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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슬마다 붉은 물감이 들어있는 듯하다.
▲ 꽃잎에 맺힌 비이슬 비이슬마다 붉은 물감이 들어있는 듯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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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종일 내리던 비도 지쳤는지 조금씩 쉬기는 했지만, '어제 오늘은 종일 내가 내렸어'하고 얘기를 해야 될 정도로 비가 내렸습니다. 비가 내리니 풀꽃들이 고개를 숙이고, 풀섶 사이 나비같은 곤충들은 어쩔 줄 몰라 풀이파리를 지붕 삼아 비를 피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젖은 날개와 고개숙인 꽃들의 모습에서 삶의 고단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면 궂은 날이나 맑은 날이나 변함없이 행복해하는 듯한 그들을 봅니다.

꽃은 시들었지만 물방울 속에 또 다른 꽃을 피운다.
▲ 비이슬 꽃은 시들었지만 물방울 속에 또 다른 꽃을 피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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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결이 어디에 있을까요? '받아들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쓰러지기도 하고, 찢기기도 하고, 꽃잎 애처롭게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그들은 그 모든 것들을 맨 몸으로 맞이합니다. 피하지 않습니다. 비가 오는 날은 비오는 날대로 주어진 빗방울로 자신을 치장하고,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 눈부셔 죽겠다는 듯 환호성을 지르며 피어납니다. 아침햇살에 활짝 피어났던 꽃이 뜨거운 뙤약볕에 말라가지만 그들은 다음 날 아침이면 또 새 꽃을 피워 활짝 웃으며 살아갑니다.

비가 오면 비를 받아들이고, 태풍이 불면 태풍을 받아들이고, 가뭄이 오면 가뭄까지도 온 몸으로 받아들입니다. 때론 상하고, 쓰러지고, 타죽어도 자연의 순환고리가 흐트러지지 않는 한 그들은 다시 활짝 웃으며 피어납니다.

손톱에 물들이기전 물방울 부터 물들인 봉숭화
▲ 비이슬 손톱에 물들이기전 물방울 부터 물들인 봉숭화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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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숭화가 한창입니다. 뜨거운 여름날 손톱에 물을 들이면 길게는 첫눈이 올 때까지 손톱에 그 빛깔이 남아있지요. 그러면 첫사랑이 이뤄질 수 있다는 징조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봉숭화가 피어나 어린시절 꽃물들이던 추억들을 내어놓습니다.

올해는 이파리에 맺힌 작은 빗방울을 먼저 물들일 작정인가 봅니다. 작은 물방울을 붉게 물들이는 봉숭화의 붉은 꽃, 저 꽃에 내렸던 빗방울들은 모두 붉은 수채화물감이 될 것만 같습니다.

이파리를 우산삼아, 양산 삼아 피어날 준비를 하는 연꽃
▲ 연꽃 이파리를 우산삼아, 양산 삼아 피어날 준비를 하는 연꽃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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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비가 내리면 연잎이나 토란잎을 하나 따서 머리에 쓰고 뛰어다녔습니다. 작은 꽃몽우리가 우산 대신 이파리를 벗삼아 피어났습니다. 수줍은 듯 피어난 꽃몽우리가 활짝 피어날 즈음이면 이파리보다 더 높이 올라가 하늘을 바라보며 활짝 웃겠죠?

나이가 들면서 활짝 웃는 일이 드물어집니다. 활짝은 아니라도 흐뭇한 웃음을 짓는 날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뭔가에 늘 붙잡혀 사는 듯한 기분입니다. 자연을 벗삼아 살아갈 때에는 그냥저냥 행복했는데, 도시에서 살아가다보니 온갖 편리함을 얻는 대신에 그 행복한 웃음을 잃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경쟁'이라는 못된 놈의 단어 때문인가 봅니다.

자연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의 본성대로 살아가기만 할 뿐입니다. 누구를 배려하는 일도 없이 자신에게만 충실할 뿐입니다. 그 흐름, 그런 삶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도 내가 바라지 않는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이지 뭐…' 스스로 자위하면서 말입니다.

연잎 위에 개구리, 그리고 연잎 주변의 개구리밥
▲ 개구리 연잎 위에 개구리, 그리고 연잎 주변의 개구리밥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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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이면 제일 신나는 놈들 중 하나가 개구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논두렁을 걷다보면 한 발치 앞에서 논으로 첨벙거리며 뛰어들던 놈들, 여름 밤이면 늦은 밤까지 시끌벅적 울어대던 놈들, 가끔씩은 개구쟁이들 손에 잡혀 뒷다리를 간식거리로 제공하던 놈들이었는데 요즘엔 올챙이 적에 문방구 한 편에 꼬물거리는 상품이 되어 팔려나가는 것이 고작입니다.

기껏해야 뒷다리 나오는 것 정도 구경하면 제 명을 다하는 올챙이들, 정말 우리 아이들에게 자연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자연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느끼게 하는 것인데,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자연은 어떻게 다가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우산을 들고 산책하는 사람들
▲ 우중산책 비가 내리는 가운데 우산을 들고 산책하는 사람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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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랫동안 비오는 날, 느티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비오는 거리를 구경했습니다. 무성한 느티나무라지만 간혹 굵은 빗방울을 후두둑 떨어뜨리곤 했지만 비를 피할 수 있는 정도의 이파리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산을 들고 산책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그들의 걸음걸이가 행복해 보입니다. 아마도 오는 비에 행복해 하는 자연과 호흡을 하기 때문에 행복이 전염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들의 걸음걸이는 평상시처럼 급하지 않았습니다. 전철역에서 쏟아져 나오고 들어가는 사람처럼 빠르지 않았고, 숨도 가쁘지 않았고, 생기가 없지도 않았습니다.

웃기에는, 행복해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시절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그래서 더 웃어야하고, 행복하다고 해야할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세상 어딘가에는 웃을 일, 행복한 일들이 보물처럼 숨겨있습니다. 소풍에서의 보물찾기처럼, 숨겨둔 보물을 다 찾을 수 있도록 엉성하게 숨겨있습니다. 찾으려는 마음만 있으면 웃을 일, 행복한 일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비오는 날, 비를 맞으며 행복해 하는 자연을 보면서 나는 보물찾기를 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비이슬,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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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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