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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벽송사 서암정사. '석굴법당'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지리산 벽송사 서암정사. '석굴법당'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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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넘은 것 같다. 지리산 서암정사(서암)를 처음 찾았던 때가. 서암의 첫 인상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국적이기까지 했다. 걸음을 떼기가 어려울 정도로 감탄을 토해냈었다.

암자가 동굴 속에 있었다. 부처도 보살도 다 그 동굴의 바위에 조각돼 있었다. 지리산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어 전망도 빼어났다. 우연한 기회에 처음 찾은 곳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그 이후 가족과 함께 때로는 친구들이랑 몇 번 더 찾았었다.

아이들과 함께 5년여 만에 서암정사를 찾았다. 며칠 전이다.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왕복 2차선의 88고속국도를 타고 달리다 인월 나들목으로 빠져 지리산 쪽으로 향한다. 금세 지리산계곡이 오른 편으로 자리한다. 자동차가 실상사 앞과 백무동계곡 입구를 거쳐 칠선계곡 방면으로 곧잘 달린다.

서암정사 들어가는 길. 여느 암자와 분위기가 다르다.
 서암정사 들어가는 길. 여느 암자와 분위기가 다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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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법당으로 들어가는 길. 연꽃이 눈길을 끈다.
 석굴법당으로 들어가는 길. 연꽃이 눈길을 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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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은 지리산 칠선계곡 초입에 자리하고 있다. 행정구역상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 속한다. 해인사의 말사인 벽송사와 이웃하고 있다. 서암은 벽송사의 산내 암자로 벽송사 주지였던 원응(元應)이 1989년부터 10여 년 동안 불사를 일으킨 곳이다.

주차장에서 서암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그러나 오르는 길은 조금 가파르다. 흡사 해탈의 경지에 오르려는 수행자의 길 같다. 숲의 내음이 코끝을 간질인다. 숲속에서 들려오는 매미소리가 귀를 즐겁게 해준다. 잠자리 무리는 둘째아이 예슬이의 길동무가 돼 준다. 잡았다가 바로 놓아주는 것을 알았는지 잠자리가 딸아이의 손에 쉽게 잡혀준다.

서암 입구에 다다르니 두 개의 돌기둥이 우뚝 서 있다. 현판은 따로 없지만 다른 절에 비교하면 일주문쯤 되겠다. 이 기둥을 지나자마자 절벽에서 눈을 부릅뜨고 내려다보는 이가 있다. 그 시선에 놀라 쳐다보니 사천왕상이다.

여느 사찰처럼 화려한 단청을 한 목조 사천왕상이 아니다. 돌로 만들어졌다. 정확히 표현하면 바위에 새겨진 것이다. 사천왕상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 몸집과 표정에 금세 주눅이 들고 만다.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그렇다. 죄인을 대하는 것 같은 표정이 왠지 눈에 거슬린다.

그 사이로 난 동굴 같은 길을 따라 들어가니 '대방광문(大方廣門)'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돌에 새겨진 편액이다. '부처님의 무한한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일 게다.

양쪽으로 크고 작은 동자상과 불상이 여기저기 서 있다. 전라남도 화순 운주사처럼 질서라고는 찾을 수 없다. 숨바꼭질이라도 하는지 '날 찾아보라'고 숨어있는 것 같다. 이름 모를 갖가지 야생화도 울긋불긋 고개를 내밀고 있다. 꽃 색깔이 단풍 같다.

석굴법당. 서암정사의 상징이 되고 있다.
 석굴법당. 서암정사의 상징이 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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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의 속살을 볼 차례다. 그것은 석굴법당이다. 석굴법당 입구에는 안양문(安養門)이라고 씌어 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극락전이다. 이 곳이 바로 석굴법당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부처님과 보살이 온통 조각으로 서 있다. 왼쪽, 오른쪽 심지어 천장에까지도 보살이 조각으로 새겨져 있다. 경외감이 엄습해 온다. 법당 가운데엔 아미타부처가 앉아 있다. 그 양 옆으로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자리를 깔고 앉았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보살과 나한, 사천왕도 들어서 있다. 연꽃과 용의 형상을 한 조각도 있다.

불상 조각보다 더 놀라운 것은 법당이다. 그 자체가 자연 동굴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 모든 불상과 조각이 하나의 큰 바위에 새겨진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라북도 진안에 있는 마이산의 수많은 돌탑에 감탄을 토해내지만 그것보다도 입이 더 벌어진다.

이 아름다운 불상들을 조각한 이는 홍덕희라는 석공이다. 오직 불심 하나로 10년 동안 조각을 했다는 사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비로전으로 가는 길에서 내려다 본 석굴법당. 법당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비로전으로 가는 길에서 내려다 본 석굴법당. 법당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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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정사 비로전.
 서암정사 비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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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보다도 더 시원한 석굴법당을 나와 산으로 조금 오르니 비로전이다. 삼각으로 놓인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부처와 보살이 눈에 들어온다. 자연의 일부인 양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게 석굴법당과 똑같다. 바위에 조각을 한 것이 아니라 그럼을 그려놓은 것처럼 보인다.

"부처님이 왜 동굴에 갇혀있지?"

서암을 둘러보고 주차장으로 되돌아 나오면서 둘째아이 예슬이가 던진 한 마디다. '그것이 아니고…' 하면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주려는 찰나, 큰아이 슬비가 대꾸를 한다.

"바보, 부처님도 더우니까 동굴 속으로 피서를 간 거지."

모두가 웃으면서 걷다보니 금세 주차장이다. 서암을 등지고 나오면서 문득, 서암의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생소하고 이국적으로 다가섰던 예전과 달리 지극히 한국적으로 변했다는…. 그런데 암자는 크게 변한 게 없다. 아마도 그사이 내 마음이 바뀌었을까?

지리산 서암정사. 지리산의 빼어난 풍광까지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지리산 서암정사. 지리산의 빼어난 풍광까지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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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서암정사. 여름 한낮에 암자를 둘러보던 예슬이가 약수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있다.
 지리산 서암정사. 여름 한낮에 암자를 둘러보던 예슬이가 약수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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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비와 예슬이가 지리산 서암정사를 둘러보고 있다.
 슬비와 예슬이가 지리산 서암정사를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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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서암정사, #벽송사, #지리산, #칠선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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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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