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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맞춰보세요. 첫째 질문? 광교산에 찻집이 있을까요? 없다? 있다? 이곳에서는 주말과 일요일에 무슨 일이 생긴다. 이곳엔 사람이 있고, 인심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마시는 차가 있다. 덤으로 유기농 농산물이 있다. 이쯤되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둘째 질문? 남자가 달인 차를 마셔본 적이 있나요, 그것도 수원 광교산 등산뒤 은은한 차를 마셔 본 적이 있나요. 이런 질문한 것도 알고보면 남자가 차를 대접하는 곳이 있으니 물어본 것 아닌가?

그럼 어디 있을까? 위치는 광교산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종점버스 정류장을 한참 지나 예전의 예비군훈련장 못 미친 지점에 하광교동 다목적회관이 있다.

등산객에게 은은한 차를 대접하는 정인오씨
 등산객에게 은은한 차를 대접하는 정인오씨
ⓒ 김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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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1층에 차와 친환경쌀, 유기농 호박, 상황버섯을 다루는 집이 최근 자리 잡았다. 아직 간판은 달지 않았지만 상호는 '광교내추럴'이다. 차를 대접하는 남자! 정인오(40)씨가 방장이자 대표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정 대표가 차탁 앞에서 준엄하게 앉아있다.

지나가는 등산객마다 눈길과 발길이 닿으면 차를 권한다. 기자도 보이차를 곱배기로 음미했다. 끊인 물을 옹기에서 다려 여러 번 우려 마신다. 차는 씁슬한 것 같지만 뒷끝이 깨끗하다.

"땀을 흘리면서도 시원하실 거예요"

정 대표가 손님에게, 아니 말동무에게 차를 권하면서도 한마디씩 덕담을 건넨다. 이날 첫개시한 손님은 '교육계' 맞벌이 부부다. 남편은 교육연구사, 아내는 초등학교 교사. 아내가 특히 차를 좋아해 자리를 뜨지를 못한다. 세상이야기를 나눈 덤으로 오이고추도 듬뿍 받아갔다.

차를 숨쉬게하는 전통 옹기, 정인오씨의 애물단지다.
 차를 숨쉬게하는 전통 옹기, 정인오씨의 애물단지다.
ⓒ 김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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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내추럴은 광교촌장인 정면채 광교지킴이가 확실히 밀어주고 있다. 농업경제학 박사로 한국 유기농 대가인 김종숙 한국농업대학 교수도 손님 호객행위에 나섰다. 이 학교 출신인 안 팀장과 오 팀장도 팔을 걷고 나섰다. 광교내추럴의 성장은 물론 한국 농업 발전을 위한 원대한 발걸음을 시작한 것. 그 첫 번째가 광교내추럴.

김 교수는 "개업선물로 커피포트 사올게" 하며 자신이 둥지를 튼 것처럼 좋아했다. 김 교수와 정 대표는 사제지간이다. 정 대표는 한국농업대학 특용작물학과를 올해 2월 졸업했다. 버섯, 약초, 인삼 재배 등을 배우는데 정 대표는 보이차와 호박을 조화시키는 공부를 했다. 

손님에게 차를 따라 준뒤 자신도 한잔 슬쩍
 손님에게 차를 따라 준뒤 자신도 한잔 슬쩍
ⓒ 김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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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정 대표에게 손님을 극진히 모셔야 더 큰 것을 얻는다며 둥지 튼 제자에게 아낌없는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이어 보이차 예찬론도 끊임이 없다. "몸이 원하니까 차를 마시게 되더라구요. 차를 마시면 마음이 참 부드러워져요" 굵은 빗줄기가 사흘 가까이 내리다 멎은 뒤 내리쬐는 햇볕처럼 광교산의 오후. 광교내추럴에 훈훈한 정이 넘친다.

정 대표의 부친이 어렸을 적부터 농사의 고단함과 농촌의 어려움을 알고 정 대표 자신은 죽어도 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자신도 흙으로 돌아온 것은 운명이라고 말한다.

"농업 쪽으로 출가했습니다"

보이차 한잔 하시겠습니까
 보이차 한잔 하시겠습니까
ⓒ 김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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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전에 절에 들어가 출가를 하고자 했던 게 꿈이었다. 출가하려고 찾아간 절에서 아침에 산초나무를 앞뜰에 옮겨 심었다. 모처럼 깊은 산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지게지고 땀 흘리는 게 기분이 너무 좋았다.

문득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절로 출가하는 것보다 땀 흘려 지은 곡식으로 대중공양을 하는 것이 자신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 진로를 '확' 바꾸었다. 그때가 2004년 12월. 그리고  그 해 한국농업대학에 입학했다.

처음에는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일주일 정도 수업을 들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러나 인생은 절묘한 만남의 연속인가.

"첫 일주일간 수업을 들은 뒤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어요, 그런데 금요일에 딱 '친환경수업'에서 김 교수님이 인간과 자연환경에 대한 이해와 농업철학에 대한 강의를 듣고 나서 희망을 느꼈습니다. 평소에 생각했던 바와 같은 생각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의 내공을 느낀 것은 당연하죠."

미인이 호박을 만난듯, 정 대표를 통해 약초와 호박이 만난다. 정 대표가 학창 시절 주요 관심사는 '늙은 호박'에 관한 것. 또 맷돌 호박을 기를 때 보이차 잎을 준 것. 보이차(普洱茶)는 발효차의 일종이다. 독특한 향과 색을 가지고 있으며 약용으로도 널리 쓰인다. 호박에 보이차라. 어떤 효과가 있을까. 호박이 미인으로 바뀌었을까 아니면?

정 대표는 20여년 학창 시절부터 차를 즐기는 차인이다. 한국농업대학에서도 차동아리를 만들었다. 슈바이처 박사의 말처럼 '농업은 문화의 근본'이듯이 농업이 살길은 농민이 문화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차동아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차를 마시면서 농업을 이야기하고 문화를 이야기하고 사회를 이야기하였다.

그러다가 차를 마시고 나면 찻잎을 버리는 것이 아까워 찻잎을 순환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3년 전부터 찻잎을 가지고 여러 가지 작물을 시험한 결과 호박에 가장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또 호박의 향과 모양이 특이하게 변해 최상의 고품질 호박이 된 것. 결국 보이차와 호박이 만나 호박의 약성이 더 강해졌고, 서로 상승효과가 생겼다는 것이다.

정씨가 한국농업을 살리기(?)위해 둥지를 튼 수원 장안구 하광교동 다목적회관 1층
 정씨가 한국농업을 살리기(?)위해 둥지를 튼 수원 장안구 하광교동 다목적회관 1층
ⓒ 김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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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대표가 광교산에 둥지를 트게 된 계기는 2학년 때인 2006년에 현장답사를 광교지역에 나와 정면채씨를 알게 된 것. 학생 농사꾼이 진짜배기 농사꾼을 만난 셈이다. 주소지도 하광교동으로 옮겼다. 광교내추럴이라는 상호로 본격 출가하기 위해 행정상 자리잡은 것.

화 그리고 동 

다음달 3일(일) 저녁 6시에는 회관에서 마을음악회를 조용하게 치른다. 농업 쪽으로 출가한 사람을 세상에 알리는 시간이다. 이날 광교내추럴 매장에 민통선지역에서 재배한 쌀 3.5Kg들이도 들어온다.

호박이 미인을 만났나? 농사꾼이 호박을 만났나?
 호박이 미인을 만났나? 농사꾼이 호박을 만났나?
ⓒ 김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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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대표는 요즘 광교산 흙을 베개삼아, 공기를 이불삼아 삼복 더위를 이겨내고 있다. 정 대표와 광교내추럴 일꾼들의 어깨에는 한국농업의 내일이 걸려 있었다. 기자도 단호박을 듬뿍 산 뒤 오이고추를 덤으로 받고 매장을 나왔다. 시민들이 청정 광교산 등산길에서 보이차 호박을 만나는 행운을 가지길을 빌면서.

덧붙이는 글 | - 블로그 : 네이버 http://blog.naver.com/rhinoj(화 그리고 동)
-이 기사는 수원시민신문(www.urisuwon.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정인오, #단호박, #광교내추럴, #광교산, #한국농업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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