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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새 대통령이 선출되기까지 몇 달 남지 않았다. 사상 최초로 흑인(정확히는 흑백 혼혈) 대통령의 탄생이 점쳐지는 가운데 공화당 후보 매케인 의원도 근소한 차로 바짝 오바마의 뒤를 쫓고 있다.

미국인들은 어떤 기준으로 자신들의 지도자를 선출할 것인가? 정치를 잘 모르는 대다수의 일반인들에게는 각 후보가 내세운 정책 만큼이나 그 후보들 자체의 됨됨이(character)와 스타일 같은 감성적인 부분도 중요한 기준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인들의 감성적인 기준의 밑바탕에는 정직성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부도덕적인 행위나 심각한 거짓말이 밝혀지면 한 순간에 정치 생명이 끝나버렸던 냉혹한 현실 속에서 후보들의 거짓말은 매스컴과 상대 진영의 치열한 추적의 대상이자 후보들의 아킬레스 건이다.

축 처진 눈, 핏기 없는 얇은 입술, 기름기 쪽 빠진 얼굴색, 만화책에 나온 깡통로봇을 닮은 두상, 아이비 리그의 학력과 헌법학 교수의 경력이 후광을 드리워주는 깔끔쟁이 오바마의 약점은 무엇일까? 그가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는 부분은 어린시절과 관련한 그의 말들이다.

한편 8대 2의 가르마 비율이 넓은 이마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동안의 할아버지, 매케인 후보. 런닝셔츠에 반바지를 입히고 한 손에는 파리채를 쥐어주면 딱 어울릴 것 같은 친근하고 푸근한 인상의 그를 구설수에 오르게 하는 것은 놀랍게도 여자 문제였다.

이 글에서는 후보들의 정책과 정치성향 대신에, 미국의 언론들이 이루어낸 두 후보의 인간적인 부분의 뒷조사를 정리하여 그들의 거짓과 진실을 살펴보려 한다. 우선 오바마를 들여다 보자.

오바마의 어린 시절 가족사진. 왼쪽부터 양부 롤로 소에토로와 여동생 마야 소에토로, 그리고 어머니 앤 던햄.
 오바마의 어린 시절 가족사진. 왼쪽부터 양부 롤로 소에토로와 여동생 마야 소에토로, 그리고 어머니 앤 던햄.

거짓말 논란으로 얼룩진 '대박 회고록'

지금의 '정치계의 록스타' 오바마를 있게 한 것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의 유명 연설, '희망의 담대함(The Audacity of Hope)'와 그의 회고록인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 인종과 유산에 대한 이야기(Dreams from My Father : A Story of Race and Inheritance)>일 것이다.

1995년 출간된 후 빛을 못 보다가 2004년 오바마의 연설 후 재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회고록을 통해 오바마는 막대한 돈을 벌었고 기존의 정치가 뿐 아니라 60년대 시민운동에 기초를 두고 있는 흑인 지도자들과도 차별되는 새로운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즉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를 둔 흑백혼혈, 어린시절 하와이와 인도네시아에서 성장한 자신의 배경을 내세워 오바마는 자신을 미국의 수많은 인종, 믿음, 환경이 일으키는 갈등을 아우를 수 있는 인물로 정치계에 우뚝 선 것이다.

하지만 몇몇 언론은 집요하게 오바마가 어린시절에 대해 쓴 회고와 실제 사실과의 불일치를 물고 늘어졌다.

오바마는 그의 책에서 일관되게 인종문제로 고민하는 어린 자신의 모습을 부각시켰다. 그는 레이라는 흑인 친구와 함께 인종차별에 관해 울분을 토로하고, 그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이곤 했었다고 썼다.

하지만 언론이 찾아낸 레이의 실제 모델인 흑인-일본인 혼혈인 카쿠가와(Kakugawa)는 자신은 하와이에 사는 많은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혼혈아로 생각했을 뿐 전혀 분노에 가득 찬 어린 흑인 소년이 아니었으며 오바마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외로움과 갈망이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시절 오바마를 지배했던 것은 버림받았다는 느낌이지 인종에 대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오바마는 책에서 9살 때 인종문제에 대해 각성하게 된 계기를 "인도네시아에 살던 아홉 살 무렵의 나는 어느 날 자카르타의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를 보러 갔다. 엄마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죽이던 나는 대기실에 꽂혀 있던 잡지들을 이러저리 뒤적이다가 <라이프>지에 사진과 함께 실린 어떤 기사와 맞닥뜨렸다. 그것은 '매복 기습'과도 같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 기사에 실린 것은 검은 피부를 하얗게 만들려고 강한 화학 표백제를 썼다가 피부가 타버린 흑인 남자의 사진이었다"와 같이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라이프>지는 그런 사진은 물론 그런 기사를 실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 후 오바마는 "<에보니>(흑인을 대상으로 하는 미국의 월간 종합지... 필자 주)였나? 아니면 다른 잡지였던가?... 아니 누가 그걸 확실히 기억하겠소?"하고 변명했다. 거머리 기자들은 또 <에보니>지에 그 사실 여부를 문의해 그런 기사나 사진이 실린 적이 없다는 것을 밝혔다.

자서전에는 이 외에도 오바마가 6개월 만에 인도네시아어를 유창하게 했다든가, 다른 하와이의 흑인 소년들과 의형제를 맺어 미군 기지를 싸돌아다니고 인종과 시민운동에 관해 토론했다든가 했다는 일화들이 실려 있었다. 이에 대해서도 매스컴은 오바마의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인터뷰해, 그런 사실이 없다는 증언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언론의 집요한 공격을 받은 오바마는 새 자서전 서문에서 "독자들이 좋아하게끔, 있었던 사건에 덧칠하는 것, 기억에 대한 선택적인 누락의 유혹이 자서전을 쓸 때 빠지기 쉬운 위험"이라고 지적하면서 "나 자신도 이런 위험성 모두를, 아니면 일부라도 성공적으로 피했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아버지도 무슬림, 양부도 무슬림, 오바마는 크리스천?

14일 발매된 시사 매거진 <뉴요커> 표지. 이슬람 복장을 한 오바마와 테러리스트 모습의 미셸을 그린 삽화를 표지에 실었다.
 14일 발매된 시사 매거진 <뉴요커> 표지. 이슬람 복장을 한 오바마와 테러리스트 모습의 미셸을 그린 삽화를 표지에 실었다.
ⓒ 뉴요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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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뉴요커>지가 이슬람 복장을 한 오바마와 테러리스트 복장을 한 오바마 부인의 삽화를 표지에 실어 물의를 빚었다. <뉴요커>지는 오바마를 공격하는 신보수주의자에 대한 '풍자'였을 뿐이라고 밝혔지만 풍자에는 그것이 풍자임을 암시하는 또 다른 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그 표지 그림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이는 오바마의 종교적 정체성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결과만을 낳았다. 

사람들의 의혹에 대해 오바마 측은 일관되게 "이슬람 교도가 아니고 그랬던 적도 없다"고 주장해왔다. 인터뷰에서 오바마는 "생부는 케냐 출신의 흑인으로 그가 살던 마을은 다수가 무슬림인 곳이었지만 별로 신앙심이 없는 인물이어서 이슬람 의식을 치른 적이 없다. 그리고 나는 줄곧 크리스천인 어머니가 키웠으므로 크리스천이라 할 수 있다. 이슬람교와의 유일한 연결점은 양부가 이슬람 교도이며 양부와 어머니, 내가 몇 년간 인도네시아에 건너가 살았던 경험일 것이다. 하지만 거기 학교를 다니면서도 나는 이슬람 의식을 행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매스컴은 인도네시아에서 그가 다녔던 카톨릭 학교와 또 다른 공립학교의 기록에 그의 종교가 이슬람으로 적혀있는 것을 들어 그의 말을 반박하고 있다. 그 기록에 의하면 매주 2시간씩 이슬람에 대해 공부를 한 것으로 나와있다..

이 지적에 대해 오바마 측은 "왜 그 학교 기록에 무슬림으로 올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하여튼 오바마는 무슬림이었던 적이 결코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로부터 두 달 후에는 "오바마는 이슬람을 추종하는 무슬림은 아니다(이슬람교를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적극적으로 믿은 무슬림은 아니 라는 의미)"라고 말을 바꾸었다.  

요약하자면 오바마는 무슬림 아버지에게서(비록 그가 적극적으로 종교의식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해도) 무슬림으로 태어나 인도네시아에서 양부에 의해 무슬림으로 키워지다가 어느 시점에선가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러므로 "나는 항상 크리스천이었다. 나는 이슬람을 추종한 적이 없다. 모스크에서 기도한 적이 없다(이에 대해 친구들은 오바마와 함께 모스크로 몰려가 놀고 기도하곤 했다고 증언했다. 이쯤 되면 친구들이 아니라 웬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는 등의 그의 말은 사실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오바마의 종교적 신념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이슬람 국가들이 오바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 이슬람에서는 부계혈통을 따져 이슬람 교도인지 아닌지를 구별한다. (이슬람 교도들이 자신을 누구의 아들 누구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름에 후세인이나 하산처럼 H-S-N으로 이어지는 돌림자를 가지고 있으면 무슬림으로 간주한다. 오마바의 정식 이름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이다. 이슬람은 대통령이 된 오바마를 배교자로 볼 것인가?

이슬람에서는 어린아이였을 때의 배교행위를 어른이 되어서 행한 그 행위보다는 가볍게 처벌한다. 1989에서 1999까지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을 지낸 메넴은 대통령출마 자격을 갖추기 위해 이슬람교를 버리고 가톨릭을 택했다. 오바마에 비하면 배교자로서 처단당할 요건을 한층 더 잘 갖춘 그도 위협을 받거나 암살을 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이슬람 국가들과 미국의 관계를 보았을 때 오바마의 종교적 정체성은 어떤 식으로든 두 문화권의 충돌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위험한 칼날로 돌아온 그만의 장점들

올해 1월 3일, 민주당 아이오와주 전당대회에서 경선에 승리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부인 미셀, 딸 맬리아(왼쪽), 사샤(가운데)와 함께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올해 1월 3일, 민주당 아이오와주 전당대회에서 경선에 승리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부인 미셀, 딸 맬리아(왼쪽), 사샤(가운데)와 함께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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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강점으로 내세운 점들은 동시에 그를 향한 위험한 칼날이다. <뉴요커> 같은 진보적인 잡지에 실린 이슬람 복장을 한 오바마의 모습은 풍자가 아닌, 실제로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오바마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흑백 혼혈의 혈통, 이슬람 국가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들에서의 경험은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 메이킹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더 이상 들어갔다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아질 듯이 보인다.

그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흑인 유권자들에게 자신이 여기 서 있을 수 있게 된 것은 흑인들의 인권운동 덕분이라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인종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슬람 세계를 잘 안다고 말하면서도 이슬람 교도는 아니라고 극구 부정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흑인임을 강조했다가는 백인들의 표가, 이슬람교를 비롯한 제3세계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다가는 보수주의자들의 표가, 기존의 흑인 지도자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가는 흑인들의 표가 날아가는 것이다. 결국 모든 인종과 문화를 아우를 수 있다는 그의 강점 때문에 오바마는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면서 끊임없이 조금씩 말을 바꾸어야만 했다.

그의 자서전에 얽힌 거짓말과 함께 이런 태도는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 해도 오바마의 신뢰도를 조금씩 무너뜨리기에는 충분한 듯 하다.


태그:#오바마, #매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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