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진을 찍으려면 멋있게 찍어달라는 아저씨는 무척 성실하게 보였는데요. 무한한 여유와 순수함도 함께 느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면 멋있게 찍어달라는 아저씨는 무척 성실하게 보였는데요. 무한한 여유와 순수함도 함께 느꼈습니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열흘쯤 됐을까요. 중년 부부로 보이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테라스에서 땀을 흘리며 일을 하기에 무슨 공사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물이 새는 것을 방지하는 '우레탄 방수' 기초작업을 한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요. 이튿날부터 보이지 않아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아침 일찍부터 작업을 하더라고요. 그동안 보이지 않아 궁금했었다고 하니까 바닥이 바싹 마르고 나서 방수액을 발라야 하기 때문에 기다렸다고 하더군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물었더니 예상대로 부부라고 했습니다.

부부가 땀을 흘리며 일하는 모습이 행복하게 보여 낮에 아내와 시장에 가면서도 얘기를 나눴는데요. 아내도 부부가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며 고생은 되지만 돈은 많이 벌었을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지만, 전깃줄을 연결해주고 사다리를 잡아주는 등 일을 거들어주니까, 성씨와 태어난 고향, 나이도 알려주며 몇 년 동안 객지로 돌아다니면서 고생했던 일들까지 들려주었습니다. 

성이 최씨이고 목포에서 태어났다는 남편(48세)은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군산에 와서 살았기 때문에 고향에서의 기억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며 군산이 고향이나 다름없다고 하더라고요. 옆에서 열심히 페인트칠을 하던 아주머니가 호랑이 띠(47세)라는 말에 제가 "띠동갑을 만나 반갑네요"라고 해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부부싸움을 하면 호랑이띠인 아주머니가 소띠인 아저씨를 항상 이긴다고 하자, 아주머니가 남편을 바라보며 "지는 게 이기는 거지유··"라며 압력을 넣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자 최씨는 "맞기는 헌디유, 그렇다고 지가 항상 지는 건 아닙니다. 아무리 호랑이라고 허지만 소는 덩치가 크고 뿔이 있응게 뿔로 받어 버리지유"라며 부인에게 지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기는 죽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캄캄한 밤까지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오마이뉴스>에 두 분을 소개하고 싶다고 하니까 아주머니는 "훌륭헌 사람들 많은디 우리가 머라고 신문에 난데유"라며 수줍어하는데 남편은 웃으며 "이왕이면 멋있게 찍어보세유"라며 여유를 보여주었습니다.

해서 일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함께 일을 다니며 겪는 애로사항과 좋은 점 등을 물었습니다. 처음엔 묵묵히 일만 하던 아주머니는 말문이 열리자 묻지 않은 말도 해주고 지금 사는 집도 남편이 번 돈으로 직접 지었다고 자랑하며 시간이 나면 놀러 오라고 초대까지 해줘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옥상 방수 작업도 예술

캄캄한 밤까지 방수작업을 하는 부부. 노동으로 맞벌이하는 것은 돈을 번다는 의미보다 한 차원 높은 부부의 건강을 담보하고 있어 더욱 소중하다는 생각입니다.
 캄캄한 밤까지 방수작업을 하는 부부. 노동으로 맞벌이하는 것은 돈을 번다는 의미보다 한 차원 높은 부부의 건강을 담보하고 있어 더욱 소중하다는 생각입니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시간이 갈수록 자녀들 얘기에서부터 공사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까지 설명해줄 정도로 대화가 무르익어 갔는데요. 부부가 함께 다니면서 언제가 가장 속상했었는지 묻자 남편인 최 씨는 부인과 함께 다니면 좋다고 하면서도 한숨을 내쉬며 말을 시작했습니다.  

"둘이 일허러 댕기믄 속상헌 일보다 편한 점이 많지유. 근디 사람을 많이 써가지고 인건비를 엄청 줘가면서 공사를 마쳐놓고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큰돈을 몇 번 떼이기도 허고, 특히 소개혀주고 덤터기를 썼을 때가 젤 힘들었지유. 그려서 인자는 욕심부리지 않고 들어오는 일만 허는디, 한 달에 1백만 원을 벌 때도 있고 3백만 원을 벌 때도 있어유. 그리도 마음이 편헌 게 좋더라고유."

방수 처리만 하러 다니는 게 아니라 하도급을 받아 여러 가지 건축 일을 한다는 최씨는 돈을 벌어 집을 짓기도 했고, 혼기를 맞이한 애들 때문에 돌아다니지 않고 들어오는 일만 한다며 부부가 건축현장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의 종목과 노동자들의 임금까지 설명해주었습니다.

옛날에는 남녀가 함께하는 도배가 인기가 좋았는데 요즘은 여성들만의 직업이 되었다고 말하는 남편은 건축 현장에서 부부가 함께할 수 있는 일은 페인트칠, 타일, 미장, 조적(벽돌 쌓기), 메지(벽돌이나 타일 사이를 메우는 일) 등이 있다며 초보 임금은 4-5만 원, 기술자는 남자가 13만 원 여자는 8만 원 정도를 받는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남편 얘기를 듣고 있던 아주머니는 방수 처리를 하는데 평당 8-9만 원을 받았는데 기름 값이 올라 10만 원은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헌 집을 새집으로 만들어 놓기 때문에 좋은 직업이고 '예술인'이라며 공사를 해놓고 집주인이 만족해할 때는 보람을 느낀다며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심부름을 해도 부사장

스테인리스로 된 테라스 기둥에 우레탄 방수액을 바르는 아주머니. 말은 조금 느리지만 흐트러짐이 없어 어디를 가도 인정을 받겠더라고요.
 스테인리스로 된 테라스 기둥에 우레탄 방수액을 바르는 아주머니. 말은 조금 느리지만 흐트러짐이 없어 어디를 가도 인정을 받겠더라고요.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서로 소통이 이루어지니까 과거와 나이 얘기도 자연스럽게 나왔는데 성이 최씨인 남편은 48살이고 부인은 47살이라고 했습니다. 애들은 아들 하나에 딸 하나를 두었고 딸은 대학을 졸업한 뒤, 모 그룹에 취직했고 아들은 대학 2학년 다니다 군대에 갔다고 하더군요. 

건축 일을 30년 가까이 했다는 남편을 13년 전부터 도와주는 아내에게 부부가 일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보기도 좋다고 하자, 일에 열중하던 아주머니가 "보기 좋기는요. 남을 도와주는 일도 아니고 먹고 살라고 허는 일인디···. 우리보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더 보기도 좋고 아름답쥬"라며 겸손해하더라고요.

집을 깨끗하게 단장해놓고 주인이 기뻐하는 것을 보면 흐뭇해진다는 아주머니에게 남편을 따라다니며 속상했던 점은 없느냐고 물으니까 그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는데, 일을 하다 다툼이 벌어져 중간에 집으로 돌아와 잠시 다른 회사에 취직했던 적이 딱 한 번 있었다며 '한 번'을 강조했습니다. 

한쪽에서 일에 열중이던 남편이 부인을 향해 '어이 부사장!' 하고 부르더니 부족한 재료를 가져오라고 심부름을 시키더라고요. 해서 제가 아저씨가 사장이 되려고 아주머니에게 부사장이라고 부르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겸연쩍어하면서도 부사장은 부사장이라며 부인의 직책에 변함이 없음을 확실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깊어가는 초가을의 아름다운 밤하늘에는 크고 작은 별들이 총총히 떠있는데, 적막을 깨뜨리며 간간이 들려오는 새를 쫓는 새총 소리는 두 부부를 위한 축포 소리로 들렸고, 가로등에 반사되어 검붉게 물든 들녘은 가을이 영글어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태그:#부부예술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