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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보수의 용어인 감세라는 말을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며 호기롭게 부가가치세 3% 인하의 감세카드를 꺼내들었다. '장고 끝에 악수'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민주당 감세안은 정책적 측면에서는 '가려운데 남의 다리 긁는 격'이고, 정치공학적 측면에서는 '남의 무대에서 춤추는 꼴'이기 때문이다.

 

부가가치세 인하 혜택, 누구에게 돌아갈까

 

우선, 정책적 측면에서 평가해보자.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감세안이 부자와 대기업을 위한 감세안인 반면, 자신들의 감세안은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감세안임을 부각하고 있다.

 

한나라당 감세안과 비교한다면 민주당의 감세안이 상대적으로 서민과 중산층에 좀 더 유리한 것임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의 감세안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한나라당의 감세안과 비교하여 '덜 나쁜' 정책일 뿐이지 '바람직한' 정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감세안에 따르면 연간 12조원의 세수감소가 예상된다. 이 중 얼마만큼이 서민과 중산층에게 돌아갈까?

 

부가가치세 인하의 직접적인 혜택은 인하폭만큼 물가인하 요인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현행 부가가치세법에 의하면, 여러 생필품에 대하여 이미 면세혜택을 주고 있으며 이러한 면세 품목은 부가가치세를 인하해도 가격 인하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쌀·야채·생선과 같은 미가공 농수축산식품, 수돗물 및 연탄, 버스와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수단 등이 면세이고, 보건의료와 교육서비스도 면세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07년 가계수지동향에 의하면, 전국가구 월평균 소비지출 221만1600원 중 면세품목에 해당하는 지출액(외식비를 제외한 식료품비·수도료·가사서비스·보건의료·교육·교통비의 50% 등)은 71만6000원으로 전체 소비지출액의 약 1/3에 해당한다. 이는 평균적으로 가계소비지출액의 1/3은 부가가치세 인하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음을 의미한다.

 

경제이론에 의하면 저소득층일수록 엥겔계수(가계소비 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가 높다. 이는 저소득층일수록 가계소비지출에서 생필품에 지출하는 비중이 큼을 의미하고, 세법적으로 해석하면 저소득층일수록 가계소비지출에서 면세 품목에 지출하는 비중이 큼을 의미한다. 이는 통계적으로도 입증된다.

 

위의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소득5분위 중 하위 20% 가구의 식료품비(외식비 제외) 지출 비중은 24.7%이고 보건의료비 지출비중은 10%인 반면, 상위 20% 가구의 식료품비(외식비 제외) 지출 비중은 5.7%이고 보건의료비 지출비중은 2.6%에 불과하다. 결국, 민주당의 부가가치세 감세안 역시 상대적으로 부유층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것으로서(물론 한나라당에 비하면 양호하지만) '가렵지 않는 다리를 더 긁어주는 겪'이다.

 

게다가, 부가가치세 인하 폭의 일부분이 유통업자의 마진으로 흡수될 경우에는 중산층 이하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더욱 더 줄어들게 된다. 우리나라의 복잡한 유통질서, 대형 할인점의 독과점적 지배력 등을 고려할 때 이는 충분히 우려할 만한 일이다. 이에 대한 대책은 마련되어 있는가?

 

광란의 감세 쇼 끝날 때까지 기다려라

 

연간 12조원의 예산이면, 등록금후불제 도입이 가능하고, 워킹맘들이 바라는 '안심하고 아이 맡길 수 있는 공공보육시설'의 대폭 확충이 가능하며 아동수당도 일부 도입할 수 있다. 보육과 교육에 대한 투자는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투자이며 아이를 둔 모든 부모의 바람이다.

 

1억원을 가진 두 사람이 있다. 모두 이 돈을 남을 위해 쓰기를 원한다. 한 사람은 아무나 가지라며 63빌딩에 올라가 돈을 뿌렸다. 모두 돈을 줍기는 했지만 힘세고 건강한 사람이 여러 장 주울 동안 약하고 아픈 사람은 한 장 밖에 줍지를 못했다. 다른 한 사람은 1억원을 갖고 보육시설을 세워 워킹맘이 이용하도록 하였다. 누가 더 현명한 사람일까? 

 

'감세'는 몇년 전부터 한나라당에서 마련한 무대이다.

 

몇년 동안 그 무대에서 쉬지 않고 춤춘 결과 제법 호응을 얻었다. 부유층과 대기업이 열광을 하고 그 분위기에 휩쓸려 다른 사람들도 어깨를 들썩인다. 이를 부럽게 쳐다보던 민주당이 "나도 춤출 수 있다"며 무대로 뛰어 올라갔다.

 

남의 무대에 올라가 춤춘다는 것은 잘해 보았자 조연이고, 잘못하면 끌려 내려오는 길 뿐이다. 정당에게 조연은 의미가 없다. 정권은 주연, 1등만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당의 감세카드는 '잘해야 제1야당, 잘못하면 군소정당'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많다.

 

쇼는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다. 지금은 비록 감세포퓰리즘의 광란의 무대가 펼쳐지고 있지만, 복지축소로 인한 사회양극화 심화와 재정적자 누적의 벽 앞에서 그 쇼는 끝나게 되어 있다. 80년대 말 미국 레이거노믹스가 초래한 쌍둥이적자의 결과를 보면 이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민주당이 차기 정권을 노리는 수권정당의 모습을 갖추려면 광란의 무대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감세가 초래할 파국을 수습할 대책을 마련하며 쇼가 끝날 때를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쇼가 끝난 후 어디로 갈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관중들을 질서있게 안식처로 안내해야 할 것이다.

 

그 안식처는 새로운 프레임(=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 위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프레임은 '세금=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세금=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인식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프레임을 만드는 정치세력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게 될 것이다.


태그:#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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