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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 가면, 장관도 안 가고, 그러면 (공무원들이) 줄줄이 안 갈 가능성이 있어서 당초 계획대로, 조금 (기간을) 줄이더라도 (휴가를) 가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23일 오후 휴가 인사차 청와대 춘추관(기자실)에 들렀다. 이 대통령은 26일부터 30일까지 5일간 남해안에 있는 군 휴양시설로 여름휴가를 떠날 예정이다. '바다의 청와대'라는 뜻에서 일명 '청해대'(靑海臺)로 불리는 곳이다.

 

당초 이 대통령은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등 현안이 산적한데다, 경제상황까지 좋지 않은 점을 고려해 휴가를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한다. 그러나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고, 대통령이 휴가를 가지 않으면 청와대 직원들은 물론 정부 부처 공무원들도 부담을 느낀다"는 참모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휴가를 가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토요일과 일요일을 끼고 휴가를 가는 식으로 해서 실제 휴가일수를 줄였다. 다만 휴가를 다녀와서도 다음 주말까지는 외국 손님을 접견하는 것 외에는 공식 일정을 잡지 않고 관저에서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노동자 근로시간 기니까, 대통령 휴가가 짧아야지"

 

이 대통령은 "내가 휴가를 가는 것은 공무원도 휴가를 가고, 내수진작에도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물론 (공무원 중에) 해외로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해외 휴가를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무원의 숫자가 많기 때문에 국내로 휴가를 가면 (내수진작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국 정상에 비해 휴가 기간이 너무 짧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외국 정상은 휴가지에서도 일을 할 수 있으니까, (길어도) 상관이 없지만 우리는 그런 편의시설이 없지 않느냐"며 "한국 노동자의 평균 근로시간이 기니까, 대통령은 휴가가 짧아야지. OECD가 아니라 대한민국 평균에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휴가 구상'을 묻는 질문에 "무슨 구상이 있다고 해야 기사가 되는 것 아니냐"며 웃은 뒤, "그냥 쉬면서, 책 읽으면서, 잠도 많이 자고 오겠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과거에 대통령이 휴가 갈 때 '구상'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나중에 보면 뭐가 없더라"며 "대통령 휴가도 휴가고, 5급 공무원 휴가도 휴가로 인정하는게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떤 의미를 붙여서 (휴가 때) 뭘 한다고 하지만, 내용이 없지 않았느냐"며 "이번 정부는 실용정부라고 했으니, 거창하게 이름 붙이는 것 보다는 나중에 행동으로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휴가 기간에 경영서적보다는 법정스님의 수필집 등 문학작품을 주로 읽을 예정이다. 이 대통령은 "(법정스님은) 내 가까운 친구다. 그 사람을 좀 기억하려고 책을 가져간다"며 "욕심 때문에 책을 많이 가져가는 데 다 읽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그래도 많이 읽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독서 외에도 테니스와 수영 등 운동을 하면서 휴식을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전직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이 대통령이 휴가 기간에 읽을 책의 목록을 공개하기로 했다가, 방침을 바꿨다. "괜히 구설수에 오를 수 있고, 상업적으로 이용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 비공개 이유다.

 

처칠 평전 선물한 이 대통령, 현 난국 돌파할 수 있을까?

 

이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행장관급 이상 직원 350여명에게 윈스턴 처칠 전 영국총리 평전 한 권씩을 선물한 바 있다. 처칠 전 총리의 외손녀 실리아 샌디스가 쓴 '돌파의 CEO 윈스턴 처칠,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책이다. 2차 세계대전과 경제대공황이라는 최악의 조건에서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킨 처칠의 리더십이 메모와 편지, 연설문 등의 형태로 생생하게 담겨있다.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은 "공무원들이 책 읽을 시간도 없이 바쁘지 않나. 그래도 (책을) 주면 읽을 것 아니냐"며 "내가 서울시에 있을 때도 책을 선물했었기 때문에 가끔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 2기 참모진에 대한 이 대통령의 책 선물이 최근 어려운 정국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고유가와 물가상승 등 어려운 경제 여건과 쇠고기 파동에 이은 금강산 피격 사망사건, 일본의 독도 영유권 명기 사태 등 각종 악재를 돌파하기 위해 모두 심기일전하자는 의지를 담았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도 청와대 행정관 등에게 책을 선물하면서 "직원들이 반드시 읽어봤으면 좋겠다"며 "다들 어렵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면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격려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휴가를 마치고 오면 금강산이나 독도 등 현안 문제가 싹 풀릴 것으로 기대하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싹 풀릴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적당히 얼버무려 해결하는 것보다 원칙에 맞게 해결하는 게 좋다"고 밝혔다.

 

또한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의 '대북 특사' 제안에 대해서는 "새 정부 들어 처음부터 나온 구상 중 하나"라면서도 "이 시점에 그쪽(북한 측)에서도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금강산 문제는 북한이 (현장 합동조사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무장을 하지 않은 여성을 앞에서도 아니고 뒤에서 총으로 쐈는데, 이것은 남북 문제를 떠나 국가간 통상적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늘 동족을 얘기했던 북한이 뭔가 조치가 있어야 한다. 앞으로 확실히 그렇게 안 할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20여분간 기자들과 환담을 나누다가 "휴가 다녀와서 생맥주나 한 잔씩 합시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태그:#이명박 대통령 휴가, #휴가 구상, #대북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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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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