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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지난 4월 29일 '친일인명사전 수록인물' 4776명의 명단을 공개하자 후손들과 관련단체들이 드세게 반발하고 나섰었다. 그들은 공은 따지지 않고 마지못해서 한 친일까지도 단죄했다고 흥분한 것이다. 그들 말대로 과연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지나치게 판단한 것일까? 그리고 항일과 친일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이를 알 수 있는 전시회가 양천구 목동 파리공원에서 8월 23일 열렸다. 민족문제연구소 서울남서지부(지부장 경영숙)가 양천평화마을축제 행사의 하나로 주최한 것이다.

 

하나의 화가(이젤)에 신채호와 최남선처럼 같은 분야의 항일애국자와 친일행위자를 위아래로 캐리커처를 그리고 항일행적 그리고 친일행위를 설명해놓았다. 그밖에 전시된 이들로는 언론인 안재홍과 방응모, 시인 이육사와 서정주, 교육자 차미리사와 김활란, 음악가 채동선과 홍난파, 화가 오지호와 김은호, 여류비행사 권기옥과 박경원이 바로 그들이다.

 

전시회에는 목동에 사는 선기훈(29)·문형순(29) 씨 부부가 아기(선수빈)를 안은 채 손을 꼭 잡고 유심히 지켜보았다. 선씨는 "이 전시회를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독도를 일본에 뺏기지 않도록 더욱 노력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아이가 커서 이해할 만한 나이가 되면 이 이야기를 꼭 해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육사와 서정주를 보고 있던 중학생 정진교(목일중 3학년)는 "교과서에서 이육사 선생님의 시를 읽었는데 이렇게 광복을 위해 애쓰시다 옥에서 돌아가셨다니 맘이 아프다. 이와 반대로 서정주는 일본편에 붙어서 친일을 했고, 해방 뒤에는 독재정권에도 빌붙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맘에 안 든다"라고 말한다. 당찬 중학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조금 있으니 칠순의 어르신들께서 논쟁이 붙었다. 효곡동에서 오신 78살의 임상수 할아버지는 "살려고 마지못해 한 친일도 있을 텐데 좀 지나친 평가를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6·25전쟁 때도 북한군과 국군이 오가는 통에 살아남으려고 이쪽저쪽에 빌붙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많았는데 같은 이치가 아닐까 모른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목동에서 오신 73살의 박방순(73) 할아버지는 "역사는 지금이라도 정리해야만 한다. 친일행위와 예술의 공은 다르다. 개인 재능이 있다 해서 어떤 일이든 해도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만일 그렇다면 누가 목숨 바쳐 애국할 수 있겠나? 이렇게라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라고 짚어주었다.

 

이 행사를 주최한 경영숙 지부장은 현재 양천구의회 의원이다. 그는 이렇게 소감을 말한다. "우리가 친일 행위를 정리하려는 것은 그들을 단죄하기보다는 오늘 하는 '양천평화마을축제'의 뜻처럼 이제 그런 사람이 다시 나오지 않고 모두가 평화로운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오늘 이 전시회를 남녀노소 많은 이들이 관심으로 지켜보는 것을 보니 행사를 주최한 사람으로서 참 뿌듯하다."

 

 

이날, 이 전시회와 같이 한 "양천평화마을축제"는 양천구 내 17개 여성단체가 모여 폭력이 없고 평등, 인권, 생태가 살아있으며,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양천을 양천구민과 함께 만들려고 연 것이라 한다. 양천평화마을축제준비위원회 주관, (사)서울강서양천여성의전화(회장 박근양) 주최, 서울 양천구청 후원 행사이다.

 

주최단체 대표인 (사)서울강서양천여성의전화 박근양 회장은 "이 축제는 올해 두 번째로 여는 양천 17개 여성단체가 함께 하는 잔치다. 이 행사의 의의는 시민단체를 잘 모르는 주민들이 시민단체 운동가들과 함께 천연비누를 만들어 보고, 가정폭력·성폭력 만화도 보며, 단체 줄넘기도 하고, 항일·친일인물도 알아보는 행사에 참여함으로서 시민단체를 알게 되는 것은 물론 주민이 모두 하나 되는 데 있다.

 

특히 이 행사에 자원봉사로 참여한 학생들은 "그저 시간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자원·인권 교육을 받은 뒤 참여하게 되어 참된 자원봉사가 무엇인지 깨닫고 큰 보람을 안게 될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라고 말했다.

 

 

 

 

행사장에 나왔던 추재엽 양천구청장에게도 행사와 관련하여 잠시 대담을 했다. 추 구청장은 "우리 구에는 16억 원의 여성발전기금이 있다. 이를 토대로 여성단체의 행사에 도움을 주고 있는데 역시 양천평화마을축제에도 이 기금이 지원되었다. 이 행사는 17개 여성단체가 공동주최하여 주민들에게 좋은 체험의 기회를 주는 일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이 행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라고 다짐했다.

 

평화 그것은 인류에게 정말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평화는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에게 거저 돌아오지는 않는다. 이렇게 양천구 여성단체들처럼 열심히 노력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친일 행위를 청산하는 일은 또 다른 평화 정착의 길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친일, #민족문제연구소, #양천평화마을축제, #경영숙, #박근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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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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