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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일 전에 촬영한 석류꽃과 열매로 거듭난 석류. 가지에 매달린 석류가 가을의 전령사임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석류를 보며 풍요를 느끼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요.
 50일 전에 촬영한 석류꽃과 열매로 거듭난 석류. 가지에 매달린 석류가 가을의 전령사임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석류를 보며 풍요를 느끼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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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2일)은 24절기에서 열두 번째인 대서(大暑)입니다. 1년 중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과 딱 6개월 간격이니 가장 무더운 때가 되겠네요. 지난 토요일(19일)이 초복이었고 중복을 앞두고 있어 여름의 한가운데에 와있음을 실감합니다.

대서부터 20여 일은 '불볕더위'와 '찜통더위'가 이어지는데, 흔히 '삼복더위'라고 하지요. '열대야로 염소 뿔도 녹는다'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밤에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지요. 특히 무더위가 이어지는 시기를 소서·대서 외에도 초복, 중복, 말복으로 나눴는데, 농민들에게 무더위의 경종을 알리기 위함으로 풀이됩니다.

지금부터 9월까지는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는 시기라서 쌀 생산에도 막대한 피해를 줍니다. 그런데 기상청 예보에 의하면 소멸된 태풍 '갈매기'보다 위력이 강한 태풍이 10개 정도 더 만들어질 것이라고 하네요. 그 중 2-3개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겠다고 하니 농작물은 물론 상가와 주택들도 대비해야겠습니다.

즐겨먹었던 '고구마순 찌개'가 생각나는데요. 고구마순에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 끓이면 찌개가 완성됩니다. 시원하고 개운하고 얼큰한 국물 맛에 빠져들면 밥 한 그릇을 언제 먹었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민물 새우를 조금 넣으면 담백한 맛이 일품인데, 쇠고기 찌개도 부럽지 않은 시골의 여름 반찬이지요.

고향집 화단을 떠올리게 하는 화초

벼슬을 상징하는 나리꽃. 검붉은 반점이 벼슬길에 오르기를 기원하는 의미의 길상 문양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종류가 다른지 모르겠으나 어렸을 때 ‘유리꽃’으로 불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벼슬을 상징하는 나리꽃. 검붉은 반점이 벼슬길에 오르기를 기원하는 의미의 길상 문양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종류가 다른지 모르겠으나 어렸을 때 ‘유리꽃’으로 불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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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꽃은 고향집 화단의 홍초와 나팔꽃, 봉숭아 등을 지키는 보초병처럼 항상 뒤편에 서있었는데요. 붉고 하얀 꽃잎이 연약하게 보여 눈길을 끕니다.
 함박꽃은 고향집 화단의 홍초와 나팔꽃, 봉숭아 등을 지키는 보초병처럼 항상 뒤편에 서있었는데요. 붉고 하얀 꽃잎이 연약하게 보여 눈길을 끕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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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물어가는 감을 보니 가을도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 추석이 다가오면 붉은 감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던 감독(감 도매시장) 풍경을 떠오르게 합니다.
 여물어가는 감을 보니 가을도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 추석이 다가오면 붉은 감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던 감독(감 도매시장) 풍경을 떠오르게 합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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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전국 기온이 크게 오르면서 영남지방 일부는 다시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더군요. 기상청은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다가 내일은 장마전선이 북상하면서 남부지방에는 비가 내리겠다고 예보했습니다. 비 소식이 조금은 더위를 식혀주는 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매미들의 합창이 한창이고 고추잠자리가 등장했습니다. 여름을 대표하는 화초인 함박꽃, 홍초, 나리꽃, 나팔꽃 등도 활짝 피어 오가는 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가지에 매달린 석류와 봉숭아꽃도 눈에 띄는데요. 아침에 일어나면 눈을 비비며 찾았던 고향집 화단과 건너 동네 골목길을 떠오르게 합니다.

아직 풋내기이지만 감과 대추도 풍성한 가을을 예약한 양 한껏 뽐내고 있습니다. 청포도도 보이는데요. 여물어가는 열매들을 통해 가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지난날들을 반추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꿈과 한이 담긴 모든 사연들을 탐스러운 포도 알갱이에 묻고 가을이 여물어 가고 있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겠습니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고 외롭고 쓸쓸한 계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거듭날 그날을 위해 더 노력할 때이지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내와 떨어져 살며 밥을 해먹고 있는데요. 심심할 때는 있어도 외롭지도 않습니다. 내일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다음에 또 태어나도 저와 결혼하겠다는 아내가 오늘 밤이나 내일 집에 온다고 합니다. 어머니(장모) 생신 때문에 오는 모양인데요. 무슨 일로 오든 저에게는 가장 큰 손님이니 대접을 잘해야겠지요. 해서 주방 청소도 해놓고 빨래도 해놨습니다. 집에 도착하는 즉시 시원한 ‘치자 콩국수’를 만들어주려고 하는데 몇 점을 맞을지 모르겠네요.    

결실의 계절, 가을이 보입니다

꽃이 지고 난 자리에 알알이 열린 대추는 조카와 함께 큰누님 댁 창고 지붕에 누워 대추를 따먹다 벌레에 쏘여 고생했던 철부지 시절을 그립게 합니다.
 꽃이 지고 난 자리에 알알이 열린 대추는 조카와 함께 큰누님 댁 창고 지붕에 누워 대추를 따먹다 벌레에 쏘여 고생했던 철부지 시절을 그립게 합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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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풍요로운 청포도. 큰 누님이 입원해 있는 병원의 주차장 귀퉁이에서 탐스럽게 영근 모습이 보기 좋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보기만 해도 풍요로운 청포도. 큰 누님이 입원해 있는 병원의 주차장 귀퉁이에서 탐스럽게 영근 모습이 보기 좋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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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제에 이어 불볕더위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대서(大暑)의 체면을 세워주는 더위인 것 같습니다. 여름 기온이 전국도시의 평균기온보다 3-4도 낮은 부산도 자연의 법칙 앞에서는 예외가 될 수 없나 봅니다. 

어젯밤은 아파트 베란다 창문 너머로 부는 바람이 제법 선선하게 느껴지더군요.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뒤로는 금정산 줄기가 감싸고 있어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고 하지만 무더운 여름이 떠나려고 서서히 준비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다고 시간을 붙잡으려 한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짓이 없겠지요.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자연의 오묘한 이치와 신비스러움에 고개를 숙일 뿐입니다. 자연 앞에서는 겸손해야 하니까요.

그런데도 풍요를 상징하면서 가을을 예고하는 열매들이 여름을 멀리 보내려고 하는 것 같아 미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내 욕심만 채우려는 헛된 망상인 것을 알면서도 밉게 보이는 열매들에게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대는 어디로 가려 하십니까.
나를 두고 왜 떠나려 하십니까.
그대가 간다니까
눈물이 나오려고 합니다.

가슴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래도 실망하거나
속상해하지 않으렵니다.
슬퍼하지도 않으렵니다.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 오면
사랑하는 당신의 가슴에도
온갖 열매들이
맺힐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꿈이어도 좋습니다.
망상이어도 좋습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니까요.

당신의 눈동자엔 가을이 담겨 있었습니다. 당신의 가슴에도 가을이 앉아 있었습니다. 쓸쓸하고 외로운 가을이 아니라 알곡들이 열매를 맺는 풍성한 가을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보면 항상 가슴이 설렙니다. 또 기쁩니다. 꿈과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지요.   

땡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인데도 가을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는데요. 오는 가을에는 당신의 미소 띤 얼굴과 당신의 푸근한 마음을 닮은 그리움 하나를 주워 가슴 깊이 간직하고 싶습니다.


태그:#가을, #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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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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