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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 특별취재팀 = 박상규 박상익 홍현진

[장면 1] 웃통 벗고 거리 누비는 중국 남성들

지난 7월 27일 중국 베이징 선수촌 인근 도로에서 한 행인이 웃통을 벗은채 길을 건너고 있다.
▲ 베이징 무더위 몸살! 지난 7월 27일 중국 베이징 선수촌 인근 도로에서 한 행인이 웃통을 벗은채 길을 건너고 있다.
ⓒ 연합뉴스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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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 도착한 첫날 차창 밖으로 내다 본 풍경 중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웃통을 벗고 다니는 남자들'이었다.

상의를 입지 않고 거리를 누비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남자들, 상의를 입었더라도 더위를 참기 힘든지 반쯤 웃통을 벗은 채 배만 드러내고 다니는 남자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차안에서 봤기에 망정이지, 면대면으로 봤다면 꽤나 민망했을 것 같다. 한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니까.  

"중국에는 '문명 티'라는 게 있어요. 중국엔 여름에 덥다고 웃통을 벗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한테 가서 '문명 티'를 입혀주는 거예요. 이번 올림픽은 '문명 올림픽'이라고 해서 웃통 벗지 말기, 침 뱉지 말기, 머리 자주 감기 같은 '문명 운동'을 하고는 있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어요."

처음 '문명 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땐, '중국이 아무리 경제적으로 급속하게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국민의식'도 함께 성장하려면 한참 멀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중국에서 직접 '웃통을 벗고 다니는 남자들'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순간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의는 입은 채 배만 드러내고 다니는 남자들을 볼 때는 더욱 그랬다. '올림픽이라고 평소처럼 웃통 못 벗고 다니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울까.'

그들이 웃통을 벗고 다닌 이유는 당연히 덥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는 '국민의식이 성장한 곳에서는 덥다고 해서 아무데서나 웃통을 벗고 다니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야만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덥기 때문에 웃통을 벗고 다니는 것은 편하고,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자유롭게 웃통을 벗고 다니는 것을 막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문명'의 이름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아닐까. 전 세계인의 시선이 집중되는 올림픽을 계기로 '대외이미지'를 높이려는 국가의 욕망이 아닐까.

올림픽기간을 맞아 요즘 웃통을 벗지 않고 다닌다는 리우 지앙(26)씨는 말했다.

"지금 당장은 외국인들의 시선 때문에 입고 다니지만 올림픽이 끝나면 다시 웃통을 벗고 다닐 것이다."

7일 아침 한인들이 많이 사는 베이징 왕징구역. 멀리 건물들이 뿌옇게 보인다.
 7일 아침 한인들이 많이 사는 베이징 왕징구역. 멀리 건물들이 뿌옇게 보인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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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2] 목은 따가워도 표정은 밝아

"One World One Dream"(원 월드 원 드림)

6일 오전 10시 30분 중국 베이징 수도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간명한 영어 문장이 계속 눈길을 잡아끈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同一个世界,同一个梦想), 29회 베이징 올림픽이 내건 이 슬로건은 공항 높은 곳 여기저기에 붙어 있다.

이 구호 밑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온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바쁘게 발길을 움직인다. 여러 피부색이 섞이고, 영어와 중국어 그리고 한국어가 동시에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이른 시간이지만 올림픽 개막 이틀을 앞둔 베이징의 출입구인 공항은 이미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올림픽의 이상이면서, 다민족 갈등을 '봉합해'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싶은 중국의 야망이 담긴 구호 'One World One Dream'을 지나면 올림픽 마스코트 '푸와'(福娃)가 외국인을 맞이한다.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귀여운 푸와 앞에서 외국인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올림픽 자원봉사자들은 공항에서부터 차고 넘쳤다. 공항과 시내 거리는 물론 세계에서 몰려온 기자들이 이용하는미디어센터(BIMC) 등에서 활동하는 자원 봉사자는 총 50만 명이 넘는다. 올림픽 개최라는 '100년 동안 꾼 꿈'을 실현할 날을 목전에 뒀기 때문일까. 이들 자원봉사자들의 얼굴은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는 베이징올림픽 마스코트인 '푸와'가 베이징을 찾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는 베이징올림픽 마스코트인 '푸와'가 베이징을 찾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 박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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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제2외국어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면서 이번 올림픽에 자원봉사를 하는 한 학생은 "중국인들은 지금 100년을 기다려 왔던 일을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에 매우 흥분돼 있는 상태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렇게 중국인들의 얼굴은 '쾌청'하지만, 베이징의 공기는 여전히 매캐하다. 베이징의 대기오염은 중국의 아킬레스 건 중 하나다. 중국 정부는 베이징 올림픽이 결정된 2001년 11월 이후 공기 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지난 7월 20일부터는 베이징 시내의 모든 건축 현장의 공사를 중지시켰다. 뿐만 아니라, 공기 오염의 우려가 있는 베이징 인근 공장들도 가동을 중단시켰다.

그야말로 눈물겨운 노력을 한 셈이다. 하지만 개막을 이틀 앞둔 현재 베이징은 스모그로 가득하고 시야는 넓지 못하다. 때로는 눈과 목이 따가울 정도다. 그럼에도 잔치를 앞둔 중국인들의 표정은 밝다. 어쩌면 그 긍정의 자세가 올림픽을 앞둔 중국의 힘인지도 모른다.

[장면 3] '무질서 속의 질서' 몸에 배인 중국인들

8월의 베이징은 소문과는 달리 심하게 덥지는 않았다. 날이 흐린 탓이었지만 구름보다 하늘을 뒤덮은 스모그가 햇볕을 가려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대국의 수도답게 넓은 도시는 차선마저 널찍해 보였다.

현대, 닛산, 시트로앵, 폭스바겐, 마쯔다, BMW, 크라이슬러까지 서울에서는 보기 드문 메이커의 차량들이 자연스럽게 도로를 메우고 있었다. 도로엔 차뿐 아니라 한국에선 이미 모습을 감췄거나 새로운 모습의 자전거 오토바이들 또한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혼잡과 혼란. 외부인의 시선으로 본 베이징의 거리는 꽤나 위태로워보였다. 차도의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지고 횡단보도에 파란 불이 켜져도 신호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교통량이 많은 대로와 교차로를 제외하고 횡단보도나 신호등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사람이 지나가고 있는데 무릎 근처까지 밀고 들어온 범퍼. 지나가는 차를 멈추게 하면서 재빨리 움직이는 사람들. 이러다 나도 다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과 베이징 거리에 대한 불만이 싹텄다.

하지만 하루종일 택시를 타고 움직이면서 바라본 베이징의 거리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서울에서 25년 동안 살면서 차도의 주인은 당연히 차라는 생각이 박혀 있었다. 횡단보도는 사람이 걷는 길이지만 차도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상식이다.

그러나 베이징의 거리는 달랐다. 도로에서 자전거가 느리게 지나감을 탓하는 차도 없었고 자신이 차량의 진행을 방해하려는 자전거도 없었다. 추월을 하면 하는대로 길을 가로지르면 가로지르는대로 그저 차와 자전거가 함께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베이징의 거리엔 느리게 움직이는 만만디 도로의 미학이 숨어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자전거가 바깥쪽 차선에서 달리고 있을 때 자동차 운전자들의 신경은 날카로워진다. 그 신경은 자신의 갈 길을 막는다는 생각이 들 때 폭발한다. 그렇게 차선을 잘 지키고 신호위반도 하지 않고 제한속도도 지키는 서울의 거리가 오히려 더 위협적이고 삭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하루만에 베이징의 도로에서 어떤 낭만을 느꼈다면 과장일까. 베이징에 들어온 첫날. 나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자원봉사자들의 미소, 강렬한 사천요리가 아니었다. 사람에게 보다 관대한 베이징의 차와 거리는 3주 뒤 서울로 돌아갈 내게 작은 생각거리를 남겨주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SK텔레콤 T로밍이 공동 후원하는 '2008 베이징올림픽 특별취재팀' 기사입니다.



태그:#베이징올림픽, #베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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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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