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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 연합뉴스 조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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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부시 대통령이 취임 초기 'Anything but Clinton'(ABC) 정책을 쓰다가 애를 먹은 경우가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해 노무현 정부 때 정책을 부정하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는데, 이명박 정부의 대안이 뭐냐는 게 매우 중요하다."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14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한 정책 세미나에서 이명박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비판하며 한 말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수도권 규제완화와 혁신도시 재검토, 행정중심복합도시 축소 검토 등 국가균형발전 후퇴 정책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장은 물론 혁신도시 대상 지역구 의원들조차 여야 할 것없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이명박 대통령은 21일 "(과거 정부에서 제시된) 기존의 여러 지방균형 발전에 대해 원칙적으로 지켜나갈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지역발전정책 추진전략 보고회의'에서다.

이날 회의에서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가 지방 이전을 조건으로 추진되는 등 참여정부 때 마련됐던 혁신도시의 큰 틀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방 국토관리청과 항만청, 식품의약품안전청 등 3개 분야의 업무와 인력은 연내에 지방정부에 이관된다.

참여정부의 대표적인 균형발전 정책인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도 보완대책을 마련해 그대로 추진키로 했다. 이에 대해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은 대체로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일부는 예산확보의 문제점 등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이명박 정부의 지방발전 정책에 대한 불신감을 나타냈다.

이명박 "혁신도시 후퇴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 있는데..."

이날 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새 정부 들어 공기업의 지방이전 계획이 대폭 수정되는 등 지방균형발전 정책이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집중했다.

이 대통령은 "지방과 수도권이 상생하면서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지방에서는 수도권 규제가 지나치게 완화돼 지방발전에 해가 되지 않겠냐고 기우를 하는데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현 정부의 지방정책은 산술적으로 균형을 만들거나 결과를 균형되게 하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지방 발전을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지역 특색에 맞게 차별화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혁신도시 문제와 관련, "혁신도시가 후퇴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데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는 안이 있으면 지방 스스로 안을 만들어 제출해 달라"며 지자체의 자발적인 노력을 독려했다.

최상철 국가균형발전위원회(균발위) 위원장도 "혁신도시 개발에는 정책의 전환은 없고, 더 자생적 도시로 발전시키는 고민이 있을 뿐"이라며 "이미 (혁신도시로) 의결된 지역의 변경도 없다"고 강조했다.

수도권 규제완화만 강조... 지방발전 정책은 '거북이 행보'

4월 22일 나주시민 2천여 명이 정부의 '혁신도시 재검토' 를 반대하는 결의대회를 했다.
 4월 22일 나주시민 2천여 명이 정부의 '혁신도시 재검토' 를 반대하는 결의대회를 했다.
ⓒ 나주사랑시민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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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정부는 '선 지방지원, 후 수도권 규제완화' 방침을 거듭 피력하면서 논란이 예상되는 수도권 규제완화 방침은 발표에서 아예 제외시켰다. "지역경제 활성화가 이뤄지고 난 뒤 진행되는 경과를 봐가며 수도권 규제를 풀어나가겠다"는 게 청와대측의 설명이다.

국가균형발전 후퇴 정책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지방민심을 달래기 위해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당초 이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로 대폭 이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토의 구조를 미래지향적으로 개편하고자 한다. 해양지향, 광역화는 세계적인 추세"라고만 했을 뿐, 지역균형 발전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다.

서울시장 재직 시절 가장 앞장서서 행정수도 건설에 반대했고, 수도권의 강력한 지지로 당선됐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이 "지방을 홀대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제기된 것도 이 때부터다. 

취임 후 중앙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 방침이 발표되면서 수도권 기업의 지방 이전은커녕 지방기업의 수도권 유입 우려가 터져나왔다. 게다가 "혁신도시 부가가치가 포장됐다"는 감사원의 발표는 들끓는 지방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또한 국토해양부가 '공공기관 지방 이전 및 혁신도시 건설관련 예상 문제점 및 대응 방안'을 청와대에 보고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에 공공기관 지방이전 타당성 논란이 확산됐다.

야당에서는 "정부가 경제활성화, 글로벌 경쟁력을 명분으로 수도권정비계획법 개정 등을 통해 공장총량제 및 3대 권역제 폐지, 대규모개발사업 허용, 공장 입지규제 해제 등 대폭적인 수도권 규제완화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표명하고 있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최상철 서울대 명예교수를 국가균형발전위원장에 임명한 것을 두고도 지방분권 운동 단체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의지가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최상철 위원장은 2004년 수도이전반대국민연합 공동대표를 맡아 헌법재판소에 행정도시특별법에 대한 위헌 소송을 제기하는 등 대표적인 '수도권주의자'로 통했다.

그나마 이 대통령은 정부 출범 후 3개월 동안 이렇다 할 지역발전 정책을 내놓지 못하다가, 지난 5월 27일에야 10여명의 균발위원들을 위촉했고, 균발위는 이달 2일에야 위촉식과 함께 본격 활동에 돌입하는 등 '거북이 행보'를 보여왔다.

"참여정부는 균형·분산... 이명박정부는 경쟁·분권"

20일 오전 충남 연기군 남면에서 열린 '행정중심복합도시' 기공식 행사 장면.
 20일 오전 충남 연기군 남면에서 열린 '행정중심복합도시' 기공식 행사 장면.
ⓒ 행정도시건설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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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부시가 클린턴과 반대로 한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반대로 하는 'ABR'(Anything but Roh) 정책을 취하는 데서 원인을 찾는다. 이 대통령은 애초 노 전 대통령 시절 만들어진 균발위를 폐지하려 했지만, 국회가 여야 합의로 존치하기로 하면서 균발위가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날 밝힌 지역발전 정책의 핵심인 '5+2 광역경제권' 구상은 이미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부터 나왔던 방안이다. 당시 인수위가 수도권 규제 완화나 영어공교육 강화 등에 몰입할 때, '지방정책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서둘러 내놓은 것이었다.

이날 이명박 정부가 뒤늦게나마 지방발전 정책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지방정부의 반발과 지방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한 일회성 행보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최상철 위원장이 "참여정부의 지역발전 정책이 균형과 분산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새 정부의 지역발전 정책은 경쟁과 협력, 분권이 키워드"라며 참여정부와의 차별화에 방점을 찍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태그:#지방균형발전, #혁신도시, #이명박 정부, #ABR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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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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