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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쓰는 인생 노트' 안내 포스터
▲ <제2회 친친 쌍쌍 파티> 포스터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쓰는 인생 노트' 안내 포스터
ⓒ 수원시건강가정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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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코 앞이다. 집집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명절을 보내겠지. 이번 추석에도 내가 미리 준비해서 시부모님댁으로 들고가야 하는 것은 '꽂이'다. 햄과 맛살, 버섯, 파를 가지런히 이쑤시개에 꽂아 가면 된다.

세 며느리가 늘 나눠서 하는 대로 큰동서는 장보기와 갈비찜 양념을 해올 것이고, 작은동서는 식혜와 돈저냐(동그랑땡) 재료 반죽한 것을 가지고 올 것이다. 온갖 종류의 부침개가 태어날 것이고, 그렇게 명절 시작을 알리게 될 것이다.

명절에 특별히 맛있는 것을 먹는다는 생각도 느낌도 없는 아이들은 평소 엄마 셋 모두 반찬으로 잘 해주지 않는 햄과 맛살에 눈이 끌려 열심히 '꽂이'를 집어 먹겠지. 그럼 또 시어머니는 말씀하시겠지.

"거봐라, 아이들 잘 먹는 거 하니 얼마나 좋으니?"  

지난 9월 4일(목) 수원시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는 <시어머니 교실>이 열렸다. 다음 날 있을 <며느리 교실>에 앞서 시어머니들이 먼저 모이셨는데, 진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한 쌍이 되어 참석하기는 어려운 까닭에 '며느리가 있는 여자 어르신들'과 '시어머니가 계신 젊은 여성들'로 참여자의 폭을 넓힐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시어머니 교실> 강의는 어르신들을 늘 만나는 내가 맡았고, <며느리 교실>은  방송인으로도 유명한 여성학 강사 오숙희씨가 맡았다.

어르신 약 40여 분과 함께 재미있는 노래도 부르고 서로의 마음을 열기 위한 눈맞춤, 입맞춤, 손맞춤, 마음맞춤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녀들, 가족들, 친구들과 사이좋게 사는 방법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추석을 앞두고 한 포털 사이트에서 '시어머니, 이럴 때 서운하다!'라는 제목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여드리며, 고부간의 구체적인 갈등 내용과 해결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이야기를 시작할 때였다.

시어머니가 서운할 때 1위는 '친정 가려는데 시누이 기다렸다가 보고 가라고 할 때'라고 하니 뒤쪽에 계신 분이 벌컥 소리를 지르신다.

"아니, 그럼 손님 오는데 친정에 가버리면 일은 누가 해? 말도 안 되지!"

어르신의 얼굴색이 붉으락 푸르락 화가 나셨다. '어르신 말씀에 대해 다른 분 혹시 하실 말씀 없으세요?' 하니 저쪽에서 손을 드신다.

"내 딸 오면 남의 집 딸도 보내줘야지요. 저는 뒤에 오는 손님들은 내가 알아서 한다고 그냥 가라고 해요."

어르신들이 각자의 경험을 나누시도록 잠깐 시간을 드렸다. 그러면서 솔직히 머리가 아팠다. 이런 이야기를 과연 언제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막막함도 일었다.

부부가 함께하는, 가족이 함께하는, 이웃과 함께하는 즐거운 추석을...
▲ <즐거운 추석, 우리부터 실천해요!> 책자 표지 부부가 함께하는, 가족이 함께하는, 이웃과 함께하는 즐거운 추석을...
ⓒ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가족부, 여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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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가족부, 여성부가 함께 만든 '즐거운 추석, 우리부터 실천해요!' 책자를 보니 남편, 아내, 부모님, 아이들이 각자 실천해야 할 전략을 아주 상세하게 나열하고 있다.(* 아래 '덧붙이는 글' 참조)

어려운 일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도대체 뭐가 문제지? 뭐가 문제여서 명절을 보내면서 혹은 명절을 보내고 나서 가족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들 피곤하고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는 걸까?

명절 지나고 나면 만나는 어르신들께 꼭 여쭤본다. 명절 잘 지내셨느냐고. 많은 분들이 '며느리 눈치보느라, 명절 지나고 집에 가서 혹시라도 아들네가 부부싸움할까봐' 마음이 불편했다고 하신다.

며느리들은 어떨까. '지나치게 많은 음식 장만에, 집에서는 잘 도와주던 남편도 돌변해버리고 마는 상황'이 화가 난다고 아우성이다. 남편들은 '장거리 운전의 고단함은 둘째치고라도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 끼어서 눈치보느라 피곤하다'고 또 투덜거린다.

"살 날 얼마 안 남은 우리들한테 맞춰 주면 안돼? 자기 하나만 참으면 집안이 조용할 텐데, 뭐가 그리 잘 났다고 힘드니 마니, 친정 보내달라 마라 말이 많아. 우리들은 다 참고 살았는데."

"손님이 많아서 친정에 보내주지 못하는 것만 빼면 나같은 시어머니 없다고 나는 자부해! 며느리하고 딸 차별? 다른 시어머니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절대 아냐. 절대!"

우리를 있게 해주신 조상을 기억하고 서로가 행복하자고 모이는 명절, 모두가 행복해도 단 한 사람이라도 저 구석에 앉아 아파하고 마음 상해 한다면 그게 진정한 행복일까. '나는 절대 아냐!'라는 시어머니의 며느리도 '우리 시어머니는 절대 안 그러시다!'고 같은 대답을 할까.

바뀌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멀었다고 느끼는 것은 서로가 상대방더러 바꾸라고 강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바꾸는 게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것을 잊고 있는 까닭이다. 세상에 남을 바꾸는 일이 가장 어렵다. 반대로 나를 바꾸는 일이 가장 쉽다. 내 마음 바꿔먹는데 따라 천국과 지옥이 왔다갔다 한다.

시어머니께 잘 해드리지 못하는 며느리 처지에 시어머니들께 강의를 하려니 편치만은 않았다. 만약 시어머니께서 내 강의를 들으셨다면 뭐라고 하셨을까.   

"아이고, 다른 시어머니들한테 설교할 생각 말고 너나 잘해라. 시집 와서 17년 동안 집안을 위해 니가 한 게 뭐 있니? 응?"

아니면 이러실까.

"너도 꼭 너 같은 며느리 얻어봐야 되는데. 그래야 내 마음 알 텐데!"

그런데 나는 딸 둘을 두어서 시어머니 될 일이 없을 예정이다. 그러니 어르신들을 통한 간접 경험을 통해 서로가 조금씩 바꿔나가면서 한 발짝 앞으로 나가는 일에 힘을 보탤 수밖에.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 존재이던가. 그 누구라도 하루 아침에 바뀌리라 기대하는 것이 무리다. 다만 <시어머니 교실>에서 만난 시어머니들 가운데 단 한 분이라도 '아, 며느리들은 저렇게 생각하기도 하는구나!' 인정하고,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해 보신다면 내 수업이 그래도 평균점수 이상은 되는 거라고 홀로 위로해 본다.

덧붙이는 글 | <'함께하는 즐거운 추석 보내기' - 가족구성원들의 실천 전략!>(출처 : 여성부 홈페이지)

◇ 아빠 : 함께 장 보기, 설거지, 청소 등 분담하기, TV시청·술자리보다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놀이 찾기, 처가 방문하기 등

◇ 엄마 : 운전하느라 지친 남편 어깨 주물러주기, 동서지간에 따뜻한 말 한마디, 아이에게 숙제·공부 타령하지 않기 등

◇ 할아버지·할머니 : 간소한 상차림 먼저 권하기, 아들과 사위 역할 분담해주기, 기쁘게 며느리 친정에 보내주기 등

◇ 나 : 잔심부름하기, 이불 개기, 내가 먹은 것 직접 치우기, 동생들과 놀아주기, 할아버지·할머니와 대화하기



태그:#시어머니와 며느리, #고부 갈등 , #명절, #평등 명절, #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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