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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중순, 폭염주의보에 시달리던 몸이 겨울 나라인 호주에 가니 얼마나 좋은지 가슴 속이 다 시원했다. 여행이나 관광 계획 없이 언니네 집에 잠시 머물면서 쉬다오는 것이 목적이어서 별다른 일정이 있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냥 집에만 있기에는 좀 아쉬운 마음이 들어 1박 2일 여행 계획을 짰다. 집에서 두 시간 가량 걸리는 숲속 작은 오두막을 숙소로 정하고 부담 없이 인근 국립공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우리가 묵기로 한 곳은 B&B(Bed & Breakfast :  숙박과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시설)인 <Windrush Cottage>.

 

조용한 숲 속에 뚝 떨어져 있는 오두막은 보기만 해도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꽃 피고 하늘 맑은 봄이나 여름이라면 더 예뻤겠지만 약간은 쓸쓸한 겨울철의 숲 속 오두막도 나름의 정취를 담고 있었다.

 

 

땅이 넓은 나라이니 집 앞뒤는 모두 넉넉한 마당이자 산책로. 멀지 않은 곳을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맑은 공기 속에 여기저기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앞마당의 작은 연못은 수수했지만 연 뿌리가 얽혀있는 것을 보니 연꽃이 피어나면 무척 아름다울 것 같았다.

 

짐을 풀고나서 근처의 'Tarra Bulga 국립공원'에 들어서니 양치류의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며 까마득한 높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숲속길을 걸으며 나무 구경을 실컷 하고, 폭포 구경까지 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어두운 밤. 별빛 하나 없이 오두막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빼고는 완벽한 어둠의 세상이었다.   

 

벽난로 앞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며 주인인 존 할아버지(66)와 지나 할머니(62)-나이로 보나 모습으로 보나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젊지만-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자녀들은 외국에서 살고 있고 두 분이 살면서 주말에만 손님에게 숙소와 식사를 제공한다고 했다.

 

자신들은 숙소 옆에 이어져있는 자신들의 집에서 지내고 있으니 언제든 필요하면 부르라며, 따뜻한 차와 과자를 권했다. 집안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직접 그린 듯한 그림이 눈에 띄어 물어보니 모두 지나 할머니의 솜씨란다. 오래 전부터 그림을 그려왔다고 했다. 딸아이와 머물게 된 방 침대 머리에도 할머니의 장미꽃 그림이 걸려있었다.

 

고요한 밤, 귓속을 가득 채우는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낯선 곳이라는 어색함 없이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전날과는 달리 쨍하게 맑은 하늘이다.

 

식당으로 내려가니 지나 할머니가 직접 호주식 아침식사를 준비하며 기다리고 계셨다. 갓 구운 빵과 쥬스, 커피, 소시지와 달걀, 과일.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넉넉한 몸매와 푸근한 웃음의 할머니가 차려주시는 덕에 맛있게 먹었다.

 

친구들과 모여 은퇴 후에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보면 빠지지 않는 것이 전원주택 얻어 살면서 가끔 손님도 맞고 하면 심심하지도 않고 돈도 좀 벌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소일 거리로 하기에는 몸이 보통 고단한 것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고, 가끔 손님 받아서야 어디 수입이 되겠냐는 의견 또한 빠지지 않는다.

 

이번에 만난 호주의 지나 할머니는 자기 집을 가지고 살면서 말 그대로 소일하듯이 주말에만 손님을 받아 묵게 하고 아침식사를 마련해 주신다. 물론 저녁식사도 미리 요청하면 정찬으로 준비해 주신다고 한다.

 

연금으로 생활하는 호주의 노년은 아무래도 여유로울 수밖에. 먹고 사는 것과 의료비를 연금 수입으로 완전히 충당할 수만 있다면 그외의 어떤 일일지라도 시도하고 실천하기에 마음 편할 것 같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퇴직금 등 가진 돈을 몽땅 쏟아부어 무언가를 시작해야 하니 위험하고 위태롭기 그지없는 노년이 되는 것이다. 

 

헤어지기 전 기념사진을 찍으며 인사를 나눴는데 할머니는 처음 만났을 때와 하나도 변함 없는 웃음과 태도였다. 낯선 이국 사람들을 배웅하며 할머니는 오래도록 웃음을 짓고 계셨다. 나도 할머니께 손을 흔들며 좋은 그림 많이 그리면서 숲속 오두막에서 아름답고 여유로운 생활 하시기를 마음 속으로 오래도록 빌었다. 

 

덧붙이는 글 | www.windrushcottage.com.au
Email : windrushj@bijpond.com


태그:#호주, #여행, #노인, #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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