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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에서 맞이한 아침

대합실에서 맞는 아침은 찌뿌듯했다. 몇 대 두드려 맞은 것 같았다. 사진 가방을 베고 잤으니 개운할 리 없었다. 두 개의 가방을 동시에 사수할 수 없어서, 철저하게 한 쪽만 보호했다. 옷가지가 들어있는 배낭은 잃어버려도 좋다고 생각기로 하고 침대가 돼버린 의자 밑에 넣었다. 그리고 귀중품을 모아서 사진 가방에 넣고, 그 가방을 베고 잠을 청했다. 누군가 사진 가방을 가져가려면 내 머리를 들어야 하니 웬만하면 잠에서 깰 것이다. 안심할 수 있는 자세였다. 오늘밤은 꼭 호스텔을 구해야겠다.

유료 보관소에 짐을 맡겼다. 무게대로 가격을 책정하기 때문에 무게를 달아 볼 수 있도록 저울이 있다. 무게가 심각하다. 달아 보니 짐을 다 맡기려면 꽤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저울 바늘이 '그 동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셨습니다'하고 무게를 판정해준다. 체력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짐을 지고 다녔음이 객관적인 수치로 나타난다. 여행 중에 짐이 많으면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여러가지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신경 써야 할 것도 늘어난다. 특히 이런 식으로는 경비가 추가될 수 있다. 짐을 좀 버려야겠다.

다 맡기지 못한 나머지 짐을 지고 나를 끌어당기는 두오모를 따라 떠난다. 나도 모르게 급해진다. 여유있게 여행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는 날은 제한적이고 다음 행선지인 베네치아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는 가급적이면 개막일에 보고 싶다. 불과 하루 전에 여유 있던 마음도 베니스 비엔날레 앞에서 급해졌다. 밀라노에서는 보고 싶은 것이 적은데 반해 예정 체류시간이 길어서 여유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고 여유를 부려도 된다. 그런데도 마음의 시계는 혼자서 빨리 뛰어간다.

관광지를 찾아가는 것에는 이제 상당히 익숙해 졌다. 외국에서 내가 찾으려하는 것들 중에서 관광지보다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없을지도 모를만큼. 관광지 주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길을 가르쳐주는 것은 그들 일상의 작은 부분으로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먼 곳에서 온 사람이 목적지 근처에만 도달할 수 있다면 근처에서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환전해 온 유로화가 거의 떨어졌다. 두오모를 찾는 것보다 우선 현금을 찾는 것이 더 급하다. 은행을 찾는 것은 관광지를 찾는 것에 비하면 훨씬 더 난해하다. 외지에서 온 여행객이 거래하는 은행의 위치까지 알고 있을 현지인은 별로 없다. 여행자 안내소 밖에 없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관광지에 가면 아무래도 현금지급기를 찾는 것이 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어 생각은 다시 두오모를 먼저 간다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즉 두오모로 먼저 가서, 그곳에서 현금지급기를 찾아보고, 없으면 여행자 안내소를 찾고, 여행자 안내소에서는 은행과 숙소를 동시에 문의한다. 관광지, 은행, 여행자 안내소, 숙소는 대체로 가까운 곳에 밀집되어 있어서 의외로 쉽게 문제를 해결할지도 모른다.

두오모에 도착하다

도착해서 바라 본 두오모의 전경은 가이드북의 그림에서만큼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굉장히 매력이 있었다. 실물이 그만큼 환상적일 수는 없다.

화가의 눈과 손을 거쳐서 그림이 되고, 그 그림이 렌즈를 통해서 사진이 되고, 가이드북의 에디터의 배치를 거쳐 프린트 됐으니, 여러 겹의 베일에 가려져 있던 셈이다. 신비롭지 않을 수가 없다.

나폴리행과 밀라노행을 놓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그림 속의 두오모를 보고 밀라노행을 확정했었다.
▲ 피렌체에서 샀다던 그 가이드 북 나폴리행과 밀라노행을 놓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그림 속의 두오모를 보고 밀라노행을 확정했었다.
ⓒ 정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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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실물은 책에서 표현해내지 못한 현실감이 있다. 손바닥 만한 그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실물의 위용은 압도적이었다. 규모나 디자인이나 디테일이나 색감에서 오는 개성까지. 자세하고 세세한 것들이 두오모를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매번 다른 느낌의 개성있는 성당들은 이 이탈리아라는 나라를 더욱 궁금하게 만들기도 했다.

겨우 네 개의 성당을 봤을 뿐이지만 가령 누군가가 '지금까지 본 성당 중 어느 곳이 가장 아름다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모두 서로 비교조차 어려운 개성을 갖고 있어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 여행을 마치는 시점에는 내가 가장 선호하는 교회를 하나 마음속에 담아갈까 한다.

밝고 화려한 외부와 달리 내부는 어두웠다. 두오모는 겉과 속이 달랐다. 화려한 외관으로 유혹하고 속은 무겁고 어두웠다. 본당을 구경했다. 지금까지 봐오던 성당들이 갖고 있던 '컬렉션'에 비하면 이곳은 누추하다. 하지만 건물 안의 엄숙함으로 말할 것 같으면 결코 누추하지 않고, 되려 넘쳐흘렀다. 다른 성당은 쉽게 따라 올 수 없는 밀라노 대성당만의 위엄이 있었다.

건축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지만 고딕이라는 양식에 대해 수업시간에 들었던 것과 딱 맞아떨어진다. 많은 비평이 그렇듯 고딕이란 개념의 말에 맞추어 성당이란 작품을 만들었다기 보다 말 이전에 작품인 성당이 생기고, 그 성당을 구분하는 용어로서 '고딕'이란 단어가 생겼을 것이다.

도시계획이나 건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이탈리아를 여행한다면, 어쩌면 이곳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에만 관심을 갖고 왔지만 건축물들의 예술성 때문에 눈이 돌아간다. 언젠가 건축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상식 차원에서라도, 공부를 하리라는 욕구를 느낀다. 그리고 다시 이탈리아에 올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건축공부를 하고 오리라 다짐한다. 최소한 관련서적 몇 권이라도 읽어봐야지. 일단 지금은 예습이다.

한편 도대체 불가능할 것만 같은 신기한 건축물들을 '가능'으로 만든 이탈리아인들이야 말로 신이라는 것에, 종교라는 것에 많은 의무를 강요받았을 것이란 생각이 매번 성당에 다다를 때마다 든다. 십일조 없이 어디서 건축 자금을 구했을 것이며, 교황의 권위주의적인 명령 없이 잘 나가는 예술가들에게 장기간에 걸친 작업을 요구할 수 있었을 것인가. 몇 백년 동안 공사가 진행되면서 노동력은 어디서 착출했을 것인가. 빠르게 변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인간 중심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런 교회 건축은 앞으로도 만들어지기 '불가능'할 것만 같다.

두오모 위에서

마음에 드는 성당을 마주할 때면 나는 그 위를 올라가고 싶어진다. 성당 주변에는 그 보다 높은 건물이 대체로 별로 없기 때문에 구 도심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좋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껴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당연히 이용하지 않았다. 하루라도 그때 그곳 사람인 것처럼 살아 보고 싶은 것이 여행자의 마음 아닌가. 엘리베이터는 내게 너무 현대적인 것이고,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온 몸으로 과거를 느껴보고 싶다.

넘치는 의욕과 달리 계단을 오르며 몸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가방이 무거워서일 수도 있고 계단이 많아서 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컨디션이 안 좋다. 두오모를 본다는 마음에서 오는 에너지가 커버할 수 없는 몸 상태였는데, 스스로 인지하지 못 하고 있었다가 계단 앞에서 들통났다.

단지 두오모를 보고자하는 욕망 때문에 나 자신을 보지 못 했다. 여행의 목적은 대상을 보는 것이지만, 좀 더 중요한 것은 그 대상 자체가 아니라 대상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무모한 열정이 만드는 무리한 행동이 얼마나 여러모로 해로운 것인지 또 그것이 내 성격과 얼마나 맞지않는 것인지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이곳에 서 있는 것은, 두오모가 나를 끌어들이는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게 했다.

겨우 하룻밤의 한뎃잠이 나를 이렇게 방전 시켰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며 내 몸의 일부처럼 들고 다니던 전자 장비들-두 대의 핸디캠과 한 대의 노트북-도 모두 방전 됐다. 우리 모두 방전되니 진정 한 몸으로 느껴진다. 나의 귀와 눈과 입의 연장이고 내 기억의 연장이다. 일상도 휴식이 필요하지만, 여행도 휴식이 필요하다. 내 몸의 연장인 장비들도 휴식이 필요하다며 조퇴를 신청하고 먼저 퇴근했다. 덕분에 사진이나 영상을 하나도 남길 수 없었다. 그렇다면 스케치로 남길 수밖에.

성당 곳곳에 외장된 조각상의 머리와 어깨 위에는 멀리서는 볼 수 없는 작은 침들이 놓여있었다. 새들이 앉을 수 없게 해놓은 간단하고 원시적인 장치다. 그간에 봤던 것들은 멀리서 봤기 때문에 얇은 침이 있었다고 해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천사와 성인의 머리에 새똥이 묻어 있으면 아무리 조각상이라도 얼마나 분위기를 망치겠나. 조각상이라는 것의 존재 의미 자체가 그 인물들을 기억하기 위함 아닌가. 똥물 뒤집어 쓴 이미지로 남기고자 조각을 하는 것은 아니니 침을 올리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은 설치인 것 같다.

밀라노 두오모의 특별한 점은 조각상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조각상의 규모가 그리 거대하지 않고 감상할 수 있는 거리가 가까워서 실감이 났다. 마치 조각의 주인공인 성인과 천사들도 그리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란 듯이. 천국이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듯이. 그것이 그리 거대한 담론이 아니란 듯이 가까이 느껴졌다. 현실감이 있다.

게다가 그 새 하얀 느낌이란 천국은 손만 뻗으면 금세 다가설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곳인 것만 같았다. 이런 성당이 지어질 당시의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을래야 믿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이런 점들은 내부에서 느껴지던 중압감과는 대조적이었다.

성당 구경은 좋았지만 체력의 부족함은 점점 스스로도 걱정되기 시작했다. 현기증이 났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서 현기증이야 당연하겠지만 높아서 오는 현기증이 아니었다. 음식의 문제도 아니고 단지 불편하고 불충분했던 잠의 문제였다. 밀라노 도시 전경이 휘청 거리고 발을 딛고 있떤 성당의 지붕이 위로 올라는 상황이라면 어서 내려가는 것이 좋겠다. 내려가는 계단도 볼거리지만 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허겁지겁 먹듯이 성당 구경을 허겁지겁 폭식하고 나자 구경보다는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계단은 눈에 들어올 여유가 없었다.

몸과 머리 속을 흔들던 현기증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 할 때가 되어서야 노트에 스케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돌아왔다. 방전된 전자제품들 대신 방전을 모르는 일기장을 꺼내 기록했다. 대략적인 스케치를 시도하다 알게 된 것은 이 건축물이 잠시 스쳐 지나가는 여행객이 그림으로 남길 수 있는 성격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드로잉 실력과 짧은 체류기간은 그것을 허락 하지 않았다. 심볼 마크 같이 간단한 선 몇 개만을 남긴 채 볼펜을 놓고, 노트를 덮을 수밖에 없었다. 가이드북에 사진으로 등록된 이 그림을 그렸던 이름 모를 화가에게 경의를 표하며.

지나가는 행인이 밀라노 두오모를 스케치 하는 것은 불가능한 작전.
▲ 난 뭘 한 걸까? 지나가는 행인이 밀라노 두오모를 스케치 하는 것은 불가능한 작전.
ⓒ 정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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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07년 6월부터 9월까지 여행한 내용입니다. 이기사는 www.gabson.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탈리아, #밀라노, #두오모, #스케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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