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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진행될 예정이었던 KBS 정기 이사회가 결국 아무런 안건도 처리하지 못한 채 무산됐다. 신태섭 이사를 해임시키면서 '정연주 사장 축출'을 점점 가시화하고 있는 이사회에 대한 KBS 내부 구성원들과 '촛불 시민'들의 강한 반발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한 이사회 내부에서도 신 이사 해임 건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날치기 처리'가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양승동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장(KBS PD협회장) "일단 1차적으로는 무산시켰다"며 "KBS 내부구성원들과 시민들의 의식이 공유돼 결국 이사회 진행을 막았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양 회장 말대로 1차는 막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YTN도 1차(주총)는 힘들게 막았지만 2차에서는 맥없이 무너진 사례가 있다. 더군다나 주주총회는 미리 시간과 장소를 공지하도록 돼 있으나 이사회의 경우 이를 공지할 필요가 없이 아무 곳에서나 열 수 있다. 어디서든 정족수만 맞으면 성립되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에 대한 KBS노조의 다소 어정쩡한 움직임도 향후 쉽지 않은 싸움을 예고케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최근 거의 매일 같이 KBS 본관 앞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정청래 전 의원은 "노조가 안에서 잘 싸워주기만 하면 밖에 있는 시민들도 수월하게 운동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인데 왜 가만히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따라서 23일 온몸으로 이사회 진행을 막은 KBS 내부 구성원들과 '촛불 시민'들은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하며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향후 대응 방안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이사회는 '정연주 축출'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중"

 

KBS 내부 구성원들과 '촛불 시민'들이 이사회 개최를 막으려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정당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신태섭 KBS 이사의 갑작스런 해임과 곧바로 이어진 '친한나라당' 성향 강성철 보궐이사 선임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양승동 회장은 "신 이사를 부당하게 밀어낸 상황에서 자격 없는 강 교수가 참여한 이사회 시행은 원천무효"라고 말했다.

 

이사회 진행을 막으려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사회에서 '정 사장 해임 권고안'을 상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CBS가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KBS 이사회가 조만간 정 사장에 대해 해임건의를 하면 청와대가 이를 수용, 새 사장을 임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 논란을 더욱 증폭시키기도 했다.

 

언론계에서는 KBS를 둘러싼 일련의 압박이 결국 '정연주 축출'을 위한 치밀한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검찰은 '세무소송'과 관련해 정 사장을 배임혐의로 불구속 기소할지에 대한 여부를 다음 주께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그리고 실제 기소할 경우 KBS 이사회가 이를 이유로 정 사장에 대한 해임안을 방송통신위원회에 건의하고, 방통위는 국가공무원법을 내세워 정 사장의 직무 정지를 명할 것이라는 게 언론계의 전망이다. 끝내는 대통령이 이사회의 해임 권고안을 받아들여 정 사장을 몰아내고 새로운 '낙하산 사장'을 KBS에 앉힐 것이라는 게 정부측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양승동 회장은 "30일이라는 기한이 있었음에도 불도저식으로 신 이사를 밀어내고 급하게 강 교수를 임명한 것은 분명 이사회를 장악한 뒤, 일련의 시나리오에 따라 정 사장 해임 권고안 상정을 시도하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방통위에서 기습적으로 안건을 상정해 신 이사를 해임한 사례를 보면 정 사장 해임 권고안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양 회장은 "이명박 정권이 올림픽 개막 전인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미리 각본을 짜놓은 상태에서 신속한 일처리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며 "개막 전에 다 처리(정 사장 해임)하고 그에 대한 논란은 올림픽 분위기에 묻어 넘어가려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위기감이 든다"고도 말했다.

 

최용수 KBS PD 역시 지난 21일 민변 주최 토론회에서 "이사회 구도가 7:4로 친여 성향이 압도적 우위를 점한 상황에서 감사원 결과가 나오면 이사회는 곧바로 정 사장 해임 권고안을 상정할 것"이라며 "더욱 섬뜩한 이야기는 이 시나리오의 최종 완결지점이 올림픽 개막 전이라는 것이다. 올림픽으로 정치적 현안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급격히 떨어지는 시점에 마무리하겠다는 의혹들이 난무한다"고 전했다.

 

향후 이사회 움직임 예의주시... "또 밀어붙이면 용납 안할 것"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서 일단 23일 이사회 진행은 막았지만 향후 재개될 이사회를 저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18일 방통위의 신 이사 해임 때와 같이 기습 작전을 하듯 '날치기 처리'를 강행한다면 막을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정청래 전 의원은 "이사회는 어느 장소에서든 할 수 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막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KBS 7개 직능단체를 비롯한 내부 구성원들은 "또다시 편법을 동원해 밀어붙인다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또한 24일에는 모든 시민사회·언론단체와 일반 누리꾼까지도 총망라한 '(가칭)방송장악·네티즌탄압 중단을 위한 범국민행동'을 결성해 범국민적인 차원에서 이명박 정권의 공영방송 흔들기에 맞서 나간다는 계획이다.  

 

양승동 회장은 "우리의 상상을 불허하는 갖가지 방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이 정권의 특징인 만큼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 최대한 예의주시할 것"이라며 "허나 만약 또다시 불도저식 밀어붙이기를 자행한다면 KBS 내부 구성원은 물론 촛불을 든 시민들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청래 전 의원도 "이명박 정권이 YTN에 이어 또다시 자신의 언론 특보 출신을 불법적으로 KBS에 낙하산으로 내려 보낸다면 전 국민적인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며 "국민들은 KBS에 대한 수신료 거부운동도 불사할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7일 상암동 DMC 누리꿈스퀘어 건물에서 YTN 주주총회 '날치기 통과'를 맥없이 지켜봤던 기억 때문인지 '촛불 시민'들도 향후 진행될 KBS 이사회에 대해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임홍근(48)씨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사실 YTN 임시주총을 막는 것보다 KBS 이사회를 막는 게 더 어려울 것 같다, 주총은 장소와 시간이 미리 공지가 되는 반면에 이사회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이운영(42)씨도 "일단 23일 이사회를 막은 것은 다행스럽다"면서도 "하지만 차후에 YTN 비슷하게 될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이 최대한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고, 적극적으로 저항해 나가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KBS노조, 내부서 잘 대응해야 하는데 뒷짐 지고 있어..."

 

한편 공영방송의 위기를 둘러싼 현 상황에 대한 KBS노조의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내부 직원들의 구심점인 KBS노조가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하지 못한 채 '뒷짐 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촛불 시민'들은 지난 23일 이사회 장소 앞에서 피켓 항의시위를 벌이던 KBS 직원들이 본관 앞에 등장하자 "PD나 기자들이 피켓을 드는 모습을 보니 정말 눈물이 나도록 힘이 났다"는 반응을 보였다. 40일 넘게 계속된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싸움이 KBS 내부 구성원들의 무관심으로 쉽지 않았음을 표현한 말이다.

 

공무원인 신아무개(34)씨는 "노조원들이 우리와 함께 적극적으로 나서 준다면 해볼만 할 것 같은데 지금 노조의 모습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떻게 자신의 방송이 무너지려 하는 상황인데 이런 식으로 일처리를 하는 건가"라며 "시민들은 밤을 새우면서 공영방송을 지키겠다고 나서고 있는데 노조는 얼굴 한번 비치지 않는 것이 납득이 되질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공영방송 사수"를 외치며 밤샘 촛불 시위에 임했다는 이아무개(52)씨도 "그동안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인지 이사회 장소 앞에서 피켓을 든 KBS 직원들의 모습을 보니 정말 감격스럽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씨는 "공영방송은 국민을 위한 방송인데 노조가 자신들의 복리 증진에만 힘쓴다면 잘못된 것"이라며 "KBS가 직원들의 방송이라고 생각하는 노조원들이 일부라도 있다면 그들은 공영방송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청래 전 의원도 "KBS 앞 광장조차 경찰이 원천봉쇄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든 때와 장소를 바꿔 '날치기 통과'를 할지도 모르는 이사회를 막기 위해서는 내부에서 노조 역할이 중요한데 지금 주객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며 "노조는 국민들이 KBS를 지키겠다고 나서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태그:#KBS 이사회, #공영방송, #정연주, #양승동,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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