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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순 사장의 KBS는 어떻게 될까? 속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충 그 그림은 나온다. 이병순 사장의 취임사에서 그 대략적인 윤곽을 그려볼 수 있다.

 

그 큰 그림의 바탕은 물론 인사권의 행사가 될 것이다. 이병순 사장은 KBS 사원행동의 저지를 뚫고 출근한 이틀째날 신속하게 이사회의 개최를 요청했다. 부사장 선임을 위한 것이다. 6개 본부장도 모두 사표를 냈다. 대대적 인사 개편이 신속하게 이뤄질 전망이다. 아마도 9월 10일경으로 예정돼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때 새로운 체제로 맞겠다는 구상인 듯 하다.

 

이병순 사장 체제에서 예상되는 KBS의 가장 큰 변화는 보도와 제작 분야에 대한 경영진의 통제권이 크게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병순 사장은 취임사에서 이를 분명하게 밝혔다. 대내외적으로 비판받은 프로그램, 사회적 물의를 야기하고도 변화하지 않은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그 존폐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예상되는 사내외 비판을 무릅쓰고 취임사에서 굳이 이를 밝힌 이유가 그의 평소 소신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KBS에 대한 보수 정치세력의 비판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가 KBS 보도와 제작·편성의 근간을 크게 바꾸려 할 경우 당연히 내부 반발도 격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만큼 이 사장은 역대 어느 때보다도 경영진은 물론 보도와 제작, 편성 등 모든 분야에서 일사불란한 단일 지휘 체제를 구축하려 할 개연성이 크다. 올드맨들의 대거 '화려한 복귀'가 예상된다. KBS 사원행동의 한 인사는 "이 사장의 취임사를 보았을 때 그의 친정체제 구축은 예상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보도와 제작 일선에서 치열한 보도 제작 투쟁이 일어날 수도

 

KBS 사원행동이 강력한 저지선을 펴고 있지만, 노조가 미온적이어서 이병순 체제의 독주를 내부적으로 얼마나 견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연주 사장 해임 강행과 새 사장 선임 과정에서 확인된 것처럼 KBS노조는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해왔다.

 

정연주 사장 강제 해임 과정에서는 노조가 정 사장의 퇴진을 촉구해왔다는 이유로, 새 사장 선임 과정에서 권력의 노골적 개입 실태가 드러났을 때조차 절차적 합법성을 이유로 KBS 노조는 사실상 손을 놓았다. 기본적으로는 KBS 노조 지도부의 정치적 성향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KBS 구성원의 상당수가 정권의 KBS 장악 기도에 대해 소극적일지언정 '자발적 동의' 상태에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KBS 사원행동이 KBS 내 유일한 견제 세력이다. KBS 사원행동의 주축은 기자와 PD들이다. KBS 사원행동의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 가운데 55~60% 정도, PD들 가운데 65~70% 정도가 KBS 사원행동에 적극 참여하거나 동조하고 있다"고 말한다. 기자들의 경우 PD들에 비해 참여 정도가 다소 떨어지기는 하지만 젊은 기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KBS 내부의 합법적 기구가 아니라는 점에서, 또 참여 기자들과 PD들이 취재 보도와 제작 등 일상 업무 때문에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활동에 현실적인 제약이 있지만, 이들이 보도와 제작의 최일선 담당자들이라는 점에서 이병순 체제로서는 가장 큰 걸림돌일 수밖에 없다.

 

KBS사원행동의 이런 구성은 앞으로 KBS가 경영진과 간부진들의 물갈이를 통해 일사불란한 내부 통제 체제를 구축한다고 하더라도 보도와 제작 일선에서 치열한 보도 제작 투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KBS 사원행동의 지도부가 바뀌는 상황이 변수

 

이병순 사장이 취임 일성으로 안팎으로 논란이 된 프로그램의 폐지를 언급하고, 사전 게이트 키핑을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나선 것도 KBS 내부의 이런 사정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인사권의 행사를 통해 지휘 통제 체제를 강화하고, 프로그램 편성의 틀 자체를 바꿔 아예 논란이 될 만한 비판적인 보도나 프로그램 제작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일선 기자와 PD의 절반 이상이 비판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병순 사장 체제가 과연 의도한 대로 KBS의 보도와 프로그램의 방향을 완벽하게 틀어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 1차 시험대는 9월 말이나 10월 초로 예상되는 가을 정기 프로그램 개편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몇 가지 변수도 있다. 이병순 사장은 취임사에서 밝혔듯이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이병순 사장 체제에 대한 집권세력의 주문이기도 하다.

 

KBS 노조가 애초 정연주 사장 퇴진운동에 나선 것은 팀제 도입 등 경영 합리화에 대한 불만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병순 사장 체제는 '시청료 인상'과 같은 무마책을 같이 제시하겠지만 강력한 구조조정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미온적이었던 KBS 사원들의 반발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KBS 사원행동의 지도부가 곧 바뀌게 되는 점도 변수다. KBS 사원행동을 이끌고 있는 양승동 KBS PD협회장과 김현석 KBS 기자협회장의 임기가 9월 중 끝난다. 새로운 지도부의 구성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와 함께 오는 12월 초에 있을 KBS 노조위원장 선거도 장기적으로 KBS 사태 전개에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KBS 노조위원장 선거는 이병순 체제와 KBS 상황에 대한 KBS 사원들의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띠게 될 가능성이 크다.


태그:#이병순, #KBS 장악 , #KBS 독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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