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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 많은 일본인들이 찾아왔다. 일본에 의한 침략과 식민지 지배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사죄와 우호, 평화의 마음을 새겨넣은 '전쟁피해자 추모비' 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나가사키, 키타큐슈, 후쿠오카와 벳부 등에서 다양한 형태의 평화활동을 하고 있는 시민들로 구성된 이들은 '스톤워크'라는 이름 아래 모였다. 스톤워크 팀에는 일본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평화로운 내일을 위한 9·11유족회'와 '피스 애비' 등의 평화단체를 포함해,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참여하고 있다.

 

한·일·미 평화단체와 시민이 뜻을 모은 추모와 사죄의 걸음, 스톤워크 

 

오랫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베트남 전쟁의 피해자, 장애인과 원폭피해자를 위한 활동을 펼쳐온 강제숙 평화시민연대 대표를 비롯하여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심진태 합천지부장,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의 최정의팔 소장, 군대와 폭력의 문제에 천착해온 독립다큐멘터리 감독 김환태씨 그리고 합천자연학교와 박현주 합천군 의원 등 수많은 이들이 뜻을 같이 하고 있다.

 

스톤워크란 모든 전쟁피해자를 추모하고 세계평화를 기원하며 무게 약 1톤의 비석을 끌고, 전쟁피해의 지역을 무거운 걸음으로 천천히 나아가며 지역주민과 그 땅의 아픔을 고스란히 만나는 평화순례다.

 

원폭투하 60년을 맞이했던 지난 2005년 여름, 원폭투하를 사죄하고 싶다고 하는 가해국 미국인들의 호소로 '스톤워크 재팬 2005' 팀이 꾸려졌고 피해국 일본의 나가사키에서 히로시마까지 미국인과 일본인이 함께 순례길에 나섰다. 당시 이 행사에 참석했던 일본인이 다음엔 한국으로 스톤워크를 가자는 제안을 했고, 그것이 '스톤워크 코리아 2007'로 이어졌다.

 

 

'스톤워크 코리아 2007'은 일제시대 조선인이 강제연행을 많이 당했던 후쿠오카현의 치쿠호에서 키타큐슈까지 순례를 한 후, 현해탄을 건너 부산에서 시작해 합천을 지나 지리산을 넘고 광주, 천안, 서울을 거쳐 임진각과 금강산에 이르렀다.

 

합천에 평화공원과 자료관이 세워지길 바라는 일본인들

 

이후 스톤워크 한일실행위원회는 한국에서 원폭피해자가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한국의 히로시마' 합천에 비석을 두기로 결정하고, 그 제막식을 일 년만에 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단순히 추모비를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한일 시민이 함께 힘을 모아 합천에 원폭피해자를 추모하며 평화와 인권의 산 교육장이 될만한 평화자료관을 건립하기 위한 워크숍도 준비했다. 또, 미국이 일본에 사죄하고, 일본이 한국에 사죄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한국도 베트남에 사죄하며 베트남을 더 깊이 알아가자는 뜻에서 스톤워크 베트남을 준비하는 워크숍도 프로그램에 넣었다.

 

스톤워크 코리아의 미국쪽 참가단체인 '피스애비(The Peace Abbey)'의 돗 월시 목사는 "원자폭탄이 불러일으킨 고통은 방사능 효과로 인한 피해를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완전히 알 수 없는 그런 종류"라면서 "우리를 가르칠 사람은 바로 자신이 당한 공포스런 경험을 이야기해줄 피폭 생존자이며, 이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우리는 연민과 슬픔, 그리고 핵무장을 멈추기 위해 앞으로 헌신적으로 일해야겠다는 사명감에 가득차게 된다"고 합천시민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또 '평화로운 내일을 위한 9·11 유족회'의 안드레아 르블랑씨는 "추모비는 그 막중한 무게 때문에 천천히 움직일 수밖에 없다. 모두가 한 발 한 발 어깨를 맞대고 똑같은 방향으로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디 이 스톤워크를 계기로 한국과 일본, 미국 시민들 모두가 연민과 소망을 갖고 증오와 적대심, 핵무기가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향해 상호 이해와 용서의 한 발 한 발을 내딛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증오와 복수보다, 슬픔을 행동으로 바꾼 원폭피해자들 그리고 9·11 유가족

 

9·11유족회를 비롯한 미국측은 이번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2001년 9·11 사태 이후유가족들이 받았던 최초의 위로는 바로 원폭생존자들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고통을 통해 우리의 고통을 이해했다. 피폭자 여러분들은 핵무기 제거를 위한 헌신적인 노력뿐 아니라 복수의 이름으로 가해진 폭력으로 희생당한 희생자 가족에게 손 내미는 것을 통해 우리에게 밝은 횃불이 되어 주었다"면서 "증오와 복수보다 연민을 택함으로서 슬픔을 행동으로 바꾸기로 한 우리 모두에게 모범이 되었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스톤워크 한국측 실행위원인 최정의팔 목사의 경과보고로 시작된 제막식 행사는 실제 자신이 원폭피해자이고 나가사키에서 평화활동을 펼치고 있는 히로세 마사히토씨와 합천군 박현주 민주노동당 의원 등의 연대메시지, 참가자들의 합창 순으로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추모비를 덮고 있던 하얀 천을 한일 시민이 함께 걷어내면서 제막식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참가자들은 추모비 위에 국화를 헌화하며 그 자리를 오래도록 떠나지 못했다.

 

이 제막식에는 스톤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한일 시민뿐 아니라, 원폭피해자복지회관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다른 원폭피해자 1,2세도 함께 했다. 스톤워크 팀은 제막식을 마친 뒤, 원폭피해자 1세와 2세 환우의 증언을 들으며 교류회를 가진 후, 합천 자연학교로 이동하여 합천 평화공원과 원폭평화자료관 건립을 위한 워크숍을 밤 깊도록 진행하였다. 이튿날에는 한·일·미가 공동으로 깊게 책임의식을 공유하며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스톤워크 베트남을 위한 워크숍'을 1, 2 부에 걸쳐 진행하였다.

 

이들은 합천에서 이틀간의 여정을 마친 뒤에는 지리산으로 이동하여 원폭피해자와 함께 지리산 자락을 걷고 물놀이와 교류회 등도 가졌다. '원폭피해자와 함께 하는 스톤워크 제막식 및 워크샵 2008'이라는 이름으로 4박 5일간의 여정을 마친 이들은 수요일 오후 출국했다. 

 

"합천에 원폭 평화공원과 박물관 만드는 데 한일 시민 힘을 모아야"

[인터뷰] '스톤워크 코리아 2007' 실행위원회 공동대표 히로세 마사히토씨

 

전쟁피해자를 추모하는 평화의 발걸음 '스톤워크 코리아 2007'의 일본측 실행위원회 공동대표로서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일간의 연대와 우호를 위하여 힘써온 히로세 마사히토씨는 본인이 실제 원폭피해자다. 그는 중학생 때 미쯔비시 나가사키 조선소에 학도로 동원돼 일을 하던 중 피폭을 당했으며 사촌과 백모를 잃었다. 나가사키를 거점으로 하여 지난 세월 반핵평화활동과 원폭피해자들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온 그는 한국인 원폭피해자들과도 인연이 깊다. 그에게 스톤워크 코리아 2007 팀의 합천방문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 이번 합천 방문 목적은 무엇입니까?

"스톤워크 코리아 2007을 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함께 했던 이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고, 감사하고 싶었습니다."

 

- 합천에는 몇 번째 오는 것입니까?

"세 번째입니다. 버스를 타고 지나갈 때면 합천은 참 아름답고 조용한 시골입니다. 그러나 직접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곳이 진정 한국의 히로시마구나, 원폭피해를 상징하는 마을이라는 실감이 다가옵니다. 희생자들이 많은 마을이란 걸 올 때마다 새삼 느낍니다."

 

- 일본 스톤워크 팀은 왜 합천에 주목하고 있습니까?

"지난해 합천에 처음 왔을 때 복지관 뒤뜰 위령각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전에는 한국에도 원폭피해자가 있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 합천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합천에 직접 와보면서 합천의 피해사실을 넘어 한일간의 여러 문제를 깨닫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합천에 평화박물관을 세우는 일을 비롯하여 한국 원폭피해자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게획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을 알려주시겠습니까?

"평화공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돈과 많은 사람들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일본에는 합천에 왜 평화박물관을 건립해야만 하는지 이해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일본 여론의 환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합천에 박물관을 지으면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지만 일본에 돌아가서 저희들의 생각에 공감해주는 사람들과 협의해서 힘껏 추진해보겠습니다."

 

- 일본인 피폭자로서 한국인 원폭피해자에 대해서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갖고 있습니까?

"식민지 통치와 강제연행, 피폭 등으로 인하여 일본인 피폭자에 비해 2중, 3중의 고통을 더 받아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서는 저도 가슴이 아픕니다."

 

- 이번에 손녀 두 명을 데리고 오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아이들도 학교에서 역사 과목을 배우고 있지만, 한일간의 역사와 문화, 생활습관에 대해 아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 스톤워크에 대해서 좀더 설명해주시겠습니까?

"2005년에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서 미국인들이 피폭자들에게 사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스톤워크 재팬 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다음에는 일본인이 한국에 사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것이 스톤워크 코리아로 이어졌습니다. 한국, 일본, 미국이 함께 참여했고, 처음에는 사죄여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한국의 문화와 생활습관, 한국인의 마음을 이해라는 여행이었습니다. 모두에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일본에서는 원폭문제를 세계에 알리고 반핵평화활동을 펼쳐온 역사가 길고, 또 단체의 조직력과 영향력도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인들의 원폭에 대한 인식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또, 원폭피해자로서 반핵과 원폭피해자 인권을 위한 활동을 하는 데 있어 어려운 점은 없는지요?

"전쟁이 끝난 후 10년쯤 지난 뒤부터 피폭 체험자들이 증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원폭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외침도 강해졌습니다. 이는 세계적인 반핵운동으로 성장하였습니다. 해마다 8월6일과 9일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원폭과 관련된 큰 규모의 행사들이 진행되기 때문에 전 국민적으로 원폭과 관련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 많은 일본인이 방사능의 피해란 것이 50~60년이 넘어서도 암 등의 다양한 질병으로 유전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냉정한 태도를 취하고 있고, 피폭자를 인정하는 범위를 좁게 설정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일본정부와 세계지도자들에게 원폭의 무서움을 계속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합천에 평화박물관이 세워진다면, 그 모습과 형태는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첫째, 왜 한국인이 일본에서 원폭을 맞아야 했던가에 대한 역사적 배경 설명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원폭의 파괴력과 무서움을 다양한 증거물과 자료를 통해 전시해야 합니다. 일본에서 이미 모아진 자료가 굉장히 많으니까 그것들을 잘 수집해서 합천에 전시하는 것도 좋습니다. 셋째, 원폭을 투하한 미국은 아직도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은 전쟁을 일찍 종결하여 더 많은 군사들이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핵무기 사용을 정당화하며, 핵무기 사용이 전쟁을 조기 종결시켰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미국이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원폭을 불가피하게 사용했다기보다는 새로 개발한 원폭의 성능을 실제로 실험해보고 싶어서였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자료 수집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태그:#합천, #스톤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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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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