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가나아트센터 입구 벽에 써 붙인 빅 뮤니츠전 홍보용 글씨. 아래는 작가의 '자화상(2003)'
 가나아트센터 입구 벽에 써 붙인 빅 뮤니츠전 홍보용 글씨. 아래는 작가의 '자화상(2003)'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빅 뮤니츠(Vik Muniz, 1961~)사진전이 8월 31일까지 열린다. 그는 브라질 상파울로 출신으로 뉴욕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번 전에는 최근작을 중심으로 30여 점을 선보인다. 요즘 사진전의 홍수 속에서도 좀 유별나다.

가나아트센터는 그동안 포토페스티벌을 열어왔고 이번이 8번째다. 그동안 국내외 유명 사진작가 및 작품을 소개했다. 이번에 뮤니츠는 전에 이 미술관에서 한 번 소개한 적이 있는 작가로 올해는 그의 작품세계를 집중조명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하찮게 버려진 것도 가장 쓸모 있게 쓰는 작가

뮤니츠전 포스터. 카라바조를 따라 그린 '승리자 큐피드'(Cupid, after Caravaggio from Rebus) 228×183cm 2005. 수수께끼연작 중 하나로 승리감에 도취한 큐피드가 보인다. 아래가 원작
 뮤니츠전 포스터. 카라바조를 따라 그린 '승리자 큐피드'(Cupid, after Caravaggio from Rebus) 228×183cm 2005. 수수께끼연작 중 하나로 승리감에 도취한 큐피드가 보인다. 아래가 원작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작가는 케첩, 털실, 설탕, 초콜릿, 잼, 잉크, 철사, 인공구름, 다이아몬드, 장난감 등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잡동사니를 조합을 하여 작품을 만든 후 그것을 사진으로 찍고 이를 없애는 방식이다. 무한을 동경하나 유한을 인정하는 '만다라' 사진작가인 셈이다.

이런 기상천외한 실험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것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많이 받았다. 작가의 예리한 눈길에는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란 하나도 없는 모양이다. 주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에서 공상적 환영(幻影)을 불러오는 이 작가는 그야말로 사진으로 제례를 행하는 샤먼이라고 해도 좋은 것이다.

그는 이렇게 아무 쓸데없는 것으로 가장 쓸 만한 사진을 만드는 요술로 뉴욕에서 인기가 높다.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 휘트니미술관 등에서 이미 사진전이 열렸다. 그뿐 아니라 몬트리올, 상파울로 등 북남미와 런던 테이트갤러리, 파리 오르세미술관 등 유럽에서도 많이 소개되었다. 현재 세계유수의 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에서는 아직 좀 낯선 작가다.

초콜릿 소스로 작품 만들어 찍기(Pictures of chocolate, 1997)

살바도르 달리를 따라 그린 '황홀함의 경지'(Le Phenomene de l'Extase, after Salvador Dali from Pictures of Chocolate) 6장사진 중 하나. 123×178cm 2005. 가운데 사진은 달리의 원작
 살바도르 달리를 따라 그린 '황홀함의 경지'(Le Phenomene de l'Extase, after Salvador Dali from Pictures of Chocolate) 6장사진 중 하나. 123×178cm 2005. 가운데 사진은 달리의 원작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뮤니츠는 1997년 전후로 항공사진(Pictures of Air), 흙 사진(Pictures of Soil), 그리고 초콜릿(Pictures of Chocolate) 사진을 선보였다. 위 작품은 초현실주의자 달리의 '황홀함(엑스터시)의 경지'를 원초적 욕망을 품고 사람들이 염원하는 열락의 세계를 초콜릿 소스로 만들어 사진에 담은 것이다.

제목에서 보듯 유희적, 관능적, 감각적 요소가 강하게 풍긴다. 작가는 이런 부서지기 쉬운 엽기적인 이미지 작업에서 짜릿한 엑스터시를 맛보고 싶었나 보다. 인간의 식욕, 성욕, 애욕 그리고 미적 쾌락까지 잡동사니가 다 들어있는 것 같다.

친근함과 함께 불편함을 주는 이런 이미지는 사진이 보여주는 현실과 예술에서 말하는 재현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 이렇게 기발하고 창의력 넘치는 발상으로 새로운 조형의 가능성을 열어 줬다는 면에서 관객은 즐겁다.

잡지 활용한 뜯어붙이기 기법(Pictures of Magazine, 2003)

카밀라(Camila from Pictures of Magazines) 크로모제닉 프린트(Chromogenic print) 254×183cm 2003
 카밀라(Camila from Pictures of Magazines) 크로모제닉 프린트(Chromogenic print) 254×183cm 2003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2003년부터 작가는 단자(모나드) 무늬사진과 함께 잡지사진(Pictures of Magazine)을 활용한 작업을 한다. 맨 위에 '자화상'도 그런 기법이다. 파피에 콜레(종이 뜯어 붙이기)라고 할까 아니면 콜라주라고 할까, 하여간 본사진보다 더 생동감이 넘치는 것이 사실이다. 작업의 순서가 거꾸로 된 것 같으나 그래서 더 독창적이고 생생하다.

그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사진을 찍는 것일까? 그의 말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만약 모든 사물이 영원히 존재한다면, 사진이 왜 필요하겠는가? 그냥 가서 보면 될 텐데" 그가 생각하는 사진작업의 매력을 바로 사물의 존재를 보증하는 데 있다.

고전명화와 잡동사니의 기막힌 합성(Pictures of Junk, 2005)

고갱의 그림을 따라 그린 '강아지 세 마리가 있는 정물' 2004(왼쪽). 귀도 레니의 그림을 따라 그린 '아탈란타와 히포메네스'(Atalanta and Hippomenes, after Guido Reni from Pictures of Junk) 236×180cm(2개) Chromogenic print 2006. 중앙 아래는 귀도 레니의 원작
 고갱의 그림을 따라 그린 '강아지 세 마리가 있는 정물' 2004(왼쪽). 귀도 레니의 그림을 따라 그린 '아탈란타와 히포메네스'(Atalanta and Hippomenes, after Guido Reni from Pictures of Junk) 236×180cm(2개) Chromogenic print 2006. 중앙 아래는 귀도 레니의 원작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여기 작품들은 사진이라기보다는 그림 같다. 왼쪽에 '강아지 세 마리가 있는 정물'은 17세기 네덜란드가 세계해상권을 재패하면서 경제적 부를 얻고 이로 인해 풍성한 먹을거리 정물을 많이 그렸는데 그런 주제를 현대적 관점에서 각색한 작품이라고 해도 좋은 것이다.

그리고 오른쪽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탈란타와 그의 남편 히포메네스 이야기.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은 여자사냥꾼 아탈란타는 어느 남자보다도 달리기 등 무술에 능했다. 그녀는 자신을 이기는 남자를 남편으로 삼겠지만 실패하면 죽을 거라고 말한다. 결국 많은 남자들이 도전했다가 목숨만 잃는다.

그러나 히포메네스는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황금사자 3개로 그녀를 유혹, 간만에 차이로 달리기에 승리하여 결혼에 골인한다. 이런 극적 이야기가 담긴 이 작품은 이탈리아 볼로냐출신 귀도 레니(Guido Reni 1575~1642)의 것으로 요즘 유행하는 '알파걸과 베타보이'의 모습을 400여년이라는 차이에도 거리감 없이 복원시켜 흥미롭다.

그는 위에서 보듯 길에 버려진 전자제품부속과 플라스틱쓰레기 등을 모아 고전작품과 함께 기막히게 합성하여 탁월한 색감과 독특한 질감을 살려내고 고대신화를 현대화하는 등 가히 놀라운 위력을 보여 포스트모던의 전위라 할 만하다.

거장들 작품, 안료로 채색하여 재현(Pictures of Pigment, 2006)

마티스를 따라 그린 '장식적 무늬가 있는 인물화 '(Decorative Figure on an Ornamental Background, after Matisse from Pictures of Pigment) 229×1183cm Chromogenic print 2006
 마티스를 따라 그린 '장식적 무늬가 있는 인물화 '(Decorative Figure on an Ornamental Background, after Matisse from Pictures of Pigment) 229×1183cm Chromogenic print 2006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위 작품은 야수파의 선구자 마티스의 장식화를 미세한 분말안료(Pigment)를 만든 것이다. 거장들의 고전명작이 투박한 질감과 절묘한 감각과 융합되어 뜻밖의 감흥을 일으킨다.

이런 경향은 2006년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이렇게 한 해가 다르게 새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원작의 격조를 살리면서도 작가가 처한 현실이나 시대정신과 맞춰 재구성하였다. 이렇게 힘든 작업을 거치는 사진은 5~6장 정도 밖에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회화작품에 못지않게 작품으로서의 그 희소성을 높인다.

고르디우스 매듭 푸듯 퍼즐로 작품실험(Gordian Puzzle, 2007)

조바니 파니니를 따라 그린 '고대 로마의 풍경이 그려진 갤러리'(Gallery of Views of Ancient Rome, after Giovanni P. Panini from Gordian Puzzle) 180×252cm Chromogenic print 2007. 왼쪽 아래는 파니니의 원화
 조바니 파니니를 따라 그린 '고대 로마의 풍경이 그려진 갤러리'(Gallery of Views of Ancient Rome, after Giovanni P. Panini from Gordian Puzzle) 180×252cm Chromogenic print 2007. 왼쪽 아래는 파니니의 원화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이제 끝으로 퍼즐로 만든 최근작을 보자. '고대 로마의 풍경이 그려진 갤러리(2007)', 유머러스하게 퍼즐을 활용하였다. 우선 그 재료가 친근하고 편해서 좋다. 이렇게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퍼즐그림이 이런 예술작품이 될지 누가 알았으랴.

하긴 사진이 예술로 인정받은 데는 거의 백 년 이상이 걸리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이제는 사진이냐 회화냐의 구분이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독창적이냐가 문제다.

알렉산더 대왕은 2천 년 전 "용감한 자만이 미인을 얻을 수 있다"고 했던가. 작가는 어떤 난관이나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미를 탐험하는 자로서의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런 고민은 마침내 미술관바닥에 쌓인 먼지까지도 가만두지 않게 했다. 이것도 뭉쳐 작품으로 만들고 사진으로 찍는다.

하여간 작가는 오늘도 자기만의 독창적 예술을 발굴하기 위해 고난도급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듯 그렇게 아무도 가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항해를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가나아트센터. 작가약력과 교통편은 홈페이지 참조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http://www.ganaart.com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97. 전화 02)720-1020 팩스 02)395-2780



태그:#빅 뮤니츠, #귀도 레니, #살바도로 달리, #고야, #앙리 마티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