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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개구쟁이 시절을 떠올리게 한 풀 올무
 옛날 개구쟁이 시절을 떠올리게 한 풀 올무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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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 무색하게 비가 자주 내리는 요즘입니다. 자주 내리는 비 때문인지 더위가 한풀 꺾여 바람결이 서늘합니다. 토요일 오후 석양이 가까워지는 늦은 시간 아내와 같이 뒷동산인 서울 강북구 오동공원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날씨가 시원해서인지 공원길을 걷는 산책객들이 평소보다 많아 보입니다. 대부분 40~50대 여성들입니다. 나무 그늘 밑의 남자 노인들은 여전히 막걸리 내기 윷놀이가 한창입니다. 공원 정자에는 할머니 10여명이 모여 앉아 소녀처럼 까르르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계모임이라도 마치고 모여 앉은 듯 비슷한 또래의 할머니들로 보입니다.

서늘한 날씨가 우리 내외의 발길을 조금 먼 곳으로 인도합니다. 오랜만에 공원 끝까지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수유리 쪽으로 가는 공원 길가 언덕에는 꽃밭이 가꾸어져 있었습니다. 꽃밭 입구에 ‘오동공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여보! 이쪽으로 와 봐요? 요즘 보기 어려운 귀한 목화꽃이 피었네요.”

목화꽃이라? 요즘 보기 힘든 정말 귀한 꽃입니다. 옛날에는 무명 옷감과 솜이불용으로 많이 재배했던 작물이었지만 요즘은 어쩌다 화단에 관상용으로 한두 포기씩 심어 놓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입니다. 부용화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가 얼른 그쪽으로 갔습니다.

그리운 할머니와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 목화꽃

이곳 화단에도 몇 포기의 목화가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꽃은 부근의 부용화에 비해 매우 작고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목화꽃은 그 어느 꽃보다 정다운 꽃입니다.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의 사랑과 애환이 깃든 꽃이기 때문입니다.

목화꽃이 열매를 맺은 것을 ‘다래’라고 불렀습니다. 영글기 전의 다래를 따서 입안에 넣고 씹으며 달착지근한 맛이 아이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옛날 어렸을 적에는 학교를 오가는 길에 슬쩍 목화밭에 들어 다래를 따먹곤 했었지요. 그 다래가 작은 몇 포기의 목화밭에도 달랑 한 개가 열려 있더군요. 따먹었냐고요?  아니죠. 제가 어린아입니까? 어린시절의 추억에 젖은 60대인걸요 하하하….

그리운 할머니와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 목화꽃
 그리운 할머니와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 목화꽃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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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물어 먹으면 달착지근한 목화열매 다래
 깨물어 먹으면 달착지근한 목화열매 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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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가 영글어 터지면 하얀 목화솜이 삐져나옵니다. 이 목화솜들을 따서 씨를 빼내고 물레에 걸어 실을 잣고 베틀에서 짜낸 것이 무영옷감입니다. 그런데 그 기나긴 과정의 힘든 일은 모두 우리 할머니들과 어머니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렇게 만든 솜과 무명옷감으로 가족들이 추운 겨울 따뜻하게 잠들 수 있는 이불을 만들고 옷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그리 멀지 않은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사립문 들어서면
찰카닥 찰카닥 베 짜는 소리

하얀 무명 저고리에
검정 통치마

흰 머리카락
곱게 빗어 쪽 짓고

마음씨도
가을 하늘처럼 고왔던

베틀 위에 앉은 모습
우리 할머니.

-이승철 시 ‘목화꽃’ 모두

그래서 목화꽃을 보면 가물가물 잊고 살았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곤 합니다. 참 그리운 모습이지요.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잊었던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목화꽃 말입니다.

서늘해진 날씨가 사람들의 활동을 왕성하게 부추겼는지 길가에 있는 배드민턴장에서는 몇 팀의 경기가 열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 종목의 금메달이 기대되는 올림픽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정자에 모여 앉은 할머니들의 망중한
 정자에 모여 앉은 할머니들의 망중한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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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나온 노부부와 90세 할아버지
 산책나온 노부부와 90세 할아버지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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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도 산책객들은 많았습니다. 조금 서늘해진 날씨였지만 어느새 등에 땀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조금 앞쪽에 7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노부부가 함께 걷고 있었습니다.

“저기 할아버지 한 분 앉아 있는 옆에 운동기구가 보이네, 저 곳에서 몸 좀 풀고 갈까?”

길가에 군데군데 세워 놓은 운동기구들은 산책객들에게는 아주 좋은 몸 풀기 장소입니다. 아내가 그곳으로 다가갔습니다.

어머 깜짝이야! 풀올무에 걸려 넘어질 뻔한 아내

“어머머! 깜짝이야!”

그런데 아내가 무엇에 걸린 듯 휘청 넘어지는 것을 내가 잽싸게 붙잡아 무사했습니다. 그런데 발밑을 보니 아내 발에 걸려 넘어질 뻔 했던 것이 풀 올무였습니다. 풀 올무, 이건 또 얼마 만에 보는 것인지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어렸을 적 악동시절에 길에 나있는 질긴 풀을 양쪽에서 끌어 모아 매듭을 지어 놓으면 누군가가 지나다가 걸려 넘어지게 만든 풀 올가미입니다.

“허허허. 용케 안 넘어졌네 그려.”

우리들이 풀 올무를 바라보며 신기해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앉아서 쉬고 있던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나이 예측이 어려운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이 올무를 만들어 놓으셨습니까?”
“아녀, 아녀, 조금 전에 어떤 노인이 손자랑 지나가다가 옛날 얘기 하면서 만들어 놓고 간 거야.”

노인이 손을 내저었습니다. 그러나 표정은 매우 재미있어 하십니다. 연세가 어떻게 되셨느냐고 물으니 올해 90세라고 합니다. 노인은 매우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옛날에 이런 올무 만들어 보신 적 있으시냐고 물으니 “그럼, 그럼, 많이 만들어 보았지, 마을 어른들 골탕도 많이 먹이고 허허허” 하고 웃으십니다. 거의 1세기를 사셨지만 옛날 개구쟁이 시절은 여전히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 올무를 만드는 풀은 참 이상하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 무성하게 자라는 풀입니다. 그래서 옛날 개구쟁이 들은 마을 앞동산 풀밭 가운데로 뚫린 오솔길에 이 풀을 양쪽에서 맞잡아 끌어내 묶어 놓고 멀찍이 숨어 희생양(?)을 기다렸지요.

그러다가 누군가 그 올무에 걸려 넘어지면 킬킬대며 좋아하곤 했었지요. 그러나 넘어져도 다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개 부드러운 흙길이었고 풀이 무성한 길이어서 흙길과 풀이 푹신한 매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때는 그렇게 풀 올무를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을 때 하필이면 아버지가 술 한 잔 하시고 거나한 걸음으로 오는 모습을 보고 기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뛰어나가 말릴 수는 없었지요, 이건 악동들끼리의 불문율이었으니까요.

“참. 옛날이야기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노인이 옛날을 회상하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노인은 철도 기관사 출신이었습니다. 일제 때부터 철도 기관사를 하며 넘나든 북녘 땅에 대한 아련한 추억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복슬복슬 강아지풀
 복슬복슬 강아지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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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향로봉 위로 피어오른 해맑은 노을
 북한산 향로봉 위로 피어오른 해맑은 노을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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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옛날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태양이 북한산 위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다시 아내와 함께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집 근처 언덕바지 정자에서 잠깐 쉬고 있을 때 드디어 태양이 향로봉 뒤로 살짝 숨어들었습니다.

잠시 뒤부터 서쪽 하늘에 서서히 고운 노을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흐렸던 하늘이 조금씩 맑아지며 점점이 떠있는 구름사이로 번져 나가는 노을빛이 해맑았습니다. 가을이 저 만큼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목화꽃, #풀 올무, #오동공원, #언덕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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