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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하러 왔어요. 나를 좀 체포해달라니까." 하소연 하는 효진 스님
 "자수하러 왔어요. 나를 좀 체포해달라니까." 하소연 하는 효진 스님
ⓒ 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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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하러 왔어요. 나를 좀 체포해달라니까."

지난 2일 자정 경 금천 경찰서 입구는 예닐곱 명의 경찰들이 막아선 가운데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경찰에게 도로를 가르는 철문을 부여잡고 애타게 호소한 사람은 효진 스님(실천불교전국승가회 사무처장). 조금 전 연행된 사람들을 한 번 만나보겠다는데도 경찰이 이를 제지하자 생각해낸 고육지책이었다. 효진 스님은 그러나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운이 나빴다면 그 역시 연행돼 조사를 받고 있어야 했다.

"합의안 보증하겠다"던 홍준표 원내대표는 보이지 않고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 각 정당대표와 면담을 요구하며 기륭 조합원과 시민 사회단체 대표들이 국회를 기습 점거한 것은 지난 1일. 해고 노동자들의 농성 1074일, 단식 53일이 되던 날이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원내부대표와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들과 면담했다. 반면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를 찾은 기륭 조합원과 학생, 종교인 들은 원내대표실 앞 복도에서 연좌농성을 벌여야 했다. 홍준표 의원이 이들과의 면담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공식절차를 밟지 않은 방문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게 이유.

농성자들은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홍 의원을 만나야 했다. 만나서 따질 건 따지고 요구할 건 요구하고 싶었다. 지난달 10일 원내대표실을 찾은 바 있는 이들 기륭 노동자들에 홍 의원은 약속했던 것이다. "내가 보증하겠다!"고.

두 차례의 고공농성을 비롯해 기륭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이 1000일을 넘기는 동안 꿈쩍도 없었던 기륭전자가 교섭에 응한 것은 지난 6월 7일이었다. 이 날 양측 실무대표는 자회사를 만들어 노동자들을 교육하고 그로부터 1년 뒤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그 다음날 배영훈 대표는 말을 바꿨다. 기륭전자 직원들이 조합원들의 복직을 반대해 어쩔 수 없다는 것. '근로자가 아닌 투사'들과 함께 일할 수는 없다며.

이런 상태에서 한 달을 보냈고 마침내 지난달 10일 기륭 조합원들은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을 방문했다. 홍 의원을 비롯해 배영훈 대표, 서울지방노동청장, 김성태 의원도 함께 한 이 자리에서 양측은 지난 6월 7일 교섭 안을 기초로 합의를 진전시키기로 약속하고 서명했다. 홍 의원이 보증하겠다고 한 것은 바로 이 합의였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뒤통수를 맞았다.

이후 한나라당은 노동청장과 배 대표만 불러 대화하면서 일방적으로 사측을 편들었다. 이어 배 대표는 7월 10일 안을 뒤집었다.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연행된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활동가(왼쪽)과 송경동 기륭공대위 집행위원장
 연행된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활동가(왼쪽)과 송경동 기륭공대위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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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 1075일, 단식 54일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홍준표 의원이야말로 합의 주체인데 사측 편만 들어서 사태를 꼬이도록 만들었다."

3일 새벽 1시 반 경 금천 경찰서에서 만난 송경동 시인이 분통을 터뜨린 이유다. 송 시인은 기륭공대위 집행위원장이다. 홍 의원에게 두 차례에 걸쳐 면담을 요청했으나 특별한 이유도 없이 거절당했다는 송 시인은 이어서 말했다.

"우리는 죄 지은 거 없다. 업무방해한 일 없다. 오는 7일까지 국회 일정이 없다고 들었다. 휴가 중이란 말이다. 7월 10일 합의에 참여해 '내가 보증 하겠다'던 홍 의원은 우리를 문전박대했고 공권력을 이용해 강제 연행했다."

지난 1일 기습점거 때부터 이튿날 밤 자정이 넘도록 경찰에 연행된 이들이 먹은 것은 물밖에 없었다. 계획에 없던 단식을 한 것이다. 단식이 문제는 아니었다. 적어도 월요일(4일)까지는 버텨보자 다짐했으니까. 국회 사무처 의사국장도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겠노라 약속한 터였다.

기대가 너무 컸을까. 정작 홍준표 의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이 이들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여러분의 항의절차는 잘못 됐으니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면담을 요청하라." 2일 오후 4시 경의 일이다.

그로부터 4시간여가 더 지난 뒤 이번에는 국회 사무처의 한 관계자가 농성자들을 찾아와 퇴거를 종용했다. 구기성 국회 의사국장이 사복형사 수십 명을 대동하고 나타난 것은 밤 11시경. 그 시간까지 현장에 남아있던 농성자 5명 즉 기륭전자 노조 윤종희·강화숙 조합원, 송경동 시인,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활동가, 프리랜서 작가 김연정씨는 즉시 영등포 경찰서로 연행됐다.

예배 준비와 같은 개인적 사유로 효진 스님을 비롯한 종교인 3명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효진 스님이 자신을 체포해달라고 하소연한 이유도 이때문이다. 엄연한 공범자니까. 연행 과정에서 경찰은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아 연행사유를 알 수는 없었다. 이들의 죄목이 '퇴거 불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때는 기륭전자 관할 금천 경찰서로 이송된 이후였다.

윤종희·강화숙 조합원은 3일 새벽 1시 30분 경 인근 녹색병원으로 후송됐다. 40일이 넘는 장기간의 단식 후 복식 중이었던 이들은 스스로 몸을 가눌 수조차 없었다. 윤씨의 경우 여경 서너 명의 부축을 받으며 끌려가다시피 경찰서를 나섰다.

송경동 시인을 비롯한 나머지 3인은 "(연행된)상황이 코미디"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담당 형사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봤으나 "조사를 해봐야 안다"는 말만 되돌아왔다.

연행 소식을 듣고 달려온 시민사회단체와 기륭노조 조합원 30여 명은 굳게 닫힌 경찰서 철문을 붙들고 항의하고 있었다. 빗방울이 간간히 흩뿌리던 3일 새벽 2시 무렵이었다. 농성 1075일, 단식 54일의 밤은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태그:#기륭전자, #홍준표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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