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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피천 다리 밑 젊은 커플의 텐트 옆에 자리를 펴다,
 왕피천 다리 밑 젊은 커플의 텐트 옆에 자리를 펴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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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디 물 맑고 숲 깊은 계곡을 찾아 점심도 먹고 조금 쉬었으면 좋겠는 걸."

울진 후정해수욕장에서 물싸움 놀이와 보트를 타고 신났던 일행들도 푹푹 찌는 무더위에 지쳐가는 모습이었다. 우선 가깝고 쉴만한 계곡을 찾아보기로 했다.

후정해수욕장에서 나와 죽변과 울진을 지나자 왼편으로 수량이 제법 넉넉하게 흐르는 하천이 나타났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 보기로 했다. 오래 달리지 않아 골짜기 건너편에 석류굴이 나타났다. 오른 편으로 꺾이는 골짜기를 타고 올라가는 길가의 자리 좋은 개천에는 사람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물 맑고 경치도 좋은 왕피천을 찾아서

골짜기를 따라 계속 올라갔다. 무더위 때문에 길가의 마을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지만 골짜기는 어느 곳에나 사람들이 많았다. 농부들의 땀이 밴 고추밭에서는 붉은 고추가 익어가고 토마토와 옥수수도 뙤약볕에 씨알이 굵어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여덟 명의 일행들이 편안히 앉아서 점심을 먹으며 쉴만한 장소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계곡을 따라 계속 올라가다가 골짜기를 가로지른 다리 앞에서 차를 세웠다. 사람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앞쪽의 뾰족한 산 밑에 석류굴이 있고 왕피천이 흐른다
 앞쪽의 뾰족한 산 밑에 석류굴이 있고 왕피천이 흐른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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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리 밑으로 내려가 살펴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곳 역시 따가운 땡볕을 막아줄 다리 그늘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건너편은 괜찮을 것 같아 다리를 건넜다. 다리 밑으로 내려가자 젊은 커플이 천막을 쳐놓고 있었는데 그들도 점심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의 천막 옆에 제법 넓은 자리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들 옆으로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아직 신혼부부로 보이는 그들에게 방해가 된다면 그것도 미안하고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멈칫거리다가 일행의 부인이 그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젊은 커플은 흔쾌하게 자신들의 천막 옆 빈자리를 이용하라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표정을 보니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자리를 폈다.

우리들이 음식을 먹기 시작할 때까지 그들의 식사는 계속되었다. 우리들이 음식을 모두 꺼내놓고 보니 그들 젊은 커플이 먹고 있는 음식이 상대적으로 너무 빈약해 보였다. 우리들은 서울에서 나름의 밑반찬을 넉넉히 준비해 간데다 아침에 민박집에서 밥이며 찌개까지 넉넉히 끓여가지고 갔었기 때문에 먹을거리가 풍족한 편이었다.

시원한 다리 밑에서 먹는 꿀맛 같은 점심

그들에게 조금 나눠줘도 되겠느냐고 물으니 매우 고맙게 받아들인다. 곧 점심식사가 시작되었다. 다리 밑에 넓게 둘러 앉아 먹는 점심 맛이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뜨거운 불볕 아래 영글어 가는 옥수수
 뜨거운 불볕 아래 영글어 가는 옥수수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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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도 빨갛게 익어가고
 고추도 빨갛게 익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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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밥맛이 꿀맛이네. 이거, 어느 음식점에서 먹었던 음식에 비교할 게 아니야."
"정말 밥맛 좋구먼, 이런 밥맛 근래 들어 처음인 것 같은데."
"다리 밑에서 먹는 밥맛이라 그럴 거야, 다리 밑이라 그늘 좋지,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결 시원하지, 저 개울의 맑은 물 좀 봐? 얼마나 시원한 모습인가."

입 안 가득 음식을 문 일행들이 어쭙잖은 발음으로 음식 맛을 칭찬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그들의 칭찬이 아니어도 음식 맛은 정말 꿀맛이었다. 반찬이야 대단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떠날 때 각자의 집에서 가장 맛깔 나는 밑반찬들을 한두 가지씩 가져간 것이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 이 술 한 잔씩 맛보게. 이거 멀리 아프리카 최남단에서 가져온 술이야. 그곳 원주민들이 빚은 술이라고 하더구먼."

밥맛에 취해 있을 때 일행 한 사람이 술병을 꺼내 놓았다. 그는 얼마 전 아프리카의 최남단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다녀온 친구였다.

"어때? 달콤하고 맛있지? 이게 그 지역의 토속주라던데."
"네, 아주 맛있는데요, 그런데 술이 약한 여자들에게 딱 맞는 술인 것 같네요."

술 맛은 그의 말대로 달콤하고 순했다. 뭐랄까? 초콜릿을 녹인 물에 약한 소주를 섞어 만든 듯한 그런 맛이었다.

"그래, 맛은 괜찮지만 역시 우리 토속 막걸리가 최고야."
"맞아, 우리 소주와 막걸리만한 술이 어디 또 있겠어?"
"나, 소주 몇 잔 할 테니까 돌아갈 때 운전은 당신이 좀 해요."

아프리카의 토속주는 어느새 우리 술에 밀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운전대를 놓지 않았던 친구가 모처럼 점심자리에 나온 술 맛에 부인에게 운전을 부탁하고 나선 것이다.

다리밑에서 오순도순 함께 먹는 꿀맛 같은 점심
 다리밑에서 오순도순 함께 먹는 꿀맛 같은 점심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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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옆 자리의 젊은 커플은 개울물에 들어가 깔깔거리며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아내가 장난스럽게 개울물에 손을 튕겨 끼얹는 물을 '흐허허' 웃으며 받아준다. 젊은 그들의 다정한 모습을 바라보는 아내들의 눈길이 아련한 추억 속에 젖어들고 있었다.

즐거운 물놀이와 잡은 물고기 놓아주기

"저만 때가 참 좋은 때였는데,,, 그때가 언제였었나? 자. 우리들도 물놀이 하러 가지."

아내들이 점심 먹은 음식 그릇들을 한쪽으로 밀어 놓고 물속으로 텀벙텀벙 뛰어 들었다. 해수욕장에서는 겁을 먹고 물속에 들어가기를 꺼리던 아내들이 자갈 바닥이 무릎 깊이인 개울에서는 거리낄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릇을 정리하고 짐을 꾸리는 것은 남편들의 몫이 되었다.

"자 우리들도 개울물에 들어가지. 아참! 내 차 트렁크에 작은 어항이 하나 있는데 물 속에 한 번 놓아 볼까?"
"거 좋지, 혹시 저녁 매운탕거리가 잡힐지도 모르잖아?"

어항이래야 손바닥 만한 크기의 작은 그물로 된 것이었다. 그 안에 미끼를 조금 넣고 물속에 담가 놓은 다음 일행들의 물놀이가 시작되었다.

개울 둑을 뒤덮은 칡넝쿨
 개울 둑을 뒤덮은 칡넝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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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들의 땀방울이 일군 풍년 벼농사
 농부들의 땀방울이 일군 풍년 벼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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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물이 흐르는 곳에는 들어가지 않고 얕은 물에서 아내들과 어울린 일행들의 깔깔거리는 모습이 다시 젊음을 되찾고 있는 것 같았다. 물속에서 잠간 놀다가 물 밖으로 나왔다. 개울물 옆에는 그리 크지 않은 논에 벼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개울둑에서 자란 칡넝쿨이 논둑까지 덮치는 것을 농부가 낫으로 베어낸 모습이 선명하다. 가만히 앉아 쉬어도 견디기 어려운 무더위에 저렇게 칡넝쿨과 풀을 베어내느라 농부는 구슬땀을 흠뻑 흘렸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벼농사는 풍년을 기약하는 모습이었다.

논둑 밭둑을 돌아보고 다시 개울물로 들어갔다. 개울에서는 방금 어항을 건져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저 안에 물고기가 들까 싶었었는데 아기 손가락만한 작은 물고기 20여 마리가 퍼덕이고 있지 않은가.

"야아! 물고기 잡혔다."
"어디 어디 얼마나 잡힌 거야?"

모두들 모여들어 신기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방법으로 물고기를 잡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작은 물고기들이 퍼덕이다가 늘어지는 것을 본 아내들이 물고기들을 그냥 물에 놓아 주자고 한다.

개울에서 물놀이 하는 일행들
 개울에서 물놀이 하는 일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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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정자에서 함께 나눈 수박파티
 마을 정자에서 함께 나눈 수박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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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생명들이 곧 죽고 말 것 같아 안쓰러웠던 모양이었다. 작은 그릇에 옮겨 담았던 물고기들은 곧 개울물에 놓아주었다. 물고기들은 금방 물속으로 사라졌다. 일행들은 물고기를 그냥 그렇게 잡아본 것으로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마을 정자에서 주민과 함께 수박파티를 벌이다

"자! 잘 먹고 쉬었으니까 출발합시다."
"잠깐 더 쉬지 않고 또 떠나자고요? 모두 역마살이 낀 사람들인가 봐?"

아내들 중 누군가가 불평을 한다. 그러나 다음 코스를 향해 출발하기로 했다. 짐을 챙기기 위해 다리 밑으로 돌아왔지만 젊은 커플은 물놀이에 재미를 붙였는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아까 골짜기로 들어올 때 봤는데 길가의 마을에 아주 멋진 정자가 있더구먼요. 그 정자에서 수박 깨뜨려 먹고 가는 게 어때요?"

개울에서 더 쉬지 않고 출발하는 것을 불평하던 친구 부인이 새로운 제안을 한다. 아무래도 이 골짜기를 벗어나는 것이 몹시 아쉬운 모양이었다.

잠깐 달려 내려가자 왼편으로 아담하게 자리 잡은 마을 길가에 정말 아담하고 운치 있는 정자 하나가 나타났다. 정자 앞에 차를 세우고 올라가니 정자에는 마침 아무도 없었다. 신발을 벗고 정자에 올라 바닥에 신문지를 폈다. 깨끗한 정자 바닥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옥수수와 콩밭이 보이는 마을 풍경
 옥수수와 콩밭이 보이는 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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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그 수박 참 달고 시원하다."

이런 칭찬은 준비한 손길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일행의 부인이 어젯밤에 마련해서 승용차 짐칸의 아이스박스에서 꺼내어 놓은 수박은 얼음처럼 시원했다. 다리 밑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은 지도 벌써 두 시간이 지나 있어서 마침 목이 컬컬하던 일행들에게 시원한 수박은 정말 맛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못 보던 분들이네요, 어디 외지에서 오신 분들인가 봐요?"

우리끼리 수박 파티를 벌이고 있을 때 지나가던 주민이 낯선 객들이 차지한 정자를 기웃거리며 아는 체를 한다. 올라와 수박 좀 드시라고 하자 어디 얼마나 맛있나 한 조각만 줘보라고 한다.

"거 참 시원하고 다네요. 한 조각 더 주시오."

이렇게 어울린 주민은 이 동네에 사는 비슷한 또래의 60대였다. 낯선 서울내기들과 마을 주민이 허물없이 어울린 소박하고 정겨운 자리였다. 정자 주변에 있는 밭에서는 따가운 땡볕 아래 고추와 옥수수가 익어가고, 나지막한 산자락 밑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산골마을이 삼복더위 오후의 뙤약볕 아래 고즈넉한 풍경이었다.

덧붙이는 글 | 7월 31일부터 2박3일동안 다녀온 내용입니다.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왕피천, #물놀이, #산골마을, #꿀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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