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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간의 권력 세습, 일당 독재, 언론통제, 인구비례 사형율 1위.

이런 말들을 들으면 한반도의 다른 절반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겠지만 사실은 싱가포르를 가리키는 말들이다.

1965년 독립 당시부터 31년간 집권했던 리콴유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리셴퉁이 2004년부터 수상으로 집권하고 있으며, 여당인 '인민행동당'은 84개의 의석 중 82개를 차지 해 일당 독재를 하고 있는 나라가 싱가포르다. 2007년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07 세계 언론자유 지수'에서 싱가포르는 세계 141위였다.

사정이 이러하니 싱가포르에서 집회와 시위에 대한 자유를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사치다. 다민족·다종교 국가인 싱가포르는 1960년대에 화교와 말레이족의 충돌로 3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 집회 자체를 금기시해왔다.

사전 허가가 없는 집회는 원천적으로 금지되고, 어렵사리 허가를 받더라도 집회의 주제는 극도로 제한된다. 물론 집회 장소도 정부가 지정한 곳이 아니면 금지다. 지난해 10월 버마 사태와 관련하여 대통령궁 밖에서 항의시위를 벌이던 야당 총재가 집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경찰에 체포된 일은 집회를 대하는 싱가포르 정부의 자세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비해 싱가포르 국민들의 반발은 크지 않은 편이다. 국민 상당수가 자국 정부가 유능할 뿐만 아니라 청렴하다고 믿고 따르기 때문이다. 국제기구가 발표하는 여러 지표도 이를 뒷받침한다.

2007년 발표된 '국제투명성 기구'의 부패인식지수 조사 결과 10점 만점에 9.3점으로 세계 4위를 기록했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이 5.1점으로 조사대상 180개국 가운데 43위를 기록한 것과 대비된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라는 게 언제까지나 억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경제적 안정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을 고민하는 이들이 늘었고, 미디어의 발달과 세계화는 국민들 스스로 자유를 억압당하고 있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었다. 싱가포르 정부 역시 이 같은 사실을 인식하고, 이제까지의 여러 규제들을 풀기 시작했다.

2007년 발표된 <국제투명성 기구>의 부패인식지수(CPI; Corruption Perceptions Index) 조사 결과
 2007년 발표된 <국제투명성 기구>의 부패인식지수(CPI; Corruption Perceptions Index) 조사 결과
ⓒ 이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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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자유' 억압 푸는 일당독재 싱가포르

지난 26일자 싱가포르 일간지 <The Straits Times>는 싱가포르 정부가 향후 집회와 시위에 대한 자유를 보다 폭 넓게 보장하는 방향으로 법을 고치겠다는 발표를 했다고 보도했다.

주요 내용을 보면 이제껏 허가제로 되어있던 것을 신고제로 바꿔 인터넷을 통해 신청만 하면 집회를 열 수 있도록 했고, 사전 심사도 없앴다고 한다. 집회 장소는 시내 곳곳의 공원(Nation Park)으로 확대되며, 주제는 인종과 종교 문제를 제외하면 폭 넓게 허용한다고 한다. 집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밤 10시 30분까지로, 야간집회가 금지된 한국에 비해서도 나은 조건이다.

이제껏 싱가포르 하면 '동남아의 부국이지만 국민의 자유를 엄격히 제한하는 독재국가'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집회의 자유를 개선한 이번 조치는 독재국가의 이미지를 상당부분 걷어내고, 선진국의 인권 기준에 한 발 더 다가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독재국가 싱가포르에서 집회의 자유가 개선된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 헌법 제1조에 민주공화국이라 명시되어 있는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소식이 나왔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지난 몇 년 동안 떼법이 판을 치면서 법치주의가 붕괴되고, 국가기강은 무너졌다"는 한탄과 함께 '불법시위집단소송제'를 도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불법집회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되면 피해집단을 대표하는 사람의 소송만으로도 집단전체가 피해를 일괄 구제 받게 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뒤집으면 집회를 하기 전에 혹시 모를 거액의 소송부터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거다.

8월15일 저녁 서울 한국은행앞에서 제100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한미 쇠고기 재협상' '이명박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8월15일 저녁 서울 한국은행앞에서 제100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한미 쇠고기 재협상' '이명박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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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노조의 파업을 두고 기업들이 형사고발이 아닌 민사상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통해 대응하기 시작하면서 노조활동이 상당히 위축 되었다. 두산중공업 노조에서 활동하던 고 배달호씨는 2003년, 사측이 파업과 관련하여 65억원의 민사소송을 내고 급여와 부동산을 가압류하자 분신을 택했고 사망했다. 이로 인해 노조활동에 대한 손배가압류가 사회문제로 부각되기도 했다.

'시위집단소송제' 역시 노조에 대한 손배가압류와 마찬가지로 집회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실제로 소송이 진행되면 상당한 사회문제가 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언론을 장악해 나가고 있는 정부가 국민의 대표적 의사표시 방법인 집회와 시위마저도 '떼법'이라 매도하며 법과 돈의 힘으로 막으려 하는 건 국민의 목소리에 아예 귀를 닫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싱가포르는 독재국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국민의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있는데, 민주주의 국가라 자부하는 한국은 오히려 역주행을 하고 있다.

지난 6개월 동안의 여러 경제 지수가 현 정부의 무능을 이야기하고,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받은 여러 수모 역시 무능한 외교의 결과다. 사촌언니의 30억이 보여주듯 권력 주변은 이미 부패했고, 서울시 의회 돈봉투 사건이 집권 여당의 부패를 증명한다. '소통'하겠다고 한 정부가 광장에 '컨테이너 산성'을 쌓더니, 이젠 아예 소통의 싹을 자르려 하고 있다.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의 독재에 눈감을 국민은 없다.


태그:#시위집단소송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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