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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빨리 찬바람이 불어 장사라도 잘되었으면 좋겠다며 조그마한 희망을 얘기한다.
▲ 옥수수할머니 어서 빨리 찬바람이 불어 장사라도 잘되었으면 좋겠다며 조그마한 희망을 얘기한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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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이 내리쬐던 3일 오후 전남 여수 진남시장의 골목길. 옥수수 할머니는 하릴없이 부채질을 해대며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름 휴가철이라 이렇게 손님이 없을 줄 뻔히 알면서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리어카를 끌고 오늘도 거리로 나선 것이다.

"어때요, 손님 좀 있나요?"
"뻔하잖아요. 이리 놀고 있어도 답답한께 나왔어요. 하루에 만원벌이가 힘들어."
"얼른 여름이 지나가야지, 가스비는커녕 차비도 못 벌어."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삶은 옥수수와 찐 고구마를 5년째 팔고 있다.
▲ 옥수수할머니의 포장마차 삶은 옥수수와 찐 고구마를 5년째 팔고 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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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할머니는 검정쌀, 차조, 콩 등을 판다.
▲ 곡물 곡물할머니는 검정쌀, 차조, 콩 등을 판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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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할머니의 노점상은 여름철이 가장 힘들다. 하루 1만 원의 매출을 올리면 가스비 2천 원, 왕복 교통비 2천 원, 점심 식비 2천 원, 방세 4천 원 이렇게 1만 원의 지출이 생긴다.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삶은 옥수수와 찐 고구마를 팔아도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사실상 남는 게 없다.

할머니는 단칸방에서 혼자 산다. 여수 신기동의 제일 싼 단칸방이 사글세 월 12만 원이다. 방세만 해도 하루에 4천 원이다.

"고향은 어디세요?"
"고향, 이곳이 고향이여~ 내 사는 곳이 고향이지, 다 필요 없어."
"이쪽(여수) 말을 안 쓰시는데요?"
"열아홉에 시집 와서 48년이 넘었지. 이제는 성도 이름도 없어. 그냥 옥수수 할머니라고 불러."

진남시장에서 옥수수 할머니로 통하는 할머니의 올해 나이는 68세. 노점에서 파는 물건은 이곳 시장(진남시장)에서 받아온다. 상부상조다. 그렇지만 이따금씩 인근 상가에서 손님들 주차할 곳이 없다며 이곳 노점상들을 시청에 신고하거나 상가와 노점상간에 시비가 붙는 일이 있어서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자기들 물건 팔아주는데도 이따금씩 신고를 해. 인색해."

할머니는 노점상이나마 마음 편히 장사할 수 있게 시청 단속이라도 없었으면 좋겠다. 이제 나이가 들어 몸이 불편해 리어카를 끌고 옮겨 다니는 것이 힘에 부친다. 곁에서 곡물을 파는 할머니 또한 장사가 너무 안 된다고 말한다.

"지난해에는 리어카를 끌고 몇 번을 쫓겨 다녔어. 집까지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끌고 다녔어. 단속이 심해서... 가다 쉬기를 몇 번이나 한지 몰라. 시장 선거 때는 한 달 단속을 안 하더니 또 하더라고. 박람회 실사단 왔을 때는 노점상이 지저분하다고 얼마나 단속했는지 알아요?"

홀로 지킨 무심한 세월, "몸이나 건강했으면..."

풍성한 여름 과일
▲ 과일가게 풍성한 여름 과일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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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노점에서 옥수수와 고구마를 판 지 5년째. 식당(분식)을 하다 장사가 여의치 않아서 손을 털고 부채만 떠안았다. 부채질만 연신 해대던 할머니는 당신이 지나온 세월에 대해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식당이 망해서 자식들에게 무거운 짐만 안겨줬다고….

할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내고 34살에 혼자 되어서 그만큼의 무심한 세월을 홀로 지켜왔다. 자식들을 키우며 새벽 3시면 일어나 집안일 챙겨놓고 돈 벌러 다녔다. 밤 10시가 다되어 집에 돌아와도 힘든 줄 모르고 여태껏 살았었는데 이제는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너무 힘들다.

지난 세월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며 이내 침묵한다. 한참 후, 어서 빨리 찬바람이 불어 장사라도 잘되었으면 좋겠다며 조그마한 희망을 얘기한다.

"식당을 하다 쫄딱 망했거든요. 찬바람이 나야 장사가 되지, 4개월(6월~9월)은 완전 적자예요. 처음 시작했을 때는 제법 되더니, 갈수록 안 돼. 매상이 떨어져."

여름날 오후의 시장 풍경, 진남시장은 장사가 잘 될까?

싱싱한 갈치가 가득하다.
▲ 어물전 싱싱한 갈치가 가득하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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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시장의 경기는 어떨까. 여수에서 제법 장사가 잘 된다는 진남시장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다. 점포 10여 곳은 문을 닫고 휴가를 떠났다. 풍성한 여름 과일과 싱싱한 갈치가 시선을 붙든다. 먹을거리 가게에는 이따금씩 손님이 든다. 

가을의 대표적인 생선 전어가 나왔다. 전어회를 썰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 돌아오듯 이곳 시장과 할머니의 포장마차에도 손님들이 많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이제 가을의 문턱인 입추(8월 7일)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입추가 지나가면 이 무더위도 물러나고 곧 찬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할머니의 장사도 가을 바람 타고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가을의 대표적인 생선 전어가 나왔다.
▲ 전어회 가을의 대표적인 생선 전어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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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진남시장 입구의 노점상들
▲ 노점상 여수 진남시장 입구의 노점상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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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옥수수할머니, #진남시장, #리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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