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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문화재자료 제58호- 조선 세종때, 단성현감을 지낸 윤자선이 고향에 내려와 지은 정자에요. 정자가 자연과 잘 어우러져 있답니다.
▲ 심소정 경남문화재자료 제58호- 조선 세종때, 단성현감을 지낸 윤자선이 고향에 내려와 지은 정자에요. 정자가 자연과 잘 어우러져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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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군 남상면 무촌리에는 400년이 훨씬 넘은 은행나무가 있어요. 해마다 정월대보름에는 당산제를 지낸다고 했어요.
▲ 무촌리 은행나무(기념물 제197호) 거창군 남상면 무촌리에는 400년이 훨씬 넘은 은행나무가 있어요. 해마다 정월대보름에는 당산제를 지낸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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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거창을 한 바퀴 돌면서 참 남달리 보였던 게 있어요. 그건 바로 마을 들머리마다 어른 팔로 두세 아름은 될 만한 큰 나무들이 하나씩 있었다는 거예요. 보통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많았는데, 이 모두 짧게는 200년, 길게는 500년이 훌쩍 넘는 나무였지요.

그 아래에는 어김없이 나무를 가운데로 두고 넓은 정자를 만들어 편히 쉴만한 쉼터를 꾸려놓았어요. 땡볕과 싸워야했던 나흘 내내 우리들은 그 큰 나무 아래에서 때로는 쉬면서 물도 마시고, 너무 힘이 들어 꼼짝도 할 수 없을 때엔, 잠깐 누워서 쉬었다가기도 했답니다.

나무뿐만 아니라, 둘레 풍경이 멋스럽고 아름다운 곳엔 우뚝 솟은 정자가 매우 많았어요. 가까이 다가가면 마치 옛날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릴 듯한 멋진 곳이었지요. 또 그 둘레에 소나무 숲이 잘 가꾸어져있어 오가는 이들이 쉬었다 갈 수 있지요.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이곳에 있으면 무더위를 싹 잊겠더군요.

거창에는 마을 들머리마다 이렇게 큰 나무들이 있어요. 그 아래엔 쉼터를 만들어두고 오가는 이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했답니다.
▲ 고제면 궁항마을 쉼터 거창에는 마을 들머리마다 이렇게 큰 나무들이 있어요. 그 아래엔 쉼터를 만들어두고 오가는 이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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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소정과 심소정 숲

가야산을 넘어와 길을 잃고 두 시간이나 헤매다가 가까스로 가북으로 들어왔지요. 이제부터는 거창 구경을 합니다. 가조면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새벽같이 일어나 거창읍으로 들어갔어요. 어김없이 높은 오르막길을 꾸준히 올라가야했지요.

거창읍 양평리 마을에서 금용사라고 하는 절집에 찾아가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라는 키가 매우 큰 '양평리 석조여래입상'을 구경하고 남하면으로 들어갈 때였어요. 공설운동장에서 황강을 따라가다가 왼쪽 조금 높은 언덕에 매우 멋스런 정자를 봤지요. 아래에서 봐도 우뚝 솟아있는 정자의 모습이 참 남달랐는데, 올라가서 보니 둘레 경치와 어우러져 무척 멋지더군요. 정자에 올라보니, 시원하게 펼쳐진 거창읍이 한눈에 들어오고 발아래 푸른 숲 또한 꽤 아름다웠답니다.

우리 나라 정원은 일부러 아름답게 꾸며서 만든 딴 나라와는 달리 자연을 그대로 옮겨와 꾸미지 않은 멋이 스며들어 더욱 아름답지요. 옛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릴 듯한 정자는 퍽 멋스러워요.
▲ 심소정 우리 나라 정원은 일부러 아름답게 꾸며서 만든 딴 나라와는 달리 자연을 그대로 옮겨와 꾸미지 않은 멋이 스며들어 더욱 아름답지요. 옛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릴 듯한 정자는 퍽 멋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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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부터 돌계단을 두어 높이 올라가야 했고, 그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 심소정 아래부터 돌계단을 두어 높이 올라가야 했고, 그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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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소정은 조선 세종 때 단성 현감을 지냈던 윤자선이 고향에 내려와 세운 팔작지붕으로 된 정자인데요. 이곳에서 산수를 즐기며 유림들을 가르치던 곳이랍니다. 앞에는 툇마루를 두고 난간을 만들어 아래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옛 선비들이 글공부를 하며 풍류를 즐기던 정자를 참 많이 봐왔는데, 가는 곳마다 둘레 자연과 참 잘 어우러져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지요.

이곳 심소정은 높이 우뚝 솟아있기 때문에 더욱 남달라 보였답니다. 정자 위에 서서 바람소리를 들으며, 발아래 황강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지낸다면, 저절로 시 한 수가 읊어지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답니다.

또 하나 남달리 높이 솟아있는 걸 보며 그 옛날, 조선시대에는 높으신 양반 님네들의 권위가 이 정자에도 묻어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지요. 아래부터 돌계단을 두어 높이 올라가야 했고, 그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양반님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시중을 들던 머슴들을 어떤 마음으로 내려다보았을까? 이렇게 풍경 좋은 곳에서 이런 생각은 불경스런 생각일까?

"투닥투닥 싸우지 말고 잘 살아래이!"

심소정 아래에 들어서니, 정자 아래 너른 마당에서 할머니 한 분이 청소를 하고 계셨어요. 이른 아침부터 자전거를 타고 알록달록한 차림을 하고 온 우리를 보고 청소를 하다말고 대뜸 어디서 왔냐고 물어요. 구미에서 왔다는 얘길 듣고는 혀를 내두르더니, 한 마디 하시네요.

"둘이 신랑각시야?"
"네. 맞아요."
"하이고, 젊은 게 좋긴 좋구나! 여까지 자장구를 타고 다 오고. 그런데 뭐하는 사람들인데?"
"아, 네. 저희는 문화재나 시골 풍경 찾아다니면서 사진 찍고 글 쓰고 하는 데요."
"아하, 그렇구나. 둘이 관상을 보니 잘 살겠구나! 어디 보자. 손 좀 줘봐!"
"네? 손이요? ……."


우물쭈물하는 나를 쓰윽 올려다보시더니, 장갑을 채 벗기도 전에 얼른 끌어당겨서 찬찬히 살펴보셨어요.

"공부 좀 더 해라!"
" 공부 좀 더 해서 교수가 되어야겠다. 교수 되면 앞길이 창창하다."
"네? 하하하, 교수요?"


할머니 말투가 조금 거칠고, 얼굴 생김새도 좀 괴팍하게(?) 보였는데, 거침없이 관상을 본다 하고, 내 손을 끌어당겨 보더니 공부 좀 더 해서 교수가 되라 하시고…. 아무튼 여느 어르신들보다 조금 남달랐어요. 대답 대신 웃으면서 알았다는 듯이 대꾸를 하고는 돌아서 나오는데, 할머니가 또 뒤에서 한 마디 더 하셨어요.

"둘이 잘 살아래이! 투닥투닥 싸우지 말고 잘 살아래이! 알았재! 둘이 참 보기 좋다."

거친 말투였지만, 속맘은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 수 있었어요. 다니면서 이래저래 만나는 사람들은 참 정겹고 살가워서 기분이 매우 좋았답니다. 심소정 곁에 있는 숲에도 가봤는데, 홰나무, 백일홍, 향나무, 소나무…. 시원한 나무 숲 사이로 난 산책길도 퍽 멋스러웠답니다.

심소정 곁에는 시원한 숲이 있어요. 홰나무, 백일홍, 향나무, 소나무... 이곳을 찾는 이들은 한여름 땡볕도 겁나지 않을 거예요.
▲ 심소정 숲 심소정 곁에는 시원한 숲이 있어요. 홰나무, 백일홍, 향나무, 소나무... 이곳을 찾는 이들은 한여름 땡볕도 겁나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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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자 선생의 얼이 숨 쉬는 곳, 일원정

야은 길재 선생을 기리는 '지주중류비'랍니다. 구미시 오태동, 선생의 무덤이 멀리 뵈는 곳에 있지요. 김숙자 선생은 길재 선생의 제자라고 하니 놀랍기만 합니다. 이 먼 땅, 거창에서 선생과 남다른 인연을 만나니 퍽 기쁘기도 하였지요. 이뿐 아니라, 구미 선산 낙봉서원에서도 김숙자 선생의 제사를 지낸다고 하네요.
▲ 지주중류비 야은 길재 선생을 기리는 '지주중류비'랍니다. 구미시 오태동, 선생의 무덤이 멀리 뵈는 곳에 있지요. 김숙자 선생은 길재 선생의 제자라고 하니 놀랍기만 합니다. 이 먼 땅, 거창에서 선생과 남다른 인연을 만나니 퍽 기쁘기도 하였지요. 이뿐 아니라, 구미 선산 낙봉서원에서도 김숙자 선생의 제사를 지낸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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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황강을 따라 남상면 전척리로 들어갑니다. 이곳으로 가기에 앞서 먼저 대산리 한산 마을에 있는 '김숙자 사당'에 들렀어요. '김숙자'란 이름은 우리한테 매우 낯익답니다. 구미에서 꽤나 이름난 어른이 한 분 계신데, 바로 야은 길재 선생이지요. 이 분은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성균관 박사까지 지낸 '성리학자'였지요. 길재 선생의 업적이 남겨진 곳이면 어김없이 그 제자들 이름이 함께 나온답니다. 김숙자를 비롯하여 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길재 선생의 제자였던 김숙자 선생의 사당이 바로 이곳 거창 땅에 있다는 게 퍽 놀라웠습니다. 아울러 구미 선산에 있는 낙봉서원에서도 김숙자 선생의 제사를 지낸다고 하니 참 인연이 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남문화재자료 제126호 구미에서도 이름난 야은 길재 선생의 제자인 김숙자 선생의 사당이랍니다. 길재 선생의 업적이 남겨진 곳이면 어김없이 함께 자리하는 김숙자 선생... 매우 남다른 인연 때문에 퍽 인상깊게 남았답니다.
▲ 김숙자 사당- 추원당 경남문화재자료 제126호 구미에서도 이름난 야은 길재 선생의 제자인 김숙자 선생의 사당이랍니다. 길재 선생의 업적이 남겨진 곳이면 어김없이 함께 자리하는 김숙자 선생... 매우 남다른 인연 때문에 퍽 인상깊게 남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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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자 선생의 후손과 유림들이 세운 일원정이에요. 황강이 내려다뵈는 곳에 세웠는데, 지난날에는 서원으로도 쓰였다고 하네요. 객사도 한 채 있답니다.
▲ 일원정(경남문화재자료 제 78호) 김숙자 선생의 후손과 유림들이 세운 일원정이에요. 황강이 내려다뵈는 곳에 세웠는데, 지난날에는 서원으로도 쓰였다고 하네요. 객사도 한 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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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강이 내려다보이는 일원정 앞에는 김숙자 선생의 신도비가 있어요.
▲ 김숙자선생 신도비 황강이 내려다보이는 일원정 앞에는 김숙자 선생의 신도비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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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물길이 휘돌아 가는 황강을 바라보고 있는 정자가 바로 '일원정'이에요. 여기는 앞서 소개한 김숙자 선생의 후손과 유림들이 선생을 뜻을 기리려고 만든 곳인데, 지난날에는 서원이기도 했다네요. 굽이치는 황강 물결을 바라보며 선생께 성리학을 배우던 유림들의 글 읽는 소리가 여기서도 들리는 했답니다.

언젠가 신문에서 우리 나라 정원문화 이야기를 소개한 걸 본 적이 있는데, 일부러 아름답게 꾸며서 만든 딴 나라와는 달리 자연을 그대로 옮겨와 꾸미지 않은 멋이 스며들어 더욱 아름답다는 이야기였어요. 한 마디로 우리 나라 정원은 자연이 정원이고, 정원이 자연이라는 얘기였지요. 자연 속에 그대로 녹아 들어간 그런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어느 나라보다 더 아름답다고 하더군요. 참으로 그랬어요. 우리가 둘러본 심소정과 일원정만 봐도 그런 멋스러움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곳이었지요.

거창 땅에서 김숙자 선생의 사당과 정자 몇 곳을 둘러본 뒤, 이젠 해발 500m나 되는 '밤티재' 고갯길을 따라 신원면으로 넘어갑니다.

"아! 이곳엔 또 어떤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어렴풋이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구나! 하고 여기며 고갯길을 올라가는데, '거창'이라는 땅이 그렇게 가슴 아프고 슬픈 곳인 줄 미처 모른 채, 오로지 끊임없는 오르막과 살갗을 아리게 할 만큼 따가운 땡볕과 씨름하면서 또 다시 자전거 발판을 밟아갑니다.


태그:#거창, #일원정, #심소정, #김숙자사당,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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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자전거는 자전車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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