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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오해와 갈등의 시작은 사소한 것들이다. 아니, 때로는, 오히려 그럴 듯한 대의명분보다 작고 하찮은 것들이 인간관계를 더 꼬이게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옛 민주당이 결별한 것은 '정치개혁'이라는 대의명분을 등에 업은 주류와 비주류의 권력 투쟁의 산물이다. 그렇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별의 씨앗은 어이없게도 설렁탕 한 그릇에서 시작되었다.

따지고 보면 둘 다 밥그릇 싸움이기는 하다. 다만 전자가 생존을 위한 '주도권 밥그릇'이라면, 후자는 '인정의 밥그릇'이다. 물론 설렁탕 한 그릇 사먹을 돈이 없어서는 아니다.

김영배 전 국회 부의장은 2002년 대선 당시 '사무라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당 선관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민주당 대표대행으로서 주말마다 절찬리에 생중계된 '국민경선 드라마'의 사회를 봤다. 그 덕분에 정치인생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2002년도 최고의 히트상품 노무현을 대선시장에 출시해 대권을 창출한 이후에는 정작 '노무현 시대'와의 불화를 겪었다. 그는 나중에 선거법 위반이 문제되자 사무라이답게 깨끗이 정계를 은퇴했지만, 그 전에는 자신이 관리책임을 맡아 칭송했던 국민경선제를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내동댕이쳤다.

한때 경선 지킴이였던 그가 이처럼 180도 표변한 것은 근본적으로 분당과 당권 투쟁에 따른 것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노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서운함이 깔려 있었다.

2002년 4월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주말 국민경선 드라마' 성공의 산파역인 김영배 선관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후보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고 있다.
▲ 좋았던 시절 2002년 4월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주말 국민경선 드라마' 성공의 산파역인 김영배 선관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후보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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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 무렵 "노 대통령이 설렁탕 한 그릇 안 사더라"는 말을 자주 하면서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 서운함이 쌓이고 원망과 배신감이 응축되어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저주로 표출된 것이다.

시시비비를 가리자면, 두 사람 인간관계의 파탄이 노무현 대통령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럴 경우, 유교적 전통이 강한 동북아에서는 대개 '부덕의 소치'라고 한다.

왜냐하면 대통령은 모든 국민에게 언제 어디서나 얼마든지 설렁탕을 살 수 있는 무소불위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는 자신의 대통령 당선에 앞장선 당의 원로가 아니던가.

이명박 대통령과 불교계의 불화도 그 출발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대개 그렇듯이 그 작고 하찮은 것을 눈덩이처럼 키우는 것은 비교와 '차별'이다. (더구나 이 대통령은 이미 서울시장 재임 때부터 '서울시 봉헌' 발언 등으로 불교계로부터 의심의 눈총을 받기에 충분한 언행을 되풀이해왔다.)

부처님오신날 봉은사에서 퇴짜 맞은 대통령 시주금

부처님오신날은 불교계의 가장 큰 축일이다. 불교계는 해마다 석탄일을 앞두고 전국 사찰에서 연등제를 갖고, 역대 정부마다 청와대는 관례에 따라 전국 대소사찰 100군데쯤에 시주금 봉투를 보냈다. 호국불교의 전통에 따라 대통령 연등을 달아준 감사의 표시다.

그런데 청와대는 올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강남구 문화체육과장을 통해 서울 강남의 봉은사에 대통령 시주금 봉투를 보냈다가 봉은사 측으로부터 퇴짜를 맞은 망신을 겪었다. 봉은사 종무실의 한 관계자가 밝힌 사연은 이렇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강남구청에서 전화가 왔다. 대통령 시주금을 대신 전달하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종무실에서는 그런 식으로 처리하면 괜히 돈 내고 욕먹을 거라며 아예 갖고 오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 지시를 받은 구청 과장은 '다른 데도 다 그렇게 보냈다'면서 부득불 전달해야 한다며 봉은사를 찾아왔다. 시주금이 든 일반 편지봉투에는 붓펜으로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적혀 있었다.

주지인 명진 스님은 '왜 이런 일을 행정처리 하듯 하느냐'며 봉투를 돌려보내라고 했다. 그러자 그 다음날 청와대 불자모임인 청불회 회장인 김병국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과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이 찾아와 결례를 사과했고 명진 스님은 이를 받아들였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간 5년만에 처음으로 봉은사를 찾은 권양숙씨는 청와대 뒤편에 모셔진 불상의 불전함을 5년만에 개봉했다면서 280만여원이 든 시주금 봉투를 명진 스님에게 전달했다.
▲ 시주금 '액수'보다 '성의'가 문제였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간 5년만에 처음으로 봉은사를 찾은 권양숙씨는 청와대 뒤편에 모셔진 불상의 불전함을 5년만에 개봉했다면서 280만여원이 든 시주금 봉투를 명진 스님에게 전달했다.
ⓒ 봉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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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앞서의 봉은사 종무실 관계자 H씨는 이렇게 말했다.

"시주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성의가 문제였다. 시주금 봉투에는 정성이 담겨야 하는데 MB 정부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더라."

역대 정부 때마다 시주금 전달 방식은 조금씩 달랐다. 김대중 정부 때는 청와대가 아닌 당에서 당 총재(대통령) 명의로 전국 사찰에 시주금을 보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청와대에서 대통령 명의로 보냈다. 그런데 '장로 대통령' 시대가 오자 시주금을 보내는 주체가 지방자치단체로 '격하'된 것이다.

전국 100여 곳의 사찰에 보내는 시주금 액수는 10만원씩이다. 사찰은 대개 교통이 불편한 산중에 있다. 그렇다 보니 배(시주금)보다 배꼽(교통비)이 더 큰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별도의 청와대 봉투를 제작해 80여 곳은 직원들이 직접 가서 전달하고 산 중 깊은 곳에 있어 찾아가기 힘든 나머지 20여 곳은 전화로 양해를 구한 뒤에 우편환으로 보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청와대에서 종교담당 업무를 맡았던 C씨의 얘기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짧은 시간에 전국 사찰 100군데 돌아다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곳은 시주금 봉투(10만원)보다 택시비가 더 많이 들어 민망할 때도 많았다. 그래서 이번 청와대는 실용정부답게 손쉽게 다른 방식을 취한 듯하다."

강원룡 목사의 '크리스천 아카데미'와 삼소회(三笑會)

이희호씨는 대한YWCA연합회 총무를 지낸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지만 상대의 종교를 존중하고 자식들에게도 특정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다.
▲ 삼소회(三笑會) 회원들과 이희호씨는 대한YWCA연합회 총무를 지낸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지만 상대의 종교를 존중하고 자식들에게도 특정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다.
ⓒ 현대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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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난 '잃어버린 10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모들이 그처럼 '손쉬운 방법'을 몰라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김 전 대통령은 가톨릭 신자이지만 강원룡 목사를 비롯해 문익환-문동환 형제 목사와 이해동 목사 등과 평생을 교유하면서 동지적 관계를 유지했다.

이른바 김대중 도쿄 피랍사건에서 생환한 것을 기념해 해마다 서교성당에서 기념미사를 봉헌해왔지만 대통령 재임 중에는 청와대 가족미사로 대신했다.

유복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이희호씨는 대한YWCA연합회 총무를 지낸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지만 상대의 종교를 존중하고 자식들에게도 특정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다.

이희호씨는 김 대통령 집권 2년째인 99년 5월 18일 삼소회 대표 15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이씨는 "삼소회가 종교간 교리나 신념 차이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오신날 봉축 합창제와 북한어린이돕기합창제, 연등축제 참가 등 종교간 교류와 화합을 도모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종교화합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종교의 다원성을 포용하는 두 사람의 열린 신앙은 5.16 군사쿠데타 직후인 62년 두 사람을 중매하고 결혼식 주례까지 선 강원룡 목사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강 목사는 그 이듬해인 63년부터 '크리스천 아카데미'를 세워 종교간 대화에 앞장서왔다. 또 65년에는 개신교·천주교·불교·유교·천도교·원불교 등 6대 종교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한국 역사상 최초로 종교간 대화 모임을 개최했다.

삼소회는 불교 비구니와 원불교 교무·천주교 및 성공회 수녀 등 여성 성직자들로 구성된 종교간 대화 모임이다. 이들은 월례 정기 기도모임 외에도 세계 성지 순례를 통해 종교간 대화와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 삼소회는 강 목사가 뿌린 종교간 대화와 평화의 씨앗 중 하나인 셈이다.

'나이롱 신자' 노무현, 남몰래 절에 다닌 권양숙씨

노 전 대통령과 권양숙씨도 각각 종교가 달랐으나 서로 존중했다. 다만 두 부부는 김대중-이희호 부부보다는 '신심'이 부족했거나 종교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달랐던 것 같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사형선고를 받는 등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던 정치인 김대중과 변호사 노무현이 신(神)을 찾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노 전 대통령과 권씨는 지난 86년 변호사 시절에 부산지역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송기인 신부가 주임신부로 있던 당감성당에서 영세를 받아 각각 '유스또'와 '아델라'라는 가톨릭 세례명을 받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성당에 다니지는 않았다.

세례명을 받았지만 현재 성당에 나오지 않는 신자를 천주교에서는 '냉담자'라고 부른다. 노 전 대통령 본인도 대통령후보 시절에 당시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천주교 신자이지만 신심이 부족하다"며 솔직하게 자신을 '나이롱 신자'에 비유했다.

권양숙씨는 89년부터 봉은사에 다녔지만 노 대통령 5년 재임 기간에는 퇴임을 사흘 앞두고 5년만에 처음 방문해 새벽예불에 참석했다.
▲ 5년만의 첫 방문 권양숙씨는 89년부터 봉은사에 다녔지만 노 대통령 5년 재임 기간에는 퇴임을 사흘 앞두고 5년만에 처음 방문해 새벽예불에 참석했다.
ⓒ 봉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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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씨는 성당에서 세례를 받긴 했지만 남편이 세례를 받을 때 함께 받은 것일 뿐, 실제로는 독실한 불교신자이다. 그러나 정치인의 아내로서 종교가 갖는 민감성을 잘 알기에 불교 신도라는 점을 별로 드러내지 않았다.

권씨는 노 대통령 5년 재임기간 중에 퇴임을 사흘 앞둔 지난 2월 22일 새벽 예불 시간에 딱 한 번 절에 들렀다. 권씨는 이날 예불 후에 대웅전에 모인 신도들 앞에서 "지난 89년부터 봉은사를 남몰래 다녔으며 노 대통령 퇴임 전에 취임 전까지 다니던 봉은사를 방문하고 싶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당시 상황을 보도한 <불교포커스>에 따르면, 권씨는 인사말 끝에 청와대 뒤편에 모셔진 불상의 불전함을 5년만에 개봉했다면서 280만여원이 든 시주금 봉투를 주지 명진 스님에게 전달했다.

권양숙씨의 '작은 미담'과 비교되는 이명박-김윤옥 부부의 언행

이 소식은 불교계 신문에 작은 미담으로 실렸을 뿐, 새 대통령 취임식에 묻혀 버렸다. 이 '작은 미담'을 '큰 분노'와 함께 인터넷 공간에 되살린 것은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었다.

봉은사 명진 스님은 지난 6월 촛불정국에서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정치 지도자는 자신의 종교 색깔을 드러내지 않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극렬하게 종교적 색채를 드러내고 있다"면서 "불자들은 해방 이후 최악의 대통령을 만났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명진 스님은 "역대 정권의 한 영부인은 우리 신도였지만 재임기간 5년 내내 단 한 번도 절에 오지 않다가 퇴임 이틀 앞두고 새벽 예불 딱 한 번 왔다"고 일화를 소개함에 따라 권씨의 미담이 이명박-김윤옥 부부의 언행과 비교되어 인터넷에서 새삼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권양숙씨가 지난 2월 22일 새벽예불을 마치고 주지 명진스님과 차담을 나누고 있다.
▲ 명진 스님이 전한 일화 권양숙씨가 지난 2월 22일 새벽예불을 마치고 주지 명진스님과 차담을 나누고 있다.
ⓒ 봉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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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의 명진 스님과 화계사의 수경 스님이 이끄는 '이판사판'

흔히 막다른 궁지에 이르러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을 이를 데 '이판사판'이라고 한다. 불교 용어인 이 말의 유래는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정책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승려는 하루아침에 최하층 천민으로 떨어져 승려가 되는 것은 인생의 막다른 선택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판(선승)이든 사판(행정승)이든 그 자체로 '끝장'을 의미하는 말이 된 것이라고 한다.

현재 불교계의 이명박 대중과의 한판 싸움은 명진과 수경이라는 두 '이판사판'승이 이끌고 있다. 명진 스님은 강남 봉은사의 주지이고 수경 스님은 강북 삼각산 화계사의 주지이지만, 두 스님은 본디 선방에서 오랜 수행을 거친 이판승이다. 오랜 수행 뒤에 각각 통일운동과 환경운동으로 사회 참여의 길에 나선 것이다.

1200년의 역사를 가진 총무원 직할사찰 봉은사 앞에는 '선종수사찰'이 붙는다. 억불책을 쓴 조선시대에 불교를 중흥시킨 자긍심의 표현이다. 화계사는 수덕사의 말사이지만 세계 120여개의 선원을 지도하는 숭산 스님이 조실로 있어 외국인 수행자들이 끊이지 않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국제 사찰이다.

명진 스님은 법문을 통해 이 대통령의 언행을 꾸짖고, 수경 스님은 4일 문규현 신부와 함께 지리산에서 오체투지 원행을 시작했다. 그는 4일 오후 2시 지리산 노고단에서 천제를 지난 뒤에 '더 이상 불자들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하여 오체투지의 길을 나설 것'을 다짐했다.

연일 대통령의 언행을 법문으로 꾸짖는 명진 스님과 사람·생명·평화의 길을 찾아 나선 수경 스님은 개혁성(사판)과 법력(이판)으로 이 땅에서 참선에 정진하는 이판승들의 신임을 받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일갈은 울림이 크다. 지금 불교계는 그야말로 '이판사판'이다.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4일 오후 지리산 노고단에서 열린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 나서는 오체투지 순례 출발행사에 앞서 노고단 정상에서 제를 올린 뒤 손을 잡고 행사장으로 내려오고 있다.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4일 오후 지리산 노고단에서 열린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 나서는 오체투지 순례 출발행사에 앞서 노고단 정상에서 제를 올린 뒤 손을 잡고 행사장으로 내려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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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판사판, #봉은사, #명진, #수경,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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