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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200일은 자본주의 앞에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알려주는 시간이었다. 집 가진 사람도 찍고, 세 사는 사람도 찍어준 어이없는 선거가 끝났을 때. 역대 최고 표차로 싱겁게 승리한 대통령은 '부동산으로 흥한 자, 거품과 함께 몰락하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내가 순진했다. 그는 건설회사 사장님 출신이다. 말 한 마디면 부하 직원들이 어떻게든 해결을 해 내는 사회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사람이다. 민주주의를 몸에 둘 필요 없이, 소수의 집행부가 이익을 위해 결정하고 다수의 노동자들이 밥벌이를 위해 그들의 말을 따르면 되는 전체주의에 가까운 '기업' 말이다. 그런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토론이나 민주적 태도를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부당한 요구일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뽑은 것이다.

쥐도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주고 쫓아야 하는데, 중학생들이 치켜든 촛불들은 너무 밝았고, 많았고, 질겼다. 쥐를 배려하는 미덕이라곤 없었다. 쥐는 코너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기도 하는 녀석임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사소한 성질을 잊었다가는 물대포에 실신하고, 시민단체 간사가 구속되고, 신부님와 수녀님들이 광장에서 미사를 드리게 되고, 아픈 스님이 탁발순례 대신 지리산에서부터 오체투지를 하게 된다.

짜증이 공포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200일

고소영, 강부자 라인을 작명한 블로거의 신랄한 정치 비판 <블로거, 명박을 쏘다>
 고소영, 강부자 라인을 작명한 블로거의 신랄한 정치 비판 <블로거, 명박을 쏘다>
ⓒ 별난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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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사장이 바뀌자마자 '국민과의 대화'에 나선 대통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정말이지 민망하고, 당혹스럽다.

언론사 장악, 시민단체 간사 검거, 광고중단 누리꾼 구속수사, 물대포, 대운하, 각종 민영화, 0교시 부활, 강남에서 뽑아준 교육감 등 처음에는 짜증을 유발하던 뉴스들이 점차 공포로 다가왔다. 단순히 유통기한 5년짜리 정책으로 끝나지 않을 일들이기에 나는 두렵다.

블로거 MP4/13과 '뉴스의 김구라' 김용민이 함께 쓴 <블로거 명박을 쏘다>는 '고소영, 강부자 라인'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블로거와 한 방송인의 눈에 들어온 이명박 정부 이야기다. 책에 실린 칼럼 제목들을 구경해 보자.

▲ 이명박 정부 두 달, 한마디로 '돌려막기 정부'
▲ 대한민국이 총장 공화국이냐
▲ 청와대 전산망, 이름 잘 바꿨다
▲ 친박연대? 이게 웬 '렌터카 정당'인가?
▲ 사퇴한 강부자 장관 3총사, 예능 프로로 진출하시라

이 책이 나온 것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쯤 되던 시기였는데, 두 달 사이에 벌어진 일들을 두고 블로거 MP4/13는 그리 길지 않은 글로 요약해 준다.

"이명박 정부 두 달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돌려막기 정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용카드 여러 장 가지고 카드를 카드로 돌려막는 것처럼, 이명박 정부의 두 달을 평가해보면 '사건을 사건으로 돌려막는' 돌려막기 정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때를 보자고요. 어륀지와 후렌들리로 대표되는 영어몰입교육 문제를 둘러싸고 한바탕 난리를 쳤을 때, 이 논란을 잠재운 것은 고소영 라인 파동이었습니다. 고소영 라인 때문에 시끌벅적해지고 특히 논문 표절 시비가 벌어진 박미석 수석에 대한 사퇴 압력이 가해졌을 때, 이 사건을 잠재운 것은 강부자 내각이었습니다. 결국 장관 세 명이 낙마하고 박미석 수석은 살아남았습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강부자 내각 문제로 원성이 높아가고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장관에 대한 사퇴 압력이 꺼지지 않자, 그 다음으로 이 문제를 돌려막은 사건은 공천문제를 둘러싼 친이-친박 진영의 이전투구와 탈당 사태였습니다. 그리고 이 사태를 돌려막은 사건은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뉴타운 문제였습니다.

한나라당은 비록 총선에서 승리했지만 이번에는 뉴타운 문제를 둘러싼 '사기공약' 시비에 휘말렸습니다. 이 시비를 관심 밖으로 돌리게 한 사건은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를 둘러싼 부동산 투기 문제였고, 결국 박미석 수석이 사표를 내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동관 곽승준 수석을 비롯한 비서진들에 대한 사퇴 압력이 계속 이어지자 이 사건을 돌려막게 된 큼직한 사건이 터졌는데 바로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죠.

그러니까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의 돌려막기는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영어몰입교육 → 고소영 라인 → 강부자 내각 → 친이-친박 진영 충돌 → 뉴타운 사기공약 시비 →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 미국산 쇠고기" (<블로거 명박을 쏘다>, 45-46쪽)


똑똑한 블로거 MP4/13는 돌려막기를 하면 할수록 빚이 점점 늘어나다가 신용불량자 신세가 되는 게 돌려막기의 운명이라며, 파산 선고를 신청하던가 아니면 솔직하게 자기의 상황을 인정하고 개인회생이라도 꾀하는 거라고 조언한다. 시사평론가 김용민은 '돌려막기' 좋아하다가 '돌려맞기'당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민주주의는 스스로 '악당' 뽑는 제도일지도"

18대 국회의원 선거가 뉴타운에 의한 '투기성 투표'였다고 결론내린 MP4/13는 선거 뒤에 뉴타운 공약이 허당인 것으로 밝혀지니까 속았다고 난리치는 유권자들에게 일침을 던진다.

"눈앞의 돈 몇 푼에 정신 팔려 있는 사람들이 사기꾼들에게는 가장 군침 도는 먹이인 셈입니다."

오늘(9일) 밤 10시, 사장이 바뀐 KBS 1TV에 질문자로 출연하는 이웃들에게 이 책을 보내고 싶다. 드디어 '국민과의 대화'에 나서는 대통령에게는 MP4/13가 새로 적은 '남으로 운하를 내겠소'를 들려드리고 싶다.

남으로 운하를 내겠소.
낙동강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터널을 뚫지요.

전문가가 반대한다 관둘 리 있소.
국민의 반대는 헛소리로 들으라오.

미국산 쇠고기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파냐건
웃지요.

교과서에서 배울 때도 마지막 줄에 집중했던 기억이 난다. '왜 사냐건 웃지요'

기억이 맞다면, 인생을 달관한 화자라고 배웠던 것 같은데, 새로 고쳐 쓴 시에서도 마지막 연이 눈에 들어온다. 국민과의 소통 따위는 달관하고 삽질을 시작해 버릴 것만 같아서.

책 소개를 하겠다고 해놓고, 책 얘기보다 잡설이 길었다. 이런 공포스러운 시기에 겁도 없이 이런 책을 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두 사람의 현란한 말솜씨와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은 이명박 정부를 이해하는 키워드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쓴 글이지만,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하다. 아마 회사 기획서 쓸 때, 아이디어 회의할 때 아주 실용적인 참고서가 되어 줄 것이다. 고소영·부자. 두 배우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브랜드 네이밍 책을 본 적이 없으므로!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블로거, 명박을 쏘다 - 고소영 라인을 최초로 들춰낸 바로 그 블로그

김용민.MP4/13 지음, 별난책(2008)


태그:#대통령과의 대화, #블로거 명박을 쏘다, #고소영, #강부자 ,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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