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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줘.요."

 

일수는 이 네 글자로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지난 7월 20일부터 2박3일 동안 강화도 오마이스쿨에서 열렸던 '더불어 함께 입학식'에서 나는 일수를 처음 만났다. 나는 그 행사의 진행자로 참여했는데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일수는 어느 순간 곁에 다가와 내 손을 꼭 잡으며 안아달라고 보채곤 했다.

 

그렇게 유달리 사람의 정을 고파하던 일수가 사는 곳은 경북 김천시 부항면. 올림픽의 열기와 눅눅한 더위가 뒤섞여 묘한 열기가 고조되어가고 있던 8월 12일. 나는 일수를 만나기 위해 김천시 부항면으로 향했다.

 

일수네 집이 가까워올수록 가슴이 두근거렸다. 과연 일수가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더불어 함께 입학식'에서 마지막으로 본 지 한 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쉽게 사람과 가까워지는 만큼 쉽게 잊는 것도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줄어들지 않았다.

 

두근두근, 일수는 나를 기억할까

 

마침내 마을 이장 도진엽(71)씨의 안내로 함께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일수는 집에 없었다. 집에는 일수의 아버지 김정한(38)씨와 어머니 노순남(31)씨만 있었다.

 

"일수 어디 나갔나요?"

"동생이랑 요 앞에서 놀고 있을 텐데. 못 보셨어요?"

"못 봤는데요. 한번 기다려보죠."

 

삼십분 정도가 지났을까. 집으로 올라오는 길 먼 발치에 아이 두 명이 보였다.

 

"일수니?"

 

집으로 올라오던 아이는 나의 외침을 듣고 이 쪽을 한번 보더니 한걸음 멈칫 물러선다.

 

"선생님이야, 일수야! 선생님 알지?"

"모르는데요? 누구신데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벌써 나를 잊었구나. '역시 아이들을 믿으면 안 돼.' 혼자 마음 속으로 배신감(?)을 토로하는 사이에 아이는 갸우뚱한 얼굴로 다시 되묻는다.

 

"선생님?"

"그래 나야! 그동안 잘 지냈지?"

 

안도감을 채 느끼기도 전에 저만치 있던 아이는 내 앞으로 달려와 어느새 다리를 안고 있다.

 

"안아주세요."

 

다행이다. 달라진 건 글자 한 자가 늘어난 것밖에 없다. 나와 일수는 그렇게 한 달여만에 다시 만났다.

 

일수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부항면 월곡리에 위치한 부항초등학교. 하지만 지금은 방학 중이기 때문에 일수는 학교에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같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다니는 동생 민수(6)와 마을 어귀 경로당 근처에서 매일 같이 어울려 논다고 한다.

 

"일수야, 방학하니까 좋아?"

"좋아요."

"방학하면 학교 형·동생들 못 보잖아. 그래도 좋아?"

"음…. 그건 좀 싫어요."

 

경로당에서 열린 즉석 동문회

 

마을 경로당 앞에서 그렇게 일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외지인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접한 마을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느냐는 질문에 취지를 설명했더니 마을 어른들은 하나씩 자신의 추억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주고받던 이야기의 주제는 어느새 부항초등학교의 역사와 학생 수로 옮겨갔다. 일수 아버지와 경로회장, 그리고 이장은 서로 부항초등학교의 과거 학생수가 몇명이었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알고보니 그 자리에 모인 마을 주민들은 모두 부항초등학교 출신이다. 부항초교 7회 졸업생이라는 마을 이장은 동기 모임에 나가기 싫다고 하소연한다. 초등학교 동기생들이 나이가 다 이장보다 어려서 '형님' 소리를 듣기 때문이란다.

 

올해로 71살인 도진엽 이장은 한 살이라도 더 나이가 들어보이는 것이 싫은 모양이다. 그때 당시에는 입학생의 나이가 명확히 정해지지 않아 같은 동기생이라도 나이가 천차만별 이었다고 한다.

 

역시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김일수 학생의 아버지 김정한씨 역시 초등학교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때는 줄 잡아도 500명은 됐을 것'이라며 지금 동기생 한 명 없는 아들의 처지를 안타까워 했다. 

 

"이제 (학생수가) 늘 일은 없지예. 줄어들 일만 남은 거 아닙니꺼."

 

김정한씨의 한 마디에 각자 시끌벅적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마을 주민들이 일순간 조용해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학생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마을인구가 줄어들고 결국 남아있는 사람이 없게 된다는 말이다.

 

다만 초등학생과 성인간의 나이 차이 때문에 한번에 마을이 사라지지 않는 유예 기간이 주어진 것 뿐이다. 아무도 말하진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있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순간 어른들의 얼굴에 잠시 어두운 빛이 스쳐 지나간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1935년 개교한 부항초교는 1969년에는 전교생이 645명에 달했고 1983년에도 475명으로 500명에 가까운 재학생 수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활기찬 학생들로 가득 찼던 부항초교는 90년대 이후 재학생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해 2002년에는 71명, 2008년 현재는 32명의 학생들만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

 

32명의 학생들 중에서도 가장 학생수가 적은 건 1학년이다. 1학년 학생이 일수 한 명밖에 없어서 4학년생들과 함께 복식수업을 하고 있다.

 

1학년과 4학년 복식학급의 담임 교사인 이일호(42) 선생님은 "학생수가 적다고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정규교육 외적인 측면에서 부족할 수밖에 없다"면서 "일수의 경우도 수줍음이 많고 말이 없는데 같이 어울릴 친구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한다"고 말했다.

 

사실 학교에 정말 가고 싶었어요!

 

 

방학 동안에 일수는 학교에 몇 번이나 놀러갔을까? 물어보니 "한 번도 안 갔다"는 대답이다. 비록 수업은 안 하지만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 좋을텐데 왜 한번도 가지 않은 걸까. 학교에 가고 싶어도 학기중에 운행되던 '스쿨버스'가 방학 중에는 없어서 쉽지 않은 까닭이다.

 

그래서 이장님의 차를 얻어타고 일수와 함께 오랜만에 학교를 방문하기로 했다. 그날은 이미 시간이 늦어 다음날 일수와 함께 가기로 했는데 형이 학교에 간다니까 동생인 민수는 옆에서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자꾸 보챈다. 결국 세 명이 다음날 오전에 함께 학교에 가기로 약속하고 혼자서 마을 경로당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꿈일까. 아니면 가위에 눌린 걸까.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눈을 떴을 때 문지방 뒤에서 조그마한 얼굴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는데 그건 다름 아닌 일수였다. 늦은 걸까? 아니다. 경로당에 걸려있는 시계는 6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일수야 너무 이른거 아니니? 아침 6시잖아."

"왜요?"

"지금 학교 가면 선생님도 없을 걸? 1시간만 있다가 다시 오렴."

"1시간…? 알았어요."

 

그렇게 일수를 돌려보내 놓고 조금만 더 자려고 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일수는 30분 후에 동생 민수와 함께 다시 나타났다. 1시간 후에 오라는 내 말은 전혀 개의치 않는 일수는 '왜 이렇게 다시 빨리 왔느냐'는 나의 물음에 어제 찍은 사진을 보여달라는 말로 답했다.

 

간신히 다시 설득해 일수 형제를 집으로 올려보냈지만 이번에는 20분도 지나지 않아 경로당 밖에서 두 형제의 장난기 섞인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시간은 전혀 개의치 않는 그들의 '즐거운 시위'에 난 그만 잠을 포기하고 조금 일찍 학교로 향하는 길을 나서기로 했다.

 

 

"와, 학교다! 우리 저기 가서 놀아요."

 

정글짐 하나에 철봉 몇 개, 평행봉과 시소, 그네 두 개. 여타 초등학교와 비교해서 많지 않은 운동시설이지만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놀던 아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운동장의 기구들이 놀이동산 롤러코스터라도 되는 듯 뭐부터 탈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일수·민수 형제는  하나씩 기구들을 타보면서 서로의 실력을 나에게 자랑하려고 야단이다. 아무도 없어 텅 빈 학교가 때 마침 쏟아진 아침 햇살과 일수형제의 즐거운 웃음소리로 다시 가득 찼다.

 

부항초교 개교 이래 최초의 '나홀로 입학생'인 일수는 동네에서 혼자 놀아도 전혀 심심하지 않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래도 가장 필요한 건 학교 생활을 같이 할 '친구'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사람을 그리워하는 일수의 표정과 말투에서 잘 드러난다. 언제 그런 일수의 외로움을 덜어줄 친구를 만들어 줄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누구도 대답을 해줄 수는 없지만 다행히 내년에는 부항초교 병설유치원에 다니는 동생 민수를 포함해 3명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다. 현재 8명인 6학년 졸업생이 나가고 3명의 신입생이 들어오면 전교생이 30명에서 25명으로 줄어들기는 하지만 형제가 모두 '나홀로 입학생'이 되는 처지는 면하는 셈이다.

 

하지만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부항면의 형편상 일수와 같은 '나홀로 입학생'이 다시 생겨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태그:#나홀로입학생에게친구를, #더불어입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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