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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폭의 그림같은 바느질 드리개
 한폭의 그림같은 바느질 드리개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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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인사동에 갔다. 인사동 인사아트플라자 갤러리에서 20일부터 전시중인 '규방칠우'에 동생이 작품을 출품했기 때문이다. 동생은 어떤 작품들을 출품했을까? 전시회장을 찾아가는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자꾸 조급해지고 있었다.

초등학생 남매를 둔 동생은 5년 남짓 살림하고 아이들 키우는 틈틈이 바느질을 해오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늘 보고 자란 친정어머니의 바느질 솜씨를 잇고 있는 동생이다.

동생이 이처럼 전시회에 여러 번 참여할 만큼 바느질 실력을 쌓기까지 힘든 일이 참 많았다. 집에서 독학만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성신여대 사회교육원이나 인사동 공방 등으로 배우러 다녔는데 초등학교 저학년과 유치원생인 아이를 둔 엄마인지라 쉽지 않았다.

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살면서도 이런 동생을 대신하여 조카들 밥 한 끼 챙겨주지 못하는 언니였다. 동생이 바느질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 나 역시 가게로 집으로 정신없이 달리기 일쑤였으며 화재와 가게 정리라는 악재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동생이 출품한 모시 조각보와 골무
 동생이 출품한 모시 조각보와 골무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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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만든 골무들
 동생이 만든 골무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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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어려서 무엇을 배우고 싶어도 힘들지만 그래도 배워두면 아이들 다 커서 아이들이 엄마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의 그 허전함 같은 것은 없을 거야. 그냥 몇 년 눈 뚝 감고 있는 틈틈 기회 닿는 대로 최대한 배워봐. 그러다보면 아이들도 금방 고학년 되고 중학생 되고, 그때 가서 무얼 배우겠다는 것보다 지금 힘들고 미미하더라도 배우기 시작하면 훨씬 낫지 않겠어?"

내가 동생에게 기껏 해줄 수 있는 말이란 이 정도. 틈틈이 전화하여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배우는 재미는 어느 정도인지’ 끊임없이 궁금해 하며 독려하고 지켜보는 정도?

아이들 문제부터 “세계는 글로벌화 되는데 그리 고리타분한 걸 배우냐?”며 시답잖게 여기기도 했던 일부 주변 사람들의 말에도 아랑곳없이 우리 것을 배우는데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는 동생. 작품을 출품한 어엿한 전시작가로 전시회장에서 만나는 동생은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동생과 많이 다르다.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는 아줌마에 불과하여 언니로써, 같은 여자로써 때로는 안쓰럽기조차 하던 감정은 온데간데 없다. 아름답고 당당해보이고 대견스럽다고 할까?

이제까지 알고 있던 동생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여인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면서 어쩔 수 없이 따라붙는 감정인 거리감도 있다. 그래도 수많은 아마추어 작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을 안내하고 작품설명을 하는 모습의 동생이 훨씬 좋다.

동생은 전시회를 앞둔 며칠 전에 시어른 상을 치렀다. 초여름부터 병중인 시어른을 뵈러 주말마다 전라도로 오가다보니 많은 작품을 출품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동생 집에 갈 때마다 눈에 띄던 바느질감들이 전시회장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다.

봄부터 여름 내내 동생에게 겹쳤던 여러 일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지난 전시회보다 작품수가 적음이 끝내 아쉽기만 하다. 어쨌건 내게는 참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하는 전시회이다. 그래서 눈길이 자꾸 가는 동생의 모시 조각보와 골무들이었다.

송편이야? 비누야?…골무꽃이 활짝 피었네!

ⓒ 김현자

이 전시회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하나 만드는데 꼬박 2년 걸렸다"는 이혜련씨의 유물보자기다. 사방 3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이 작품은 얇디얇은 천은 이어붙인 정교하고 섬세한 작품, 바느질 하는 사람들조차 감탄을 할 정도로 규모나 바느질 기법이 단연 앞선다고 한다. 여러 분야 규방공예 강의를 나가기도 하는 이혜련씨는 이 전시회의 중심 주최자.

이혜련: “바느질에 빠져 든 동기요? 그냥 우리 것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내 것 좋아하는데 설명이 따로 필요한가요? 바느질 하고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죠. ‘규방칠우’란 전시회 이름은 <규중칠우쟁론기>란 고대 문학 작품에서 땄습니다. 바느질하는 사람들끼리 뭉친 카페 이름이기도 하고요. 한때는 아녀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천대받았던 우리 어머니들의 바느질, 우리 바느질 속에 깃든 우리 어머니들의 얼과 정신을 이어받자는 취지로 만든 카페와 전시회랍니다.”

바느질하면 흔히 생각나는 것은 한복이나 버선, 복주머니 등과 같은 소품, 자수나 조각을 이어붙인 조각보나 덮개, 골무 같은 것들을 떠올리기 쉽다. 요즘에는 좀 더 많은 생활용품에 우리의 전통 바느질이 쓰이고 있다. 실용으로 이어지는 것들도 많다.

하나쯤 갖고 싶은, 색색으로 천연염색한 삼베를 이어 붙여 만든 가방, 송편이나 다식처럼 만든 천연 비누, 우리의 식탁을 즐겁게 해줄 꽃잎접시, 선물로 좋을 브로치나 찻잔 받침 등 실용성이 돋보이는 작품들도 많았다.

필자의 요구에 따라 포즈를 취해 준 이혜련씨와 정호준씨. 이혜련씨 뒤 작품(사각)은 그녀가 2년간 공들였다는 유물보자기로 직접 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 정호준씨는 고등학교 교사로 도자기 제자들과 도자기 만들기, 다도, 천연 염색 등을 하면서 인성 교육을 한다고.
 필자의 요구에 따라 포즈를 취해 준 이혜련씨와 정호준씨. 이혜련씨 뒤 작품(사각)은 그녀가 2년간 공들였다는 유물보자기로 직접 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 정호준씨는 고등학교 교사로 도자기 제자들과 도자기 만들기, 다도, 천연 염색 등을 하면서 인성 교육을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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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준씨의 작품 일부인 꽃잎접시와 사발
 정호준씨의 작품 일부인 꽃잎접시와 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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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눈에 띄는 것은 서산마애산존불상(국보 제84호) 5분 거리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이라는 정호준씨의 꽃잎접시. 이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으면 입 안 가득 꽃향기가 스밀 것만 같다.

천연염색을 하는 그는 이번에는 천연연색 작품은 출품하지 않고 여러 개의 접시가 들꽃 한 송이를 연상케 하는 꽃잎접시와 여러 점의 분청자 사발들을 출품했단다. 이중 꽃잎접시는 조금씩 담을 수 있어 상차림으로 직접 쓰이거나 나눔 접시로 쓰인다고.

정호준: “청소년들은 사춘기를 지나는 동안 세상이나 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고 입시나 성적 스트레스가 많아요. 아이들과 함께 도자기를 만들고 천연 염색을 하면서 아이들 인성 교육도 하고 스트레스도 풀어주려고 신경을 쓰죠. 아이들과 함께 만든 작품들도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이나 좋아하는 것으로 자주 표현되는데 이런 것들을 만날 기회가 적어서 그렇지 아이들이 참 좋아해요. 도자기 만들기 중 다도 시간도 있는데, 아이들이 미세한 차 맛의 차이를 구분해 낼만큼 아이들의 능력도 뛰어나고 관심도 많아요. 청소년  인성 교육에 아주 좋답니다”

정현자씨의 골무들
 정현자씨의 골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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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이나 떡, 다식 모양의 천연재료비누들
 송편이나 떡, 다식 모양의 천연재료비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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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비누 만들기나 모시 부채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천연 비누나 바느질 소품, 천연 염색한 옷 등 전시 작품 일부는 판매도 한다. 전통공예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한복과 자수, 매듭 등 바느질은 옛 우리 여인들의 필수 덕목이자 우리의 얼과 생활이 농축된 문화였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들이 입고 있는 모든 옷과 상당수의 생활용품들은 바느질을 거친다. 그럼에도 한때 바느질은 여인들이나 하는 것으로 천대 시 받기도 했다. 이런 우리의 전통 바느질과 전통 공예를 세계인들이 점점 주목하는 최근의 추세다.

‘규방칠우’전에서 만난 사람들은 결코 유명하지 않은 아마추어들로 문화 뒤편에서, 우리의 얼과 정신이 농축된 우리의 전통을 잇는 사람들이다.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이틀 남은 전시회에 들러 아마추어들의 열정적인 ‘우리 것 사랑’을 직접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태그:#규방공예, #규방칠우, #바느질, #동생, #인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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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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