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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에게 개방된 이상화 고택 시민들의 힘으로 얻어진 상화 고택이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 일반인에게 개방된 이상화 고택 시민들의 힘으로 얻어진 상화 고택이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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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민족시인이자 저항시인인 이상화 시인의 고택이 지난 12일 새롭게 단장되어 일반인들에게 문을 열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도시개발로 헐릴 위기까지 맞았던 이상화 고택이 시민들의 모금활동과 100만 서명운동 등으로 보존되고 공개에까지 이른 것.

이상화 고택 개관식은 온누리국악예술단의 들놀이를 시작으로 윤장근 기념사업회장의 개관인사, 연보낭독, 시낭송, 현판제막, 고택 관람의 순으로 이어졌다.

고택 관람 광경 첫날 일반인에게 관람된 이상화 고택
▲ 고택 관람 광경 첫날 일반인에게 관람된 이상화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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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고택 마당에는 당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장독대와 살구나무와 감나무가 앞마당을 지키고 있었고 집은 안채와 사랑채로 꾸며져 있다. 앞마당에는 이상화 시인에 대한 소개 기념비와 이상화의 대표적인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역천>의 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고택 안에는 일반 시민들이 이상화 시인의 정신을 담아갈 수 있도록 그의 숨결과 흔적들이 곳곳에 남겨져 있다. 그곳에는 모친 김신자 여사의 친필과 상화 혼례사성, 명예졸업장, 친필로 쓴 글귀들이 놓여있었다.

이상화 시인이 직접 쓴 글 이상화 시인이 직접 쓴 생활의 다짐 갖은 것
▲ 이상화 시인이 직접 쓴 글 이상화 시인이 직접 쓴 생활의 다짐 갖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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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 고택을 관람했던 정지극(소방공무원)씨는 "작년만 해도 고택이 잘 관리되지 않아 안타까웠는데 지금에 와보니 잘 정비된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고 하였다.

그는 "이상화 고택을 보면서 그의 애국심과 청년정신을  본받게 된다"면서 "대구시가 고택관리에 좀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아 달라"고 당부했다.

또 다른 시민인 권영석(자영업)씨도 "오래 전에 회사를 찾아온 한 사람으로부터 <나의 침실로>라는 표구를 사게 되어 이상화 시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대구 시민으로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잘 관리해 달라"고 말했다.

이날 고택 개관 행사에는 문인을 비롯해 시민들 100여명의 시민들이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다양한 문화행사와 함께 이뤄진 고택 개관 행사는 이상화 시인의 혼이 담긴 시노래, 시낭송 등으로 꾸며졌다.

시(詩)노래만을 고집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향토가수 진우씨는 "대구의 자랑스러운 시인과 함께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 즐겁다"고 말했다.

문화공연 광경 이현창씨가 대금 연주를 하고 있다.
▲ 문화공연 광경 이현창씨가 대금 연주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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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래를 부르고 있는 진우씨 진우씨는 시 노래인 병적계절, 통곡, 시인에게 등을 불렀다.
▲ 시노래를 부르고 있는 진우씨 진우씨는 시 노래인 병적계절, 통곡, 시인에게 등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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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을 방문한 서정윤 시인은 고택 개관에 대해 "대구가 문학관 하나 없는 도시라는 것이 너무나도 슬프고 안타깝다"고 말하면서 "이상화 시인뿐만 아니라 다른 문학인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고 강조했다.

서 시인은 "이처럼 황량하게 내버려진 것은 대구 시민의 수치이고 관리를 소홀히 한 대구시의 잘못이다"고 지적하면서 "이제 우리를 경제동물로 만들지 말고 문화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불편한 몸을 뒤로 한 채 이상화 시인의 고택 설명에 열중했던 윤장근 회장(이상화기념사업회)도 "감개무량하기 그지없다"고 말하면서 "우리 시민들의 소산인 이곳이 당신의 유언과 같이 우리 앞에 다가온 것이 가장 즐겁다"고 하였다.

그는 "이 역사적인 명소가 이상화 문학관, 향토문학관으로서 영원한 향토인, 문학인으로서 존립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정신, 민족관을 계승받는 시민학습장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의 침실로>라고 적힌 시 탁본을 들고 있는 한 시민 탁본으로 된 <나의 침실로>를 들고 있는 권영석씨
▲ <나의 침실로>라고 적힌 시 탁본을 들고 있는 한 시민 탁본으로 된 <나의 침실로>를 들고 있는 권영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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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는 이상화 시인의 차남 이충희씨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충희씨는 "광복을 2년 앞둔 시점에서 이곳에서 숨을 거둔 것이 가슴 아프다"면서 뒤늦게 선친의 고택이 개관하게 된 것에 희비가 교차하는 듯했다.

일반인에게 공개된 상화 고택은 고택 보존을 위해 일반 시민들의 관람이나 아직도 미진한 설명 부분과 외국인 관람객들을 위한 설명 부분들에 대한 숙제들을 남겨놓고 있다. 이상화 시인은 말년에 1939년부터 1943년 서거 전까지 이곳에서(계산2동 84번지) 살아오다가 43년 이곳에서 지병인 위암으로 숨을 거둔 곳이다.

이상화 고택의 전경 당시의 모습 그대로 장독대와 감나무, 살구나무가 앞마당에 심어져 있다.
▲ 이상화 고택의 전경 당시의 모습 그대로 장독대와 감나무, 살구나무가 앞마당에 심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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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고택 전경 허물어질 위기에 있던 이상화 고택이 시민들의 힘에 의해 새롭게 단장되어 문을 열었다.
▲ 이상화 고택 전경 허물어질 위기에 있던 이상화 고택이 시민들의 힘에 의해 새롭게 단장되어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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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개발로 서상돈 고택 및 이상화 고택까지 허물 위기에 맞았으나 1999년 시민운동 차원에서 고택보존 운동에 이르렀고 드디어 결실을 맺어 이상화 고택 개방에까지 이르게 된 것. 그의 대표작으로는 <나의 침실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이 있다.

이상화 고택 바로 앞에는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섰던 독립운동가 서상돈 고택이 있다. 대구시는 앞으로 고택과 인접한 3·1운동길, 뽕나무골목, 진골목 등지를 근대현대사 도시디자인 개선사업의 일환으로 도심투어 코스로 개발하여 관광 상품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상화 고택 앞에서의 상화 사진전 이상화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고택 앞.
▲ 이상화 고택 앞에서의 상화 사진전 이상화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고택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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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고택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열며 월요일은 휴관(예정)을 한다. 이상화 고택은 계산성당과 구 고려예식장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이상화기념사업회는 오는 18일까지 고택 앞마당에서 <상화와 그 시대 특별전시회>란 주제로 그동안 비공개된 사진 30여점과 상화 생전 풍경사진 40여점을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한다.

덧붙이는 글 | 이상화 고택에 대한 궁금증이나 자세한 안내 사항은 이상화기념사업회(053. 256-3762)로 하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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