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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뜰. 부지런한 일벌들이 바삐 움직이며 살아있음을 날갯짓 하는 곳. 온 사방이 하얀 메밀꽃 향과 이기적인 사람들의 사진 터이다. 가산 이효석 선생이 태어난 강원도 봉평의 이야기가 아니다.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은 거의 전국에 걸쳐서 이 작물을 재배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60∼70년대까지만 해도 비탈진 산기슭 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작물 중에 하나. 해서 이를 추억 속에 간직한 사람들은 적지 않을 터.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귀하신 몸이 되어버린 작물이 바로 메밀이란다. 그래서 지척의 거리에 메밀꽃이 만개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나선 곳이 바로 전라남도 끝자락에 위치한 고흥만.

 

메밀꽃이 어우러진 고흥만의 초입은 온통 소금밭이다. 시원하게 뚫린 방조제. 이를 바라보며 모두가 긴 호흡을 삼킨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남해안의 상쾌한 바다 냄새. 이와 어우러져 옛 추억의 향취를 느끼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을 것 같은 메밀꽃 길.

 

소금을 뿌린 걸까? 아님, 세상의 어지러움을 잠시나마 덮어버리고 싶어서 일까? 공간 없이 촘촘하게 심어놓은 메밀밭 사이엔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래 소리가 발길을 잡는다.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새들의 노래를 들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새들의 아름다운 하모니는 어디론가 더 깊이 숨어 버린다.

 

누군가는 소금을 뿌려 놓은 것 같다고 하고, 누군가는 안개꽃 단지 같다고 한다. 하지만 먼발치에서 바라본 메밀꽃 단지는 한 여름의 모진 풍파를 모두 감추고, 소슬 바람에도 흔들거리며 서둘러 오라는 손짓을 인사로 대신한다.

 

메밀꽃 속에는 꿀이 많아 벌들에겐 고마운 밀원이 된다. 척박한 땅에서도 싹이 트고 생육기간이 60∼100여일 정도여서 재배 또한 쉽다고 한다. 특히 메밀 속에는 단백질과 비타민 등이 듬뿍 들어 있어서 우리 선조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메밀을 섭취했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메밀은 비위장의 습기와 열을 없애주고 소화를 돕는 효능이 있어서 메밀을 먹으면 일 년 동안 쌓여 있던 체기를 내려준다고 한다. 그러나 과욕은 금물. 소화기능이 약하고 찬 음식을 먹으면 설사를 하는 사람은 찬 성질의 메밀을 피하는 것이 상책.


강원도 평창에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메밀꽃 밭이 고흥만(방조제 길이 2873m, 매립면적 3100ha)에 자리 잡은 것은 고흥 군청 간척사업소에서 고흥만 사계절 공원화 단지 조성 사업의 하나로 금년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더욱이 메밀을 수확한 후에는 강원도 평창군에 종자를 제외한 전량을 수매하기로 합의하여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자랑이다.


시원하게 펼쳐진 남해바다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 해안 드라이브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남도의 끝자락 고흥만 간척지. 메밀 밭 건너편엔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 들녘이 계절이 바뀜을 알려준다. 사진기의 찰깍거리는 소리가 끝없이 이어지는 고흥만은 이미 사람들 마음속에 가을을 담아버린 것일까? 돌아서는 발길이 풍성한 가을잔치로 저절로 가벼워진다.

 

 

태그:#고흥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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