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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지난 역사 속에서 많은 외도를 한 데 대해 겸허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지난 5월 3일 이명박 대통령이 국가정보원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이 대통령이 지적한 국정원의 '외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정보기관으로서 국가안보라는 본연의 업무를 일탈한 권력 남용이거나 정치 개입 등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정부·여당은 국정원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활동 범위를 크게 넓히는 방향으로 국가정보원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다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과 테러방지법 제정도 추진하기로 했다. 물론 이 두 법은 국정원의 활동을 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위인설법'과 같은 것이다.

 

이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기존의 법 테두리에서도 '외도'를 한 국정원인데 여기에 대폭 권한까지 더 부여한다고 한단다. 혹시 국정원으로 하여금 본격적으로 '외도'를 하게 하려고 법 개정을 추진하려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과거의 유신시대의 중앙정보부나 5공 시대의 국가안전기획부마냥 반정부세력을 탄압하는 데 국정원을 이용하려는 것은 아닌지, 심지어는 이번 법 개정의 목표가 '촛불'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인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어두운 기억의 저편, 그들이 다시 온다?

 

한국에 다시 비밀경찰 시대가 도래하는 것일까? 사실 한국의 국가정보원처럼 어두운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국가기관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1961년 박정희 군사 쿠데타 직후 창설된 중앙정보부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비밀경찰이었다. 당시 '중정'이라고 하면 산천초목도 부들부들 떨었다. 그들은 현역 국회의원을 잡아다 코털을 뽑기도 했고 야당 대통령 후보를 납치해 현해탄에 던지려고도 했다.

 

희대의 돈키호테 전두환은 아예 처음부터 중앙정보부장 서리 자리를 꿰차고 일을 벌였다. 그는 광주에서 피를 묻힌 1980년 12월 중앙정보부를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확대·개편한다. 이때부터는 '중정' 대신 '안기부'라는 이름이 공포의 대명사처럼 굳어졌고 그것은 노태우 시절까지 이어졌다. 당시 안기부는 야당에 대한 사찰과 정권 반대 세력을 잡아 족치는 일이 주 업무였다.

 

1993년 민간인 출신 대통령 김영삼은 안기부의 조직 개편을 단행하여 업무를 정상화 시키려는 노력을 보였다. 이어 1999년 김대중 정부는 안기부를 국가정보원으로 개명하고 업무 범위와 권한을 새로이 법으로 명시했다. 국가정보원이 비밀경찰이라는 음습한 이미지를 벗기 시작한 것은 사실 이때부터였고 대체로 그런 기조는 노무현 정부 때까지 이어져 왔다.

 

 

4일 국정원은 "지난 3월부터 김성호 국정원장의 지시로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확대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며 "올 정기국회에 국정원법 개정안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이 법을 개정하려는 방법 또한 대담하면서도 치졸하기까지 하다.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진 현행 국정원법 3조는 국정원의 직무를 국내 보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 형법 중 내란의 죄, 외환의 죄, 군 형법 중 반란의 죄, 암호 부정 사용죄, 군사기밀보호법에 규정된 죄,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에 대한 수사로 명시해 제한하고 있다.

 

이것은 정보기관의 직무범위를 세분화해서 명확히 규정한 것으로 현대 민주정치의 취지에 부합된다. 그런데 국정원은 위 항목들마다 끝에 모두 '등'을 붙여 개정한다고 한다. 이것은 사실상 직무범위의 제한을 철폐하여 정보 권력을 무제한 확장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휴대폰 감청은 확실하게! 인터넷 IP 주소는 의무 보관!

 

정부·여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은 국정원법 개정 이상으로 심각한 사안이다. 이는 악법이라고 해 지난 정부의 국회에서도 폐기됐던 법을 리바이벌하려는 것이다. 이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에는 치명적인 독소 조항이 들어 있다.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국민의 휴대폰 감청을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전화사업자가 휴대폰 감청 설비를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 사업자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든 이용자들의 IP 주소와 로그 기록 등 통신 사실 확인 자료를 1년 동안 의무 보관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국가가 국민들의 휴대폰을 상시로 감시할 수 있게 하며 인터넷의 이용 궤적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면밀 추적할 수 있게 만든다. 이런 악법은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예언한 '빅브라더'의 사회보다 더 강한 통제성을 띠고 있다.

 

미셀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정보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국가의 통신망과 데이터베이스를 죄수 감시를 위한 원형감옥인 '파놉티콘' 비유한 바 있다. 이 말은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해 국민들이 마치 죄수처럼 24시간 감시 받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의 프라이버시는 심각한 수준으로 침해당하고 있다. 이런 차에 통신비밀보호법까지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프라이버시의 침해' 정도가 아니라 '프라이버시의 증발'이다.

 

이런 인간적인 논의가 무의미할 정도로 한국 사회는 이미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으로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방기되고 있다. 이런 터에 통신비밀보호법 같은 악법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국가보안법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 따라서 사생활 증발은 물론 고전적인 자유라고 할 수 있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마저 박탈당하게 된다.

 

국정원 산하에 대테러센터, 비밀경찰이 따로 없다

 

마지막으로 정부· 여당에서 만들려고 하는 테러방지법이야말로 생뚱맞기 그지없는 법이다. 사실상 한국은 테러다운 테러가 없는 나라이다. 있었다고 해도 지금 이 법이 목적 삼는 테러는 없었다. 이 법이 지난 정부의 국회에서 무기 계류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부 여당은 이 법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제정하려 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대 테러센터'를 국정원 산하에 두려고 하는 발상이다. 또한 이 법은 국정원을 검찰과 경찰 등 모든 관계부처 위에 군림하는 정보권력기관으로 변질시킬 우려가 있다. 이것은 곧 국정원의 비밀경찰화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명백히 독재시대로의 회귀 현상이다.

 

정보기관의 권한 강화와 확대는 필경 권한 남용으로 이어지고 또한 그것은 권력의 사유화로 치달으며 나아가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인권이란 인간이 누려야 하는 권리인데 이것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는 없다. 또한 이것은 삼권분립에 의한 헌법기관의 법질서를 문란하게 한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가 입에 달고 사는 '선진화'의 개념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태그:#국정원, #통신비밀보호법, #테러방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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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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