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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행의 특징이라면 낯선 제주도를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지 않고 지도 하나 달랑 들고 길을 찾아서 가는 여행이라는 점이다. 가끔 길을 잘못 들어서 헤매기도 하지만, 헤매다가 또 다른 좋은 보물을 발견하기도 하고, 지도 하나로 찾아가는 그 즐거움 또한 크다. 물론 지도로 길을 찾는 것은 내 몫이 아니다.

 

지도 하나 달랑 들고 여행한 경험이 풍부한 남편 몫이니 나는 지도 보는 시늉만 할 뿐이다. 그리고 점점 지도 보는 눈이 조금씩 열린다고나 할까 그 정도다. 제주도 관광지도가 우리 손 안에 있으니 제주도가 우리 손바닥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손금 같은 지도를 펼쳐놓고 이리저리 찾아나서는 그 즐거움은 오늘도 함께 한다.

 

한 '도'를 안다는 것이 그리 손쉽게 되지 않는 것이고 쉽지 않지만 나름대로 이틀을 여행하고 사흘째 접어들자 제주도의 대략적인 특징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여행하는 이곳 집들은 대부분(제주시 쪽 말고) 귤밭을 한두 개 씩은 끼고 있다. 바람 많은 제주도, 그래서 귤밭은 또 어김없이 돌담을 치고 있고 거기다 방풍목을 심어 나무들이 이중으로 울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제주도엔 바람도 많지만 드넓은 초원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어 평화로운 풍경을 연출하고 넓게 트인 도로와 숲, 넓디 넓은 땅은 여느 도시나 시골에서 보기 드문 이국적이고 독특한 풍경이다. 한라산은 제주도의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어서 어디서 바라보아도 조망되고 또한 오름의 천국이라 할 만큼 곳곳에 오름이 많다. 360여 개의 오름이 널리 분포되어 있어 제주도는 그 지형 특성만 보아도 독특하다 할 것이다.

 

하늘에 맛닿을 것 같은 야자수 나무들은 이곳이 우리나라가 과연 맞는지 의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하고 삼나무 숲은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다. 제주도의 특징 가운데 또 하나는 무덤들이 대부분 밭 한귀퉁이나 한가운데 있다는 점이다. 무덤가에는 무덤을 중심으로 낮은 돌담을 쳐놓고 있으며 드넓은 초원지대가 끝없이 펼쳐져 있어 시야가 자유롭다.

 

용눈이오름

 

해안도로를 따라 달린다. 어디를 보아도 짙푸른 초원, 그리고 에머랄드빛 바다와 푸르른 하늘이 펼쳐진다. 제주도의 배경색은 때 묻지 않은 청정한 바다빛과 푸른 초원의 빛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다 여러 가지 색을 조금씩 입히고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빛은 감탄을 넘어 경외에 가깝다. 푸른 물로 온통 내가 물드는 듯하다.

 

잠시 해안도로가 끊어지고 숲길로 이어진다. 용눈이오름으로 가는 길이다. 삼나무숲길(1112도로)을 지난다. 무성도 하다. 우람하고 무성하고 짙푸른 삼나무 숲길이 계속 이어진다. 아름다운 길이다. 사진이나 영화 속 장면 같은데서 본 듯도 하다. 삼나무숲길에서 1136도로로 접어든다. 용눈이 오름이 보인다. 용눈이 오름은 손지봉과 이웃해 있는 오름으로 도로변에서 차를 세우고 바로 올라갈 수 있어 좋다.

 

차를 주차하고 용눈이 오름으로 올라간다. 나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둥근 곡선을 그린 오름, 아침 햇살이 넓게 퍼지면서 햇살이 제법 뜨겁다. 아주 거대한 무덤 같기도 하고, 넓고 둥근 초원 같기도 한 용눈이오름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남편은 메뚜기를 발견하고, "지금부터 본업에 들어가야 겠다"며 메뚜기 잡느라 눈길도, 관심도 거기 가 있다.

 

 

제주도 여행을 몇 번 해 본 남편으로서는 용눈이오름도 와 보았으니 여유가 있다. 정상까지 이르는 시간은 10~15분 정도 걸린다. 언덕 높이 올라가니 바람이 상쾌하다. 용눈이오름 정상에서 바라보는 분화구는 마치 주발 모양처럼 둥글게 움푹하게 패여 있다. 용눈이오름의 전체 모양을 말하자면 모나지 않고 부드러운 형상으로 편안하다.

 

정상의 분화구를 도는 시간도 10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다.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조금씩 모양이 다르지만,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어 부드럽고 넉넉하고 듬직하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어머니 젖가슴처럼 푸근하고 넉넉하다고나 할까. 거기다 초록빛으로 물들이고 있으니 그야말로 둥글게 만들어진 초원이다. 바람이 상쾌하다.

 

나무 없어 아무것도 걸릴 것 없는 바람이 마음껏 능선 위로 분다. 저만치 오름의 여왕이라 불리는 다랑쉬오름이 보인다. 성산일출봉, 우도 등도 조망된다. 메뚜기 잡느라 풀밭을 돌던 남편도 재빠른 메뚜기에 몇 마리 잡지도 못한 채 포기하고 다름 코스로 가기 위해 내려간다. 우리 마음 가득 용눈이오름의 그 푸르고 넉넉하고 푸근한 인상을 고스란히 담아 간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오후 1시 30분,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남제주군 성산읍 삼달리)에 도착, 폐교를 개조해 김영갑 사진가가 직접 꾸몄다는 갤러리다. 사진 이론공부도 실기공부도 해 본적이 없었던 그가 사진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사진에 미쳐 사진에 살다가 그는 또 죽어서 사진작가로 사진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는 그것은 또 무엇일까.

 

용눈이오름을 오르고 또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찾은 것은 용눈이오름 그 자체의 오묘함도 그렇지만, 그와 또한 많은 연관을 갖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오래 전, 그러니까 사진작가 김영갑씨가 루게릭병으로 임종한 뒤였던가, 우연히 제주도행 배를 타고 제주도를 향하던 중 남편은 TV 다큐멘터리에서 그의 생애를 다룬 방송을 접했고, 그 때 용눈이오름을 처음으로 가 보았다고 했다.

 

해서 이번에도 나에게 용눈이오름을 오르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니 가까운 곳에 두고 그냥 갈 순 없어 이곳으로 향한 것이다. 그가 심안으로 찍은 용눈이오름은 어떨까 궁금하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초등학교 폐교를 개조해 만든 것으로 돌과 나무, 그리고 토우들로 정원이 이루어져 있고, 그 길을 따라 가면 그의 생전에 손떼 묻은 작업실과 작품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 김영갑 사진작가는 중학교 때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형으로부터 카메라 한 대를 선물로 받은 이후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는 사진관에서 심부름을 하며 어깨 너머로 사진 기술을 익혔다고 한다. 이후 대학 진학도 포기한 채 프리랜서 사진작가를 꿈꾸며 전국을 누비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1982년 우연히 제주도에 들렀던 그는 제주의 때 묻지 않은 자연에 매료됐다.

 

1985년에는 가족과도 인연을 끊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아예 제주에 정착해 사진 찍는 일에만 몰두했다. 그 뒤 제주의 자연을 필름에 담기 위해 사시사철 밤낮 가리지 않고 제주 전역을 샅샅이 훑었고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절벽에 몸을 매달고 사진을 찍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찍은 사진 필름만 해도 30만 롤, 하지만 그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1999년 사진을 촬영하던 중 조금씩 손이 떨리기 시작한 것이 점점 심각해져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상태로 발전했고, 2001년에는 루게릭병이란 병을 진단받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했던 그는 2002년 아픈 몸을 이끌고 남제주군 성산읍 삼달리의 초등학교 폐교를 빌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연 것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누구의 간섭도, 눈치도 없이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면 외로움과 궁핍함을 감수해야 한다. 외로움과 궁핍함을 즐기려면 무언가 소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즐거운 소일거리가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간장, 된장, 고추장만 있으면 돈이 없어도 하루가 상큼하다. 몸만 움직이면 자연 속에 먹을거리는 무진장이다.

 

굶주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자연에 묻혀 지내는 한 제주도의 속살을 엿보겠다고 동서남북 10년 세월을 떠돌았다. 그러고 나니 제주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디서 바라보는 해돋이와 해넘이가 아름다운지, 제주 바다는 어느 때에야 감추었던 본래의 모습을 보여 주는지, 나름대로 최상의 방법을 찾아내었다...."

 

"아름다움의 핵심에 도달하는 황홀한 순간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최적의 장소에서 미리 준비하고 대기해야 한다. 그래야 삽시간에 황홀을 맞이할 수 있다. 결정적 순간을 만날 수 있다. 눈을 감아도 밤하늘 별자리처럼 제주도 전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대자연의 황홀한 순간을,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려면 스물네 시간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으려면 삶이 단순해야 한다.

 

스물네 시간 하나에 집중하고, 몰입을 계속 하려면 철저히 외로워야 한다. 하고 싶은 일에만 몰두하기 위해서는 최소의 경비로 하루를 견뎌야 한다. 부지런하고 검소하지 않으면 십년 세월을 견딜 수 없다. 십년 세월을 견딘다고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온몸을 내던져 아낌없이 태워야만 가능하다..."

 

"진짜는 두 눈이 아닌 심안으로 보아야 한다. 심안은 간절히 원한다고 열리는 것이 아니다. 앞뒤 재지 않고 육신을 내던져 간절히 소망할 때 마음의 문은 열린다. 365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태풍이 부는 날이나 바람 한 줄기 없는 날에도 한여름이나 한 겨울에도 똑 같은 장소에 간다. 앉아서 보고, 서서보고, 누워서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그렇게 몰입한 후에야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온 몸의 근육이 굳어지는) 루게릭병이라는 불치병으로 결국 짧은 생애를 마감했지만, 제주 사람들보다 더 제주도를 사랑했고, 사진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 그 누구보다도 컸던 것을 위의 글을 통해 읽을 수 있다. 그가 생전에 찍었던 사진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테지만, 그가 제주도에 와서 살면서 제주도 사람들보다 제주를 더 사랑하며 수없이 바라보았던 제주도, 그 구석구석들...

 

그가 찍은 용눈이오름 사진만 해도 75점이다. 그것은 또한 용눈이오름 사진들 중에서 고르고 고른 것들이라 원래는 더 많을 것이라 추측된다. 나는 그를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지금, 이곳에 와서 그의 생애를 보고 듣는다. 한 인간의 생애, 한 사진작가의 생애에 대해, 그리고 우리들 인생에 대해 읽는다. 그는 사진을 위해 살다 사진에 혼을 담고 사진에 그를 남기고 떠났다.

 

그리하여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들 저마다의 가슴 속에 꼭 필요한 그 한마디, 한 깨달음을 남긴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 해도, 아무리 뛰어난 예술가라 해도, 건강을 거두어 가시면, 그 누구도 다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다. 어쩌면, 어쩌면, 우리는 한 가지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일생이 걸린다. 일생을 다해도 모자라는 것이 있다.

 

우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나오며 많은 것을 생각한다. 예술에 대해, 인생에 대해, 무엇으로 살 것인가에 대해...

 

제주도의 옛 민속경관과 토속생활을 알고 싶다면, 성읍민속마을로

 

성읍 민속마을에 도착했다. 한라산 동부 중산간지대에 있는 성읍 민속마을은 조선시대 때 정의현청이 있었던 유서깊은 마을이다. 차를 주차장에 대자마자 안내인 냉바리(시집간 여자)가 다가와 성읍민속마을을 돌아보실 거냐고 묻는다. 대답도 하기 전 곧 안내를 한다. 안내에 들어가기 전, 제주도 사투리 때문에 간혹 오해를 사는 경우가 있는데 오해가 없으시기 바란다며 제주도말 몇 가지를 이야기 하고 뜻을 해석(?)해 준다.

 

말이 어찌나 빠른지 숨도 쉬지 않고 하는 것 같다. 제일 처음 안내한 것은 문이다. 대문 역할을 하는 정주석과 정낭이 있다. 나무막대기, 바로 '정낭'이라고 하는 것인데 출입구 양쪽 입구에 세워놓은 세 개의 구멍이 뚫린 돌기둥 '정주목'에 끼워 넣은 세 개의 통나무가 정낭이다. 여기서 통나무가 한 개가 걸쳐 있으면 잠깐 외출을 한 것이고, 곧 돌아온다는 의미라 한다. 두 개면 장시간 외출, 세 개가 걸쳐 있으면, 오랫동안 출타 중이라는 뜻이 된다고 설명한다.

 

세 개 다 내려져 있으면 집에 사람이 있다는 의미다. 만약에 통나무가 올려져 있는데 들어가면 월담을 하는 것이 된단다. 여긴 총 501가구, 1308명이 살고 있는데 1년에 40가구씩 돌아가면서 개방을 한다고 설명한다. 제주 민속마을 집들은 구조가 다 똑 같기 때문에 한 집만 보면 다 돌아보는 것과 같다고 한다. 결혼한 남자를 '왕바리', 시집간 여자를 '냉바리', 아가씨를 '비바리'라 한단다.

 

"재기재기 옵서예(빨리 빨리 오세요)."

 

냉바리는 앞서 걸으며 우리를 안내한다. 외적의 침입이 많았던지라 안거리(부모방)와 밖거리(바깥쪽방으로 자녀 방)는 따로 지었고 부엌에도 부뚜막이 없는 것이 특징이란다. 굴뚝 역시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연기가 새어 나가면 적들에게 들키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방에 연기가 새어 들어가면 안 되니까 방과 부엌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빨리 설명해서 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대략 이해가 된다. 여자들의 물항아리는 보통의 물동이와 다르다. 머리에 이는 물동이와 달리 이곳 제주 여자들이 사용하던 물동이는 '물허벅'이라는 것인데, 제주는 예로부터 물이 귀해 아낙네들이 바람 많은 들길을 오랜 시간 걸어서 물을 길어왔고, 그래서 물이 출렁거려도 새나가지 않게 항아리처럼 주둥이가 올라와 있고 길다. 이를 물허벅이라 한다.

 

물허벅은 물구덕에 넣어 지고 날랐으며 지고 온 물은 등에 짊어진 채로 허리를 굽혀 어깨 너머로 부엌 한구석에 놓여 있는 물항에 부어 사용했다고 한다. 물허벅은 남자의 등에 절대로 매지 않게 했다고 한다. 남자가 물항아리를 지면 이혼하고 싶다는 뜻이라고 한다. 물허벅 옆에는 아기 담는 요람이 있다. 대나무로 짠 것으로 둥글고 길다.

 

제주도 여자들은 너도 나도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밭일을 하다가 아기를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해서 뱀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뱀이 싫어하는 차가운 댓살로 짜서 만든 요람에 넣어두고 밭일을 했다고 한다. 민속촌의 지붕은 초가집이다. 제주의 초가는 얼핏 보면 여느 시골처럼 볏짚을 이은 것 같으나 억새풀로 만든 것으로 바람을 피하기 위해 낮게 지었으며 비바람이 많아 흙과 돌을 사용해 외벽을 만든 것을 볼 수 있다.

 

이곳 민속촌의 특산물 중, 말뼈(분말, 환)를 파는 것이 특이하다. 말고기도 먹는다나?! 금시초문이다. 말고기는 특히 여자가 많이 먹는 게 좋다고 한다. 남자가 많이 먹으면 정력이 세져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니 많이 먹이지 말라 한다.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은 제주도, 그래서 남자가 귀하다 보니 여자가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제주도, 남자가 귀해 남자를 집안에 앉혀놓고 여자가 일을 해야 했던 제주도, 대부분의 가정들은 좋은 것, 맛있는 것, 몸에 좋은 것이 있으면 남편에게 먼저 가지만, 이곳은 냉바리 입으로 먼저 들어간단다.

 

 

왜냐하면 생계를 책임지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고 건강해야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들이 한이 많은 제주도이다. 외적 침략에 언제든지 도망갈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했던 제주도, 그 이야기를 듣는다. 초가집 마당에 있는 두 개의 돌하르방은 제주의 대표적인 상징물 중의 하나로 어디를 가든 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제주의 여자들은 죽을 때까지 일을 한다. 자식 방 따로, 부모 방 따로다. 밥도 따로 해 먹고 부모는 죽을 때까지 일하고, 자기 장사 지낼 것까지 다 준비해 놓고 죽는다고 한다. 다음으로 안내한 곳은 특산물을 파는 코너다. 몸에 좋다는 말뼈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지만 거부감이 생긴다.

 

말뼈 환을 건네며 먹어보라고 하지만 원래가 약 종류를 싫어하는지라 나는 환 다섯 알 정도 주는 것을 세 알 정도만 물과 함께 꿀꺽 삼켜보았다. 무엇보다도 오미자차가 아주 맛있다. 한통에 3만원, 여행 중에 돈을 아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동하지만 살 순 없다.

 

"폭싹 속았수다(수고하셨습니다.)."

 

끝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준 냉바리와 인사를 하고 민속마을에서 발길을 돌린다. 우린 매실엑기스를 집에서 만들었듯이 오미자차를 어떻게 만들지 궁리한다. 1년 숙성시켰다는 오미자차 맛은 아주 좋았다. 이래저래 유혹을 물리치고 다섯 가지 맛이 난다는 오미자차의 맛을 음미하며 제주 성읍민속마을을 나와 그 주변에 있는 식당가에서 불고기 정식을 시켜 먹는다.

 

내내 밥을 직접 해 먹기만 해서 여행 중에 피곤하기도 한데다 영양도 부실하니, 가끔은 이런 즐거움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남편은 내내 토종흑돼지 불고기 정식이 맛있었노라고 자주 언급했다. 바람많고 돌 많은 섬, 외적의 침략이 많아 언제든지 도망갈 태세를 갖추고 살아야 했던 이곳 섬사람들의 한과 고단한 삶을 생각하며 제주성읍 민속마을을 벗어나 이제  또 다른 곳으로 출발한다.

 

제주도 여행(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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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화

태그:#제주도, #용눈이, #성읍민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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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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