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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건국60주년 국외 이북도민 초청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이명박 대통령. 이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에서 쇠고기 먹던 사람들이 시위에 참가했다"고 말한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12일 건국60주년 국외 이북도민 초청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이명박 대통령. 이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에서 쇠고기 먹던 사람들이 시위에 참가했다"고 말한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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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촛불집회 참석자들을 폄훼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은폐하려고 했던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예상된다. 문제의 발언이 있었던 행사를 취재했던 풀(대표취재) 기자에게 이 대통령의 발언을 빼달라고 종용하는가 하면, 풀기자가 취재해서 전달한 자료에서 임의로 이 대통령의 발언을 삭제한 것.

'사후 비보도·엠바고' 남발로 물의를 빚고 있는 청와대가 대통령의 실언이나 막말이 외부로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골적으로 보도 통제에 나선 것이어서 충격을 던지고 있다.

특히 이 같은 행위가 처음이 아니라, 정권 출범 초기부터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 하고 있다.


이명박 "미국에서 쇠고기 먹던 사람들이 시위에 참가"


이명박 대통령은 12일 '건국 60년' 기념 국외 이북도민 초청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여러분께서 귀국하기 전에 한국에서 미국산 쇠고기 사태로 난리가 벌어졌다는 얘기를 듣고 걱정을 많이 하셨겠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시위한 사람들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산 쇠고기를 먹던 사람들"이라며 "자녀들도 미국에서 공부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시위를 한 사람들이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면 먹을지 안 먹을지 모르겠는데, 아마 내 생각에는 먹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별 근거도 없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은 경험이 있고, 자녀들도 미국에서 공부시키고 있다고 폄훼하고 나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6월 1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쇠고기 파동'과 관련한 특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6월 1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쇠고기 파동'과 관련한 특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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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촛불집회가 정점에 달했던 지난 6월19일 이 대통령이 특별 기자회견을 통해 "뼈저린 반성"을 언급하며 대국민 사과를 했던 취지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결국 이 대통령의 '사과'는 성난 민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진정성 없는 '쇼'에 불과했음을 입증한 셈이다.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최근 촛불시위대 규모가 줄어드는 등 '쇠고기 파동'이 거의 사그라들었다고 판단한 자만심의 발로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이 대통령의 '쇠고기 돌출 발언'이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으며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바 있다.

실제 이 대통령은 쇠고기 협상 타결 직후 "(미국산 쇠고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적게 사면 되지 않느냐" "값싸고 질좋은 쇠고기를 먹게 됐다"며 민심과 동떨어진 발언을 쏟아냈고,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가 확산되면서 내놓은 대국민 담화에서는 '광우병 괴담' 운운하며 성난 민심에 불을 질렀다.

청와대 "대통령 말실수 빼달라"...풀 기사 일방적으로 삭제

그래서였을까? 논란이 될 것을 예상한 청와대는 당시 행사를 취재한 풀 기자에게 이 대통령의 '쇠고기 파동' 관련 발언에 대한 '비보도(오프 더 레코드)'를 종용했다. 그러나 풀 기자는 청와대의 비보도 요청을 거부하고, 이 대통령의 발언 전체를 청와대 측에 넘겼다.

통상 풀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전달받은 청와대는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e-춘추관'(출입기자들을 위한 보도자료 등이 제공되는 웹 공간)에 올려서 전체 기자들이 공유토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날 오후 4시경 'e-춘추관'에 올라온 행사 자료에는 이 대통령의 '쇠고기 파동' 관련 발언이 사라졌다. 풀기자가 비보도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자, 청와대 측이 임의로 이 대통령의 발언을 삭제한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기자들이 강하게 항의했고, 이 대통령의 발언을 전해들은 일부 기자들은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면서 'e-춘추관'에 올라온 자료에 상관없이 '쇠고기 파동' 관련 발언을 보도하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결국 청와대측은 4시간이 지난 저녁 8시경 'e-춘추관'에 이 대통령의 발언이 추가된 '수정본'을 올렸다. 그러나 4시간 만에 이 대통령의 발언이 추가·수정된 경위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해명조차 하지 않았다.

당시 행사를 취재했던 한 풀 기자는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해외 동포에게 안심하라고 하면서 말실수를 한 것이니 빼달라'고 요구했다"며 "풀기자는 전체 기자들을 대표해서 간 것인데, 청와대가 마음대로 빼라 마라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분개했다.

청와대의 한 출입기자도 "그동안 청와대 측이 풀기자를 상대로 (이 대통령의 발언 등에 대해) 수정이나 삭제를 요청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며 "자기들이 멋대로 기사를 빼라고 한다면 앞으로 풀 기자가 뭐하러 취재를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곽경수 춘추관장은 13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풀기자는 기자단을 대표해서 취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청와대가 기사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어제(12일) 일은 청와대가 잘못했다"고 인정했다.

기자들 "삭제 요구 비일비재"... 청와대 "어제 일은 잘못"

첫 여름휴가를 떠나기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23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기자들과 즉석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나온 일부 발언도 비보도를 요청해 논란을 일으켰다.
 첫 여름휴가를 떠나기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23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기자들과 즉석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나온 일부 발언도 비보도를 요청해 논란을 일으켰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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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청와대측의 기사 삭제 요구로 자칫 은폐될 뻔 했던 이 대통령의 발언이 뒤늦게 알려졌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미 논란이 되고 있다.

김현 민주당 부대변인은 13일 "이 대통령은 막말로 국민을 폄훼하지 말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이 대통령 눈에는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온 주부·초중고생·칠순 노인 분들의 석달 동안의 촛불 대장정이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는지, 검역주권 요구와 국민 생명 안전을 지키라는 국민의 간절한 소망이 그렇게도 가볍게 보이는지 모르겠다"며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현 부대변인은 이어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 최고 책임자다. 생각나는 대로 불쑥 내뱉는 말 한마디에 국론은 분열되고 갈등은 커져만 가고,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망신을 자초할 뿐"이라며 "이 대통령은 개구즉화(입만 열면 설화를 일으킨다) 하시지 말라"고 꼬집었다.


태그:#이명박 막말, #사후 비보도 남발, #풀기자, #쇠고기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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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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