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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을 벗어 던진 그 해. 수능을 마치고 나자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들이 참 많아졌다. 고3 일년 동안 제멋대로 비죽비죽 자란 머리도 바꾸고 싶고, 대학생 언니들이 입는 예쁜 치마도 하나 갖고 싶어졌다. 친구들과 바다로 산으로 온갖 여행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또하나 꼭 하고싶은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아르바이트. 다른 일들을 하려거든 일단 돈이 필요한 것은 당연지사. 더구나 나는 더 이상 어린 학생이 아니었다. 갓 졸업한 새내기에게는 무엇보다도 내 손으로 돈을 번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동경이 있었다. 

한껏 멋 부릴 나이. 학생이 아니고 싶은 나이. 나도 돈을 벌 수 있다! 일을 할 수 있다!

학생 티를 벗어 버리고 자유로운 어른이 되고픈 마음은 나를 아르바이트로 향하게 했다.

교복을 벗고 나서 첫 아르바이트, 드디어 교복을 팔다 

수능이 끝나고 난 어느 날 학교 옥상. 우리는 그렇게 무언가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다.
▲ 탈출 수능이 끝나고 난 어느 날 학교 옥상. 우리는 그렇게 무언가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다.
ⓒ 김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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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봤지만 남들은 잘만 구하는 아르바이트 자리가 내 눈에는 그렇게 쉽게 띄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입학 전 방학 한달 남짓 짧은 기간만 할 수 있고, 특별한 기술은커녕 사회생활 전무한 학생에게 일자리가 호락호락하게 나타나 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몇 번의 퇴짜를 맞고 자신감이 저 만큼 아래로 떨어져 있을 때, 드디어 나도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다. 교복판매 아르바이트였다. 

교복이야말로 한철 장사다. 정확히 말하면 동복과 하복, 이렇게 두 번 장사로 일년을 나는 사업이다. 판촉 활동뿐 아니라 제품을 받고 정리하고 판매하는 모든 일들이 딱 그 때에만 집중된다. 따라서 고용주의 입장에서 그 한 달만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꼬박 열두시간 일에 간신히 최저 임금에 준하는 수준의 박봉이었지만, 세상물정 몰랐던 당시엔 그런 것들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나에게 일자리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고, 호랑이 담임선생님보다도 무서운 사장님 앞에서 행여 실수를 할까 노심초사하여 요령 한번 피우는 일 없이 교복을 날랐다. 공부할 때보다 훨씬 더 열심히 했다.

그렇게 전전긍긍했지만 첫 아르바이트라 하는 일마다 실수투성이였다. 보통 '교복을 맞춘다'고 하지만 요즘 대형 브랜드의 교복은 기성복이다. 대신 일반 기성복보다 훨씬 세밀하게 사이즈가 나오기 때문에 그 중에 가장 맞는 옷을 골라 입고는 기장과 폭 등을 조금 손을 보는 식이다.

내 옷 사이즈도 정확히 몰랐기에 학생들에게 딱 맞는 사이즈를 한번에 척척 내주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 눈대중으로 이 정도면 잘 맞겠다 싶어서 주었는데 희한하게 학생 손에만 들어가면 힙합 바지보다도 더 커서 헐렁하거나, 작아서 팔이 들어가지 않아 애쓰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했다. 여학생에게 남학생 니트조끼를 주질 않나 중학교 교복 바지에 고등학교 와이셔츠를 주질 않나, 아이 옷 한 벌을 입히는 데 초보 알바생은 기진맥진이다.

이렇게 언뜻 봐도 서툴기만 한 아르바이트생도 신입생 학부모님들 눈에는 전문가로 보이는 모양이다. 어제까지 나도 교복을 입고 있던 학생이었고, 오늘에서야 유니폼을 입고 판매원으로 변신했는데 말이다. 특히 첫아이의 교복을 구입하는 궁금증 많은 학부모는 전문가로 보이는 나에게 많은 질문을 한다.

"교복 마이(자켓)에 울은 몇 프로 들어가 있나요?"

나는 울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손빨래 해도 되는 건가요? 물 빠지는 건 아니죠?"

전문가인 우리 엄마한테 여쭙고 싶었다.

"우리 애는 덤벙거려서 옷이 금방 더러워져서 흰 와이셔츠는 안 되는데, 다른 색깔은 없나요?"

궁금한 것은 교복뿐이 아니다. 바로 대답하기에 난처한 질문도 많다.

"생전 처음 듣는 학교를 배정 받았는데…… 그 학교 좋은가요? 대학은 몇 명 정도 갔죠?"
"꼭 교복을 입어야만 하나요?"

다시 말하지만, 난 전문가가 아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그럴듯하게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아이고, 어머니!(라는 호칭은 필수였다) 아이들 교복은 당연히 좋은 걸로 사주셔야죠. 3년을 입어야 되는데 질이 좋아야죠. 저희 회사의 제품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OO공법으로 만든 특수 OO 소재를 사용했고, 저기 어디 멀리 OO에서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믿으셔도 됩니다. 확실히 달라요."  

난 비전문가 아르바이트 점원으로서 모르는 단어를 외워서 말했을 뿐이지만, 듣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능수능란한 설명에 반쯤 넘어오기 마련이다. 그래도 부모님의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이쯤에서 쐐기를 박는다.

"어미니, 안 좋은 거 입으면요. 우리 애들은 학교 가서 기 죽어요."

교복 질이며 공법이며 사은품이 좋으네, 마네 다 필요 없다. 아이들 기 죽는다는 얘기에, 평생 한번 사주는 교복인데 하면서 부모님의 지갑은 열리기 마련이다.

"이거 재고 아니야?" 한 마디에 전 매장이 올스톱!

재고는 그 점포가 떠맡는다. 다른 교복점의 상황은 모르겠지만 내가 일했던 곳에서는 그랬다. 미리 선주문을 넣어 그 만큼을 본사로부터 사와서 파는 것이기에 남은 교복에 대한 손해는 스스로가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얼마만큼 적절히 주문하느냐가 중요하다. 사장님의  특별한 선택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그 해 어떤 학교의 어떤 사이즈 교복이 많이 팔릴지는 사장님도 모르는 일. 그렇다고 없어서 못 파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재고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내가 일했을 때 5~6년 전의 재고도 저 깊숙한 곳에서 숨쉬고 있었다. 

당시 매장에는 '재고'와 '신상(품)'이 함께 있었다. 그렇지만 심하게 북적거린 데다가 다른 학교 교복도 섞여 있고 해서 알아차리기 쉽지 않았다. 손님들 눈에는 구별하기 어렵겠지만 직원들 눈은 다르다. 염색이 백 퍼센트 같을 순 없기 때문에 해마다 교복 톤이 조금씩 다르고, 또 결정적으로 옷에 붙어 있는 라벨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바로 알아볼 수 있다.

간혹 날카로운 학부모도 있다. 앞서 설명한 미묘한 차이를 발견한 것이다. 예를 들면 직원의 작은 실수로 아이가 '신상품' 치마와 재고 조끼를 입었는데, 그 색이 차이가 났던 것이다.

"이거 재고 아니야?"

어느 한 곳에서 이 한 마디가 튀어나오면 전 매장이 올스톱. 그 시끄럽고 바쁜 난리통에서도 '재고'라는 단어는 다른 전파를 타는 건지, 모든 어머님·아버님이 시선이 단 한번에 그쪽으로 쏠리게 된다. 웅성웅성 삼엄한 분위기에서 제 발 저린 도둑의 침을 꼴깍 넘어간다.

하지만 우린 전문가처럼 위장된 아르바이트생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달달 외워놓은 것이 있었다. 

"절대 재고 아니에요. 단지 이 옷은 라인형(신상품)이고요. 이 옷은 일반형(라인이 없었던 재고)이에요. 아무래도 요새 학생들의 선호도가 천차만별이잖아요. 어떤 학생은 예쁜 옷을 선호하고 반면에 어떤 학생들은 공부하기 편한 옷을 좋아하고. 바쁘다 보니 그 점은 미처 설명을 못해 드렸어요. 이 학생은 날씬하니까 아무래도 라인이 있는 제품이 좋은 것 같은데 학생 분 생각은 어때요?"

백이면 백 학생은 예쁜 옷을 선호하고, 칭찬하는 분위기에 넘어가게 된다. "재고 아니야?"하는 의문은 지워지고, 집중했던 모든 학부모님의 머리 위에는 '아 그렇구나!' 하는 무언의 말풍선이 생겨난다.

몸이 피곤하고, 바빠서 자주 끼니를 거르게 되는 것보다 나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이런 거짓말에서 오는 죄책감이었다.

한두 푼 하는 옷도 아니고, 한번 사서 3년을 입는 교복인데….

어느새 30만원 하는 교복 값

교복 튜닝을 컨셉으로 한 교복 광고.
▲ 교복 튜닝을 컨셉으로 한 교복 광고. 교복 튜닝을 컨셉으로 한 교복 광고.
ⓒ 엘리트 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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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한 벌 동복 기준으로 보통 20만원이다. 그리고 블라우스 하나, 남학생의 경우는 바지 한 장을 더 추천한다. 여기에 함께 판매하는 부속품들도 많다. 여학생의 경우 스타킹, 쫄 바지, 속바지, 심지어 구두까지. 남학생은 벨트를 구입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어느새 30만원이 다다른다. 

돈 있는 집에서야 걱정 없겠지만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게다가 가방이며 학용품 등 졸업과 입학 때 들어가는 돈을 생각하면 그 부담은 더해질 수밖에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 살 터울이라 큰 아이, 작은 아이 두 명이 들어간다면 옷 값은 두 배로 늘어난다.

교복 값에 놀라 돌아가는 손님도 꽤 있다. 속깊은 요즘 학생들은 그런 사정을 잘 아는지 싫은 내색 크게 하지는 않지만 아쉬운 표정만은 역력하다. 그렇게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겁고, 뒷모습은 짠하다. 좋은 것이라면 다 퍼다주고 싶은 그 마음, 어느 부모가 다를까. 그렇다고 다른 친구들처럼 예쁘고, 좋은 옷 입고 싶은 그 어린 심정을 탓하랴.

힘들고 어렵기도 했지만, 다양한 가족을 만난다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점은 교복을 앞에 두고 벌어지는 부모와 자식간의 작은 실랑이다. 어떡해서든 조금이라도 작고 예쁘게 입고 싶은 학생과 나중에 더 클 것을 생각해서 넉넉하게 입자는 부모님. 대부분 학생 편에 가까운 절충안이 선택된다.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심하게 작은 옷을 입으려고 억지를 부려 혀를 끌끌 차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 대부분 학생들은 예쁘고 잘 맞게 옷을 입는 것 같다. 나는 소위 말하는 '깻잎머리' 세대였다. 저쪽 이마 끝에 끌어온 깻잎을 떡 하니 붙이고, 타이트하게 박은 치마와 거북이 등껍질 같았던 가방메기가 유행이었던 그 때, 난 겁이 많아 혼날까 두려워 입지는 못했지만 그 땐 그저 예쁘고 멋있게 보였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크게 차이가 난다. 고등학생 엄마와 학생은 태연하다. 친구들끼리만 와서 사가는 경우도 많다. 이미 한번의 경험도 있고, 정보도 많아 구입하는 속도도 꽤 빠르다. 그렇지만 중학생의 경우는 다르다.

'마냥 어린애 같은 내 아이가 교복을 입고 중학생이 되다니…' 

중학생 가족에게는 교복 구입이 아빠, 엄마 또 동생과 함께, 어떤 경우는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까지 온 가족이 총출동할 만큼 큰일이다. 처음으로 교복이라는 것을 입고 쑥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학생을 앞에 둔 가족들의 표정에는 만감이 교차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뿌듯하기도 하고 괜히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도 저렇게 교복을 사러 왔었는데...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종종 깜박하고 있었던 나의 학창시절을 자꾸 떠오르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나의 교복과 학창시절, 교복을 사던 그 때의 나와 친구 그리고 나의 가족.

겁도 없이 되고 싶었던 것을 잘도 말하던 때였다. 자기소개를 하면 무엇이 되고 싶다는 장래희망은 꼭 들어갔다. 그렇지만 이제는 꿈이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애매모호해졌을 뿐 아니라 말할 용기도 없고, 사라져 가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친구들. 우리가 간직하고 나눴던 모든 꿈들이 이뤄지길 바란다.
▲ 우리들 고등학교 2학년 친구들. 우리가 간직하고 나눴던 모든 꿈들이 이뤄지길 바란다.
ⓒ 김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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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사진을 꺼냈다.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앳되기만 하다.

한 친구만 연락이 되지 않고 나머지는 간간히 연락하고 지낸다. 다들 어쩜 그렇게도 이 시대를 설명하는 적절한 표본이 되었을까? 한 친구는 졸업하고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한 친구는 자의 반 타의 반 대학원을 갔다. 또 다른 한 친구는 교육학과를 나온 후 임용에 떨어지고, 계약직 교사를 하다가 올 11월에 있을 시험을 준비중이다.

나는 노동부에서 주는 월 30만원을 받으며 인턴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주로 하루 종일 생각하고 종종 복사를 한다. 유일하게 일을 가지고 있는 마지막 한 친구는 일찍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 비정규직으로 두 번째 직장을 다니지만 언제나 세 번째 일을 준비 해야만 한다. 

얼마 전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를 만났다. 

"학교에 있는 선생님이 같아 보이지만 다 달라. 일단 진짜 선생님이 있고, 기간제 교사와 시간 강사가 있어. 기간제 교사는 정규 교사랑 동급으로 돈을 받고 수업해. 다만 계약직이라는 게 문제. 시간강사는 아르바이트처럼 돈을 버는데, 시간당 만 4000원정도 받아."
"우리 학교 다닐 때도 계셨잖아."
"그렇지만 그 때는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 어떤 학교는 절반이 기간제 교사, 시간강사야"

걱정을 안주삼다 보니 술이 저절로 들어 간다. 남처럼 어학연수를 가거나 특별한 기술 있는 건 아니지만 나름 열심히 대학생활을 보냈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렇지 않은가 보다.

교복을 입은 그 때가 찬란한 이유는 꿈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로소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때가 오면 우리는 교복을 벗는다. 그렇지만 쉽지 않기에, 그 때 멋지게 벗은 교복을 다시 입고만 싶게 만든다.

덧붙이는 글 | '아르바이트, 그 달콤 쌉싸래한 기억' 응모



태그:#교복,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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