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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쏟아지던 20일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점 천막농성장을 찾았다.  1년 전 7월 20일, 점거농성을 벌이던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첫 연행을 당했다. "벌써 그렇게 됐느냐"고 박경은 노조원이 놀란다.

 

그들은 연행 1주년을 '기념일'이라고 했다. 천막 안에서는 지난 밤 회사 측 용역들과의 무용담을 한참 꽃피우고 있었다. 김경욱 위원장과 이남신·이경옥 이랜드일반노조 수석부위원장, 박경은·송영숙 노조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서울일반노동조합이 지지방문을 왔다.

 

차마 책을 펼쳐보지 못했다

 

6월 말, 이랜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권성현·김순천·진재연 씀, 후마니타스 펴냄)가 발간됐다. 책은 현재 1쇄 3000부가 다 팔리고 2쇄 5000부 작업 중이다. 이 책의 판매수익의 일부는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기금으로 쓰인다.

 

작년 12월, 이랜드 투쟁을 기록으로 남기면 좋겠다는 얘기들이 오고갔다. 투쟁으로 바쁜 이랜드 노조원들을 대신해 '삶이 보이는 창' 르포문학모임과 이랜드일반노조 월드컵분회지원대책위가 기록을 기획하고 실천에 옮겼다.

 

'외부자나 제3자로 머물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진재연씨의 머릿말처럼 저자들은 집회에 함께 하며 적극적으로 조합원들의 삶에 개입했다.

 

하지만 책에 참여한 여러 명의 저자들 또한 각자의 직업을 갖고 있었기에 작업은 더뎠다. 인터뷰 시간을 잡는 것도 어려웠다. 이경옥 부위원장은 "책이 나온다고는 했는데... 참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박경은씨는 "책이 나왔다고 하는데 책을 보면서도 우리 책인지 몰랐다"며 웃었다.

 

자신들의 얘기가 책으로 엮여 나왔는데 소회가 남다를 것 같았다. 누구보다 먼저 책을 읽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경옥 위원장은 "조합원 투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읽는 게 두렵다"고 말했다. 설움이 복받칠까 봐 가슴 속에 묻어두고, 무슨 내용이 대충 있겠지 생각만 하고 있단다. 다른 조합원들도 차마 책을 펼쳐보지 못했단다.

 

지난 1년간 '소박한 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 상황이 빨리 해결돼서 보통대로 사는 거죠. 가정 평온하고, 아이들 비정규직 만들지 않고... 너무 소박하지 않아요? 천막에 앉아서 보고 있으면, 그냥 지나다니는 사람들처럼 살고 싶어요. 저 사람들은 너무 행복한 거 같아."

 

박은경 조합원이 조근조근 대답하며 쓰게 웃었다.

 

"이랜드 노동자들의 미래? ..."

 

1년을 갈무리하는 책도 나오고 2쇄까지 찍을 정도로 반응도 좋지만 이랜드 노동자들이 생각하는 미래는 밝지 않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되지 않았기 때문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이 없다고 했다. 비관하고 있나라는 질문에 김경욱 위원장은 솔직히 대답했다.

 

"솔직히 비관적이다. 조합원이 얼마나 버텨 줄지. 지금까지도 대단했다. 파업에 나오지 못하고 생계투쟁하는 분들이 100명 이상이다. 강력히 압박할 힘이나 의지가 있느냐는 의문이 든다."

 

현재 남은 조합원들은 최대 50명 정도. 게다가 수도권 중심에 90%가 여성이다. "이 인원으로 경영진을 압박할 수 있나? 우리도 고민 수없이 한다"고 했다.

 

이랜드 노조하면 떠오르는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라는 꼬리표에 대한 부담감도 대단했다. 이경옥 부위원장은 "우리는 당장 일자리 짤릴까 봐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건데, 투쟁의 전면에 서 있는 상징적인 투쟁이 된 것에 대한 부담이 크다"고 했다. 또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싸움을 하면서도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 대한 고충도 컸다.

 

이남신 부위원장은 "김경욱 위원장은 가족, 친구, 신용을 잃었다고 말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건강을 많이 잃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뇌경색, 디스크, 생리질환 등 병명들도 다양하다. 복귀해도 예전처럼 일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에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다.

 

10~25만원 생계비 지원이 전부

 

촛불집회 현장에 가면 책과 얼음물을 파는 이랜드 노동조합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재정사업과 CMS후원, 간헐적 지원 등으로 현재 100여 명의 조합원들에게 월 10~25만 원의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교통비, 밥값 등을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그러나 김경욱 위원장은 "우리한테 돈보다 중요한 게 투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KTX는 철도노조에서, 기륭전자는 금속노조에서, 코스콤도 사무노조에서 돕고 있다. 그런데 이랜드는 아무도 없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상징성 때문에 너도나도 덤벼들었지만, 결국 모두 손 뗀 상태"라며 "고립된 느낌"임을 숨기지 않았다.

 

2007년 7월 300인 이상 사업장에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첫 해고가 단행됐던 이랜드 홈에버는 비정규직 보호법 투쟁의 상징이 됐다. 현재는 홈플러스 인수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공정위 기업결합 승인이 떨어지면 법적 마무리가 되는데, 9월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교섭과정에서 원하는 것도 크게 변한 바 없다. 한 번도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저 '일하게 해달라는 것'이 이랜드 일반노조의 요구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추석을 현장에서 맞고 싶다"는 송영숙 조합원의 수줍은 대답이 돌아온다. 이제 그들의 그 소박한 꿈에 대한 응원은 우리의 몫이다. 


태그:#이랜드노동조합, #천막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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