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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오늘과 같은 상황(기자회견)은 피하고 싶었다고 했다. 얼마든지 훌훌 털고 평화롭고 편안하게 지낼 수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결코 KBS 사장 개인의 거취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편안한 길을 선택할 수 없었다고 했다. 정연주 KBS 사장이 6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심경이다.

 

정권의 장악 시도에 정면으로 맞선 공영방송 사장

 

정 사장은 감사원의 해임 권고 결의를 비롯해 최근 전방위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그에 대한 사퇴 압력이 '이명박 정권의 KBS 장악 의도'임을 분명히 했다. 정권의 안위와 정치적 목적의 표적 감사이며, 정치적 수사라고 비판했다. 그에 대한 감사원의 해임 권고 결의에 대해서는 역사에 감사원의 수치로 기록될 것이란 점도 분명하게 지적했다. 정 사장은 공영방송을 다시 정권의 홍보도구로 돌려놓으려는 정권의 장악 시도에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하게 했다.

 

정연주 사장은 KBS 사장 해임을 둘러싼 이번 논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공영방송 KBS의 독립성에 있어서 기념비적 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법원이 정 사장에 대한 해임이 부당하다고 최종 판결한다면 그 자체가 KBS의 독립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판결이 될 것이며, 그 반대로 판결이 나온다면 KBS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서 KBS 사장 임기 문제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하는 과제를 던져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정 사장의 이런 발언은 다분히, 그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지휘에 따른 것처럼, 혹은 어디선가 오는 신호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시나리오대로 아마도 '정 사장 축출 시나리오'가 강행될 것임을 예감하고 있는 발언인 듯싶다.

 

어쨌든 정 사장의 발언대로 정 사장 해임 건에 관한 법원의 판단은 공영방송 KBS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됐다. 특히 이번 사안은 정 사장이 기자회견에서 누누이 밝힌 것처럼 정 사장 개인의 거취 문제가 아니라, 공영방송인 KBS의 독립성, 나아가 이 나라 민주주의의 근간이 달린 사안이어서 법원이 어떻게 대응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게 됐다.

 

게다가 이번 사안은 분초를 다투는 화급한 사안이기도 하다. KBS는 7일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 등 행정 소송 등을 내기로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치밀한 시나리오는 이런 법정 소송을 사실상 원천봉쇄하는 방안까지도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 당초 12일로 예정돼 있던 KBS 이사회를 8일로 앞당겨 열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감사원이 KBS가 최종 답변서를 제출한 지 하루 만에 무리하게 감사 결과를 발표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감사원이 감사 결과 발표 시기를 무리하게 서두르고, KBS 이사회 일정까지 긴급하게 앞당긴 것은 이명박 대통령 방중에 앞서 정 사장 해임 시나리오를 일단 끝내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은 일찍부터 나왔다. 특히 KBS 임시 이사회 일정을 감사원 감사 발표 이틀 후로 앞당겨 잡은 것 역시 정연주 사장과 KBS의 법적 대응을 사실상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가처분 신청 등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나오기 이전에 정연주 사장에 대한 해임 강행 절차를 속전속결로 끝내려 한다는 것이다.

 

시험대에 선 법원, 신속한 판단이 필요하다

 

그런 만큼 법원의 판단이 여러 측면에서 주목된다. 특히 가처분 신청 등에 대해서는 법원의 신속한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게 됐다. 사상 유례가 없는 사안인 데다가 KBS, 나아가 공영방송 전반의 독립성은 물론 민주주의의 근간에 직결될 수 있는 중대 사안이고, 그것도 화급을 다투어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점에서 법원 역시 어렵고 힘든 시험대에 선 꼴이 됐다.

 

하지만 정연주 사장 해임 건에 대한 법원 판단 이전에 정연주 사장의 이번 기자회견과 그 내용 자체가 사실은 KBS, 나아가 한국언론사에서 역사적 전기가 될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이런 식의 기자회견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다. 공영방송 사장이 권력의 방송 장악 의도에 대해 이처럼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결코 굴복할 수 없다며 방송 독립을 위해 전면에 나선 일은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아마 처음 있는 일이다.

 

정 사장은 모든 권력기관을 동원한 자신에 대한 전방위적인 사퇴 압박에 대해 "설마 이런 상식 밖의 일들이 벌어지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은 정말 상식 밖의 정권이다. 온갖 놀라운 일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강행한다. 마치 "이건 몰랐지"라는 식으로 사람들을 놀래키고 있다.

 

하지만 지난 5~6월 촛불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역사'는 그들만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언론인 '정연주'는 2008년 8월 6일 또 하나의 '역사'를 썼다. 그 역사가 앞으로 어떻게 쓰여질지는 속단할 수 없다. 하지만 오랜만에 정연주 사장의 꿈에 나타났다는 모친의 말씀대로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


태그:#정연주, #정연주 퇴진 압력, #방송의 독립성, #감사원 KBS 특감,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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