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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및 정리 : 김종철· 선대식 기자
사진 : 남소연 기자
 

"(오늘 발표된 8·21 부동산 정책은) 역대 정권이 경기 하강 때마다 부동산 개발정책을 경기부양 1순위로 채택한 것과 정확히 일치하죠."

 

그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민주노총 대변인과 지난 17대 국회에서 심상정 의원 보좌관을 지낸 노동운동가 손낙구(47)씨. 21일 내놓은 정부의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두고는, "잘못된 정책이 빚어낸 잘못된 결과를 잘못된 정책으로 다시 수습하자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손씨는 최근 '부동산'이라는 키워드로 한국사회를 분석한 <부동산 계급사회>(후마니타스 펴냄)라는 책을 내놓았다. 그는 우리 사회를 "부동산에 울고 웃고, 직업과 노동 소득보다는 부동산의 자산소득이 불평등의 잣대가 되는 사회"라면서 "한국은 부동산 계급사회"라고 정의했다.

 

그는 "부동산 문제는 투기의 문제다, (부동산이) 너무 빨리, 너무 많이 올라 빈부격차의 주범이 되고 있다"면서 "흔히 부동산 투기를 망국병이라고 한다, 그동안 10년에 한 번씩 발작병처럼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4년여에 걸쳐 200여권에 달하는 '부동산' 관련 서적과 논문, 정부 자료와 통계 등을 뒤집고 파헤쳐 온 그는 어느새 부동산 전문가가 돼 있었다. 새도시 2곳 추가 지정과 재건축 규제 완화 등의 내용이 담긴 이명박 정부의 첫번째 부동산 정책이 발표되던 이날 오전, 서울 서교동 후마니타스 출판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1시간 30분에 걸친 인터뷰 내내 손씨는 시종일관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잘못된 정책이 빚어낸 결과를 잘못된 정책으로 다시 수습"

 

우선 자연스레 8·21 부동산 대책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특히 지난 20일 "부동산 값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의 발언에 대해선, "(부동산 값을)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의지다"면서 "10년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이유는 이러한 정부의 정책 탓도 크다"고 지적했다.

 

- 21일 아침에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다. 새도시 추가 건설과 재건축 규제 완화 등이 포함됐는데.

"박정희 시절부터 노무현 정권까지 돌아보면 부동산 정책은 비슷하다. 투기가 아주 심해서 부동산 먹이사슬을 붕괴시킬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부동산 규제를 강하게 편다. 그리고 경기하강 시에는 부동산 정책을 경기 부양 1순위로 채택한다. 21일 발표된 정책 역시 이와 정확히 일치한다. 투기가 극심하게 진행되다가 미국 발 경기하강, 유가 폭등으로 경기가 침체되니 부동산 정책을 들고 나온 것이다."

 

- 정부는 최근 미분양 아파트 문제로 인해 건설업체의 부도가 크게 늘어서, 여러 대책을 세운것 같다.

"잘못된 정책이 빚어낸 잘못된 결과를 잘못된 정책으로 수습하자는 것이다. 미분양 아파트가 12~13만채 된다고 하는데, 모두 지방이다. 지방은 주택보급률이 116%로 집이 남아돌고 있다. 게다가 건설업체가 집값을 터무니없게 높게 부르니, 미분양이 속출하는 것이다.

 

일반 기업 같았으면, 가격 낮춰서라도 땡처리라도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40년 동안 (정부가) 다 해결해줬기 때문이다. 버티니까 정부가 (미분양) 아파트를 사준다. 건설업체의 경영실패를 국민 세금으로 해주겠다는 것이다."

 

손씨는 "그동안 경기 부양으로 부동산 대책을 내놓다보니 건설업이 비대해졌고, 건설 재벌은 정치권·언론·학계와 유착하고 불필요한 공사를 만들어내고, 경제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건설 재벌 출신 대통령의 대운하 공약은 필연적이었다"고 지적했다.

 

"10년 주기 부동산 폭등... 저절로 오른 것이 아니다"

 

이야기의 화제는 그의 책으로 옮겨갔다. 그가 제시한 부동산 계급사회의 구분은 어떻게 하게 됐을까. '이같은 분류가 국내에서 처음인가'라고 묻자, 손씨는 "과거 영국에서 빈부격차를 주택계급으로 본 사례가 있었다"면서 "학문적 엄밀한 분석 틀은 아니지만, 전국을 대상으로 주택소유 여부와 주거빈곤층 등을 조사해 계급을 나눈 것은 처음"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대한민국에 사는 이들을 주택의 보유 채수와 가격 등을 통해 아래와 같이 여섯 계급으로 나눴다.

 

1계급 : 2채 이상, 평균 5채씩 가진 105만 가구(전체 가구의 6.6%)

2계급 : 집을 1채 소유하고 그 집에서 현재 살고 있는 1가구 1주택자(48.5%)

3계급 : 집을 마련했으나 경제적인 이유로 남의 집 셋방살이를 전전하고 있는 사람들(4.2%)

4계급 : 전세나 보증금 있는 월세에 사는 가구 중 보증금이 5000만원 넘는 가구(6.2%)

5계급 : 사글세·보증금 없는 월세·보증금이 5000만원 이하 전월셋방에 사는 사람들(30.3%)

6계급 : 판잣집·비닐집·움막·지하방·옥탑방·동굴 등에 사는 주거 극빈층(4.3%)

 

손씨는 "우리의 경우 부동산 소유가 극심하게 편중돼 있으며, 부동산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빈부격차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특수하게 부동산 투기의 먹이사슬이 작동돼, 밑바닥 서민들은 노동의 먹이사슬과 함께 이중의 수탈을 겪으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 부동산 투기의 먹이 사슬이 어떻게 작동한다는 것인가.

"10년마다 가격이 폭등하는 것은 저절로 오르는 것이 아니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가격을 끌어올리는 집단이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장치와 시스템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 그 집단이 누구이고, 어떤 장치를 말하는가.

"투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막강한 돈을 댈 수 있는 기업들, 특히 재벌들이다. 기업과 재벌은 지난 4차례에 걸친 폭등기 때마다 투기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실제 이들은 연구개발에 투자한 돈보다 땅을 사는데 더 많은 돈을 썼다." 

 

다시 그의 말이다.

 

"이들 재벌들은 각종 개발정책을 만들어낸 정부의 부동산관료, 국회의원 등 정치권, 보수언론과 관변학자 등과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죠. 그동안 투기는 기업들 중심으로 막대한 투기자금이 만들어지면, 각종 투기 규제장치가 풀리고, 경기부양적인 개발 정책이 나오면서 부동산 폭등을 만들어 온  겁니다."

 

"부동산 폭등으로 한국사회와 경제는 곪아간다"

 

물론 이같은 부동산 폭등으로 인한 한국사회의 폐해는 심각하다. 봉급쟁이나 서민들의 내집마련 꿈은 갈수록 멀어지게 되고, 삶은 더욱 피폐해지게 마련이다.

 

손씨는 "봉급쟁이가 먹고사는데 필요한 돈을 빼고, 저축해서 서울에서 아파트 1채를 사는데만 29년이 걸리고, 강남은 44년이나 걸린다"면서 "그만큼 내집 갖기는 힘들어지고, 국민의 4분의 1이 매년 이사를 다녀야 하는 고통을 감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에도 악영향이 있긴 마찬가지. 내수 경제의 핵심인 중산층이 집을 사는데 빌린 대출금을 갚느라 소비를 줄이게 되면, 내수 침체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는 "젊은 사람들은 비싼 집값 때문에 결혼도 늦추거나 출산을 미루는 경향도 나타난다"면서 "중장년층은 비싼 집에 돈이 묶이니 소비를 줄여 결국 내수 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손씨는 부동산 투기로 인해 국내 산업구조가 기형적으로 바뀌고, 노동자들의 파업 강도 역시 올라간다는 통계를 내놓기도 했다. 그의 말이다.

 

"부동산 투기로 인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건설업 비중이 지나치게 높게 나타나고 있거든요. 후진국형 산업구조인 것이죠. 부동산 투자에 신경 쓰느라 생산족에 투자를 소홀리하고, 은행도 투기자금을 대고, 투기이익을 나눠 갖는것에 매몰되는 현실이지... 또 역설적이지만 <삼성경제연구소> 자료를 분석해보면, 투기가 심할 때 노동자들의 파업 건수와 참여 인원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와 있어요."

 

그는 특히 부동산 격차로 인한 빈곤문제 해결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투기 피해로 광범위한 부동산 빈곤층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손씨는 극빈층인 6계급을 언급할 때는 답답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결국 담배를 꺼내 물고는 말을 이었다.

 

"투기 정책의 최대 최후의 피해자인 이 사람들이 적정 수준의 집만이라도 사회적으로 제공되거나  집값이 이렇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지만 않아도 21세기 세계 10대 경제대국에서 베이징 원인(猿人)으로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서 살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는 이를 "'천재지변'이 아닌 '인재지변'"이라고 규정했다.

 

"오래 걸리더라도 부동산 1계급의 투기목적 주택을 국유화해야"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한국 부동산 문제의 대안은 뭘까? 그는 부동산 6계급에 대한 맞춤형 주택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한다.

 

"1계급의 경우 집을 2채 이상 여러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3주택부터는 투기 목적이나 다름없죠. 이들 주택에 대해선 보유세 등 각종세금을 통해 불로소득을 환수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론 이들 투기 목적 주택을 국유화해서, 1계급을 해체시켜야 합니다. 신도시 하나 지으면 고작 5만채 집이 나오지만, 1계급이 가진 주택 중 3주택부터 팔게 하면 전체 주택의 1/5인, 260만채가 나오게 됩니다. 굳이 신도시를 안 지어도 되는거죠."

 

그는 이어 "1가구 1주택자인 2계급은 이들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해야하지만, 이들 중에서도 집 1채에 수십억원이 넘는 것에 대해선 종합부동산세 등으로 불로소득을 환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씨는 또 "나머지 3~5계급은 보호대상이고, 6계급의 처참한 삶이야말로 사회가 해결해야 한다, 이분들이 지하방에서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주택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택지 국유화를 말했는데, 과연 가능할까.

"이스라엘은 86%의 토지를 국유화했다. 또 싱가포르는 어떤가? 네덜란드는 주택의 36%를 국가가 가지고 있다. 부동산 소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재정이 많이 들면 100년 동안 하자. 투기 체제로 많은 국민이 고통 받고 자본주의가 병들어간다."

 

- 그동안 40~50년간 투기가 반복된 것은 깨지지 않는 카르텔이 형성돼 있기 때문 아닌가.

"투기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이중적이다. 부도덕하면서도 '나한테 기회가 온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부동산 불로소득의 길을 차단시키면 된다."

 

그는 마지막으로 "현재 사회적 분위기나 그 세력의 강고함을 보면 쉽지 않지만, 서민들의 고통을 부여잡고 함께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1시간 30분에 걸친 그와의 인터뷰가 끝나자, 텔레비전 등에선 이날 공개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빠르게 전하고 있었다. "건설재벌과 부동산관료 등이 투기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다"는 손씨의 지적을 다시 확인하듯, "서민의 내집 마련보다는 건설업계의 이해에 맞춘 경기 부양 대책"이 나오고 있었다.

 

동굴과 움막속에 사는 부동산 극빈층, 그들은 누구

<부동산 계급사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동굴·지하실·비닐방·쪽방 등에 사는 부동산 극빈층이 무려 160만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부동산 극빈층을 처음으로 조사한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거주층별 가구 조사'와 '판잣집·비닐집·움막' 및 '기타' 항목 구분 조사 결과, 부동산 극빈층 규모는 총 68만3000가구 161만 7000명이었다. 이 중에는 가난한 탓에 동굴에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지난 2006년 국정감사 때 통계청이 처음으로 '판잣집·움막·동굴에 11만명이 산다'고 밝혔던것.

 

손낙구씨는 책에서 "인간이 땅 속에 주거 공간을 만들어 산 첫 흔적은 기원전 50만년 전 원시시대 베이징원인들의 동굴 주거지까지 올라간다"며 "21세기 경제 대국, 집이 100만채 이상 남아도는 대한민국에서 동굴에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건 믿기 어려운 일"이라고 밝혔다.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부동산 극빈층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건 반지하를 포함해 지하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 수는 142만여명. 이 중 자기 집에 사는 비율은 14.4%에 불과하고, 전세는 37.9%, 월세는 45.7%였다.

 

손씨는 "지하방의 법적 뿌리는 1970년 북한의 남침에 대비한 대피소 명목으로 주택의 지하층 설치 의무 규정을 만들면서 시작됐다"며 "지하실에 사는 것 자체가 인간의 품위를 유지할 수 없고, 습기·곰팡이·햇볕이 들지 않는 것 때문에 어린아이와 노약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옥탑방에 사는 사람은 8만7000여명, 판잣집·비닐집·움막에 사는 사람은 5만7000여명이나 된다. 또한 5만3000여명은 쪽방을 포함해, 업소의 잠만 자는 방·건설 공사장의 임시막사 등에 산다.

 

부동산 극빈층의 출현은 1980년 대 후반 3차 부동산 투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게 손씨의 주장이다.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된 대규모 불량 주택 재개발 사업으로 빈곤층이 살던 산동네·달동네·판자촌이 헐리고, 부동산 투기가 집값과 전월세 임대료를 천정부지로 끌어올렸던 때다.

 

손씨는 "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1986년~1994년 8년 새 집값은 54% 상승했으나 전세값은 그 2배가 넘는 118% 상승률을 보였다"며 "이러한 전세값 상승은 달동네·산동네·판자촌에서 셋방을 살다고 그조차 헐려, 갈 곳 없던 빈곤층은 무허가 지하셋방·비닐하우스촌·옥탑방으로 흘러갔다"고 전했다.

 

그는 "부동산 투기가 수십 년째 기승을 부리며 불패 신화가 되고 있는 사이, 다른 한쪽에서는 160만명이 넘는 부동산 극빈층의 절망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듯하다"고 강조했다.


태그:#손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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