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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생활고를 상징하는 집단은 단연 비정규직이었다. 이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올해 들어 부쩍 자영업, 특히 영세 자영업인들의 어려운 경제상황이 사회적 주목을 받고 있다. '골목경제가 흔들린다'(쿠키뉴스 2008.8.6), '하루 12시간 일해 고작 3만원, 폐업생각 굴뚝'(경향신문 2008.8.4), '점포 절반이 자릿세도 못내요'(서울신문 2008.8.6) 등 자영업인들의 채산성 악화를 표현하는 극단적인 용어들이 언론매체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현재의 경기상황에서 유독 자영업이 집중적인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일까? 이는 두 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긴 호흡을 가지고 역사적 궤적을 추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극도의 내수 침체와 물가 폭등이라는 현재의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비정규직과 함께 바닥으로 밀려나는 자영업인

우선 역사성을 따져 보도록 하자.

우리나라는 1980년대까지 농업 종사자의 수가 자영업인보다 훨씬 많은 경제구조를 유지했다. 1980년만 하더라도 우리 국민의 1/4가량은 농촌에 살면서 농업을 주 생계수단으로 삼았다. 당시 쌀값 문제가 경제에 큰 영향을 주고, 농민들의 사회적 움직임이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 되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회 민주화운동 세력이 노동자와 함께 농민을 우리사회의 첫째가는 주체로 인정했던 것 역시 같은 이유이다.

그러나 90년대를 지나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한다. [그림1]에서 보이듯 정부의 농산물 수입개방과 농정포기정책으로 농민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반면 산업화와 함께 도시로의 인구 유입이 빠르게 진행되었고, 기업이 이를 미처 흡수하지 못하자 광범한 자영업인이 탄생하게 된다. 여기에 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실직자로 내몰린 직장인들이 가세하여 그 수는 임계점을 넘어서게 된다.

1986년을 기점으로 농민과 도시 자영업인의 수가 역전되었다(출처 : 통계청)
▲ [그림1] 1986년을 기점으로 농민과 도시 자영업인의 수가 역전되었다(출처 :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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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전문직 자영업이 아닌 영세한 도소매 서비스 자영업이 전체 취업자의 28%를 차지하는 기형적인 산업구조, 노동구조가 형성되었다. 이는 여러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최소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즉, 경제구조의 전근대적 흔적은 빠르게 없어졌지만 선진국형의 구조로 정착되지는 못한 것이다.

'농촌의 자영업인' 농민과 '도시의 농민' 자영업인

더불어 이러한 경제구조, 국민 생활구조의 변화는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한마디로 80년대까지 적용되었던 '노동자, 농민, 기층 민중'이라는 사회운동이론의 주체가 ‘노동자, 농민, 도시 자영업인, 기층민중’으로 변화해야 마땅하다는 얘기다. 70~80년대 1000만 농민이 부여잡고 있던 전근대적인 하중과 모순의 상당부분이 현대적인 외피를 쓰고 자영업인에게 떠넘겨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세계 사회운동사상 보기 드물게 치열한 사회운동을 전개해온 한국 농민운동의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농민운동은 1990년대 이후 농민들의 경제적 위치와 비중에 비해 과도한 부담을 짊어져왔던 셈이다. 그 결과 한국 농민운동은 세계농민운동사에 획을 그었지만, 들인 노력에 비해 실제로 이룬 성과는 적었다.

반대로 그동안 폭증해온 자영업인들은 사회적인 결사나 주체화를 통해 자신들의 사회적 처지를 개선하지 못한 채, 개별적으로 생활조건을 개선할 수밖에 없는 대단히 고통스런 기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이제는 농민에게 과도하게 부여된 짐을 덜어내고, 대신에 자영업인들이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자기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사회적 힘으로 단결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역사적 맥락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회적 함의다.

내수부진과 물가상승이라는 악재까지 겹쳐

두 번째로 현재 상황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자. 2000년대를 관통하면서 우리는 꾸준한 내수부진을 겪었고, 최근에는 그 연장선에 있는 스태그플레이션까지 맞이하고 있다.

우리경제가 꾸준한 내수부진을 겪는 것은 수출주도형 경제이면서도, 수출이 내수로 전파되지 않고 단절되는 '나홀로 수출'이 구조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신자유주의가 안겨준 또 하나의 경제적 후과다. 외환위기 이후에도 수출은 10%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면서 수출 2000억 달러와 3000억 달러를 경신해 나갔다. 하지만 내수를 대표하는 민간소비는 2003년 카드대란으로 추락한 뒤, 회복되지 않고 4% 전후 수준에서 정체되다가 최근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으로 다시금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내수경제의 중심에 서있는 자영업인은 2003년 카드대란으로 일차 구조조정 압박을 받은 후 2006년 이후 다시금 2차 구조조정상태에 돌입했고, 지난해 말부터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한층 급격한 구조조정이 전개되고 있다. [그림2]를 보면 자영업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도소매 음식업 종사자가 2003년 이후 한 차례, 그리고 2006년 이후 다시 한 번 급격한 감소를 보이고 있고 최근 그 추세가 빨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소매 음식업 종사는 2003년 이후 한차례, 그리고 2006년 이후 다시 한번 급격한 감소를 보이고 있다. (출처 : 통계청)
▲ [그림2] 도소매 음식업 종사는 2003년 이후 한차례, 그리고 2006년 이후 다시 한번 급격한 감소를 보이고 있다. (출처 :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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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올해는 2007년과 비교해 그 수가 이미 약 10만여 명 감소했다. 이는 최근의 원자재 가격 상승과 소비자 물가인상, 국내소비 위축의 가장 직접적 피해 당사자가 바로 자영업인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당연한 결과로 자영업인의 소득 역시 계속 추락하고 있는데, [그림3]에서 보이듯이 도시 근로자와 자영업인의 소득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한국 경제의 역사적 변동 과정에서 과거 농민의 부담을 떠안으면서 극도의 과잉상태로 늘어난 자영업인은 이제 스태그플레이션을 맞아 생존의 한계에 직면했다. 다시 말하면 신자유주의 양극화의 희생양으로 떨어질지, 아니면 사회경제구조 변화에 참여해 새로운 경제주체로 거듭날지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도시 근로자와 자영업인의 소득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 [그림3] 도시 근로자와 자영업인의 소득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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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또다른 희생양이 될 것인가?

전통적으로 자영업은 이른바 중산층을 대표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노동자나 농민보다 진보적이지 않다고 간주되었다. 더욱이 하나의 집단으로 뭉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갖는다고 치부되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자영업의 사회경제적 조건의 변화 과정만을 놓고 본다면 자영업인은 중산층을 대표하지도 않으며, 정규직 노동자들 보다 오히려 처지가 못한 형편이다. 적어도 사회경제적 처지만 놓고 보면 보수화될 수 있는 어떤 근거도 발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대선과 총선시기 까지도 보수적 성향을 보인 것은, 하나의 집단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시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자영업인들이 집단화를 통한 자기 목소리를 낸 역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70~80년대 대규모 이농과 산업화로 인해 도시지역에 거대한 도시빈민촌이 형성되던 무렵 도시빈민들의 치열한 철거반대운동이 있었다. 80년대 후반을 넘어가면서 도시 지역 전역에 분포된 노점상들이 연대하여 노점상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운동도 있었으며,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비록 미약하고 단발적인 수준이지만 카드 수수료 인하운동이나 솥단지 시위 사건, 대형할인점 반대운동과 같은 새로운 시도도 이어졌다.

자영업인의 자주적 결사를 위한 안팎의 노력 필요

우리 사회 구성원 중 600만이라는 큰 규모를 가진 자영업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영업인 스스로가 뭉쳐야 한다. 

자영업인의 자주적 결사가 없다면 정부 당국이 적극적인 자영업 정책을 펴야할 외부적 압력요인이 생기지 않는다. 특정 부류나 계층을 위한 모든 정책은 정부당국의 시혜에 의해 입안되거나 실행되지 않는다. 노동자나 농민을 위한 정책을 포함한 모든 정책은 일종의 사회적 역학관계의 산물이다. 정책 수혜 대상자 자신의 요구와 압력이 존재하는 만큼 정책은 개발되고 시행된다는 뜻이다. 자영업인의 결사가 자영업 정책을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자영업 내부의 다양한 요구를 조정하고, 이를 근거로 자신들의 요구를 사회적 공론화시키는 것도 자영업인 자신들만이 할 수 있다. 자영업인은 노동자나 농민에 비해 내부의 차이와 다양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아직 이렇다 할 전형적인 자영업인의 자주적 결사 사례가 없는 실정에서 사회 각계층의 도움도 필요하다. 특히 한국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지향하는 수많은 시민운동이나 지역운동, 사회운동은 자영업인을 사회 변화 주체의 하나로 분명히 인식하고, 적극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 www.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기사를 쓴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연구센터장입니다.



태그:#자영업, #주체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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