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흔아홉 신들의 이야기들을 쉽게 설명한다.
▲ <우리 신 이야기> 표지 아흔아홉 신들의 이야기들을 쉽게 설명한다.
ⓒ 현암사

관련사진보기

"삼촌, 제우스가 하느님 이길 수 있어?"
"하느님은 싸움 같은 거 안 하는데…."
"그럼, 아폴론하고 하느님이 싸우면 누가 이겨?"
"하느님은 싸움 안 한다니까."

9살짜리 조카는 틈만 나면 내게 그리스로마 신들을 들먹이며 누가 센 지를 묻는다. 이름도 어려운 그리스로마 신들을 쫙~꿰고 있는 조카를 보면 기특한 생각이 들면서도, 왜 우리의 신이 아니고 외국의 신을  외우고 있을까 한숨이 나온다.

<우리 신 이야기>는 그 한숨을 덜어주는 책이다. 고조선을 세운 단군, 서천꽃밭을 지키는 할락궁이, 저승세계에서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는 평등대왕, 어마어마하게 몸집이 큰 마고할미, 다섯 방위를 지키는 오방신장, 대들보에 모셔져 집을 지키는 성주신 등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신들이 무려 아흔아홉.

알 듯 모를 듯, 아흔아홉 신들의 이야기

커다란 몸집 때문에 '오줌은 강이 되고 숨결은 바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만으로도 웃음을 자아내는 '마고할미'는 책에서 이렇게 말을 한다.

"산이 높다 하느냐? 내 발 아래 있느니라. 바다가 깊다 하느냐? 내 정강이에 차느니라. 내 앉은 자리는 돌이 되고, 내 디딘 발자국은 못이 되었다. 내가 떨어뜨린 돌은 섬이 되고, 내가 쌓은 흙은 산이 되었다."(112쪽)

'할락궁이'가 진귀한 꽃들이 피어있는 서천꽃밭을 지키는 이야기도 재미있기는 마찬가지다.

"죽은 사람 몸에 뼈살이꽃을 올려놓으면 뼈가 살아 붙고, 살살이꽃을 올려놓으면 살이 살아 돋고, 피살이꽃을 올려놓으면 피가 살아 돌고, 숨살이꽃을 올려놓으면 숨이 살아 나오고, 혼살이꽃을 올려놓음녀 혼이 살아 생겨서, 죽은 줄만 알았던 사람이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납니다. 웃음꽃은 보기만 해도 웃음을 멈출 수 없는 꽃이고, 싸움꽃은 보기만 하면 서로 싸우게 되는 꽃이랍니다."(69쪽)

건국신·천상신·저승신·이승신·군신·집지킴이신·열두띠신

환인, 단군, 주몽, 온조 등 건국과 관련한 신들을 모았다.
▲ 건국신 계보 환인, 단군, 주몽, 온조 등 건국과 관련한 신들을 모았다.
ⓒ 현암사 제공

관련사진보기


<우리 신 이야기>는 '천상천하 아흔아홉 칸'에 각각 자리한 격인 신들을 편의상 건국신·천상신·저승신·이승신·군신·집지킴이신·열두띠신 등 일곱 덩어리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것이 흠집 없는 나눔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읽는 이들이 찾아보기 쉽게, 비슷한 특징을 가진 신들끼리 묶어 놓았을 뿐"이라고 친절하게 밝히고 있다.

건국신은 환인을 비롯해 환웅, 단군, 웅녀, 해모수, 금와, 주몽, 박혁거세 등 익숙한 신들의 이야기들을 묶었고, 천상신은 이름만으로도 위엄을 느끼게 하는 옥황상제를 시작으로 바지왕, 할락궁이, 칠성신 등을 엮었다.

저승신은 진광대왕, 초강대왕, 평등대왕 등 저승 시왕(十王)과, 흔히 저승사자로 불리는 일직차사와 월직차사 그리고 바리데기 등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고, 이승신은 마고할미와 산신령, 서낭신, 호구별상, 자청비 등 친근하고 재미난 신들로 구성했다.

또 백마신장, 둔갑신장, 오방신장, 치우천왕 등은 군신으로, 성주신, 지신, 삼신, 업왕신 등은 집지킴이신으로, 쥐신과 돼지신 등은 열두띠신으로 구분하는 등 <우리 신 이야기>는 모두 아흔아홉 신들의 이야기를 쉽게 보여준다.

이승과 저승에서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우리의 신들

다섯 방위를 지키는 군신인 오방신장.
▲ 오방신장 다섯 방위를 지키는 군신인 오방신장.
ⓒ 현암사 제공

관련사진보기

이승과 저승, 하늘 세상과 땅 세상을 통틀어 으뜸가는 신인 '옥황상제'는 명을 어기는 이들을 벌주지만, 사람들을 널리 사랑하여 누구든지 간절하게 소원을 빌면 다 들어준다. 단, 그 소원이 자기 자신을 위한 거라면 들어주지 않지만. 아무튼 사람들을 벌주고 챙겨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옥황상제의 푸념을 들어보자.

"허허, 어찌 내 명을 어기는 이들이 이다지도 많단 말이냐? 이제는 선녀를 귀양 보내기에도 지쳤고 사람을 돌로 만들기에도 지쳤도다. 벌주는 것이 차라리 못 본 체함만 같지 못하구나."(60쪽)

저승 시왕 중 여덟째 왕인 '평등대왕'은 너그럽고 인자하여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는 사람에게는 그 죄를 덜어 준다. 죽은 이들이 다른 저승 시왕들을 차례로 만나려면 늘 이레가 걸리는데 유독 평등대왕만 죽은 지 백일이 되어야만 만날 수 있는 이유이다. 기다리며 죄를 뉘우쳐야 하기 때문.

"여기서는 누구나 똑같은 대접을 받을 것이니라. 살았을 때 태양처럼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도 얻어먹는 거지와 같을 것이며, 지혜로 세상을 놀라게 하던 사람도 젖먹이 어린아이와 같을 것이다."(92쪽)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은 모두들 뛰어난 능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의 정서에는 맞지 않다. 그들은 대개 힘을 겨루고, 다투고, 고통을 주고받는 등 사람들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어 쉽게 다가갈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우리의 신들은 이승과 저승을 가리지 않고 생활 곳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더욱이 죄를 뉘우치고, 악을 물리치며, 행복을 추구하게끔 사람들의 삶의 자세를 늘 경계시킨다.

이젠 거꾸로 조카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마고할미'와 '제우스'가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니?"

덧붙이는 글 | <우리 신 이야기>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편, 서정오 글 / 현암사 / 247쪽 / 1만2000원



우리 신 이야기 - 문화원형 창작소재 가이드북

서정오 지음, 현암사(2008)


태그:#우리 신 이야기, #건국신, #저승신, #이승신, #집지킴이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북 순창군 사람들이 복작복작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