고 내용을 전하면서 "확정적인 증거나 정보는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 외교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미확인 정보는 많지만, 병명이나 용태 등을 포함해 단정할 만한 단계는 아닌 것 같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한국언론과 일본언론은 달랐다

 

<아사히신문>은 또 "'뇌졸중'이나 '뇌출혈'이라고 하는 병명은 북한에 최근 입국했다는 프랑스와 중국 의사들의 동향을 근거로 한 것으로 보이며, 한국 정부에서는 '(언론)보도에 따른 정보로 확정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일본 <교도통신>은 한국 언론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용진료소인 봉화진료소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을 기정사실처럼 보도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현재 김 위원장이 봉화진료소에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실한 정보가 없다"고 보도했다. 바로 이상희 국방장관의 국회 보고발언을 인용한 것이다. 그런데 왜 국내 언론들은 한결같이 "봉화진료소에서 치료중"이라고 거의 단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마이니치신문> 역시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중병설에 각국 정부가 사실 확인에 나서고 있지만, '근거없는 정보 교착 상태에 있다'는 11일자 베이징 특파원 기사에서 김정일 와병설에 대해 역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북한 상층부에 이변이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많은 정보들이 근거가 분명하지 않아 현 시점에서 김정일 위원장 본인의 건강문제라고 단정하는 데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베이징 외교 소식통들의 견해를 소개했다.

 

한국 언론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건강이상설의 주요 근거로 제시한 북한 정부 수립 60주년 기념식 불참과 관련해서도 "9일 북한 건국 60주년 행사도 김정일 위원장이 참석하지 않는 이변이 있었지만 규모가 예상보다 작았고, 아무 문제없이 거행됐다는 점에서 북한 고위관계자들이 (김정일 위원장의) 중병설을 부인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 지배적"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같은 날 <마이니치신문>은 서울특파원 기사에서 국가정보원이 국회 보고에서 "외출은 가능하지 않지만 의식은 있으며, 회복가능하며 컨트롤 가능한 상태로 언어장애는 없다"며 구체적으로 김위원장의 용태를 설명한 데 대해 "국정원의 보고도 전문(傳聞)정보나 상황 증거에 기초해 분석·추정한 것으로 보인다"는 정도로 평가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현상태에 대해서 확실한 직접 정보를 파악 가능한 상태는 아니"라는 '한국정부관계자'의 발언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들 일본 언론의 보도태도는 한 마디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신변에 이상이 있다는 '첩보'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을 단정적으로 볼만한 확실한 '사실'은 아직 확인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와 정보기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 무게를 두고 공식 브리핑 했지만, 아직은 여러 정황을 유추한 추정 정도의 수준이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아무 의심 없이, 나아가 정보기관보다 더 단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대다수 한국 언론과는 판이한 보도태도다. 

 

정보기관 대북정보에 대한 신뢰도 차이

 

한국 언론과 일본 언론의 보도가 왜 이처럼 확연하게 다른 것일까? 동일한 국정원장의 국회 보고 등을 두고도 왜 이처럼 그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것일까?

 

북한 문제, 특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신상 문제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온도차가 그 배경일 수 있다. 일본으로서도 북한 최고지도자의 신상 문제는 민감한 사안일 수 있지만, 한국보다는 아무래도 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언론과 일본 언론의 이같은 보도 양태의 차이는 사안의 중요성 등에 대한 가치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의 신뢰성에 대한 판단의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구체적으로는 한국 정보기관, 즉 국정원의 대북 정보의 신뢰도에 대한 평가와 판단에서 입장을 크게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언론은 국정원의 판단 역시 확실한 '직접 증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정황과 전문을 참고해 내린 '추정적 분석' 정도로 판단하고 있다. 국정원이 그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국정원의 브리핑을 믿을만한 '확실한 정보'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 언론이 국정원의 이번 김정일 건강 이상설 정보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일부 신문들이 지적한 것처럼 한국의 정보기관이 위성사진이나 감청 등을 통한 전자 정보 수집이나 분석에서는 미국 등의 정보기관에 처질 수 있지만, 이른바 망원을 통한 인적 정보(휴민트)에서는 미국이나 일본의 정보 수집 능력을 앞서고 있다고 보기 때문인 듯하다.

 

<국민일보>가 12일 보도한 것처럼  국정원이 입수한 인적 정보라는 것은 "지난달 15일 전후해 뇌신경외과 전문 의료진이 14일쯤 방북했다는 첩보" 정도였다.

 

이후 ▲김정일 위원장의 집무실과 봉화진료소 인근의 위성사진 판독 ▲의료진의 추가 입북 ▲김 위원장의 북한 정부 수립 60주년 기념식 불참 등의 정보를 종합해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이상에 대한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김 위원장의 상태가 "부축하면 일어설 수 있을 정도"와 같은 자세한 정보를 얻었다고 보기 힘들다.

 

물론 국정원 등 정보기관이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은 추가적인 '인적 정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럴 정도의 비선 정보가 있다고 보기에는 북한 내 현재 상황에 대한 다른 정보들이 너무 빈약하고 허술하다. 한국의 정보기관이나, 청와대나, 대다수의 언론들이 무모할 정도로 단정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있을 개연성이 적지 않다는 지적을 살만한 대목이다.

 

정보기관의 정보에 대처하는 언론의 자세

 

한국 정보기관이나 한국 언론보다 더 나간 외신 보도도 없지는 않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을 주도적으로 보도했던 미국의 케이블 뉴스 채널 <폭스뉴스>는 12일에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용태는 한국 정부가 공개한 것보다 심각한 상태로 미국과 중국인 비밀리에 김정일 체제가 붕괴할 상황에 대비해 협의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폭스뉴스> 온라인판에 보도된 이 기사는 "부시행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김정일 위원장이 곧 사망한다거나 할 정도의 상태는 아니지만, 이미 회복 단계에 있다고 하는, 한국에서 나온 정보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말했"으며 "김정일 위원장은 몸 한쪽이 마비상태일 뿐만 아니라, 판단능력도 영향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의 일간지 <더 가디안>의 줄리안 보거 기자는 11일 '의문점-김정일은 아직 살아 있는가'라는 기사에서 "미국 정보 관계자들은 김 위원장이 아마도 스트로크(졸도)를 일으켰으며 위중한 상태라고 말하고 있지만, 미국의 유사한 익명의 정보 관계자들은 2년 전에도 피델 카스트로가 암으로 사망 직전에 있다고 (잘못) 예측한 적이 있다"며 미국 정보기관의 신뢰성에 의문을 나타냈다.

 

대북 정보에서는 정보기관이 언론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공식으로 국회에 보고까지 한 정보라면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정보라고 신뢰할 만하다. 하지만 정보기관이 제공하는 정보나 그 분석 등에 대해서 언론은 언론 나름으로 그 신뢰성을 따져봐야 한다. 앞서 예시한 일본 언론의 보도 태도는 정보기관의 정보를 언론이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태그:#김정일, #정보기관의 신뢰성, #대북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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