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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코벨을 매료시킨 한국 고대 문화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 표지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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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속에 남아 있는 외국인의 자취를 찾아보자. 이슬람 상인이었다고 전해지는 처용, 고려가요 쌍화점에 등장하는 서역 상인 회회아비,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귀화해 일본군과 싸웠던 일본 장수 사야가, 일제 침략기 항일 언론 대한매일신보의 발행인 베델, 의열단의 무기 수송을 도와주었던 아일랜드인 쇼 등등….

미국인 동양미술사학자 존 코벨도 우리 역사 깊숙이 자취를 남긴 외국인 중 한 사람이다.

일본 미술사와 고고학을 연구했던 코벨은 하와이 대학에서 정년퇴임한 뒤 한국을 방문했다. 6개월 정도 예상하고 방문했던 코벨의 한국 생활은 9년으로 연장되었다.

자신이 연구하고 강의했던 대부분의 일본 문화재가 한국 땅에서 건너갔거나 한국 예술가의 손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한국 고대 문화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한국 체류 기간 동안 한국 문화를 연구하면서 존 코벨은 자신의 평생 학문 성과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보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대부분의 일본 문화재가 '일본 고유의 것'이거나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해했던 과거를 부정하게 된 것이다.

존 코벨은 1981년 12월 16일 <코리아타임스>에 글을 썼다. 그 글의 제목이 '내가 컬럼비아 대학에서 배운 일본사는 가짜였다'였다.

헐값으로 팔려간 귀중한 문화 유산

존 코벨은 1960년대 말 덕수궁을 찾아가다 우연히 들렀던 골동품상에서 청동거울 두 개를 샀다. 하나는 연잎 모양의 팔각형 테두리를 하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둥근 원형이다. 두 개 합쳐서 10달러였다.

1960년 한국 고물상에서 10달러에 구입한 것, 현재 세계에 3개만 남아 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 두 개의 청동거울 1960년 한국 고물상에서 10달러에 구입한 것, 현재 세계에 3개만 남아 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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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동 거울은 나중에 진품으로 확인됐다. 둥근 원형의 거울은 태양 숭배 사상이 나타난 것으로 2천년 전 제작되었고, 팔각형의 동경은 고려시대 것으로 밝혀졌다. 더구나 이런 동경은 현재 세계에서 3점만 전해지는 귀중한 것이다.

존 코벨이 단돈 10달러로 구입한 청동거울 두 점은 현재 호놀롤루 은행 금고에 보관되어 있다. 일제 침략기 무방비 상태로 외국으로 넘어간 문화재는 셀 수 없이 많다. 존 코벨의 청동 거울에서도 확인되지만 해방 후에도 우리 문화재의 외국 유출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돈벌이의 수단이 되어 헐값으로 팔려간 것이다.

일본에 남은 한국 문화

교토 야사카 신시를 지키는 뿔 달린 고구려 개
▲ 코마이누 교토 야사카 신시를 지키는 뿔 달린 고구려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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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나 일본의 절에 가면 사천왕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사천왕은 절을 지킨다. 일본에 가면 절 말고 신사도 많다. 신사 앞에는 신사를 지키는 '코마이누'가 있다. '코마이누'를 한자로 쓰면 고려견(高麗犬)이다. 왜 고려견일까? 존 코벨의 설명을 들어보자.

캄차카 늑대는 몸무게가 80킬로그램까지 나가며, 50킬로그램은 보통이다. 북극이나 툰드라 늑대는 털이 검은색부터 은회색, 회색에 걸쳐 있다. 헤엄은 치지 못한다. 왕녀 신공, 일본에서 진구로 부르는 인물이 369년 한반도에서 왜를 정복하러 올 때 고구려 개를 배에 싣고 왔다면 이 늑대개들이 꽁꽁 묶여 있다가 경비견으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신공 왕녀는 권력이 대단한 무녀였고, 오진 왕, 닌도쿠 왕 등 거의 1백 년에 걸쳐 왜왕이 된 그녀의 후손들은 지금 경주 대릉원에서 보는 것처럼 무속 신앙 양식의 거대한 능묘에 장식되어 있다. 일본에서 거대 고분, 미사시기라고 부르는 매장 형태이다. 이들이 가져온 고구려 개가 신사의 지킴이가 된 것은 논리상 하자가 없다. (책 속에서)

호류지의 구다라관음상
▲ 백제관음상 호류지의 구다라관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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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대표적인 국보 불상 중 '구다라관음상(百濟觀音像)'이 있다. 7세기 초 백제에서 일본 왕실로 건너간 녹나무로 만든 불상이다. 현재 일본 나라 지방의 호류사에 있다.

구다라관음상은 백제의 불상 조각가가 녹나무로 만든 입상이다. 녹나무란 좀약을 만드는 방충제의 원료가 되는 목재로 벌레가 먹거나 쉽사리 썩지 않는다.

백제 사람들이 만든 이 녹나무 불상은 장장 1300여년 세월을 일본에서 보냈다. 

이 녹나무 불상은 백제의 빼어난 불교 미술품이기에 저마다 "백제에서 건너온 훌륭한 관음불상이다"라는 계속되는 찬사 속에 어느 사이엔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백제 것만이 최고다"라는 의미로 이어졌다.

더불어 백제 것이 아니면 시시하고 가치가 없다는 뜻의 구다라나이(くだらない)란 말의 어원이 되었다.

한국 문화의 바탕까지 이해하려 노력한 존 코벨

65세에 한국에 와서 75세까지 열정적으로 한국문화 연구에 몰두한 존 코벨은 7권의 책과 1400편의 칼럼을 남겼다. 그 열정과 관심 속에 탄생한 책이 <일본 속에 남은 한국미술>이다.

존 코벨은 폐렴으로 건강이 나빠 귀국한 후 한국에서 생활했던 시절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한국인은 그 나름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진실로 순수한 사람들이다. 일본에서는 내가 아무리 일본어를 잘하고 일본역사와 문화에 정통해 있었어도 그들과 동화되기 어려웠다. 여기 한국에서는 내가 진실로 따뜻하게 맞아들여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인의 그런 마음은 순수한 데서 온 것임을 나는 알 수 있다." (책 속에서)

누구보다 한국 문화를 사랑했던 존 코벨은 그 문화를 창조했던 한국인의 마음까지도 이해하려고 노력한 속 깊은 사람이었다.

덧붙이는 글 | 존 카터 코벨/김유경 편역/글을읽다/2008.6/25,000원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 코벨의 한국문화 2

존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옮김, 글을읽다(2008)


태그:#일본 속의 한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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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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