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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집에 놀러왔던 고딩 조카가 느닷없이 나에게 "삼촌, MB가 뭔지 알아?" 하고 묻는 게 아닌가. 이 눔아, 삼촌이 아무리 앞뒤가 꽁 막힌 학삐리에 지나지 않지만, 그 정도는 알지 하며 자랑스럽게 "이명박 대통령을 가리키는 은어로, 메가바이트의 준말 아냐?" 그랬다.

 

그 녀석 하는 말이,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그건 구식이야, 요즘은 메가 본(Mega Bone)의 준말로 '통뼈'라고 해, 이제부터 이 대통령은 통뼈야, 알았지, 삼촌?" 하는 게 아닌가. 촛불 덕에 생동감 넘치는 현장 학습을 많이 받은 탓인지, 근래에는 어린 녀석들이 시대를 앞서가고 있다. 그러나 이 녀석아, 너는 하나밖에 모르지? 사실 이 대통령은 기러기야….

 

확실히 이 정권은 '통뼈 정권'임에 틀림없다. 모든 분야를 넘나들며 난봉꾼처럼 겁도 없이 막가파 식으로 곤봉을 휘두른다. (국제)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예외도 없고, 거침도 없다.

 

합법을 가장한 재갈취 위기

 

최근에는 드디어 언론 정벌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에 따라 촛불도 이제 시청 광장에서 KBS 앞으로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KBS 본관 앞의 수많은 촛불 역시 무차별적으로 연행당하여, 바야흐로 침침한 경찰서에 더욱 더 많은 빛을 선사하고 있다.

 

"1%를 위한 정책이 나머지 99%의 국민들을 힘들게 한다"는 뼈아픈 질타도 뒤따랐다. 뿐만 아니라 "언론은 우리 몸의 혈액과도 같은 것인데, 혈액이 원활하게 흐르지 못하고 막히면 사람이 죽듯이, 언론이 억압당하면 나라 역시 망하게 된다"고 개탄하는 또 하나의 다른 촛불도 있었다.

 

5·16 쿠데타 때 박정희에 의해 가장 먼저 불법적으로 점거당한 적이 있었던 KBS가 이제 바야흐로 현 정권에 의해 '합법'을 가장한 재갈취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현재 정연주 KBS 사장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버티고 서서, 폭염에 지친 수많은 국민들에게 서늘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그는 지금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며, 독립군처럼 장렬히 싸우고 있다.

 

정 사장은 자신에 대한 해임요구를 의결한 지난 8월 5일을 '감사원 치욕의 날'로 규정하면서, 현 정권이 "공영방송 KBS를 관영방송으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는 공영방송이 결코 '정권의 홍보기관'이나 '정권의 전리품'이 될 수는 없다고 규탄하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다른 한편 이러한 작태를 자행하는 감사원이야말로 "옳고 그름의 판단 없이 그저 주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뼈다귀 하나라도 얻어먹을 수 있는 늙은 개와 다를 바 없다"는 참담한 혹평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제 KBS 이사회가 혹시 '권력의 개'로 전락하지 않겠는가 하는 범국민적 의구심까지 확산되기도 하였다.

 

이런 엄혹한 상황에서 정연주 사장은 팔을 걷어붙이고 "방송 독립을 위한 선한 싸움에서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불굴의 자신감을 토해내면서, "사랑과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드는데 공영방송인으로서 당당하고 의연하게 중요한 몫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금 KBS 사장은 이러한 정부의 언론정복 전쟁에 단기필마로 최전방에 서서, 새로운 역사의 한 장을 기록하고 있다. 공영방송 사장이 정권의 방송 장악 음모에 항거하며 방송 독립을 위해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결의를 밝힌 것은 아마도 세계사적으로도 전무후무한 일대 사건일 것이다.

 

이러한 감사원에 뒤질 새라 - 물론 수학공식처럼 이미 정해진 수순에 따라 사전에 조련 받은 그대로이긴 하지만 -또 다른 '권력의 개' 한 마리가 더욱 더 가열차게 경쟁적으로 링 위로 뛰어올랐다. KBS 이사회(이사장 유재천)가 지난 8일 낮 임시이사회를 개최해, 정연주 사장에 대한 감사원 해임요구에 따른 해임 제청안을 의결하는 만용을 과시한 것이다.

 

어쩌다가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 '미친 소' '미친 개' 하는 식으로 정답게 줄을 맞춰가며, 이처럼 참담하게 '미친' 동물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게 되었는가! '통뼈'는 과연 어떤 동물의 뼈일까?

 

이제 바야흐로 건전한 정신을 가진 KBS 전 종사원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힘을 함께 모아, 공영방송 수호와 언론자유 쟁취를 뛰어넘어 건강한 민주주의 확립을 위해 굳건히 팔을 걷어 부칠 때가 왔다. 정연주 사장이 이제 민주화를 위해 다시 한번 더 순교할 각오로 준엄한 전열을 재정비하는데 스스로 앞장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분명히 그는 막가파 식 '통뼈'가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먼지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재가 되리라 다짐하고 있을 것이다.

 

거북이와 기러기 우화

 

이런 우화가 있다.

 

어떤 기러기가 백성들의 입을 막으며 나라를 제멋대로 통치하고 있었다. 이에 몹시 분개한 거북이는 언론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궁리를 거듭했다. 기러기는 이렇게 생각했다. "백성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 나에게 반대하는 날이면 큰일이다․"라고. 더구나 거북이란 놈이 군중을 늘 선동하고 있지 않은가. 기러기는 골머리를 앓았다.

 

어느 날 기러기에게 좋은 방안이 떠올랐다. 기러기는 번듯하게 포고문을 내걸어, 언론을 개방하고 백성들에게 충분한 언론자유를 준다고 선포하였다. 기러기는 거북이를 초대하여 그에게 굽실거리는 척하면서, 거북이로 하여금 대나무 가지를 그의 입에 물게 하였다. 그리고 나서 물오리 형제를 불러다 그 대나무 가지 양끝을 물게 하였다.

 

기러기가 거북이에게 말했다. "민주주의란 이런 것이다". 기러기는 물오리에게 날아오르라고 명령하였다. 거북이는 공중에서 대나무 가지에 매달려 그 '민주주의'를 누렸다.

 

기러기는 큰 소리로 선언문을 발표했다. "지금부터 민주주의를 실행하고 언론을 개방한다. 우리 나라 백성이면 누구나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거북이는 결사적으로 대나무 가지를 악물고 눈을 부릅떴다. 거북이는 우둔했지만 그 이치만은 잘 알고 있었다, 즉 입만 벌리면 즉시 떨어져 죽고 만다는 것을. 자기가 백성을 탄압하고 있다고 말하는 독재자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 이 기러기가 바로 이명박 대통령 자신인 것이다.

 

미국 제3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이렇게 절규하였다. "우리가 신문 없는 정부를 가질 것이냐, 아니면 정부 없는 신문을 가질 것이냐를 나에게 결정하라고 한다면, 나는 후자를 택하는 데 한 순간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태그:#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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