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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외교 난맥상이 심각하다. 외교가 국익을 지키기는커녕, 모든 혼란과 위기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정권 출범 초기부터 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으나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외교안보 분야의 '참사'가 꼬리를 물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시리즈를 통해 그 원인을 파헤치고 해결책을 모색해본다. [편집자말]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달 31일 오후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독도 관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유명환 외교부 장관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달 31일 오후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독도 관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유명환 외교부 장관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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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외교 문제가 발생하면서 개혁·진보 진영은 물론이고 보수진영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외교 대란'에서 교훈을 찾아 총체적인 개선을 시도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아직 임기가 4년 반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부의 최근 행태를 보면 이러한 의지도 능력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따라 외교 재앙이 5년 내내 반복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 외교 대란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의 철학 부재, 외교안보팀의 편향된 인사 및 컨트롤 타워의 부재, 전임 정부와의 차별성 시도 등을 그 원인들로 짚어왔다.

특히 김대중 정부 때의 임동원, 노무현 정부 때의 이종석과 같이 대통령의 정책과 철학을 꿰뚫고 통일외교안보정책을 총괄·지휘할 인물의 부재를 핵심 원인으로 짚고 있다.

그러나 외교 대란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변화하고 있는 정세에 대한 오판과 이에 따른 전략적 오류, 즉 'MB 독트린' 자체에 있다. 따라서 일각에서 요구하는 외교안보팀의 문책과 쇄신은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 인적 쇄신의 밑바탕에는 'MB 독트린은 옳지만, 외교안보팀이 실무적으로 뒷받침해주지 못했다'는 진단을 전제로 깔고 있다.

실무진의 문제가 아니라 'MB 독트린' 자체의 문제

'MB 독트린'의 핵심은 한미 전략동맹 추구와 대일 관계 강화를 통해 한-미-일 3각체제를 구축한다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남북관계를 한미관계보다 하위에 두고 대북정책의 코드를 미국에 맞춰 한미, 한일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한-미-일 정책 공조를 강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정세에 대한 명백한 오판에 기초한 것이었다. 오판에 따라 세워진 'MB 독트린'이 애초부터 성공할 수 없는 이유다.

그리고 오판과 잘못된 전략 수립의 핵심에는 유명환 외교부 장관도, 김하중 통일부 장관도 아닌, 바로 이명박 대통령 자신과 대선 캠프 참모진, 그리고 대통령직인수위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다. 현재 통일외교안보 수뇌부를 'MB 독트린'의 설계자들로 대체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정세와 상황 인식에는 어떠한 오류가 있을까? 정세 판단과 전망이 전략과 정책 수립의 기초가 된다고 할 때,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정세 인식에 오류가 있었다는 평가가 적실성을 갖는다면, 'MB 독트린'은 애초부터 성공할 수 없었다.

경제살리라고 뽑았는데, 멀쩡한 외교 망쳐놔

첫째는 민의에 대한 오판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마치 국민들이 정부·여당에게 '백지수표'를 준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이러한 오만에는 '노무현 정부가 얼마나 못 했기에, 국민들이 이렇게 밀어주나'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ABR(Anything But Romuhyun :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면 다 좋다)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대선과 총선에 반영된 민심은 '경제를 살리라'는 것이지, '통일외교안보 정책을 전면 수술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2007년 대선 직전에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차기 대통령의 과제 중 가장 중요한 문제를 경제라고 답변한 비율이 70-80%에 달한 반면, 남북관계와 외교안보문제는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에 반해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롯한 대외정책에 대한 지지도는 50%를 상회한 반면에, 경제정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70%를 넘었다.

이는 유권자들이 노무현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정책에 실망해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을 밀어주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마치 노무현 정부의 통일외교안보정책도 전면 수정하라는 위임을 국민들에게 받은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결과는 경제와 외교 모두 경쟁적으로 망쳐놓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둘째는 외교 문제에서 국내 여론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몰이해이다. 민주화·정보화 시대에는 외교 관계에 있어서 상대국도 중요하지만, 국내 여론도 대단히 중요하다. 미국 등 여러 나라들이 21세기 들어 '공공 외교'를 천명하면서 대외 정책에 국내 여론을 적극 반영하고 이를 의식하고 있는 현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외교 관계를 국가 간의 정상과 정부 관계 차원에서 이해하는 '낡은 관성'에 얽매여 있다. 국내 여론을 살피지 않고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 강화를 추진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고, 이것이 다시 대미·대일 관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의 외교 정책 대수술은 민주주의와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민의와 여론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이를 반영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특히 비판 여론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부는 국제 무대에서 '총성없는 전쟁'을 치르기도 전에 국내에서 '촛불과의 전쟁'을 계속 치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촛불 민심을 힘으로 억압하면 할수록,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실추되고 '소프트 파워'를 발휘할 잠재력을 스스로 갉아먹게 될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길은 '민의 존중'이라는 민주주의의 상식을 구현하는데 있다.

'미국, 미국' 하면서 정작 미국을 몰랐다

대외 관계에서도 중대한 오판들이 잇따랐다. 첫째는 미국에 대한 오판이다. 오판도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오판은 미국의 대북정책 및 한미동맹에 대한 판단 착오다. 한미관계를 남북관계보다 우위에 두기로 한 이명박 정부는 이를 위해 두 가지를 시도하게 된다. 하나는 대북정책 수정이고, 다른 하나는 한미동맹 '복원'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통일외교안보 참모진들은 DJ-노무현 시대의 한미관계가 악화된 핵심적인 이유를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 간의 갈등이라고 지목했다. 그리고 그 책임을 '햇볕정책'으로 돌리면서, 북핵 폐기 우선 및 남북경협과의 연계, 북한 인권 거론, 상호주의 원칙 적용 등을 통해 지난 10년간의 정책과는 다른 대북정책을 추구해야 한다는 프레임을 짰다. 이러한 정책 노선은 '과거'의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대단히 흡사한 것이었다. '과거의 부시'였다면 적어도 한미관계 차원에서는 통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는 2006년 말~2007년 초에 대북정책을 전환했다. 이미 여러 차례 지적한 것처럼, 오늘날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거부해온 '햇볕정책'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2007년 양자 대화에 적극 나섰고 선(先) 핵폐기 노선의 불가능성을 인지하고 '동시 행동 원칙'을 받아들였다. 50만톤의 식량 지원에도 나섰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변화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충분히 간파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부시가 '확실히' 대북정책을 전환한 시점은 2007년 1월부터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2008년 2월에 출범했다. 1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있었음에도 이명박 정부가 '과거의 부시'를 상대하려 했던 것이다. 정부의 대북강경책에도 불구하고 한미관계가 강화되기는 고사하고 갈등과 이견으로 점철되고 있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미동맹에 대한 오판은 한마디로 '코미디'다. 이미 여러 차례 지적했지만, 노무현 정부 말기 때 한미동맹은 미국의 전직 핵심관료가 "전두환·노태우 때보다 더 강해졌다"고 말할 정도로 너무 강해져서 탈이 날 정도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황당하게도 '한미동맹의 복원'을 들고 나와 미국의 기대 심리를 잔뜩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미 노무현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대폭 수용했기 때문에 미국에 해줄 것이 별로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반대로 미국에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불만을 심어주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의 '동맹 복원 쇼'의 불똥은 중국에게까지 튀었다. 지난 5월 이명박 대통령의 방중 기간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한미동맹은 냉전 시대의 지나간 유물"이라고 직격탄을 날렸고, 거듭 "중국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확인까지 해준 것이다.

여기에 바로 중국에 대한 오판이 자리잡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 전략동맹과 한중 전략적 파트너쉽이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한미·미일동맹을 주축으로 자신에 대한 군사적 포위·봉쇄를 추구해온 미국의 전략에 김빼는 것을 핵심적인 동아시아전략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역주행을 해버렸고, 이에 중국은 공개적으로 옐로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더구나 이명박의 외교안보 참모진들은 인수위 때 한국을 찾은 미국 전문가들에게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동맹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해, 중국의 의구심을 증폭시켜 놓고 말았다.

후쿠다의 '아시아 중시 외교', 간파했어야

논란이 되고 있는 한일관계 역시 일본에 대한 오판이 자리잡고 있다. 미일동맹과 국내의 보수적 여론을 정권의 지지 기반으로 삼았던 고이즈미-아베 정권과는 달리 후쿠다 정권은 '아시아 중시 외교'를 표방했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한일·중일관계 개선이 필수적이었다.

실제로 후쿠다 정권이 들어서면서 '중일 밀월시대'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중일관계는 개선되고 있다. 후쿠다의 '아시아 중시 외교'와 후진타오의 '미일동맹 강화 견제 노선'이 조응했기 때문이다. 럼스펠드는 아웃되고 체니는 식물인간이 된 임기말의 부시 행정부도 제동을 걸 순 없었다.

이명박 정부는 바로 이 점을 포착했어야 했다. 후쿠다 정부의 '아시아 중시 외교'를 제대로 간파했다면, 대일 외교의 기선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한일, 중일관계 개선을 원한다면, 역사와 영토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주지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과거는 묻지 않고 미래로 나가자'는 제안을 했다가,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후쿠다 정부가 '독도 도발'을 하면서 한국이라는 변수를 얕잡아보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한일관계는 '미래 지향적인 관계'는 고사하고 사실상 올스톱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이러한 비판이 결과론적인 것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후쿠다 정권이 등장한 시점은 이명박 정부 출범 반년 전이다. 후쿠다 총리는 집권과 동시에 한국·중국·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예방외교의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태그:#MB 독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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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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